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길상사 건너편 바로에 있는 효재의 집.

길상사에 갈 때마다  그 집 아래층에 있는 효재 숍에 들러 구경하다가도 바로 옆으로 통하는 그녀의 집 대문 안을 기웃기웃거려 본다.

 

 그 안에는 풀꽃처럼 사는 효재 정원의 풀꽃들이, 화초들이, 채소들이, 나무들이 튼실히 싱싱히 뽐을 내며 주인의 정성된 살핌 속에 잘 자라고 있겠지, 하면서. 한 번쯤 그 안을 직접 음미하고 싶은 소망.

 

<효재처럼 풀꽃처럼>은 세 번째 읽는 그녀의 에세이다. 한복, 보자기 디자이너로서의 섬세함과 아름다운 솜씨가 그대로 살림과 정원에 쏟아져 있는, 예쁘고 단아한 사진과 함께 하는 책.

 

그녀의 초록집에는 전국에서 지인들로부터 선물받은 야생풀과 넝쿨식물들로 가득이다. 그녀가 이런 생명들을 소중히 여김을 아는 지인들은  이끼며 금낭화며 칡넝쿨이며를 그대로 실어 보내주는 것인데, 그 작은 생명들을 애지중지 가꾸고 시시때때로 몸을 낮춰 그들의 안부를 물으며 보살핀다.

 

둥글레뿌리 꽃, 금낭화, 제비꽃, 수선화, 능수벚나무, 석창포, 칡꽃, 모과꽃과 열매, 산벚나무와 버찌, 아이비, 이끼, 비비추, 머위꽃, 쑥꽃,할미꽃, 텃밭에 많은 채소들, 그리고 그 채소들에 피는 꽃들......,

 

생소한 풀꽃과 이름도 있으나 그에 대한 사진이 함께 실려 있으니 쉽게 보고 익힐 수 있어서 좋다. 이파리만 뜯어 먹는 채소들도 효재는 나중에 피는 꽃까지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낸다 하니, 그 참신한 레시피까지 배울 수 있어서 흐뭇했다.

 

역시 효재. 디자이너로서의 창의적인 생각이 살림에까지 이어지는, 그래서 효재의 손길이 닿은 모든 것에는 놀라움과 즐거움이 함께 한다. 자연을 닮아 순하고 꾸밈없이 살고 싶은 사람, 효재.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지 않고 또 상처 받지 않으며 살고 싶은 사람, 효재. 바로 그것이 그녀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지난 제주도 여행 때 올친님이 주신 신경숙 소설 <엄마를 부탁해>

배낭에 넣어 다녔으나 여행 중에 다 읽지 못하고 집에 와 책장에 두었다. 그러다 며칠 전 어떤 아이가 이 책으로 독후감 숙제가 있다고 해서 사지마렴, 내게 있는 책이니 빌려주마, 했다. 잊어버릴까봐 책을 미리 꺼내놓고 있자니 내가 먼저 읽고 싶어진다. <엄마를 부탁해>... 눈물을 훑어내며. 그칠만 하면 주르르. 눈밑이 마를만 하면 또 주르르. 오랜만에 문학에서의 눈물 정화, 카타르시스에 빠져 들었다.

 

엄마.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사람, 하늘이 무너져도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것도 쉼 없이 만들어 내는 사람, 때로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인내까지도 강행하는 사람, 마지막 보루가 되는 사람, 자식에게는 늘 주고도 한없는 모자람에 오히려 마음 아파하는 사람, 죄스러워하는 사람 ... 엄마.엄마라는 존재는 숙명처럼 그런 삶을 살지만 특히 과거 어려운 시절을 보내야했던 엄마의 그런 회한은 더욱더 애절하고 처절하다.

 

그러한 엄마도 여자, 라는 사실을. 때로는 위로가 필요하고 힘에 부쳐 감당키 어려운 일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왜 잊고 사는 걸까. 엄마도 그리움과 외로움이 있고 낭만이 있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은 한 인간, 이란 걸 우리 자식들은  왜 깊게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엄마가 천하무적 철인도 아닌데, 슈퍼우먼도 아닌데, 엄마,하면 뭐든 솟아날 것처럼 기대고 바라는 이기적인 우리 모습.

 

서울에 사는 자식들 편의를 위해 생일을 쇠려고 시골서 상경하던 중에 서울역 구내에서 남편을 놓치는 바람에 실종되어 버린 칠순의 엄마. 실종된지 일주일에서 아홉달이 되기까지. 그제서야 남편도 자식들도 엄마에 대해 진지해진다. 엄마가, 아내가 자신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희생을 달게 여기며 살아왔는지. 다섯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남편을 봉양하는 동안 자신의 병마저도 가족들이 알까봐, 알고 걱정할까봐 쉬쉬하며 살았던 소설 속의 엄마. (그리고 우리네 어머니들)

 

그럴만한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해도 사는 내내 살뜰하지 못했던 남편과 다섯 자식들은

물심양면으로 잃어버린 사람을 찾고자 애를 쓰지만, 쉽게 찾아질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엄마를 찾고 못찾고에 중점을 두려는 이야기가 아닌 듯 싶다.

엄마니까 아내니까 그 자리에서의 무조건적인 희생을 헤아림없이 당연시하는 남편과 자식들. 그들의 무심에 경종을 울리고

그리고 엄마도 엄마이면서 한 인간, 이고 여자, 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엄마의 내면을 한 번쯤 진지하게 들여다보라,고 말하는것 같다, 작가는...

 

이 소설은 30개국이 넘는 나라로 번역되어 출판이 되었고 국내에서도 200만부 이상이 판매된 책이라고 한다. 

엄마,라는 존재가 갖는 공통된 이미지 때문일까. 굳이 미사여구와 국경 없이도 이심전심,

'엄마'는 그렇게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나보다.

 

저 쪽의 정겨움을 보며 이 쪽의 외로움이 더해질 때면 유리왕의 '황조가'를 읊조린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워라 이 내 맘은 뉘와 함께 돌아가꼬' 배경설화와 함께 전하는 이 노래는 군더더기 없어 좋고 현재의 외로운 심정을 오롯이 담아내니 서정시의 최고 걸작이 아니던가

 

고전이라 함은 편의상 1894년 이전의 작품을 이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읽히고 무한의 감동을 주는 고전의 매력. 조상들의 삶과 생각과 감정을 진솔하게 담아냄. 생생한 감동과 메시지.

 

서사시와 서정시의 효시를 알리는 상고시대의 시가부터 시작하여 몇 편 안 되지만 백제의 노래. 세련된 비유의 최고봉인 신라의 향가. 무엇보다 고려시대의 노래, 고려가요. 이는 그야말로 사람의 희노애락이 골고루 녹아있는 삶의 현장이 아닐까 싶다. 가시리,청산별곡,쌍화점 등 남녀의 사랑과 이별, 평민의 소박한 삶과 애환의 노래인 고려가요. 그래서인가 좀더 애정이 쏠리니 말이다.

 

또 석 줄 45자 이내로 빚어낸 근사한 함축과 비유라니 이것은 사대부들의 평시조. 마음 속의 맺힌 것을 시원하게 쏟아내는 평민들의 사설시조. 그리고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면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할 것 같은 가사의 신동, 송강 정철. 한문, 한글소설 작품들. '설'로 내려오는 오늘날의 수필같은 장르 등. 우리 조상들은 어쩌자고 이리 다양한 장르의 문학을 남겼을까. 고맙고 또 훌륭하지 않을 수 없는 분들이다.

 

이강엽의 <강의실 밖 고전여행>은 4권까지 이어지는 시리즈다. 이는 그 중의 1권으로 오래 전 출간했던 것의 개정판으로서 고전 작품에 대한 글쓴이의 애정이 절절하다. 고등학교때 읽었던 고전에서는 단순하고 표면적인 주제를 얻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 작품의 다양한 이면적 주제를 살펴보는 좀 더 깊고 넓은 해석이라 볼 수 있다.

 

<심청전>의 주제를 '효심'이라 알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아들 못 낳는 여자의 기박함과 남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당연히 섬김을 받았던 남편과 앞뒤 살핌없이 무조건 남자를 받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희생적인 의무. <춘향전>에서 춘향이도, 숙종과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빗대어 만든 <사씨남정기>에서 사씨도. <조웅전>에서 조웅의 어머니도. 문학의 장르를 막론하고 많은 작품 속의 여성들은 신분제나 남존 여비 사상이 지배적이던 그 시대의 한계를 보여주는 실제 여성의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쓰여진 시조나 설(說) 그리고 군담소설 역시 좀 더 자세한 배경 설명과 작품 해석이 흥미로웠다. 오랜만에 전공 시절로 돌아간 학생처럼 슥슥 연필 줄을 그어 가면서 몰입과 재미의 독서였다.  또 우리 고전의 다양성과 작품성에 감탄과 한계도 동시에 느끼면서. 우리처럼 이야기 좋아하는 민족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야기 창작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조상들의 능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이어서 2권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