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의 작가, 시인 이병률.

그의 신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단걸음에 서점으로 내달았다, 학수고대했으니까.

시처럼 여행을 하고, 시처럼 사진을 찍고, 시처럼 여행기를 쓰는 시인이자 여행작가인 이병률.

 

끌림, 이후 약 10년만인가. 그 안 시집은 출간되었지만, 기다리던 여행기는 이제서야 세상으로 나와 내 손에 놓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의 여행의 감흥과 여행기는 그대로일까, 변화했을까. 그대로여도 변화해도 그만이지만 말이다.

 

'높은 것, 아름다운 것,벅찬 것, 기쁜 것, 영원한 것, 그것들을 모른 체하지 않으며, 그 방향으로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사람에게 바퀴는 굴려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세상을 놀래킬 수는 없다. 아무도 나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삶, 세상이 나를 등졌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충분히 망친 삶... (본문 중에서)

 

공감. 이것이 살아있는 이유, 살아가야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높고 아름답고 벅찬 것을, 기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이뤄가는 것, 이것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눈빛과 표정이 살아있고, 좌절이 와도 고뇌스러워도 금방 떨치고 일어난다. 나 혼자 잘 살아야지, 하면 금새 지친다. 독불장군일지라도 때때로 풀이 죽고 만다.

 

부모, 형제자매가, 친구가 지켜보고 있으니, 기대하고 있으니, 잘 살아야지.  그 마음은 내 생활에 용기를 먹인다. 나는나, 너는너, 가 아니라 세상은 내가 더불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생각하면 세상이 고맙고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입니다. (등대) 본문에서

 

 

작가가 직접 찍은 많은 사진은 단순히 작품, 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진솔한 감성, 다양한 정서다. 그 사진 자체만으로 하나의 글이 되고 시가 되는 경지.

끌림, 만큼 아니 더 이상으로 길어지고 깊어진 이 한 권은, 끌림,과 더불어 먼 훗날까지 나의 정서적 멘토가 될 것이다.

몇 달 전에 신촌 산울림 극장, 작가와의 대화, 라는 자리에서 소설가 신경숙의 팬들과 그녀와의 만남이 있었다. 여러 코너가 끝나고 사인회가 있었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청년이 그녀의 책을 몇 권이나 안고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참, 팬이구나. 대단하다, 싶었다.

 

그 동안 신경숙의 작품들이 출간될 때 나는, 동시대 활동하던 전경린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며, 엄마 인생에 감정이 이입되어 펑펑 눈물을 쏟으며 그녀의 팬이 되었다. 마침 작가와의 대화, 에 신청했던 응모가 당첨이 되었고 그녀의 육성으로 마주앉아 작가관이나 가치관 등에 대해 들으니 더욱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다.

 

그 후 두어 권의 소설 작품을 더 읽었고, 그녀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러기엔 에세이가 최고. <자거라, 네 슬픔아> 구본창 사진에 신경숙의 글.

 

사진에 어울리는 글이거나 글에 어울리는 사진이거나. 사진과 글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책이다. 어쩐지 무뚝뚝해보이는 인상과 고요하고 조근조근한 말소리와 말의 내용. 그녀의 이미지는 그랬다. 그녀의 고향 이야기, 어린 시절, 선후배, 여행, 작은 소품들과 연관된 여러 일화들로 꾸며져 있어, 그것에 대한 그녀의 생각들을 얼만큼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작가에 대한 이해. 사적인 말을 많이 공개하지 않는 작가이기에 이 에세이집은 그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왠지 연애를 하면서 상대를 하나하나 천천히 알아가듯, 나도 그녀와 그녀 작품에 빠져 조금씩 구해보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누가 어떻게 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화려하고 잘 사는 까닭에, 그녀 작품 속 인물들은 주로 소외되고 뭔가가 결핍된 사람들이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래서 조금은 어두울 수 있다고. 그래서인지 깔깔대는 유머나 번뜩이는 반전같은 것이 그녀 작품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근히 스며드는, 매혹적인 흡인력, 그것이 있어 그녀 작품에 점점 중독되어 가는듯 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위태위태, 곡예하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같아, 갈수록 대한민국이 참 안타깝다. 불만과 불행의 원인은 모두 네 탓이야, 하고 있으니 화해는 커녕 자신의 행복마저 자꾸만 멀어져 가고 불안증과 박탈감으로 소외되고 ....팍팍함과 살얼음판 삶의 연속.

 

이런 가운데서도 그래도 아직 살만하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이 책의 글쓴이와 같은 이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자신보다 조금 더 낮은 곳으로, 어두운 곳으로, 부족한 곳으로 손을 내미는 이. 마음을 나누고 물질을 나누고 위로와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이,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함께 제시하며 방향을 열어주는 이, 때로는 따듯하게 때로는 이성적이게, 진심으로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이. 그 사람이 바로 이 글을 쓴 굄돌 이경숙이다.

 

소년원 봉사자로서 성당주일학교 교사로서 독서지도교사로서 그 안에 만나는 수 많은 아이들, 어린이에서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그 뿐인가, 청년에서 노인층까지 총망라하여 그 숫자만큼의 각자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의 인연. 그 속 미더운 멘토가 되어 그들로 하여금 삶을 살게, 강해지게,올바르게,사리분별하게 조력해주는 글쓴이와 그 사람들의 각자 사연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더불어 두 딸의 양육과정.

'인성과 정서적인 안정'을 중요시하는 교육방침. 그리고 자립심. 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런 자녀 교육법은 적중했다. 어린 두 딸을 자원 나눔장으로 보내어 사람에 대한 예의와 상생의 가치를 깨닫게 하고, 그리고 경제적 자립심 키우기, 약속 지키기, 습관적인 독서로 하여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 다지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앎을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게 했던 독서교육.

 

국영수로 꽉 채워진 청소년들의 일과에서 현재 대한민국 부모들에게는 이런 교육법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부러우면서도 불안이 먼저 엄습하니 꿈도 꿀 수 없는, 보통사람이  봄에는 파격적이지 않을 수 없는. 그러나 성공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녀 교육법을 질문받을 만큼 훌륭한 딸들로 성장해 주었다.

 

글쓴이가 강조하는 것은, 나이가 어찌 되었건 아이들은, 어리지 않다,는 것이다. 깊고 진하게 와닿는 말이다.

어리니까 예의없어도 넘어가고, 어리니까 돈 개념 없어도 넘어가고, 어리니까 부모형제 몰라봐도, 이웃친구에게 함부로 해도 어리니까......, 글쓴이는 이렇게 어물쩡한  어른에게 따끔히 일침을 가하며 여러 일화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들은, 어리지 않다!

 

무한 경쟁의 무게에 짓눌려 있는 청소년들, 가족간 또는 이웃간 갈등으로 머리가 무거운 이들, 경제적 곤란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 지금 꿈도  미래청사진도 뚜렷하지 않은 채 수동적인 사람들 ... 이들의 구겨진 마음을 편하게 펴주는 책. 때로는 뭉클하고 찡하게, 때로는 정신 번쩍나게, 그렇게 한 권 안에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러므로 나이무관, 삶의 길을 묻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이경숙은 다음 블로그에 '굄돌'이라는 필명으로 글을 쓰고 있다. 500만 명 이상이 이 소통의 공간을 드나들며 답을 구하고 있으며 글쓴이는 그들에게 좋은 멘토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