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박인환의 시집을 만나니 반갑다. 얼마 전 관람한 영화 <동주>를 계기로  윤동주와 더불어 근대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대중에게 좀 되살아난 듯하여 반가웠는데 이렇게 시집은 물론이고 필사할 수 있는 책자와 노트까지 세트로 엮어지다니!

박인환,하면 <목마와 숙녀> 나 <세월이 가면> 등, 이 대표작들이 먼저 떠오를 수 있겠다. 그런데 내게는 좀더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박인환은 그 시대의 추종을 불허하는 패셔니스타였다는 것. 박인환이 제일 싫어하는 계절은 여름. 그 이유는 바로 무더위 탓에 수트를 입을 수 없다는데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머리에서 발끝까지 종합적인 조화의 아주 세련된 패션을 추구했던 멋쟁이 시인, 박인환. 그도 그럴 것이 서구적이고 세련된 이미지와 맵시좋은 체구도 역시 타고난 분이었다.

외적인 분위기와 잘 어울리게도 그가 추구했던 문학사조는 바로 모더니즘이었다. 시어들의 이국적 이미지, 시어의 갈고 닦음, 그래서 그의 시에는 현대적인 멋스러움이 묻어있다. 또 그것에 한 몫을 한 것이 그의 체험인데 특히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해서의 짧은 미국행은 그의 시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의 잠시 머묾, 그것은 시인으로서의 넘치는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을 테니 말이다.

시인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를(?) 낯선것에의 동경, 그에 취함, 자유, 사랑, 이별, 아쉬움,고독 등. 그는 그 다양한 감성을  멋스러운 시로 잘 표현해냈다. 박인환의 시를 <목마와 숙녀>나 <세월이 가면>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독자였다면, 이 시집의 제 2장에 실린 '아메리카 시초'편에 실린 여남은 개의 시를 읽고서는 그의 신선한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시집은 '목마와 숙녀''아메리카 시초''영원한 서장''사랑의 Parabola' 등 총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미건조하고 도돌이표같은 삶을 매일 반복하는 현대인에게 촉촉한 단비같은 감성을 재생하려면(?) 물론 개인 취향에 맞게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마음 비우고 시 한편 읽은 여유는 어떨까. 더불어 감동적이었던 그 시를 정성스럽게 필사할 수 있다면! 시집과 필사노트까지 이렇게 준비해주면서 그렇게 한 번 해보란다. 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서점을 운영하고 시인이 되고 한국전쟁때는 종군기자로 활약했으며 대한해운공사에 입사해 일하기도 했던 박인환. 31세에 심장마비로 요절한 그였지만 그 짧은 생애 속 다양한 경험들이 그의 시에 스며있으니 시를 읽으며 그 생애도 짐작해 볼 수 있겠다.

일제강점기의 만행,'위안부'에 대해서라면 우리 국민의 분노는 하늘에 닿고도 남는다. 그러면서 이 소설을 읽다가 가끔 내 눈을 의심하게 된다. 이 실상이 진짜인가, 소설이니까 어느 정도의 허구가 가미되었겠지. 설마, 이렇게까지 했을라고, 설마! 작가의 허구치고는 독자를 내내 고문하는 듯한 고통. 그래서 맨뒷장을 넘겨다 보았더니 작가가 '위안부'정보에 대해 참고한 자료가 수두룩하다. 그러면 이 사건들이 모두 생생한 당시의 팩트라는 것인데,

이 소설을 읽을 때 때마침 영화 '귀향'을 개봉했었다. 만약에 그 이전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분명 그 영화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느껴지는 뼈 마디마디의 통증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았다. 더 이상 내 스스로 받아들일 용량을 다 채운듯. 그만큼 생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도대체 인간이 인간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인가. 린치도 이런 린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죄인가. 분통하고 가엾은 어린 소녀들.

백산의 연인, 주로 북쪽에서 일어난 사건과 인물 등장이기 때문에 여기서 백산,하얀산은 백두산이 아닌가 싶다. 그 웅장한 기상의 백산, 우리국토, 우리 민족의 터전을 상징할 그 백두산은,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연인을 지켜주지 못했다. 옥아,라는 당차고 진취적인 여성은 끝내 조국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희생되어야했으니 옥아,를 어찌 한 개인이라고만 볼 것인가. 일제강점기에 희생된 옥아는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민족 전체를 대표하는 인물일 것이다.

옥아는 그 당시 남성들에게 불만이 가득차 보인다. 민족의 터전과 백성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물러서 버린 '조선의 남자들'. 심지어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동족을 헤치는 '못난 조선의 남자들'. 못난 조선의 남자들,이라는 말이 옥아의 입을 통해서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작가의 목소리이기도 할 것이다. 격앙,없이 읽을 수 없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옥아의 분노가 직접적으로 터져 나오니 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각성을 하게 하는 것 같다.

불행했던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고 치부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데면데면해지고 있지나 않은지, 아직도 현존하고 계시는 당시의 '위안부'할머니들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정녕 외면하지 말아야 함을 이 이야기가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 발단에서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허난설헌의 이야기와 작품들이 주인공의 처지와 심리에 맞게 잘 삽입이 되어있는데, 그것은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지만  불운하게 살다간 허난설헌의 삶을 통해 주인공 옥아의 삶을 암시하는 것 같다.

중고교때 국사선생님이 오버랩 되던 책이다. 역사를 강의하면서 그 안에 생략되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재미나게 솔솔. 그 때는 그냥 선생님의 입담으로 웃고 넘겼던 것들이 지금은 예사롭지가 않다. 책에 쓰여진 부제대로 불편한 진실,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한 우리 역사의 불편한 진실들. 고대의 역사에서부터 삼국,중세를 지나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특히 근현대사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살짝 예민해지기도 하는데, 그 어떤 책보다도 비판하며 읽기,가 필요하구나, 느끼면서 뚝딱, 읽었다.

 

과연 이런 일들이 글쓴이의 주관이 아닌 객관적 사실인가, 의구심을 갖게하는 것들도 여럿 있어서 깜짝 놀란다. 그 동안 우리 역사를 깊고 넓게 알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도 가지면서. 이 책을 계기로 역사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겠구나, 반성도 하면서.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 의구심도 놓지 않으면서. 특히 임진왜란이 발발하기까지의 상황들, 일제강점기가  전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배경에, 동족상잔의 한국전쟁의 전후에 숨겨진 이야기들. 우리 위정자들의 무능력.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바로 눈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미숙하기 이를데 없는 관리들의 외교에의 미숙함.

 

시간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어쩌면 이렇게 지금과 똑닮아 있을까, 한심함. 애국의 마음은 없고 개인의 영달과 당의 이익만에 매달리다 나라를 잃는 설움을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변함없는 지금이 겹쳐지면서 걱정이 앞섰다. 원인없는 결과,란 있을 수 없음을. 그 인과응보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진실들에 한숨도 나고 분노도 이는 것은 지나간 일이라 덮어두기에는 지금도 그때와 많이 다르지 않음이다.

 

누구나 공감하겠으나 우리처럼 근현대의 역사가 불편함덩이인 나라가 또 있을까. 그 불편함은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인물의 평가에 있어서 더해지는데 물론 수긍이 가는 부분이었으나 글쓴이의 그 평가에 대한 입장이 애매한 부분도 몇 번쯤 있으므로 그것도 좀 편하지는 않았다. 역사에 대한 주관이 있을 수 있으므로 이해는 하겠으나 좀더 분명하게 피력했으면 속이 시원했을텐데,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하지만 글쓴이는 그 시대정황을 두루 살펴 그 만약,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정말 그랬겠다 싶은 부분이 많았다. 외세강국들 속에서 침략 당함과 관리들의 당쟁과 또 그들의 외교 무사안일과 무능력, 더불어 우리의 지리적 위치와 한계, 그것들이 빚어낸 한많은 우리의 역사. 깨알같이 숨겨졌던, 아니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에 매우 흥미가 진진한 책이다. 시대별로 예화들이 매우 다양하여 한두개를 콕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멜,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새롭다. 제주도에 가면 하멜전시관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한 하멜. 일본을 목적지로 항해하면서 태풍으로 인해 제주도에 표류하게 된 하멜을 왜, 17년이란 세월동안 억류했을까. 불시착한 외국인에 대한 대우가 왜그리 매섭고 소홀했을까. 결국 도망으로 조선을 떠나게 했을까. 그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면서도 참 아이러니했다. 우리 역사를 좀더 깊고 넓게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번쯤 읽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