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간에 최연소로 조선의 거상과 거부가 된 사람, 조병택. 돈맥을 짚을 줄 아는 능력과 앞 날을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의 혜안. 손가락 안에 드는 경성의 부자가 되고도 '나라를 위해 쓸 돈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네'라고 말할 줄 아는 통큰 사람.
일제의 허락없이는 돈 한 푼도 쓸 수 없는 이빠진 호랑이, 조선의 황제(고종)에게 조건없는 비밀자금을 헌사하고, 일본의 강탈을 피해 조선황실에 토지를 바쳐 애국할 줄 알았던 사람이 바로 조병택이다.
큰 전쟁을 예감하고 일본보다 더 발빠르게 소가죽을 사들여 이윤을 남기고, 전쟁식량으로 제격일 계란을, 경성 노른자와 전국의 옥토들을 사들여 조선의 순수 자본을 형성하는데 힘을 모았다. 그 막대한 재산은 절대 사욕을 채우려는데 있지 않았다. 호시탐탐 한발씩 내딛고 수탈을 시작하는 일본으로부터 조선 상인들을 보호하고 물심양면으로 조선의 상업을 유지발전하는데 투자하였다.
공동투자의 개념이 확립되지 않은 때, 그는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순수 조선의 자본으로 한일은행을 설립한다. 부인의 교육사업에도 적극 동참하여 자본을 지원하고 우리 조선이 일본으로부터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런 그가 일본제국에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모함과 술수를 동원하여 일본은 거상 조병택의 손발을 묶는다. 조병택만 사라져 준다면 모든 것이 일본의 손바닥 안이기 때문에 그의 아내를 연행하여 인질로 삼아 많은 것을 포기하게 하고도 모자라, 결국 자객을 사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깝고 허무한 죽음. 시대를 잘못 타고난 운명이기도 했고 어쩌면 또 이런 배경이었기에 단기간에 거상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시로서는 보잘 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조병택은, 그러나 운명을 개척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었다. 경성상공회의소 초대 두취, 중앙학원 설립자, 한일은행 설립자, 조선무역과 극동기업, 대한제국 황제로부터 작위,라는 벼슬을 하사받기도 한 조병택. 많은 명함을 가지고도 친일하지 않았고 겸손할 줄 알았던 된사람, 그리고 그는 일제식민지라는 난세에서 난사람이기도 했다.
이 소설의 작가, 진광근은 본래 소설가가 아니란다. 법공부를 한 사람인데 경제인에 대한 관심으로 조병택을 만나게 되었고, 소설같은 그의 삶에 흥미를 갖게 되어 자료를 모으고 일대기를 복원하여 이렇게 한 권의 소설로 묶어내게 되었다고 한다. 실존인물 조병택 그리고 실존했던 다른 인물들과 역사적인 사건들로 볼 때 그 시대상황을 짐작할 수 있고, 또 소설적인 서사도 유수와 같아 자연스럽고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모르고 있었던 한일은행의 설립자 조병택,이라는 인물에 대해 여러 면을 알게되니 뿌듯하다. 그리고 조병택의 삶을 살피며 줄곧,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다시 되뇌이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