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책이 있을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니.
아마 맨 아래 책장 어디 쯤에, 10년을 훌쩍 넘긴 그 책이 있을테니 꼭 다시 읽어보자, 은희경의 <새의 선물>
그러나 없었다. 은희경의 다른 소설책이 세 권이나 있었지만 정작 읽고싶던 <새의 선물>만은 쏙 빠져 있었다.
오래 전에 읽고 꽂아 놓은 책들일 텐데, 모두 내용이 까마득하고 책제목마저 낯설다.
이왕 먼지를 닦았으니, 한 권 꺼내 읽자. 가장 마음에 드는 제목이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단편들의 묶음책이다. 왠지모를 기분에 장편이 당겼으므로 장편 <그것은 꿈이었을까>를 선택한다.
1999년에 출간된 책인데 먼저 서두에 놓인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다.
'요즘도 나는 사물을 원인과 결과로만 보려고 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이 있고 수수께끼도 있고 알 수 없는 일도 있고 설명할 수 없는 일,풀리지 않는 일, 가능하지 않은 일, 믿을 수 없는 일, 그리고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린 일도 있다.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필요와 이유 없이 사랑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이 소설을 쓰던 시기에 나는 그런 생각에 가장 가까이 가 있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작가는 여전한 버릇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준'이라는 이름을 가진 주인공 '나'
의대생에서 인턴과 수련의를 거쳐 안과병원의 의사가 되었다.
그는 대부분 혼자였고 그렇다고 외로움을 절절히 느끼지는 않는다. 외로움도 생활의 일부라고 생각하니까.
그의 일상은 대부분 고요함의 연속이지만 꿈 속에서 만큼은 격동을 겪는다.
체력소모가 심하고 스토리가 있는 꿈. 그럴 때마다 그는
정신이 몸과 분리되는 듯한 순간을 느끼고, 때때로 감정의 공황상태가 찾아들곤 한다.
꿈.
꿈은 왜 꾸는 것일까. 예전에 어디선가 그랬다. 꿈은 얕을 잠을 잘 때 꾸게 된다고.
누구나 꿈을 꾸지만 자극의 정도가 잠을 깬 후의 기억의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할수록 신통한 꿈이란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무의식의 표현이 아닐까 한다.
준의 어린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해 준의 가족은 모두 목숨을 잃었고
용케도 준이만이 살아남았다. 충격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를 몰아세웠고 가족을 잡아먹은 존재라며 닦달해 댔다.
부모의 유산은 풍족했고 모범적인 우등생으로서 겉으로는 평범한듯 성장했으나
그의 내면에는 풀리지 않은 불안과 억압의 소용돌이가 그 세월만큼 묵혀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력을 다해야 하는 유쾌하지 않은 꿈으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다행히도 그는 예민하거나 날카롭지 않은 평범하고 따뜻한 여자를 만났고
결혼을 했으며 사직서를 냈던 병원에도 다시 취직이 되었고 ... 평범하지만 따사로운 가정을 이루고 난 후 그는 꿈을 잘 꾸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