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과 보조자료가 더없이 풍부하다할지라도 그것이 매우 현학적이라면, 그래서 독자에게 쉽게 와닿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최진기의 이 책은 독자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시대별로 서양미술사와 작가와 작품의 이야기가 일목요연하여 독자를 단번에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를 지나 중세, 그리고 르네상스시대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글쓴이의 말대로 예술은 그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미술 역시도 예외는 아니겠지. 신들의 이야기로 회화와 조각을 이루어 냈던 고대의 이집트, 그리스, 로마시대. 조각으로 유명했던 그리스와 건축이 압권이었던 로마.

 

인간보다는 신성이 지배했던 중세. 유럽 중세 미술의 대표적인 것은 이콘(성화)이다. 성화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한 그림이었기에 성경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가 있었고 그림을 통해 차별성을 알아챌 수가 있다. 이 책 안에는 여러 작품의 성화가 함께 실려 있다.

 

14세기에 일어난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과 변화에 관한 설명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더불어 그림에 대한 구도나 기법, 대가의 그림을 패러디한 작품 등에 관한 것도 싣고 있어서 바로 비교대조할 수 있게 했다.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3대 미술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그들의 일대기를 통한 내력과 그것의 영향을 받았을 작품들의 향연으로 독자는 끊임없이 호사를 누리게 된다.

 

바로크와 로코코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들. '못난이 진주'에서 유래했다는 17세기의 그림,건축, 회화 양식의 바로크적 미술에서는 루벤스와 자화상의 대가 렘브란트, 화가 중의 화가라 불리는 벨라스케스, 여성화가 젠틸레스키, 진주귀걸이로 각인된 베르메르까지의 그림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앙증맞은 장식'이라는 뜻의 로코코. 교회나 군주,귀족이 그 동안 그림의 수요층이었다면 로코코미술에서는 부르주아가 주요 수요층으로 등장하게 된다.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 미술이 나타나게 된 당시 상황과 작가를 알아보고 작품을 감상하고나면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미술에 관하여, 그리고 리얼리즘시대를 지나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인상주의 작가와 작품들. 마네,모네,르느와르,드가,고흐,고갱,세잔 등이 등장한다. 인상주의 편에서는 편안하게 수용할 수 있을만큼 그들이 친근하다.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현대의 작품들.

 

이 책 전부에 집중한다. 줄도 긋도 그림들도 정독하듯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특히나 이 책을 통틀어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작가는 리얼리즘 미술의 쿠르베다. 최초의 리얼리스트로 불린다는 이 사람이 견딜수 없이 근사해서 나는 일순간에 쏙 빠지고 말았다. '미'가 아닌 '현실'을 표현하고 화가로서 자의식이 강했던 사람. 노동자나 농민의 일상을 보이는 그대로 담아내고 무엇보다 나는 리얼리스트다, 라고 단언하며 당시 규범이나 관습에 저항했으며 그 부조리한 현실사회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작품들, 그 작품들이 좋았다.

 

<인문의 바다에 빠져라2>서양미술사는,단순히 당시의 미술사조나 작가작품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양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는 실용서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미술에 관한 배경지식을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수 많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니 여러모로 흐뭇했다.

빅히스토리, 제목처럼 인류역사에 있어 대전환점이 되었던 사건들로 이루어져 머릿속에 쏙쏙 박힌다. 그리고 재미있다. 중고생이 미리 읽어야 할 빅히스토리,라지만 성인들이 읽어도 무방할 정도로 정보와 지식 전달이 알차다.

 

빅히스토리 시리즈 중에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었을까?'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네트워크라는 개념을 접목해주어 이해가 쉬웠다. 그리고 읽는 내내 4대 문명지가 오버랩 되었다. 아, 그래서 그 지역이 문명의 발상지가 될 수 있었구나. 황하, 인더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 길이 연결되어 교역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문화가 이동하니 그것이 바로 글로벌 네트워크의 중심지가 될 수 밖에.

 

인류역사를 변화시킨 다양한 네크워크의 종류가 등장한다. 중국의 비단길은 단순히 비단이 팔려나간 길이 아니라 아프로유라시아(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네트워크였다. 바닷길을 이용해 교역을 이룬 인도, 인도의 후추나 육계피같은 향신료 역시 유럽으로 팔려나가면서 향신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향신료뿐 아니라 불교와 힌두교,라는 종교까지도 전파되었으니 교역의 역할이 얼마나 중대한지 알 수 있겠다.

 

예언자인 무함마드가 체계를 갖춘 종교 이슬람. 이슬람의 신자인 상인 무슬림들의 포교로 더 빨리 확산된 이슬람 네트워크는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의 확대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슬람 네트워크의 운송수단은 사막에 잘 적응하는 낙타의  덕분이었다는 것. 

 

네트워크가 견고해질수록 다양한 문화가 서로의 나라에 유입되었고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져 발전되었지만 꼭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어서 바로 질병,까지도 전염이 되었단다. 흑사병이나 천연두 등 많은 질병은 한 나라를 전복시킬만큼의 위력을 가졌고, 그로 인해 인류의 역사는 또 다른 운명을 맞이하기도 했다.

 

콜롬버스, 그의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은 대서양을 매개로 아메리카 네트워크와 아프로유라시아 네트워크를 연결하게 된다. 동식물의 이동과 노예무역,노예해방이 있기까지. 역사에 길이 남을 굵직한 사건들의 나열로 흥미가 진진하다. 적지않은 청소년들이 세계사 공부에 부담느낌을 안다. 점수라는 현실을 목전에 두니 그럴 수 밖에. 그런데 재미있는 소설책을 읽는 듯이 이렇게 술술, 읽어내리니 어찌나 쉽고 호기심이 이는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킬로미터에 3,40일 소요. 비교적 안락하던 일상을 접고 자발적으로 찾아나서는 고행의 길. 열악한 음식, 잠자리, 옷차림을 각오하고 떠나는 길. 그러나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터져 나는 순례길.

 

그 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관한 여행기를 10여 권은 읽은 것 같은데 모두가 10인10색. 같은 길을 걷고도 사람마다 이렇게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순례길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여,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나의 버킷리스트에 버젓이 담겨있기도 한  도보길이다.

 

이번에는 소설가 서영은의 순례기다. 적지않은 소설발표와 함께 또 적지않은 여행을 했던 서영은에게 이 순례길은 그러나 녹록치 않은 길이었다. 자유롭던 생활과 그에 적응된 신체리듬이 수백킬로미터를 향한 여정을 두고 척척 적응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터.

 

정신적인 지침 속에 영혼의 쉼과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거리를 덮고 유언장을 쓰고 떠났다. 그리고 그 길을 향해 끝없이 걸었다. 장기간 필요한 배낭구하기와 짐꾸리기부터 현지에 도착하여 길 위와 숙소 등에서 만나는 사람들, 신새벽부터 걷기를 시작하면서 음미하게 되는 자연의 신비로움. 그녀의 간절한 기도, 수십 일을 함께 여행하면서 없을 수 없는 동행인과의 미묘한 갈등과 해소. 또 기도로서 깨달아가는 걸음걸음...,

 

이미 몇 번의 산티아고 순례의 경험이 있던 동행인을 뒤쫒아 걷기에 전전긍긍했던 서영은은 드디어 그 길위에서 몸과 마음이 홀로서기가 될 때까지 많은 고통을 겪었다. 그런 후에 진정한 홀로서기란, 얼마나 뿌듯함인지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이 순례기에서 서영은의 문체와 내용은 중후하면서 사색적이고 극도로 묘사적이어서 이따금 소설을 읽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글쓴이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상상으로도 나의 발가락이 아프고 숨도 컥컥 막혀오지만, 굳은 결심이 서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는 나도... 그러다 또 의구심이 들기도, 내가 정말 갈 수 있을까. 그 수백킬로미터를 하루에  2,30킬로미터씩 걸으면서 헤쳐나갈 수 있을까. 뭐, 그도하고 그녀도 하는데, 나도..., 할 수 있으리라. 있을까...,

 

제주도 올레를 개척한 서명숙씨도 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고향인 제주도에 그 길을 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산티아고의 순례길과 제주올레는 왠지 닮음이 있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