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엄마도 그랬어. 사춘기 딸에의 공감. 어느 날 문득, 눈빛이 사나와지고 말씨가 살벌해지는 사춘기. 그런 자녀를 둔 부모들의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인고의 시간들. 일부러도 아니고 통제불가능한 호르몬의 얄궂은 짓이라는데 이를 어쩔 것인가. 오래 전에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난 적이 있는데, 늘 방그레 웃으며 이쁜 목소리로 말 잘 듣던 아기 암탉이 사춘기에 접어들자, 눈초리 자체가 달라져서는, 아무리 만화라지만 어쩜 그리 표현을 잘했는지 킥킥 웃었었다.

 

사춘기 딸과 글쓴이인 엄마. 설상가상으로 두번째 이혼을 겪어야 했던 글쓴이의 입장에서는 민감할 나이의 딸에게 더욱 미안했겠고, 걱정이 되었겠다. 호르몬의 일이라지만, 사춘기도 사람의 일인지라 이들처럼 서로 공감과 배려로 인내하다 보면 그 1,2년은 유수처럼 지나리.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을 철렁케 하는 사춘기 자녀들의 '몰라''됐어''말이 안 통해!' 등, 단말마같은 이런 반응이 호환마마와도 같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다려주기.

 

요즘은 그런 질풍노도의 고통을 오직 스마트폰에 의존하며 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다 보니, 중독증까지 걱정해야하는 부모의 마음이 더욱 타들어간다. 정말이지 보살이도  되어야 할 판국. 이럴때 더욱 필요한 것이 그 공감,이라는 것이 아닐까. 자꾸 어긋나는 자녀의 언행에 즉각반응보다는 한 박자 쉬어가며 응대하기. 여기 글쓴이와 딸의 관계도 여느 사춘기 자녀를 둔 가정처럼. 어쩌면 겪고 지나야하는 통과의례려니..., 하면서 따뜻하게 기다려준 엄마가 있었기에 무난히 지날 수 있었던 것 같다.

 

딸과 엄마의 티격태격과 화해의 에피소드들을 읽으며 자꾸 웃음이 나왔던 것은 나도 겪은 일이니까. 나도 그랬어. 그 시절이 오버랩되었다. 형제가 많은 집에서 가운데 정도로 태어나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은 유독 그 시절을 혹독하게 치르는 것 같다. 위는 위니까 대우받고, 아래는 아래니까 보살핌받고, 괜시리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애매한 입장에 있는 가운데는 늘 소외되고 손해보는 듯한 서운함. 물론 그것은 사춘기때의 민감함으로의 느낌,일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고 평정심을 찾으면 부모의 사랑은 결코 편애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니까.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웃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복수를 할까. 부모를 슬프게 하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의지와는 다르게 될 수 있는대로 아주 못되어지는데, 그러나 일시적인 호르몬의 일이라 언젠가는 또 멈춤이 있으리라. 사춘기를 겪는 동안은 피차 힘듦이 있지만, 사춘기도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겪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때에 맞추어 경험을 해야 나중이 평탄하다. 또 그런 사춘기 아이들을 만났을 때 공감능력이 발휘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도 여러 통증을 겪는 딸을 이해하고 잘 이끌어 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엄마의 사춘기 경험,이니까.

고전을 말할 때 가장 흔하게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읽는 사람에게 즐거움과 지혜를 주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전오락> 즉 고전에서 얻는 다섯 가지 즐거움을 이야기 하는 책이다. 제1장에서 제5장까지 각각 세상을 통찰하는 즐거움, 지혜를 얻는 즐거움, 고통을 극복하는 즐거움, 학문을 익히는 즐거움, 인간을 이해하는 즐거움,으로 편집이 되어 있다.

 

익숙하거나 또는 생소한 한자성어와 그에 얽힌 옛 이야기를 소개하며 글쓴이의 생각을 덧붙여 과거와 현재를 잇게 한다. 아주 오래전에 익히 알던 이야기들이지만 차마 그 때는 깨닫지 못했던 교훈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 글의 아래로는 색연필을 긋게도 하니 같은 이야기라도 나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이리 다르게 느껴지는구나.싶다. 무엇보다 고전 속 이야기와 현재 우리의 삶이 동떨어지지 않아서 좋다. 물론 그것이 고전,의 맛과 멋,이라 할 수 있겠지만.

 

현재 자신이 어느 부분에서 결핍을 느끼고 있는가. 나태하고 권태로움이 생활화 되었지만 어떤 재활의 계기를 만나지 못해 괴로워하고 있는가. 또는 용기가 필요한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벽을 느끼거나 갈등이 있는가..., 그 어떤 경우라도 좋다. 이 책을 열어보면 이 안에 해답이 있으니 이것 또한 고전의 힘,이다. 요즘 돋 벌어먹기 참 고되다, 그냥 모두 접고 빌붙어 살거나 전국 유람이나 다니고 싶다, 싶을 때는 이 대목을 추천하고 싶다. '생업이 없으면 떳떳한 마음도 없다'. 무항산무항심, 경제활동이 있어야 정신적인 것도 온전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 자신을 지킬만큼의 경제활동은 해야 사람으로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일촌광음불가경', 짧은 시간도 가벼이 여기지 마라. 귀한 여가가 생겨도 요즘은  무의미한 잡설로 병풍을 두른 요물, 그 스마트폰을 습관적으로 검색하거나 들여다 보며 킬킬대며 가벼운 사람이 되기가 십상이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시간, 적은 시간이라도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 일곱 글자가 천둥번개같은 일침을 가한다.

 

'마부작침',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 당나라 시선인 이백, 공부하기 싫어 꾀를 부리던  어린 이백에게 다시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했던, 할머니의 한 말씀.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던 할머니. 그 큰 도끼를 간다고 어느 세월에 바늘이 될까요? 그럼,되고말고,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도끼로 바늘도 만들수 있다는 멋진 말이다.  할 것도 많고 유혹도 많은 현대인들은 한가지에만 몰입하기에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이것저것에 현혹되어 기웃기웃, 그러다 인내심도 바닥이 나고, 한 가지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멋진 한 가지를 보란듯이 이뤄낼 수 있으리.

 

이는 우선 내게 와 닿았던 몇가지만을 추려보았다. 이 밖에도 고전의 찰진 말씀들이 수십가지, 두고두고 폁쳐보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가끔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을때마다 어떤 책이 있더라..., 난처하기 짝이 없는데, 이제는 당당히 이 책으로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이 두고 실천한다면 피를 이루고 살을 이룰, 그런 책임을.

 

 

동물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잘 살아가자,고 이름 붙여진 수동시. 그 수동시에 위치한 수봉산에서는 지금 심상치 않은 동물들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인간에게 당하고만 살 수 없게 된 동물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대결의지를 다진다. 극한에 선 동물들의 회의와 재판을 보면서 우화로서의 진한 풍자가 예감되었다. 읽어갈수록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환경오염과 그에 대한 인과응보, 서사가 짱짱하게 진행되니 흥미가 진진하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두말 할 나위없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칭하는 인간들의 이기와 탐욕이 부른 응징이겠지. 정력에 좋다면 까마귀 고기까지 마다않고 그들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들. 대기오염에 토질오염, 수질오염의 주범인 인간. 자기들의 편의를 위해서는 망설임없이 당장 자연을 깎고 파고 허물며 동물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는 어리석은 사람들. 물욕과 권력에 맹목적이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라니 동물들이 떠 안게 되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동물들은 드디어 일심동체가 되어 원정군까지 소집하여 전의를 불사른다.

 

읽으면서 상상하니 내내 무서웠다. 과연 이것이 마냥 허구적인 우화에만 머물고 말까. 지금도 어느 강에는 시커먼 폐수가 쏟아지고 또 비옥한 흙에는 각종 농약들이 뿌려지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한 생태계에는 끔찍한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끊어진 먹이사슬로 인해서는 그 환경을 잠식해버리는 또 다른 무서운 종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무분별한 외래종의 도입은 토종을 멸족시키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 되어가고 말이다. 답답함이 첩첩산중이다.

 

이 우화를 통해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진중하고도 예리하게 심중을 찌른다. 인간은 이제라도 '생각'이라는 것을 해야하지 않을까. 각성해야하는 것은 어른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건강한 환경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환경파괴의 끝장을 보이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남녀노소 가릴 것이 없다. 가볍게 생각했던 환경문제에 대하여 함께 반성하며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자녀와 함께 읽는 우화소설' 이라는 이 책 부제의 깊은 뜻을 알 것 같다.

 

얼마 전에 문학계의 원로이신 어느 분께서 말씀하시기를 인터넷 매체로 인하여 이제 더 이상 소설읽기에서 정보를 찾는 일은 힘들어질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당시 그 말에 나도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는데 웬걸, 이 우화를 통해 그 생각을 수정해야겠다. 이렇게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이 책 안에는 허구적인 서사뿐 아니라 사실적인 정보전달이 참으로 대단하다. 환경오염과 그 결과를 생각하면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경계의 메시지도 강하지만 삼라만상 안에 있는 과학적인 정보 역시 걸고도 풍성하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독서를 하고 자료를 수집했으며 부단히 사색또한 놓지 않았을 그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딱딱한 주제일 수도 있을 환경문제에 우화라는 동물들의 이야기를 섞어 비비니 재미와 정보, 일석이조의 효과다. '미래에서 온 전설' 다소 역설적인 제목. 무슨 의미에서일까 궁금했는데 지금처럼 환경오염에 어리석음을 다한다면 먼 훗날 미래의 어느 날에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비현실적인 슬픈 일을 당하게 될 것임을. 그런 의미에서 이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