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폭력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닌가보다. 브록 콜이라는 작가가 쓴 청소년 성장소설 <길 위의 아이들>. 캠핑장에서 섬에 버려진 아이들, 하워와 로라. 몸에 지닌 모든 것을 빼앗긴 채다. 그들이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어떤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지는 상세하지 않지만, 짐작하건대 특별한 이유가 없이 '재미삼아' 일 것이다.

 

다수의 묵인과 폭력으로 칠흑같은 밤에 둘만 남겨진 하워와 로라는, 그러나 체념하지 않는다. 섬을 탈출하여 먹거리를 해결하고 옷을 구해입고, 돈을 취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을 모두 기억하기로 한다. 꼭 배상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참 순수하고 여린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들 뒤에는 평범하지 않은 부모들이 있다.

 

부모가 원하지 않은 아이, 늦둥이로 태어난 하워, 그 아이는 부모와 거의 떨어져 살고 있다. 고고학자인 부모는 대부분 외국에 나가 있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랑을 받고 대화를 나누어야 시기에, 그  아이는 홀로인 시간이 대부분이다. 부모에게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어쩌면 그 아이를 위축시켰을 수도 있겠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로라 역시 생계를 위해 고단해하는 엄마와 살지만 대부분 혼자인 경우가 많은 아이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엄마는 무조건 로라에게만 당부하거나 충고한다. 네가 잘 적응하지 못해서 그런다, 네가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더 깊은 이야기는 들으려하지도 들여다보려 하지도 않는다.

 

부모들은 가끔 착각을 한다. 내 아이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아, 하지 못해. 내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 단정 짓는다. 그러나 집 안에서 보여지는 내 아이가 밖에서도 그럴 것이다, 라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른 모습을 충분히 보일 수 있기때문이다.

 

길 위의 아이들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더 없이 위태롭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보면 역시 사랑의 결핍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결국 사랑이 아닐런지. 청소년 문제에서 피해자는 가끔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 안타까움을 사는데, 하워와 로라는 오히려 가해자들을 곯려주고자 대안을 짜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더 강인해지고 단단해짐을 느끼며.

기분이 꾸무룩한 날, 서점에 들렀었다. 평소에는 온라인 서점을 많이 이용하지만, 기분에 따라서는 동네 서점에도 가끔 들러 한 권씩 즉흥구매하기도 한다. 침침한 마음을 치유하기에 적잖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날도 그럴 요량으로 들어갔으나, 힘을 받고픈 책들을 펴보는 순간, 솰라솰라... 모두 거기서 거기.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책들만... 허무하니 갑자기 회의감 마저 들어 아니옴만 못하다, 쳇.하며 나가려는데, 홀연 시선을 끄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일본 범죄추리 소설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 식사 후에2>다.

 

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왜냐하면 지난 날, 이 책의 1편을 읽었으니까. 이렇게 후속편이 나올 줄이야. 이상하리만큼 일본 문화와는 궁합이 잘 맞지 않는 나에게, 이 책은 신기할 정도로 매력있게 읽혀졌다. 인물의 설정은 일본의 만화적 그것처럼 좀 비현실적이라고나 할까. 두 남녀 형사의 이야기. 그런데 일본 제계를 잡고 뒤흔드는 그룹 총수들의 아들과 딸, 그러니까 도련님과 공주님 같은 아가씨. 그들의 직업은 형사다. 집사가 운전하는 리무진을 타고 출퇴근하며 조심하려고 애쓰지만 숨길 수 없는 상류층의 차림새와 라이프 스타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스럽다. 대부분 살인사건을 다루지만 실상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은 아가씨 형사네의 젊은 집사다. 명석하고 예리한 두뇌로 두 형사가 간과하는 헛점을 잡아내고 그것으로 유추한 다음, 기승전결을 짜내어 유쾌하게 해결책을 마련한다. 아가씨의 저녁을 시중 들면서 그녀로부터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은 후에 풀어가는 사건의 전말, 그런 이유로 책의 제목이 만들어진 것. 그 역시 사랑스러운 재간둥이다.

 

이 소설이 조만간 영화로 제작된다고 한다. 애써 노력을 해도 일본문화에는 동화되지 못하는 나의 상황이지만, 이 책의 내용이 영화화 된다면, 그것만큼은 꼭 볼 의향이 있다. 어떤 배우들이 캐스팅이 될지 사뭇 궁금하기도 하니 말이다. 시간이 갈수록 판단력과 직관력이 떨어져 고민이 시작되었다면, 정통은 아니지만 이런 범죄추리 소설도 괜찮을 것 같다. 과도하게 심각하지도 그렇다고 밋밋하지도 않은, 알맞게 두뇌 운동을 할 수 있는 정도에 유쾌하고 흥미도 제법이니까!

오랜만에 친구와 통화를 하는데 친구의 말이, 텔레비전에 제주도 우도가 나오는데, 니 생각이 나서, 올레 만든 사람있잖니, 그 사람 책 나왔더라, 한다. 반가움에 전화를 끊고 정보의 바다를 헤엄쳐 들어가니, 정말!

 

치유의 길, 제주 올레길을 개척한 서명숙님. 이번에는 힐링푸드,다. 어린시절부터 식탐가였다고 고백하는 그녀의, 음식과  그에 얽힌 국내외 경험 에피소드. 그녀의 세 번째 책 <식탐>

치유와 건강을 위한 길을 낸 사람이 식탐,이라니. 소식하세요, 오래  씹고 천천히 드세요...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할 것 같은 이미지에, 왠지 건강과는 사뭇 유리된 이야기 같아서 생소함도 있었으나 궁금증에 사 보기로 했다. 

 

어린시절의 고향 서귀포에서의 먹거리. 상경하여 정치부 기자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몇 번의 식사에서의 음식들. 강화도 읍내 어느 구석진 곳에서의 최고의 만찬. 산티아고 순례길과 국외 여행에서 다양하게 맛보았던 현지 음식들 그리고 소울 푸드, 제주도의 몸국와 자리젓갈 등.

 

몸국은 제주도 여행에서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다. 비위에 좀 안맞을지도 모르지만 본인은 제주도 음식 중 최고로 친다며 몸국집으로 안내했던 올레친구가 있었다. 처음듣는 특이한 이름, 몸국. 돼지고기 국물에 해초를 넣어만든, 내게는 어린시절 엄마가 끓여 준 닭죽,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은근하고 담백하니 괜찮았던 기억.

 

그리고 섶섬이 있는 보목리의 쉰다리, 할망카페를 소개한다. 쉰다리는 지명이나 교각의 이름이 아닌, 보리밥으로 만든 유산균 음료라는데. 쌀과 먹거리가 귀했던 옛적  제주도에서 만들어 먹었던 음료란다. 그만큼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마실거리였을텐데 서명숙님의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보목리라면, 내가 섶섬에 반해, 그 동네 집 값을 물어보기도 했던 동네인데 어찌 쉰다리를 지나쳤을까, 짠하다. 공책에 적어둔다. 다음에 제주도에 가거든 꼭 먹어봐야할 것, 쉰다리와 자리젓갈.

 

요리의 레시피가 자상하게 나오는 건 아니지만 제주올레의 매력에 빠져있고 또 서명숙님을 향한 개인적인 호감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권쯤 사서 읽어도 괜찮을 책이다. 책을 읽는 중간마다 제주도.서울.강화도 등 그녀의 미각을 사로잡았던 음식과 식당도 더불어 노트한다. 알수록 당차고 씩씩한, 자연주의 멋진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