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여행서를 얼핏 기억에도 네 다섯 권은 읽은 것 같다. 한 달 안팎의 시간과 800킬로미터의 여정. 그런데 참 이상하지. 분명 같은 길임에도 글을 쓰는 사람에 따라 아주 다른 느낌의 여행기가 되니 말이다.

 

정민호의 이 책은  'MBC문화사색' 이라는 방송에도 방영이 되었다고 하는데 진정 야생,이구나. 진심 레알(리얼). 그런 느낌이었다. 은유없이 솔직하고 유머러스하다. 그래서 재미있다.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고행 800KM' 이는 내용과 딱 들어맞는 부제다. 순례길은 그에게 고통과 기쁨을 함께 주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많이 깨닫고 성찰하고 결심하고 그것들에 실천의지를 보이며.

 

스페인 사람들은 영어를 전혀 쓸 줄 모르고, 그렇다고 글쓴이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스페인어나 불어 역시도 꽝. 그래서 소통은 영어 단어 몇 개와 오로지 보디랭귀지. 그것만으로도  잘, 여행한 사람 - 알베르게(순례길에 있는 숙소)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 결국 "유,원트,쿨클?" 두 손을 잠자는 것처럼 얼굴 옆으로 모으는 행동과 함께. '아미고(친구)'란 뜻을 몰라 물을 때, 아미고, 한 다음 손가락으로 물음표 그리기. 마드모아젤, 이거 바게트랑 믹스해서 냠냠해도 돼요?- 등.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으로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나 또한 죽기 전에 꼭 한 번 걷고 싶은 곳, 산티아고 순례길. 늘 마음 속에 있어서 그런가. '생초짜'의 여정에 그대로 공감이니 말이다. 이렇게 겁 없이 저질러서 어설픈 여정으로 시작, 그리고 마침내 해낸, 사람의 글일수록 그 험하고 머나먼 여정을 꿈 꾸는 나에게는 희망이요, 기쁨이다. 그 여행자가 겪는 희열과 고난을 함께 나누며 나는 또 한 번의 산티아고 여행을 함께 마쳤으니 벌써 상상으로만 몇 번째 여행인지.

 

 

 

... 이 길에서 스요시와 드림팀(다국적 여행자로 뭉친)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헤이버그 할아버지와 미츠에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고,

그들에게 배려를 배운 것도 행운이었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잠을 잔 것도 행운이고 스페인의 파티에 참가한 것도 행운이었다.

이 곳에서 장 마리의 연주를 들은 것도 행운이고 눈물을 흘린 것도 행운이었다.

그것이 행운이라는 것을 아는 내가 자랑스럽다. 또한 이 행운을 놓치지 않은 내가 사랑스럽다.

어느 때보다 내가 자랑스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겠지?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내가 되겠지?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본다. 내 가방 끈 고쳐주던 프랑스 할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부엔 카미노(헤어질때 인사)!

산티아고 가는 길, 무모한 여행은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계속된다. 이제부터 이 길에서 배운 것을 내가 가는 길에서 꼭 실천하리라...

 

본문 중에서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미국 1899-1961)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큼 작가로서 화려했던 그는, 개인사 역시 파란만장했다. 네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 그리고 여자들도 많았다. 술과 투우, 원양낚시,맹수사냥 등을 즐겼던 그는  매력적인 마초기질의 남자가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파리의 아내, 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해들리와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이혼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장편소설이다. 결혼과 동시에 미국에서 파리로 옮겨가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 경제적 어려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전장터 취재 기자로도 활동했던 젊은 청년의 어니스트와 최선으로 내조하고 싶었던 해들리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예술가로서 감정에 솔직하고 민감했던 어니스트, 그와는 달리 아내 해들리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이며 소박했던 여자. 그러면서 남편을 많이 사랑했다. 어니스트가 해들리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잔혹함을 저지를 때도 다시 돌아오기만을 소망할 만큼. 파리뿐 아니라 어디에 나타나든 여자들에게 어니스트의 인기는 대단했다. 해들리는 그 속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심리적인 위축과 긴장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설마했던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 어니스트는 해들리에게 이혼을 요구한다. 끝까지 서로 존중하며 또 서로 사랑하지만, 어니스트는 아내 해들리의 친구를 좀더 사랑했던 것이다. 그 친구는 해들리보다 강렬했고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며, 세련미와 재력이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남편을 믿고 있는 조강지처를 버리다니.

 

남편에게 미련이 많았던 해들리는 힘겹게 결정한다. 이혼에 동의,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한...그 결정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예술가의 아내로 훗날까지 살았다면 아마도 마음 고생이 첩첩산중이었을. 둘은 마치 봉건사회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는 아내와 자유분방한 한량 남편, 같았으니까. 다행히 이혼한 후 해들리는 아들을 데리고 떠나 자신을 오롯이 사랑해 주는 남자를 만나 평온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어니스트는 두번 째 결혼도 실패, 네 번에 이르기까지 이혼과 결혼을 반복하는데, 각각의 결혼 때마다 대작을 남기게 된다. 해들리와는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폴린과는 <무기여 잘 있거라>, 마르타<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메리 <노인과 바다> 등. 그리고 네번 째 결혼생활 중에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어니스트의 아버지도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는데, 어떤 무의식의 영향은 아니었을까 하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

특히 이 책에서는 그의 청년시절과 작가로서 가장으로서의 초장기 모습, 그리고 그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읽을 수 있어 흥미진진했으며, 그의 원가족들의 사연과  생활 환경 등도 잘 묘사되어 생동감이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었으므로.

 

진심으로 이 소설 안에 나오는 인물들에게 이 장미꽃 한 송이를 오롯이 선사하고 싶다.

1980년대 낮에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산업체 야간 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해야 했던 청소년들, 열악하고 비정한 노동환경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불의와 맞섰던 노동 청년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 준 최홍이 선생님, 스물 서너 살 나이에 쪽방칸에서 여럿 동생들과 함께 그들의 가장이 되어야했던 언니 오빠들, 이를 악물고 처한 환경에 지지 않고 잘 살아준 그들에게 박수갈채와 함께 이 장미꽃 한 송이를 내어 놓고 싶었다.

 

그리고 그 청소년들 속에 바로 이 소설의 작가인 청소년 신경숙도 있었다.그 고되고 험했던 시간을 감수할 수 있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오직 배움에 대한 열망,이 아니었을까.오로지 공부하고 싶었다.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기 위해 인내해야 했던 것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버거울 수 밖에 없었던 그 고됨은강한 향학열을 끝내 이기지 못했다.

 

정규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열 여섯의 나,에서 열 아홉까지의 나, 그리고 지금은 시간이 흘러 작가가 되어 있는 서른 둘의 나. 서른 둘이 되어 소설을 써내면서도 지난 그 몇 년을 소설 속에 담지 않은 것은 결코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었다.민감할 청소년기에 겪어야 했던 부자유,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공장 안에서의 수동적인 위치와 숫한 사건들,그리고 힘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을 팍팍하게 했던 가슴 아픈 사람들이 그 시절에 있었다.

 

열 여섯에서 열 아홉 시절을 회상한다는 것은 그것들과 또는 그들과  만나는 고통이 될 수 있으므로특히 희재언니, 본의 아니게 희재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버린 끔찍함.

그 사건이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면,작가에게 닥친 외상후 스트레스, 그 트라우마는 무엇으로 치료될 것인가. 그러나 작가는 열 여섯에서 열 아홉 사이에 일어난 일들과 그 사람들을 추억하며 소설로 담아낸다. 그것은 어쩌면 강제로 꽁꽁 묻어두었던 일과 사람들과의 화해의 과정이 아닐런지.

 

'외딴방'

가난과 화려한 도시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이 모여사는, 외딴방.

'넓은방'과 대조되는 공간, 그 곳은 비록 어둡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있었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거듭 다짐하고 인내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 픽션과 논픽션의 중간쯤, 이라고 보는 <외딴방>은 이야기 속 주인공도 실제 작가 신경숙,으로 등장한다.열 여섯에서 열 아홉까지 산업체 특별학교를 거쳐 서울예대에 진학하고 꾸준한 작품 발표로 지금은 세계적인 작가가 된 신경숙.

<외딴방>은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여정을 다시 밟아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