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랄라 세션의 리더, 임윤택을 추모하며

 

우연인가. 요즘 내가 읽는 책들은 그 책의 글쓴이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내용에서 감동을 얻을수록 마음 한 켠에 그 만큼의 안타까움이 쌓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울랄라 세션의 리더이며 단장이었던 임윤택. 그 역시도 아까운 재능을 능히 펴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으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울랄라 세션을 알게 된 것은 작년, 드라마 <각시탈>에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을 통해서일 것이다.  그 전에는 그저 '까부는 애들' 정도로 무관심하였다.

 

<각시탈>의 이강토에 푹 빠져 지내던 날들 속에 '굿바이 데이'라는 곡을 듣는다. 심장을 저미는 듯한 선율과 음색. 누굴까. 누군데 이렇게 심금을 울리나. 그들이 바로 울랄라 세션,이라는 사실을 알고 많이 놀랐다. 아주 깜짝. 덜렁대고 까불기만 할 것 같더니 이렇게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이었다고? 그 후 나는 단박에 그들의 팬이 되었다.

 

'모든 노래의 눈물화', 가슴에 스미는 그들의  창법도 목소리도 하나같이 훌륭한데, 유머와 개성이 돋보이는 퍼포먼스까지, 이런 경우를 두고 금상첨화,라고 하는 걸까. 그들의 영상을 찾아보며 파트별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구분해 냈다. 팬이라면 이 정도는 기본. 하나같이 주옥같으니 가요계의 보배로다.

 

2013년 봄, 리더 임윤택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가요계의 손실이며 팬들에게도 멍에다. 그럴 즈음에 그의 에세이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추모하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구입한다.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책 제목 참 잘도 뽑았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이 제목 속에 그의 성격과 성과가 오롯이 담겨 있으니 말이다. 긍정의 힘, 끝없는 노력, 승부욕, 자존심..., 멋진 남자다. 어릴 때부터 춤에 끼를 보이며 중고등학교 때는 춤 동아리를 운영할 정도로 그의 춤과 리더십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슈퍼스타K>를 통해 울랄라 세션이라는 이름으로 데뷰하기 전, 그들은 이미 15년이라는 세월동안 삶의 희비를 함께 겪어 온사람들이었다. 그러니 끈끈한 정이 남다를 수밖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림없는 팀워크를 이루어 온 울랄라 세션의 멤버들. 그 인간미에 더욱 빠지게 된다.

 

가요프로그램에서 신동엽이 그랬다. 울랄라 세션에게 중독되는 단계. 그들의 공연을 열 번 이상 찾아 보았다면 중독1기, 남자  키가 160 넘으면 되지 뭐,한다면 중독2기(내가 제일 좋아하는 명훈의 키가 그 정도란다), 요즘 아이돌 가수보다 잘 생겨 보이면 중독 3기. 훗. 웃자고 한 말이었겠지만, 전혀 우스갯 소리가 아니다. 내가 바로 그 중독 3기를 앓고 있는 팬이니까!

 

임윤택, 우리는 훌륭한 인재를 잃었으나 그 슬픔은 뒤로하자. 그가 빠진 자리, 아직은 훵,하지만 그들의 음악에 위로받고 정화하며, 남아있는 멤버들의 활동을 열렬히 응원하자.

장영희 (1952-20009)

영문학자이며 번역가, 수필가이기도 했던 장영희. 평소 어려운 말로 글쓴이 자신만을 위한 것 같은, 그런 현학적 글쓰기를 옳지 않게 여겼던 그녀의 문장은, 듣던대로 깔끔하고 담백했다. '아름다운 문장상'까지 수상한 그녀의 글은 소박하고 투명했으며 한 없이 따뜻하기만 했다.

 

한 살때 앓게 된 소아마비로 목발 없이는 한 발도 이동이 힘들었고, 설상가상. 세상을 뜨기 몇 년 전에 발견된 암, 그리고 암의 전이. 어쩌면 그래서 더욱 신변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 대해 더 세심함과 마음씀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을 읽으며 호사를 누린다. 주로 중고등학교 때 읽거나 들었고, 지금은 까맣게 잊고 있던 영미문학. 주로 고전을 인용하여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보탠 짧은 이야기들이 수십 편이다. 영문학 교수였기에 학생들과 관련된 일화들도 많고, 자신과 가족들, 외국에서 공부할 때 겪었던 이야기들과 지인들의 이야기가, 안팎으로 짙은 감동과 여운을 준다.

 

세계적인 대문호, 대작을 남겼던 위대한 작가들의 사적인 내력과 그 작품의 이런저런 배경들이 흥미롭고 옹골지다. 문학의 주제를 한 마디로 축약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된다. 그녀의 이 말처럼, 작품들은 하나같이 사랑,을 말한다. 결국 삶이란 사랑,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면서 그녀의 빠른 죽음이 더욱 안타까웠다.

 

일찍 보내기엔 너무도 아까운 사람, 인간 장영희, 학자 장영희. 암투병을 하는 동안,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통해 그 동안 마저 열지 못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고 했다. 신체적 불편함을 극복하고 삶에의 열정과 개척으로 살다 간 사람. 그녀의 글은 오래도록 남아 그녀대신 독자에게 용기와 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안내해 줄 것이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 이 제주도편은 당당히 으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제주도에 대한 나의 특별한 애정어림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공간들을 살펴보니, 꽤 익숙한 곳이 많다. 내가 직접 걸었던 곳, 머무르며 들여다 본 곳, 느꼈던 곳, 그 곳곳에의 기억들이 생생해서 읽는 내내 흡족함이 무한대였다. 그러나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훨씬 많음은 그 또한 설렘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야겠다.

 

그 동안 여러 차례 제주도 여정에 이 책을 미리 읽고 갔더라면, 정보를 메모해 갔더라면 더 알찬 여행이 되었을 텐데. 가깝게는 지난 3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선흘리의 거문오름에 갔을 때다. 그 옆동네가 와흘리였는데, 그냥 차로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 책에는 그 와흘리의 신령스런 본향당을 소개하고 있는데, 알았더라면 간 김에 들러 봤을 텐데 그 아까움에 무릎을 친다.

 

4.3사건의 흔적이 고스라니 남아 있는 너븐숭이, 북촌리 마을을 지날 때도  마찬가지다. 그 곳이 소설 <순이삼촌>의 공간적 배경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알고 갔더라면 그 <순이삼촌>의 문학비를 들여다보고 그 안에 써있다는 글귀를 읽으며  그 역사적 희생의 아픔을 더 공감했을 텐데. 뒤늦게 아쉬움이 많다. 물론 앞으로 제주여행에서는 큰 도움이 될테지만.

 

주로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아가지 않는 나의 여행스타일. 오히려 다녀와서야 인상깊은 곳에 대한 공부를 하는 편인데. 그 동안 내가 다녀왔던 곳에의 설명이 친절하게 이 책에 쓰여있으니, 그것도 좋다. 복습하는 기분이랄까. 머릿속에 살포시 스미는 즐거움

 

제주도를 그저 눈이 즐거운 관광지로만 인식한다면, 제주도를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국내외의 끊임없는 억압과 핍박을 받고 인고의 세월을 살아야했던 제주도민들. 당해보지 않고 그 두려움을 어찌 알겠는가. 그저 짐작만 가능할 뿐.

 

제주도의 역사, 지명이나 유물유적에 얽힌 전설이나 사연, 현재의 모습, 그리고 앞으로 제주도에 바라는 점까지. 다양한 이야기에 또 공감한다. 삽입된 사진과 함께 하니 더해지는 현장감. 외지인으로부터 당한 서러운 상처가  아직도 제주도민에게는 선연하겠지만, 뭍사람도 다같은 대한민국 사람들. 보배로운 제주도도 대한민국의 땅, 그 굳어버린 앙금을 풀기위해서는 각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제주도를 세계 속에 더욱 빛내고 자손만대에 자랑스러운 우리 땅으로 물려주기 위해서는 이해와 용서와 유연함이 우선되어야겠다.

 

걸어서 제주도 한 바퀴 올레 코스를 걷다보면 자연 만나게 될 공간도 많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유난히 제주 오름에 이끌린다. 360여 개가 넘는다는 오름을, 조금씩 조금씩 탐험하며 신비로운 제주도 속으로 성큼 다가가고 싶은 이 간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