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 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 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내고 /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내고

그들의 방에 제지의 쇠고리를 /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문정희 <다시 남자를 위하여> 부분 책 속에서

 

요즘은 남자다운 남자가 싸나이다운 싸나이가 없어, 눈 씻고 봐도 없어. 라고 시시때때로 개탄하던 차에 번쩍 띄이는 시가 한 편 있었으니 바로 문정희 시인의 <다시 남자를 위하여>다. 그래, 맞아. 내 마음을 어쩜 이리 정교하고 오롯하게 잘 표현했을까. 공감의 고갯짓을 하며 흐뭇해하는데, 이 시가 끝나는 아랫자락에 글쓴이의 이런 말이 덧붙여져 있다.

 

'그런데 잠깐! 문정희 시인도 이미 잘 알고 있겠지만,

남자들도 연봉, 학벌, 직업, 집안 배경이나 저울질하고 있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보다 "눈부신 야생마"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한답니다'

 

순간 이 시로 하여 뿌듯했던 내 마음이 뜨끔, 하여 웃었다. 자꾸 찔려서 그냥 웃고 말았다.

 

<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이 책은 아나운서 고민정의 추천도서였다. 어디엔가 그녀의 출산 소식과 (축하하며) 함께 이 책에 대한 감상평이 실렸는데, 보는 순간 흥미로웠다. 사실 책에 대한 흥미에 앞서 내가 호감가는 고민정이 읽었다니, 더욱 끌렸을지도... 나도 읽어보자. 평소 책을 주문할 때는 요목조목 살피는 편이지만, 이 책만큼은 그런 과정없이 바로 주문했다. 그리고 탁월한 선택이었음을, 참 재미있게 읽었으니까. 역시 고민정,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배울 점이 참 많은 멋진 여자임에 틀림없다.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의 연금술사로 불린다는 글쓴이 김용규.

철학과 신학이라는 말에 그의 책은 지루하고 어렵지않을까, 지레짐작한다면 그것은 큰 선입견이다. 동서고금을 아우르는 많은 철학자와 시인과 그들의 시작품의 인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시의 해석만큼은 뭐랄까. 보다 쉽고 철철 감칠 맛이 난다고나 할까. 시의 해석(?)이라기 보다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에 맞는 시를 인용하게 되었다고 해야겠다. 시는, 우리 삶이니까.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한다.

문학은 (시는) 그 시대와 그 사회를 비추어 주는 투명한 거울임을,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의 또렷한 반영임을. 그래서 시는,꿈틀 살아있고 힘이 팽팽한 존재임을!

 

각박하다고 느끼면서도 꾸역꾸역 하루살이를 해내야하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이타심을 발휘하며 가치있는 삶을 살도록 긍정의 힘을 주는 책.

어떻게 살아야 잘,사는 길일까.

조금은 이정표가 되어주는 내용이어서 감정마저 정화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된다.

이런 분들은 정말 하늘이 내리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테레사 수녀님도 이태석 신부님도. 끝없이 낮은 곳으로, 더 가난하고 더 불우하고 더 어두운 곳으로 따뜻한 손을 주저없이 내미는 분들.

 

예전에 영화 체널을 돌리다가 '울지마 톤즈' 라는 휴먼 다큐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 밥을 먹다가 눈물이 자꾸 쏟아지는 바람에 먹는 것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휴가차 한국에 나오셨다가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받는 와중에도 톤즈 마을 아이들을 위한 모금 콘서트도 하시고 그들을 위해 하나라도 더 마련하고자 애쓰던 모습이 찡했다. 거기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삭발한 모습에서는 어찌나 가슴이 먹먹하던지. 그 고통에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고 해맑게 웃던 모습. 사랑으로 충만한 가슴을 가진 사람만이 가능한 그런 표정이었다.

 

이태석 신부님 (1962-2010)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수도회에 입회, 1999년 여름방학 중에 케냐와 남수단을 방문했을 때 결심했다. 훗날 꼭 이 곳에 와서 봉사할 것임을. 그리고 2001년 남수단에 부임.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가난하다는 수단. 종교와 석유를 둘러싼 정치적 욕심때문에 수단은 남과 북으로 갈려 계속되는 내전으로 폐허가 되었다. 어린이들도 군대로 끌려가 죽거나 장애아가 되었고 전쟁 고아가 넘쳐났다. 부모형제를 죽인 원수, 북수단을 향해 복수심만 갈고 있는 아이들.

 

이태석 신부님은 삶의 의욕을 잃고 살기만 등등했던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총보다 세다' 먼 곳에서 유능한 교사를 초빙하여 아이들을 가르치게 하고 마음의 평화와 사랑을 얻는 노래와 악기를 가르쳤다. 그가 만든 35인조 브라스 밴드는 남부수단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총대신 악기를 든 아이들, 그들의 눈에서는 점차 살기가 가시고 그 자리에 평화가 스며들었다.

 

애석하게도 49세로 선종하신, 톤즈 사람들에게는 쫄리 신부님으로 불리며 그들의 아버지이자 선생님이자 의사, 건축가, 지휘자였던 이태석 신부님. 전기를 잇고 냉장고를 돌려 백신을 상하지 않게 하고 인터넷과 영화라는 신기한 문명을 경험하게 해주었던 신부님. 한센인들의 문드러진 손과 발을 어루만지며 사랑을 전하였고 그 발에 맞는 맞춤형 신발도 제작하여 선물하기도 했다. 그의 박애는 대체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신부님의 무한대 사랑실천에 형언할 수 없을만큼의 존경심이 차오른다.

 

휴가차 한국으로 간 쫄리 신부님이 선물을 가득 안고 돌아올 것이라 의심하지 않았던 톤즈 어린이들에게 신부님의 선종은 넋을 잃을 충격이고 아픔이었을 것이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처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신부님의 비디오 메시지를 보고들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아이들, 손수건으로 눈물을 얼른 훔치며 고개를 떨구던 아이들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소리없는 울음이 얼마나 크고 깊은 슬픔인지. 비록 신부님의 육신은 그들곁에 없다해도 음악으로 공부로 사랑으로 평화로 그들 곁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믿는다

 

이 책 <톤즈의 눈물>은 이러한 신부님의 업적을 동화작가 이병승씨가 동화형식으로 엮은 이야기다. 이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나눔이란 무엇인가, 반성하고 짚어보게 한다. 오직 자신과 가족의 안위만을 위해 오늘을 사는, 소시민적인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큰집 할머니는 나에게 늘 이렇게 어머님의 말씀을 전하시곤 했다.

"용택아, 너그 어매가 들에 가면서 너 학교에서 돌아오면 방청소 마루청소 해놓고, 보리쌀 갈아 밥 안쳐놓고, 상추 뽑아다가 씻어놓고, 시간 남으면 대사리(다슬기)잡아다 놓고, 애기 젖 먹이러 평밭으로 오라더라."

 

나는 아무 군소리 없이 그 많은 일들을 해냈다. 잠에서 깨어난 동생을 등에 업은 채 방을 닦고, 상추를 뽑으러 갔다. 강에 가서는 동생을 강가에 내려놓고 다슬기를 잡았으며, 동생이 울면 동생을 업고 찔레꽃이 핀 강길을 걸어 동생 젖을 먹이러 어머니한테 갔다. 그 때 내가 했던 그 많은 일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 글을 쓸 때, 마르지 않는 샘같은 글감이 되어 주었다. ]

 

이 대목을 읽다가 나는 킥킥 웃음이 나왔다. 몸이 서너개쯤 있어야할 꼬마 용택이의 분주한 몸놀림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어 왈칵 눈물이 맺힌다. 이를 어쩌나. 지하철 안이었다. 두 눈을 깜빡깜빡 하다가 임시방편으로 책을 덮고 뒷표지에 실린, 평소에 냉철한 사고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는 소설가 김훈의 추천평을 읽어내렸다.

 

(전략) [용택이네 엄마는 놀라운 엄마다. 용택이네 엄마는 짐승이건 곡식이건 채소건 간에 자라려 하는 것들을 자라나게 하고 살려는 것들을 살아가게 하는 놀라운 힘을 지녔다. 용택이의 엄마는 학교 문전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세상 사는 이치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며 사람과 자연의 관계, 사람과 짐승의 관계가 어떠해야 되는지를 훤히 알고 있다. 알 뿐아니라 한평생 노동으로 그 앎을 실천해왔다. ](후략)

 

역시 김훈의 표현은 언제나 명쾌하다. 섬진강 사람들의 소박함과 동시에 굴지 않는 노동의 무게, 아무리 부지런해도 벗어날 수 없던 그들의 가난을 생각하니, 짠함이 밀려왔던 것이다. 그래서 맺혔던 눈물이 김훈의 글에 공감하면서 잦아들었다. 그때는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누구에게나 그런 시대였다.

 

<사람>은 섬진강 시인이자 평생 섬진강변 초등학교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온 김용택의 에세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가까운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적고 있다. 위선이나 술수가 없는 진솔한 사람들, 흙을 닮은 사람들, 섬진강을 닮은 사람들. 그의 가족, 친척, 친구들, 문학가와 화가들, 분교의 아이들 그리고 어머니.

 

자연을 닮아 자연대로 산다면 큰 탈이 있을리 없다. 비록 평생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었지만 순리대로, 인정을 나누고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던, 가난했지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호탕하면서 유머 넘치는 그의 어머니 삶은 (성실,근면,인정) 그대로 자식들에게 산교육이었고 교훈이었다.

 

사면이 산중, 그 가운데를 흐르는 섬진강, 그 사람들 속에서 평생을 시인과 교사로 살아온 그에게는 고향의 모든 것이 시상이고 가르침이고 예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정서와 분위기에서 시심이 발동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한 일. 아이들의 동시 또한 얼마나 청정하고 무구한지, 내내 빙그레 웃음이 된다.

 

<사랑> 나는 어머니가 좋다 / 왜그냐면 / 그냥 좋다 //

<비> 비가 가만가만 온다 / 나는 오늘 빗소리를 들었다 //

<여름> 이제 눈이 / 안온다 / 여름이니까 //

<꽃>향기로운 꽃 / 누굴 주고 싶어 / 이쁘게 피었을까 / 여러 사람에게 / 사랑을 주고 싶어 피었을까/ 나도 꽃을 좋아한다 / 아아 나에게도 꽃을 줄까 //

 

그의 제자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쓴 이런 동시에는 꾸밈이 없다. 억지스런 훈련의 흔적도 없다. 그저 대상을 바라보고, 튀어나오는대로 표현했을 뿐 그야말로 리얼이 아닌가. 현재 김용택은 정년퇴임을 해서 학교를 떠나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자연을 이해하고 사람과 자연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진정으로 세상을 걱정하는 큰 산 같은 사람, 진심어린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 마음이 풍요로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그는 교사생활을 할 때처럼 아이들 곁에 항상 붙어 있지는 못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아이들이 그런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란다. 여전히 섬진강변의 자연은 늘 그들과 함께 있으니 말이다. 쉼없이 킥킥대면서도 콧끝 찡한 이야기들. 그것은 짧막한 사연 하나하나에 모두 진솔한 감동이 서려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