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한껏 잘 누렸다. 만화방창에는 무심해야지, 그리고 해야 할일에 몰입했야지 했으나 결국 그 어느 때보다 만끽했던 4월. 이제 온 세상이 초록 일색으로 가지런해지니 진정이 되면서 활자가 고팠다. 도서관 발코니에서 바라보는 저 산의 초록이 다시 또 눈부시다. 이럴 때 읽게 된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라는 소설은 더욱 푸르고 맛깔스러웠다.

 

모리츠같은 남자는 안돼, 팀 같은 남자를 만나야 돼. 여주인공 샤를로타가 팀과 잘되기를 바라며 읽었다. 그리고 나의 바람대로 되고나니 뿌듯하다. 독서의 효용이란 이런 맛이 아닐까. 마치 나의 일처럼 좋았으니까.

 

나이 스물아홉에 대학도 중퇴한지 7년이 되어가는 샤를로타. 부모에게는 그 사실을 언급조차 못하고 '드링크스&모어' 라는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며 살고 있다. 남자편력까지 있는 자신이 가끔 한심하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음악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살만하다. 사랑을 할 때나 잠을 잘때 출퇴근을 할때도 늘 음악을 들어야 하는 그녀는 자유분방함 속에서도 성품은 나쁘지 않은 여자다. 술집의 사장인 팀과 단골손님 게오르크 아저씨와는 서로의 속내까지 알아주고 소통하는 가족같은 친구사이.

 

어느 날 그녀에게 동창회 초대장이 배달되는데 내키지 않는 모임이었다. 모두가 사회적으로 일찍 성공한 친구들. 본인과는 극도로 대비되는 화려한 스펙의 그들이지만 모두 지루하고 위선적인 족속으로 어울리고 싶지 않은 동창들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모리츠. 16세 그녀에게 첫사랑이었던 모리츠. 그와의 차고사건. 차고에서 사랑을 나누다가 발각된 그날 이후 모리츠에게는 물론 친구들에게까지 버림받고 괴로운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런저런 상처의 기억으로 그 동창회에는 나가지 않으려 했으나 13년 만의 갑작스런 모리츠의 방문. 결국 동창회에 참석하지만 또다시 모리츠에게 당하는 배신과 모욕감.

 

절망 속에서 그녀는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아픈 기억들을 모두 잊고서.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과거를 지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민망하고 후회스러운 여러 가지 과거를 잘둑 잘라낸 그녀. 이제 그녀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부유한 모리츠의 아내가 되어 있었고, 갈등 중이었던 친구와도 절친 관계를 회복하였다. 그런 부분의 과거를 모두 지웠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에서도 모두 사라진 것이다.

 

모두가 동경하는 좋은 집에 좋은 차. 그리고 풍족한 돈의 씀씀이로 한동안은 행복했던 샤를로타. 그러나 경제적인 것 그것 뿐이었다. 오히려 과거를 지우기 전보다 훨씬 악화된 상황. 과거를 지움으로 해서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그녀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드링크스&모어의 사장이자 친구인 팀, 자상하고 말이 잘 통하던 팀과 단골손님이자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던 게오르크 아저씨가 그리웠다. 우여곡절 끝에 과거를 지우기 전으로 다시 돌아온 샤를로타는 팀과 아저씨와 상봉. 이 시간과 이 사람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편안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고 감사해 한다.

 

기발한듯 낯설지 않은 작가의 발상도 재미 있었고 작가의 메시지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구나 완전히 삭제하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민망한 과거가 오히려 내 삶에 녹아 내려 살이되고 피가되고, 전화위복이 되고 또 성숙의 계기도 될 수 있다는 것. 억지로 잊으려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작가는 말해주려 했던 것 같다. 억지로 과거를 지우고나서 오히려 후회와 곤경에 빠져버렸던 샤를로타를 예를 들어서 말이다.

인생을 좀 살아 본 분들이 전하는 삶의 메시지. 본인의 지난 시행착오 속에서 얻게 된 교훈과 희망은 우리에게 많은 귀감이 되고 있다. 미리 알아두면 삶이 편해지는 23가지에 대하여.

 

이 책의 글쓴이는 미국의 사회복지학과 교수로서 그녀가 30년 동안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만나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삶에 절망하지 않으며 나이듦에 있어서도 의기소침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희망을 얘기하며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을 계획하고 실천한다. 그러면서 나이듦도 아름답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새로운 의욕에 생기가 돋는다.

 

나이가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어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동안의 경험에 의한 자신감이 크게 발휘되는데 그것은 2,30대의 자신감과는 사뭇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실감과 만족감 사이에 균형을 맞추고 상황이 좋아지도록 하는 노련한 기술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확신을 갖게 한다.

 

지난 시간들이 안겨 주었던 시련들. 예를 들면 가족과의 갈등이나 사별의 아픔. 사회적 관계에서 상처받은 배반, 다툼, 상실, 박탈감 등.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이런 것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세월을 통해 이런 불편한 요소들과 화해 할 수 있는 원숙한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자의 이순이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이순 (耳順), 귀가 순해지다. 이 말은 공자가 말하는 나이별 이칭을 이름이며 육십 세를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가니 귀가 순해져 어떤 이가 무슨 말을 해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욱하니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아닌 상대 입장도 헤아려보는 아량, 관조하는 삶의 태도 등. 그것은 본인 뿐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까지 긍정적으로 변하게 한다.

 

우리의 현실이 되어 가는 노령화 사회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자기 진단을 하게 하는 책이다. 나이 듦의 변화를 받아 들이고 삶의 단계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과 실천. 무엇을 해보기도 전에 미리 부정적인 단정은 말것이며 생활에서는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수용할 줄 아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하고 아집같은 자존심은 내려 놓으며 성찰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가져야겠다. 호기심 또한 젊은이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본인의 건강을 위한 긍정적인 호기심을 놓지 말고 집 밖에서의 활동과도 조화를 이룬다면 삶이 훨씬 더 윤택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십수년 전 새내기 과 OT를 가서 있었던 일이다. 그 곳이 어디였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긴 소나기가 내려 야외활동에 제약을 받았던 것 같다. 다행히 강당 같은 곳이 있어 그 곳에서 조별 발표대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비 때문에 급조된 프로그램. 신입생 몇 명에 선배 한 명씩으로 한 조를 이루었고 우리 조가 발표할 주제는 '외국어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으로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 때 나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국문과 신입생이었고 다수결 의견을 모아 정리를 한 후에 발표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자 만장일치로 나를 지목했다. 대체 왜 나를.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아이러니에 미스테리. 얼마 후 강단에 올라 선 그 순간을, 잠깐의 아찔했던 그 이미지를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긴장과 멍함이 합해진 진공상태였다고나 할까. 수 많은 사람들 앞에 그것도 준비되지 않은 대리자로서 발표하려니 어떻게 마치고 내려왔는지 캄캄하기만 하니, 그 어린 나의 모습에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고급 화술 123>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하여 옛 기억 속 발표 장면이 겹쳐졌다. 그 때의 그 긴장과 어리숙함.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생소한 공간과 생소한 사람들 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주장에 확신이 없으니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은 아닐까. 이 책의 글쓴이 윤치영 교수도 그것을 강조한다. 자신있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는 자기확신. 자기확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강의를 위한 자료 준비는 풍부하고 철저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화자의 진정성을 담을 것.

 

꼭 알아야 할 화술의 기본원칙부터 시작으로 나를 가장 잘 표현하는 고급화술, 상대를 리드하는 화술공식,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프레젠테이션 성공화술까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70가지의 화술 포인트를 공개하고 있다. 글쓴이의 화려한 이력만큼이나 다양하고 간단명료하면서 쉽고 재미있는 방법들이다. 사람들은 80%이상을 시각을 통해 정보를 가장 많이 감지한다고 한다. 시각적인 요소의 중요성,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극복하는 비결, 성공의 언어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인 유머의 기술, 청중을 아우르는 시선처리, 때로는 겸손으로 때로는 카리스마로 청중의 마음 헤아리기 또는 사로잡기 등. 70여 가지를 모두 적을 수는 없지만 우선 내가 기억해 두어야 할 몇 가지부터 메모해 두기로 한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청중과 교감하는 말하기, 유머와 카리스마로 알찬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말하기. 그러기 위해서 사전에 준비하고 훈련해야할 것들. 사회활동에서는 말하기의 기회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무난하다가 공식적인 자리에만 서면 어리둥절 곤경에 빠지는 사람들. 그런 사람에게 좋은 도움서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원하는 알맹이를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그들에게 애정과 겸손을 쏟고 있는지, 지루하지 않을 제스처나 비언어적 표현은 잘 활용하고 있는지, 신선한 정보 업그레이드는 때때로 잘 실행하고 있는지 등. 무엇보다 나의 강의법과도 견주며 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