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밑에 바람만 돌아도 여행을 떠난다는 최반. 이 책의 글쓴이다. 글뿐 아니라 사진까지 곁들여 글반.사진반. 눈도 마음도 풍성해지는 책.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참, 중대한 일이다. 나도 이 책의 제목에 꽂혀서 집어들었으니까. 여행, 그리움을 켜다! 정서적 촉촉함과 눈 앞으로 펼쳐지는 길길길,그리고사람들, 풍경들, 음식, 사연들. 읽는 내내 흐뭇했다.

 

여행을 떠나야 할 때 ' 어떤 책도 더 이상 위로가 되지 못 할때, 어떤 풍경도 가슴을 문지르지 못할 때, 어떤 만남도 깔깔한 웃음을 주지 못할 때, 어떤 아침도 한 번에 허리를 들어올리지 못할 때....그 때 떠나면 좋다. 눈 딱 감고 배낭을 꾸리면 좋다...// 얼마나 와닿는 떠남의 시점인지. 가슴이 칵, 막히도록 이 구절이 좋았다. 금방이라도 배낭을 싸야할 것처럼.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떠나는 것도 떠나지 못하는 것도 결국 본인의 선택인 것을, 작가처럼 마음먹은 대로 곧장 떠나지도  못하면서, 폐배자처럼 괜히 탓만 많아진다.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는 최반, 이 사람은 사진으로 글을 쓰고 (아니 시를 쓰고) 글로써 사진을 찍는 이 같다. 글과 사진 어느 것 하나도 놓칠 수 없는 당김. 그 둘에 똑같이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리고 마음마저 따뜻할 것 같은 사람. 인도에서 있었던 일이었던가. 가난하고 어린 인력꾼의 인력거를 타고 가던 도중, 승용차를 탄 사람이 길을 침범했다며 막무가내로 소년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순간, 잘못도 없으면서 아무말도 없이 고개숙인, 죄가 있다면 가난이 죄인, 그 소년을 보고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신 대항한 이야기, 가슴이 먹먹하도록 오래 남았다.

 

여행이란 보고 듣고 먹고,에서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예의와 연민과 사랑을 함께 얻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인도에서 또 다른 에피소드. 공동 수돗가의 수도꼭지에서 물이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건, 실수가 아니라 지나가는 소가, 뛰어 놀던 강아지가 목마르다고 수도꼭지를 열고 마실수는 없는 거니까, 그들을 위해서.  여행이란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를 얻어가는 과정이 아닐까하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 라는 말도 있고, 형만한 아우 없다, 라는 말도 있고. <언니, 부탁해>는 그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자매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소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42세 미혼여성, 프랑카 집에 이른 아침 남루한 두 여자가 들이닥친다. 거의 왕래를 끊고 생사유무조차 확인할 길 없었던, 아니 확인하고 싶지도 않았던 프랑카의 여동생 리디아와 그녀의 일곱 살 딸, 메를레. 그 두 여자가 네팔과 인도에서의 자유와 빈곤의 삶을 정리하고 돌아온 것.

 

리디아는 프랑카와 대면하는 순간부터 냉소적이고 비아냥투로 쏘아붙이고, 프랑카 역시 그들을 들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들이 자매가 맞는가, 싶을 정도로 가시처럼 대립을 하는 도중에 리디아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면서 그 동안 이들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많은 사연이 펼쳐진다.

 

개방적이고 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리디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언니를 궁지에 몰아넣거나 모략하기를 즐겼으며, 사춘기가 되어서는 언니의 남자친구까지 유혹하며 마약과 절도도 서슴치 않는다. 스스로를 망가뜨리며 불안한 생활의 연속, 하는 일마다 끈기가 없으니 가족의 신뢰도 잃는다. 단 엄마를 제외하고는.

 

이와 달리 프랑카는 신중한 우등생이었으며 동생에게 골탕을 당할 때마다 오히려 엄마에게 일방적인 호된 꾸지람을 듣지만, 역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엄마대신 다시 동생을 챙기곤 하였다. 리디아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앗아가고 마약 중독과 밥 먹듯 가출을 하기 전까지는. 엄마에게 거의 외면당하는 프랑카지만 늘 1등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아빠에게는 관심을 받는다. 오직 성적으로만.

 

그런데 이들 자매가 서로 마음의 생채기를 내며 대립하게 된 데는 그들 부모의 탓이 컸다. 프랑카를 임신하는 바람에 연극배우라는 꿈을 접어야했던 엄마는 큰딸을 평생 원망하며 살았고, 자유로움과 예술적인 기질이 탁월한 리디아만을 편애하며 상실감을 채웠다. 아버지 역시 큰딸을 낳고 결혼했으나 아내에 대한 실망과 무관심으로 결혼생활을 접으려 했을 때, 리디아가 태어나니,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애정을 주지 않은 것. 그리하여 가족들이 편을 갈라, 대치하니 화목은 남의 얘기일 뿐, 늘 불화와 반목만이 가득한 집, 애정과 웃음을 잃은 침묵의 집이 되고 만다. 물론 편을 먹은 사람끼리도 진심어린 사랑이란 찾아볼 수가 없으니.

 

마약 중독으로 인한 C형감염으로 리디아는 생사를 넘나들고, 메를레는 이모를 불신하며 따르지 않지만, 프랑카와 그의 친구 덕분에 일곱 살다운 아이로 변모하며 그 나이또래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들을 챙겨주며 화해의 문이 열린다. 간 이식수술을 해야 하는 리디아는 결국 새로 사귄 남자친구와 인도로 떠나, 자신이 원하던대로 영원한 구원을 얻는다는, 바라나시에서 죽음을 맞는다. 남겨진 메를레는 결국 프랑카 이모의 곁에 남지만, 오히려 그 아이를 위해서는 잘된 일이다. 그 안 많은 크고작은 갈등이 일겠지만 프랑카는 현명하게 잘 헤쳐갈 만한 인품이 되니까.

 

평소에는 다툼과 반목이 있다가도 극한의 큰일(특히 좋은 않은 일)이 생기면, 그래도 결국은 가족. 가장 먼저 손 내밀게 되는 것이 가족인 것 같다. 어쩌면 가족이란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지도. 최후의 보루, 나의 가족. 전화라도 한 통씩 넣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고나니 새삼 가족, 이라는 한 마디에 뭉클.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작가, 모옌. 필명인 모옌은 '말을 하지 않는다' 를 뜻한다고 한다.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서는 술술, 이런 달변가가 따로 없을 정도다. 지극히 반어적인 필명. 그의 생소한 작품들 중에 선택한 <개구리> 책을 받아보니, 으윽.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에, 두께가 망극하다.

 

하지만 분량에 대한 압박감도 잠시. 읽을수록 척척 감겨드는 이야기 구성에, 그 진행은 독자로 하여금 금방 책 속으로 동화되게 하니, 원래 물흐르듯 글을 잘 쓰는 사람인지, 아니면 번역을 거침없이 잘해 놓은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다인지. 아무튼 흥미진진하게 잘 읽은 <개구리>

 

모옌은 주로 민담이나 역사, 사회성을 엮어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책 역시 중국 역사의 한 단면이 고스라니 담겨 있으니, 바로 중국의 '계획생육' -인구를 계획적으로 조절한다,는 취지다. 부부가 첫 아이로 아들을 낳으면 더 이상 출산이 금지 되었으며, 딸일 경우 8년 후에나 다시 한 명을 낳을 수 있게 한다는, 철저하고 살벌한 국가정책.

 

특히 남아를 선호하고 다산을 자연의 일로 생각하는 농촌 사람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을 날벼락같은 나랏법이었다. 그래서 격렬히 저항도 해보지만, 법의 허락없이 아이를 갖는 것은 가족과 이웃에게조차 연대책임이 가해지므로 가혹한 대가를 치뤄야했다. 임신한 사실을 감추다가 발각되면 산달이 가까워져도 수술대에 강제로 묶기게 된다. 그러다 수술도중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또 도주를 감행하다가 죽음을 당하기도 하고, 도망 중에 숨어서 아기를 낳다가 산모와 핏덩이가 함께 죽기도 한다. 원한을 품은 죽음. 이 소설같은 이야기가 실제 중국의 역사였다니.

 

중국의 인구는 2010년에 13억이 넘는 숫자에, 2050년 쯤이면 94억을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단다. 몇 년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흑인'이라는 말을 들었다. 현재 13억 인구에 흑인까지 더하면 14억이 넘을 것이라는 말, 흑인? 거리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피부가 까만 사람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흑인이란, 산아제한 정책에서 정해준 외에 더 낳은 아이를 보복이 두려워 차마 가족부에 올리지 못한 사람들을 말하며, 등록되지 않음은, 곧 법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며, 엄마의 뱃 속에 자리잡는 순간, 나라로부터 가차없이 버림받을 서글픈 운명의 사람들. 기하급수적인 인구증가는 중국뿐 아니라 지구촌의 인재를 초래할 수 있는 위험군이 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런 방침은 인도적인 차원에서 올바르다고 할 수 없겠다.

 

이 책 속에서도 그렇지만, 국가정책을 너무 성급하게 강행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특히 도시에 비해 교육열이 낮고 자식 욕심 많은 빈곤한 농촌에서의 자식 줄이기 실천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교육을 통한 계몽운동부터 시작했다면 격렬한 저항과 희생을 좀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산부인과 의사로서 비난을 감수하며 철저하게 '계획생육'에 앞장섰던 작가의 고모 이야기에 중국 역사의 한 단면이 합쳐서 만들어진 <개구리> 왜 제목이 개구리,일까, 궁금하다가 올챙이와 정자의 모양이 오버랩되며 그렇게 해서 지어진 책 이름이 아닐까 짐작해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