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눈물이다? 이는 엄마의 또 다른 정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읽으려는데 자꾸 콧끝이 맵고 눈물이 나서 결국 가방 안에 다시 넣어 왔었다. 우리 엄마도 아닌데 자꾸 눈물이 나서...

 

내남할 것 없이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들로 하여금 이렇게 눈물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맥없이 이유도 없이 그러진 않을 터. 엄마의 끝없는 사랑과 희생, 자식을 향한 정성과 성실한 본보기, 특히 보릿고개를 살아냈던 연로하신 어머니들의 고단했던 삶은 더욱 목을 메게 한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어머니. 열 여섯 꽃다운 나이로 섬진강 진메마을로 시집와서 지금까지. 어머니의 팔십 평생을 회고하듯 시인은, 때로는 담담히 때로는 서글피 운문과 산문으로 번갈아가며 기록하고 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과 시선이 그렇게 애틋하고 따뜻할 수가 없다.

 

'우리가 마음을 정리할 나이다.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나이다. 언제든지 이런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삶이, 산다는 것이, 인생은 왜 이런가. 생로병사, 희로애락, 이 말이 전부다. 더 무슨 말이 세상에 있을까, 더 무슨 일이 있는가, 나도 저럴 것이다. 누구도 거기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루도 영일이 없다. 삶이다.

 

어머니에 대한 탄로가.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이제 가는 귀가 먹고, 가끔 헛말을 한다. 영원히 강단있고 늙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니가 정말 늙어버린 것이다. 나의 어머니가 늙다니, 나의 어머니도 늙는구나. 한탄스럽다. 시인에게는 충격이고 고통이다. 그러나 그것이 삶인 것을,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생로병사. 그래서 그는 슬픔을 가누며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려고 애쓴다.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순응하고 자연의 이치를 따랐던 어머니의 희노애락. 가난했지만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고 이웃에는 인정이 넘쳤으며. 사물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리고 염치와 양심이 함께 했던 어머니의  팔십 평생이었다.

 

이런 분들만 계시다면 이웃 간의 불신과 반목이 어디 일어나겠으며, 이렇게만 자녀를 교육한다면 어찌 학교 폭력이 난무하겠는가. 어찌 교사들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부도덕하고 폐륜적인 무법자들이 구석구석을 활보하겠는가. 사람의 도리와 삶의 지혜가 충만한 이런 어른들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교육>

동네 사람들이 / 크게 다치거나 / 큰일을 당하면 /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남의 일 같지 않다./ 다 내 일이다//

동네 아이들과 싸우고 / 어디가 터져 들어오면 / 어머니는 늘 이렇게 나를 달랬다./ 어디가 부러져 / 병신만 안 되면 괜찮다/ 애들은 / 싸워야 큰다.//

동생들을 / 함부로 하면 어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 우리 집 강아지도 / 우리가 귀하게 대해줘야 / 밖에 나가면 / 동네 사람들도 / 귀여워한다.//  본문 중에서

 

가끔은 제목만 보고도 끌리는 것들이 있다. '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이 책 역시 제목만 보고도 당김이 있었다. 불리한 상황이 되면 나는 대기만성형이야, 라고 변명을 해대는 습관이 있는 나는,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글쓴이와의 측량불가한 동질감을 느끼고 말았는데 표지 뒷면의 몇 줄은 마치 내 마음을 다녀간 사람 같았다. 요즘 내 마음이 딱 이러니까.

 

아직, 이라 생각하며 미뤄왔던 것들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초조감.

아직, 이라 생각했지만 원래,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

 

아무렇지 않다가 불현듯 엄습하는 불안과 초조. 내용은 정확히 위로 같음으로.  읽으면서 이따금 감히 글쓴이를 책망도 한다. 그래도 당신은 나보다 나이가 10여 년은 더 적으니, 나보다 훨씬 많은 기회가 열려있지 않으오! 이렇게 공감도 핀잔도 해가며.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하면 이것은 누구나가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불가피한 감정들이 아닐지.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마음을 정하고 바꾸는 것도 참 빠른 사람들, 그 사람들을 쫓아가느라 지칠대로 지친, 글쓴이. 오히려 나는 그러한 글쓴이가 반가웠다. 나도 그 빠르다는 사람들 보다 많이 느린 편이니까, 느리면서도 느리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나. 나는 느리지만, 나는 사실 '다만,조금 느릴 뿐' 이라는. 그녀의 위로도 고마웠다. 아무 생각없이 그래그래, 맞장구치며 마냥 좋아만 해도 괜찮은 걸까, 잠시 불안감이 기를 펴기도 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포기'를 몰라서, 내가 모르는 수 많은 즐거움 또한 놓치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나는 원래 저런 장르의 음악은 별로야. 나는 원래 만화는 안 봐. 저런 사람들은 원래 나랑 안 맞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자신의 취향과 성격, 심지어 자신의 인간관계와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원래'로 규정한 다음, 포기하지 않아서. 그리고 말한다. 세상 참 심심하다. 사람들은  왜 다 내 맘 같지 않을까? 세상 참 내 뜻대로 안 돼.

 

따끔,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원래 싫어, 원래 안 해, 원래 못 해, 원래... 이런 말과 행동에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서 이제는 고정관념이나 고집, 고집을 넘어 아집불통으로 굳어져버린 것들이 있지는 않은지, 합리와 유연을 좀먹는 이런 위험한 사고에 빠져있으면서도 내 것이 옳다고 핏대를 세우고 있지는 않은지, ...

 

지난 10여 년 동안 라디오 작가를 했으며 지금은 다른 글 쓰기에 도전을 하고 있다는 글쓴이 강세형. 그녀 신변의 잡기와 자아의 성찰이 담겨 있고 일과 사람들, 좀 더 '잘' 좀 더 '괜찮은' 삶을 만들어 가자는 이야기다. 다시 한 번, 영차! 하면서.

최반의 책<여행,그리움을 켜다>를 읽고 그 느낌이 좋던 터에 그의 또 다른 책이 이전에 출간되었다는 정보를 얻으니, 그것이 인도 여행기<서툰.여행>이다.

 

서툼, 처음이어서 어설프고 노련하지 않음. 인도에 첫발을 디디고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더해진 인도 여행의 기록. 요가를 배우며 글을 쓰고 사진도 찍으면서 오감으로 경험했던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낸 것인데, 여행.글(운문같은 산문).사진의 구성때문인지 이병률의 <끌림>과 느낌이 사뭇 흡사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최반만의 개성이 스며 있어, 은근한 감동과 매력을 뿜어낸다.

 

무엇보다 씨아람,이라는 사람을 사진으로 보게 되어 흐뭇했다. 글쓴이보다 여덟 살이나 적으면서 여덟 살이나 많아 보였다는 글쓴이의 인도 친구 씨아람, 고단한 가난 속에서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성실하기 이를데 없는 씨아람, 그의 사연이 <여행,그리움을 켜다>에서 실린 것을 읽고 참 많이 먹먹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와의 만남의 경위와 표지 안쪽에 사진까지 떡,하니 실려 있으니 내가 왜 그리 반갑던지.

 

<여행,그리움을 켜다>에 비해 이 책에는 요가 이야기가 많다. 첫 인도여행의 목적이 요가 강습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으니까. 인도인 요가 선생들은 어쩌면 하나같이 사두들 못지 않은지. 히말라야에서 이제 막 깨달음을 얻은 사두(스승). 귀와 마음이 순하고 삶을 달관한 듯한 자세, 거기다 글쓴이의 감성이 스며든 사진과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 새 귀와 입이 순해지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금방이라도 사두가 될 듯하니...,

 

전반에 거쳐 타인에 대한 애정과 연민이 있어서 좋고,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 놓으니 좋고 작고 소외된 것에 대한 섬세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서 좋고, 그리고 자아에 대한 성찰이 있어서 좋다. 사진에서 글을 읽고 글에서 사진을 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