임진강이 흐르는 북삼리, 인기척이 없는 밤하늘 아래 우연히 만나게 된 열 살 차이의 남녀.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된다. 아무 말이 없어도 무한의 느낌을 주는 맑은 자연 속에서 두 사람. 그 순수하고 성실함이 꼭 알퐁스 도데의 <별>을 연상하게 했다. 세상 물정을 모를 것 같은 어린 아가씨와 또 세상을 알지만  세파와 자연과의 조율 속에서 성숙한 총각.

 

요즘 연애처럼 격정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아서 이 이야기 배경이 언제쯤일까, 궁금했다. 그러다 단서를 잡았는데, 두 주인공이 함께 보러간 영화가 <아마겟돈> 그래서 바로 검색해보니 1998년 작품이다. 아, 그럼 그렇지. 아날로그적 정서가 물씬 풍겨나는 걸 보니 주인공들도 바로 어린 시절을 그렇게 정스럽고 섬세하게 살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나이차를 극복하고 두 사람, 아주 천천히 연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단아하고 참하면서도 조금은 답답하고 낯설게 느껴지니 나는 이미 영악스러운 세상에 이미 물이 들어버린 것인가. 마음을 먼저 나누는 사랑, 배려하며 커져가는 사랑. 그러나 삶은 참 얄궂기도 하지. 그럴때 쯤 꼭 시샘하는 무언가가 찾아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으로 묘사되는 여주인공에게 이길수 없는 병마, 이런 비극이 어디 있는가.

 

최선을 다하여 환자인 연인에게 힘이 되어 주는 남자. 생명을 잃어가면서도 남겨질 남자를 위해 걱정하는 여자. 더없이 착하고 선한 사람들이다. 그러니 첨예한 갈등이나 사건은 발생하지 않는데, 독자로서는 조금 아쉬울 수 있으나 남녀 주인공들의 선함이 마음을 힐링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장점이 될수 있겠다. 옥수수밭 별자리. 별들이 총총한 밤하늘을 옥수수밭이라 한다면, 그 안에 펼쳐진 별들을 옥수수알,이라 비유하였으니. 매우 참신하다. 한 사람은 그 옥수수알 같은 별이 되어 하늘에서 반짝이며 그 아래서 올려다볼 또 한 사람과 마주하겠지.

 

비록 슬픈 이별이기는 하지만 헤어질 때도 만날 때처럼 아름답게. 좋은 기억들을 품으며. 요즘은 이별의 방식이 흉악스러운 경우가 많아져서인지 이런 소설 속에서의 모습을 보니. 헤어질 때 마음가짐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 전개를 볼 때 작가의 경험이 아닐까 짐작했으나 여행 중에 영감을 얻어 만든 소설이라고 하니, 그건 아닌가보다.

 

일본과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지내야 할까. 화홥의 날이 오기란 점점 더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하면 오래전 침략과 그 피해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고 입고했던 그 세대만의 앙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의 넷우익. 컴퓨터 앞에서 앉아서 주로 한국인을 타겟으로 삼아 비난을 일삼고 심지어 유언비어마저 퍼뜨려 한국인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일본인에게마저 좋지않은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일본의 넷우익은 자그만치 1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숫자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그 세대가 주로 2,30대라는 것이다. 비이성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정신의 소유자인 그 젊은이들이 일본의 미래라고 했을 때 양국 간의 앞날은 불보듯 훤해짐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넷우익들의 일방적인 한국인 비방은 단적으로 '조선놈'이라 부르는 그들의 숭악한 욕설에서도 알 수 있다.

 

넷우익들은 한국인이거나 또는 자국민이면서 한국을 옹호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을 향해 거침없이 '조선놈'이라 칭하며 몰아붙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에게 한국이란 존재는 뚜렷한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냥' 싫은 이웃나라인 것이다. 다른 외국인이었다면 넘어갔을 일도 한국인과 관련이 된다면 거침없이 비난하고 억지를 부리니 이런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넷우익,인 것이다.

 

재일 한국인에 대해 지나치게 사회보장을 잘해준다고 주장하는 넷우익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어디 그럴 사람들인가. 한류 드라마나 가요,에 대해서도 반기를 드는 넷우익들. 한류 드라마를 수입하는 것은 일본 방송국이 무조건 한국 드라마를 사랑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그 물밑에는 치밀한 계산이 있는데도 그래서 이모저모 손익을 따져 그들에게 이익이 되니 한국 드라마를 들여와 방영을 하는 것인데도, 넷우익들은 일본 방송국이 한국드라마를 편애,한다는 이유로 시청거부와 데모까지 일삼는다고 하니,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애국,이란  말인가.

 

그것은 애국, 이 아니라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일목요연하게 따져준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 책의 글쓴이 세 사람이다. 그 와중에 이런 개념 가득찬 일본인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물론 글쓴이들도 넷우익에 욕먹을 작정을 하고, 그러나 바른 말을 하기 위해서 넷우익의 생각을 반박.비판하며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엮어냈다. 그들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결국 넷우익들은 진정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다. 통신을 통한 발언은 논리적이지 않으며 지인이 없는 외톨이가 대부분이고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지독히도 배타주의자들이다. 그런 아집스러운 사람들에게 통신이라는 매체는 얼마나 위험한 문화적 기기인가, 걱정이 앞선다. 통신이란 그렇게 멋모르는 사람들을 선동하고 거짓을 진실로 여기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넷우익들의 행태가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을 했지만 책을 통해 보고 이렇게까지 심각한 줄은 몰랐다. 넷우익들을 보며 입이 귀에까지 걸릴 아베총리가 오버랩된다. 아무쪼록 양국간의 평화를 위해 일본의 더 이상의 배타와 중상모략은 안되는데...,

 

소설이라는 것이 아무리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으로 된 허구,라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리얼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품으며 경이롭기까지 했다. 멕시코의 역사와 문화, 따로 깊숙히 공부하지 않고는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없다는, 그래서 이 자료들을 찾느라 참 고생했겠구나, 작가의 노고도 생각하면서. 그런데 역시. 책을 다 읽고 뒷장에 쓰인 작가의 말,에서 보니 그는 멕시코에서 유학을 했고 그 곳에서 한동안 기거하였단다. 그러니 그 속에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 생생할 수 밖에.

 

구광렬,이라는 작가의 이름은 작년에 아주 강렬하게 다가왔다. <반구대>라는 소설로. 원시때의 유적지인 울주군 반구대의 형성과정을 담은 서사로 한 편의 설화를 읽는듯하면서도 당시를 리얼상상으로 담아냈던 소설. 어느 한 구석 나무랄데 없는 완벽한 서사로 감상후에는 그의 서사력과 문체에 극찬을 마다하지 않았었는데, 이번 신간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참 반가웠다.

 

28세 청년, 강경준은 학생비자로 멕시코에 머무는 중에 폭스바겐 딱정벌레차를 중고로 넘기다가 그것이 도난차량이었음을 이유로 경찰서로 잡혀온다. 억울하기 이를데가 없다. 스페인어를 조금은 구사하는 경준은 멕시코인 변호사에게 최선을 다해 물심으로 부탁을 하지만,결국 돈만 먹고 자취를 감추어버린 변호사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살만하던 멕시코의 경제가 파탄이 나고 난민이 생겨난 이유는 제일을 뽑으라면 바로 관료들의 부정부패.

 

그러니 경준을 도난차량의 도둑으로 모는 것도 모두 뒷돈,을 바라고 린치를 가하는 속셈이라 할 수 있겠다. 타국에서 죄수가 되어버린 경준. 수 년을 감옥에서 나야하는데 그 시간들 속에 다양한 이유로 감옥에 들어온 죄수들을 알게 된다. 혁명의 길로 들어선 엘리트 죄수와 그의 딸과의 만남,사랑,이별. 지진으로 아수라장이 된 틈을 타 탈옥, 아니 탈출을 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경준은, 탈출 후 경찰과 대치하다가 죽음을 맞은 감옥 동료들의 고향으로 향한다.

 

정글을 지나 외진 지역으로, 그 곳에서 그들의 가족들과 만나고 또 다른 연인을 만나 결혼을 약속도 하지만, 뒤쫒아온 경찰에 쫒겨 그들을 또 잃고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혁명군 단체에 들어가 활동도 한다. 사람의 일이 소설보다 더 소설스럽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는가. 그야말로 한 청년의 인생역정이 한 권으로는 모자랄 소설과도 같이 전개가 되는데, 흥미가 진진하다.

 

여자목숨으로 사는 남자, 제목과 내용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 사뭇 궁금하던 차에 설화 속에 등장한다는 이야기. 여자가 일찍죽어 그만큼의 수명을 남자가 이어받는다는 이야기. 그러고보니 경준은 멕시코에서 만나는 여성들로 하여금, 그녀들의 희생으로 하여 목숨이 연장되어 가는게 아닌가 싶다. 경준의 멕시코에서의 삶과 무관하지 않은 멕시코의 정치. 글쓴이 짬짬이 그 나라의 정치경제문화 등 배경지식들을 넣어 버무려저 주니 일석이조의 득이 되는 소설읽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