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분량에 놀랍다. 그리고 그것이 시종 지루하지 않음에 또 놀랍다. 근거있는 자료 수집과 분석, 관련자들과의 인터뷰, 공간에의 답사 등. 소파 방정환(1899-1931)에 대한 글쓴이의 특별한 애정이 없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터, 그래서 이 한 권의 평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소파의 출생에서부터 그가 33세로 요절할 때까지. 수난의 우리 역사와 맞물리는 그의 개인사이기에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의 사회현상도 함께 알아 보는 귀한 자료가 되겠다. 개화가 시작된 터라 사회적인 변화, 그리고 한일병합 등 많은 동요가 일던 속에 그의 생애가 함께 한다.

 

서울의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태어난 소파는 유복한 생활도 잠시, 급작스러운 집안의 몰락으로 빈곤의 극한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학업의 끈을 놓치 않았으며 머지않아 손병희의 사위가 되면서 경제적인 구속에서 벗어나게 된다. 손병희, 바로 천도교의 3세 교조가 아닌가. 그의 사위가 되고 당시 신학문을 한 아내를 맞이한 것은 그의 인생에서 크나큰 전환이 되었으리라.

 

지하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고 각종 잡지에 글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요시찰 인물이 되는 그는 더 넓은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해 일본유학을 떠난다. 그 당시 독립 지식인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적을 알아야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신념에서였을 것이다.

 

일본유학을 그만 두고  어린이를 위한 색동회를 결성하고 귀국해서는 어린이날,을 제정. 그 때가 1923년이었다. 어린이날 발대식 때 쓴 어린이날 제정의 취지와 선언문을 보면 그가 얼마나 근대화된 사상을 가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전 근대적인 행위들을 지양하고 어린이를 살필 것을 역설. 그에게 어린이라는 존재는 곧 조국을 구하는 희망이었던 것이다.

 

소파가 주체가 되어 창간한 <어린이> 잡지를 통하여 많은 작품들을 써 올렸고, 또 아동작가들도 배출했으며 무엇보다 주인공인 어린이를 위한 잡지가, 바로 <어린이>지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파는 그 잡지를 통하여 독립운동을 꾀하였던 것인데, 그것을 놓칠리 없는 일제의 간섭으로 많은 경찰서 출두와 심문 속에서도 그는 꿋꿋하였다. 1931년 급사 직전까지 자신의 건강마저 버려둔 채 서울 뿐 아니라 전국에 협회를 두고 혼신을 다했던 어린이의 인권옹호와 계몽운동.

 

소파의 어린이날, 제정의 취지와 어린이를 섬기는 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텐데. 그 당시 가난과 핍박으로 헐벗고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했던 어린이들과 비교하면 지금의 아이들은 필요충분한 조건에서 대부분 유복한 생활을 하는데도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경쟁에 경쟁, 욕심에 욕심. 크고 지나친 것을 탐하다 보니 어린이도 어른도 살기가 팍팍해지는 건 아닐까. 역사적인 배경과 소파의 활약, 그리고 지금 우리의 모습까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알찬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하여 '한차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니 보람차다. 이름만으로는 여성작가,가 아닐까 짐작하였으나 검색해 보니 남성작가다. 어쩐지 문체가 날렵하고 때로는 질펀하고 또 때로는 속도감이 넘치더라니.(물론 여성작가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주로 대화체로 되어있는 방식에 그 대화 처리가 마치 물 흐르듯 하여 몰입이 매끄러웠다.

 

그러나 처음 몇 장은 주인공들의 성별이 불분명한 이름들로 헛갈려 내용 이해가 갸우뚱. 나의 이름에 대한 선입견인가. 차연,을 여자로 알고 동성애자인가 했다가, 그게 아닌데 했다가..., 그러다 성별구분이 가능해지니 사건에 속도가 붙으면서 점입가경.

 

애위사 (애도와 위안의 사람들)라는 위로 서비스 대행업체에 근무하는 남자 주인공, 한차연. 자살을 돕는 모임(하늘회)에서 자살자가 외롭지 않도록 자살로의 길을 인도해주는 여자 주인공 원형. 죽은 사람을 애도하고 유족을 위로하는 차연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원형,은 어쩌면 같은 선상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 만남 역시 장례식장에서였다. 자살로 인도했던 사람의 죽음과 그의 가족을 위로해야하는 공동의 자리. 그 날 이후 차연은  원형을 통하여 수 년전 위로요청 고객이었던 자살 미수자 성이연과 재회하게 된다. 성이연과는 가볍지만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던 사이. 그런데 원형의 이번 자살 의뢰인이 성이연이란다. 그녀가 다시 자살을 결심한 것이다. 그녀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차연은 다급해진다. 이런 저런 경로와 유추로 그녀의 행방을 알아내고 무엇보다 조력자들의 도움이 있었다.

 

OECD국가 중의 자살률 1위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SNS를 통한 동반 자살 사이트가 논란이 되기도 했고 실제 일어나기도 한다. 지금도 어디서 누군가는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할지를 두고 갈등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준비없이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충격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수 많은 유족들의 찢어지는 가슴이 있다.

 

절박한 그들에게 위로는 금방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슬픔이 다만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 슬픔 자체보다는 그 속에 매몰된 자기자신에 더한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때로는 그런 자각만으로도 비로소 위로의 긴 치유과정이 시작될 수 있다' 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슬픔장애재활클리닉,의 치유약이란 결국 누군가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아닐런지. 물론 소설적 요소는 있지만 그렇다고 소설로만 볼 수 없는, 우리 현실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개연성 짙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화, 매일 할 거예요. 잘 살고 있는지... 뭔가 할 말이 있으면, 언제라도 좋으니까 전화해요, 차연의 이 말이 참 따뜻했다. 그리고 죽겠다는 결심을 녹아내리게 하는 묘약이 될 수 있으리라.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앞 장으로 가서 후루룩 훑어보게 하는 결말의 여운. 작가 한차현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하악하악>은  어쩌다가 나에게 있어 이외수씨의 대표작이 되었다. 아주 어렸을 적, 그의 어떤 책을 접하고는 이외수씨도 함께 접게 되었는데 섣부른 나의 행동이었을 터, 그러나 그때는 그의 아웃사이더식 생활이나 문체가 와 닿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 번 된통 체한 음식은 그 트라우마로 인해 오래도록 가까이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 동안은 그의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찾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이 지나 그의 <하악하악>을 접하고는 동요가 일었던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아마 이외수씨의 팬들은 오래도록 건재할 것 같다는(?) 10편의 단편들로 묶여진 단편소설집 <완전변태> 제목마저 그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반가히 펼쳐본다.

 

선문답 같기도 한 작품이 있는가 하면, 우리 현실의 부조리들을 사실적이면서 유머있게 그려낸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이외수씨라면 적은 말로 비수를 만들어 곪은 곳을 적중하는, 단말마 같은 비명과 웃음을 함께 토해내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알 것이지만. 이번 책도 그렇다.

 

돈이 없으면 예술에 꿈도 꿀 수 없는 가혹한  이 현실 앞에, 돈맥으로 견고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 순수한 애술혼만으로 장인이 되려다가는 유배자,가 되고 마는 슬픈 현실. 그 검은 거래에 저항하는 한 화가의 이야기 '유배자'는 우리 현실을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면서도 그에 저항하는 표현 또한 매우 극적이어서 독자로 하여금 쾌감을 갖게 한다.

 

책의 제목이면서 단편의 제목이기도 한 '완전변태' 완전변태는 운동능력이 거의 없는 곤충이 번데기 상태를 거쳐서 성충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번데기를 거쳐서 나비가 되려는 과정을 표현한 완전변태. 여기에도 그의 동음이의적인 언어유희가 물씬.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톡, 쏘고 마는 그의 필력에 웃음이 절로절로다.

 

다소 엉뚱한 듯한 인물들도 어쩌면 이외수의 분신이 아닐까 싶을 만큼 많이 닮아 있는듯 하다. '그의 소설을 읽지 않고 이외수를 논하지 말라' 는 말처럼 그 동안은 이외수의 작품을 읽지 않았으니 그를 말할 수 없었을지언정 이제 그의 작품들을 새로이 맞아 들이니 언젠가는 그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오랜만에 나온 그의 소설집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