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는 좀 딱딱한 글인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의 경험이 주를 이룬다. 외국인 눈을 통해서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될 때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서는 것은, 그 지적이 터무니없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글쓴이 로버트 파우저,는 무슨 모험심이 그리 강할까. 그에게서 가장 본받을 점이고 또 부러운 부분이 바로 그 '모험심''실행'이라는 덕목이다.

미국 미시간 주에서 출생한 그는, 일본어에 매력을 느껴 일본으로 유학, 잠시 거쳐 간다는 생각으로 발을 디딘 한국에서 그는 발을 묶고 만다. 그것은 한국의 흡인력 있는 여러 문화에 폭 빠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지나는 과객이 아닌 다음에야 오래 기거하다보면 어찌 그 생활이 낭만적일 수만 있을까. 더불어 생업을 갖고 사는 타국이라면 더욱이. 한층 더 가해지는 소외감과 차별은 기대했던 한국에 대해 실망을 갖게 하기도 했으며 우울증을 일으키기도 했단다.

흔히 우리나라 사람이 갖는 좋지 못한, 어떤 은근한 근성,이라는 것, 보여주기 위한 의례적인 것이거나 겉치레 등. 속물적인 근성이 외국인에게 가해졌을 때는 본인 스스로도 이겨내기 버거울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외국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인지상정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에게 반성의 계기를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임용되어 아이들을 가르쳤고 그 와중에도 한국문화를 체험하고 공부하는 적극성. 특히 그의 한옥에의 애정은 급기야 한옥을 구입하여 보금자리로 삼았을 정도니까, 한국문화에 얼마나 큰 관심과 사랑이 깃들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1980년대 한국에 입국하여 생활해온 그에게서 우리 역사의 흔적이 묻어난다. 그 시대와 사회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칭찬이나 비판까지도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물론 그 안에 일본에 잠시 체류하며 교직에 몸담기도 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한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한국의 이모저모를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단소리 쓴소리 모두가 그의 한국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독자로서는 읽는 내내 앞서 그의 강인한 모험심,에 이미 후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에 초점이 자꾸 그의 체험에 가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사를 다시 되새길 수 있었던 기회였던 점이, 이 책의 강점인 것 같다.

작년 여름 쯤에 <여자 목숨으로 사는 남자>라는 작품을 읽었는데 1년이 다 되지 않아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접하게 되니 흐뭇하다. <각하, 죽은 듯이 살겠습니다> 얼핏 제목만 봐도 시대상이 흠씬 묻어나는 작품이다. 1967년 남파된 공비들을 생포한 남한에서는 그들을 역이용하여 북한에 대한 보복 작전을 결행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목숨을 건 훈련이 극비리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안에 남한의 대장 창욱과 전향은 했다지만 얼마전까지 공비였던 젊은 그들의 신경전이 은근하여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읽는 내내 영화<실미도>도 <웰컴투 동막골>도 생각났다. 또 북악산 자락, 총알 뻥뻥 뚫린 채 슬픔으로 서 있는 김신조 소나무,도 겹쳐졌다. 한민족이었지만 누군가의 주도로 한 덩이가 두 덩이가 되었고 그로 인한 희생은 정작 애먼 사람들 몫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뽀송뽀송 청년티도 벗지 못한 그들에게 이념이며 사상이며를 세뇌하여 그들을 죽음의 길로 내모는 이런 비인간적인 처사가 어디있단 말인가. 이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분노가 막 하늘을 찌른다.

이들을 이끄는 남한의 대장, 창욱은 유사시에는 목숨을 포기해야하는 이 청년들에게 약간의 연민도 느끼지만, 공로훈장과 진급에 대한 욕심도 놓칠 수 없는 유혹이다. 명분은 당당하다. 그들에게 희생당한 우리 군인의 원한을 풀어주기 위한 보복.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남한을 파괴하러 내려온 자들이 이제는 다시 북한을 파괴하기 위한 침투 훈련을 받아내는 것이다. 한국 전쟁 이후 계속되는 동족 상잔의 일환들, 참 얄궂은 시대에 아픈 세대려니.

분단 상황이 계속 되는 한 이런 작품들도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쯤 통일 후의 사회를 담아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아직은 요원하기만 하니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요사이 미국 차기 대통령 후보인 트럼프,를 보고 있자니 참으로 우리 나라의 상황이 바람 앞에 불꽃인 양하고 강대국이라는 오만함으로 그들의  처사가 매우 치사하게 느껴지니,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지기도 한다.

일찍이 김구 선생께서는 사상이고 이념은 한바탕 지나는 바다의 풍랑과도 같으며 금세 사라지는 바람과 같다 했건만, 어쩌자고 우리는 지금까지 대립이고 피바람인지. 그러면서 희생당하는 사람은 이렇게 죄없는 청년들이니 더 없이 애닯다. 이렇게 남북한의 대치 상황에서의 비극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되새기게 되는 구절이다.

오래 전에 배웠던 기행문의 3요소는 여정,견문,감상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 요소들에 하나 더 더해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진. 여행자는 글 뿐만 아니라  사진으로도 기록을 남긴다. 읽는 사람에 따라서는 글도 글이지만 때로는 글보다 먼저 사진들에 더 관심이 가는 경우도 있는데 사진으로 한 편의 시를 쓴 듯한, 한 폭의 그림을 그린 듯한 그런 여행서를 만나게 되면 즐거움이 곱절이 되기도 한다.

사진.글:오음. 오음, 작가의 이 책도 그랬다. 책을 통째로 잡고 후드득 넘겨 보는데, 자꾸 사진들에 시선이 멈춰지는 것이다. 참 많이 감성적이며 강렬하듯 부러운 시와 같으니... 하면서 글 한 번, 사진 한 번, 둘다 함께 한 번, 그리 감상하였다. 얼마만큼의 용기를 가져야 이렇게 여러나라를 습관처럼 여행을 하고 기록을 남길 수 있을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 특히 30대 초반쯤으로 보여지는 작가의 젊은 감성은, 또 그에 맞게 글로 잘 나타난 것 같다.

여행 중에  경험으로 얻어지는 삶의 대한 진중한 고민과  성찰. 여행중에 인연이 되고 또 이별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과 슬픔과 그리움,들의 감정 또한 넉넉해서 은근하면서도 생동감이 흐른다. 그것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간에 여행자에게 있어 성별이란 큰 의미가 아니다. 그러고보면 세상에는 좀더 독특한 사고로 독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늘  평범한 일상인으로 살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이 당장  나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도에서 여행자로 만나 결혼을 했고 몇 년후 이혼을 하게 되는 어떤 부부, 인도에서 시작했으니 끝내는 것도 인도에서 하자, 합의하에 인도로 다시 이혼여행을 온 이 두 사람은,  결국 이혼을 했을까, 아니면 처음 만났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다시 화합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다시 찾은 인도여행, 그 분위기로 봐서는 다시 결합을 했을 것에 한표를 얹고 싶은데. 또 많은 사연을 가지고 여행을 왔던 그들은 이제 좀 평안해졌을지, 작가가 여행지에서 만났던 그 사람들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멈추어 서서 사랑하는 일,' 이라고 말하는 작가. 그의 젊은 인생에 촉촉한 단비가 되어주며 효험이 보장되는 최상의 보약이 될 것 같은 여행서다. 어찌 작가 스스로에게 뿐이겠는가. 이 책을 집어들고 그 안으로 성큼 빠져드는 이들 대부분이 좋은 간접 경험이 되어그렇게 흐뭇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