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시인 박목월(1916-1978)하면 떠오르는 시는 <나그네>나 <가정> 그리고 <하관> 등이다. 언제 읽어도 명치를 건드리고 콧끝이 찡한 것이, 묵직한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시인,하면 그의 대표작품들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 시 속에는 그의 인생관이나 개인적인 삶이 녹아 있기 마련이다.

 

박목월의 맏이인 박동규가 펴낸 이 책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절절한 사부곡으로 1부, 그리고 2부는 박목월의 산문들로 묶여졌다. 그 동안 익숙했던 시들이 어떻게 해서 쓰여지게 되었는지, 이 책을 읽고나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누구나 가난했던 시절에 조금 더 가난했던 가장으로, 시인으로서 박목월은 고된 현실에서의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그래서 완성된 것이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그네>라는 이 시 속에서만큼은 잠시 많은 역할을 내려놓고 달처럼 자유로운 방랑자가 되어보는 것이다.

 

교편과 원고료로 가정의 경제를 꾸려가지만  부양할 가족이 많은 그에게는 늘 부족함이 많았다. 그래서 나온 시가 <가정>이 아닐까 싶다. 가족을 위해 혹독한 현실을 살지만 결국 가족으로 하여금 행복할 수 있다는 가장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좀더 풍족하게 해주지 못하는 아버지로서 자책을 담은 시.

 

동생의 요절 후에는 <하관> 물론 꼭 그렇다는 이야기가 책 속에 직접 표현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산문들을 읽어보니 유추가 되고 아귀가 맞춰지는 것 같다. 아버지로서의 박목월을 보면 가정과 가족의 행불행을 결정하는 것이 결코 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빈곤 속에서도 자녀에 대한 지극한 살핌과 애정의 표현, 공유하는 시간의  배려,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이런 아버지의 모습은 그대로 자녀들에게 산교육이 되었던 모양이다.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 시절의 아버지를 회고하며 눈물바람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물보다 진한 혈육, 혈육으로서의 연대감과 신뢰와 애정, 그런 기운들이 함뿍 묻어나는 박동규.박목월의 사연들. 편안한 마음으로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그의 시를 애송하는 독자로서 시 이면의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가혹했던 일제와 한국전쟁을 겪어내면서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시를 창작해 냈던 시인. 개인적인 삶에 아픔도 많았던 그였기에 그의 시에는 진정성이 묻어난다.

사랑에서 이별까지 그리고 이별 후에 찾아드는 외로움과 그리움까지.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사랑에 따르는 애증의 것들. 희열이었다가 설렘이었다가 불안과 초조, 질투였다가 다시 보고픔이었다가, 이러한 수수께끼같은 감정들을 그림으로 표현한 작가가 있으니, 바로 화가 신철,이다.

 

사랑에서 이별까지의 감정을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하는가하면, 동시에 계절로 드러내기도 한다. 분홍설렘으로 사랑이 시작될 때, 곁에 있는 것으로만도 충만할 때, 보고픔이 간절할 때, 서로의 만남은 운명이라고, 또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채워지지 않을 때, 그렇게 예쁠 시기에 화면에는 탐스러운 원색의 꽃들이 흐드러진다.

 

이 세상에 둘 뿐인것 처럼 두렵도록 행복하다가도, 사람의 마음은 얄궂을 때가 있는지라.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가 하면, 서럽기도 하고, 어느 새 서로의 사랑은 욕심이 아닐까 회의가 들 때쯤 이별의 아픔이 찾아온다. 그 때 화면에는 눈이 내리는 겨울이고 회색의 음울한 색채가 돈다.

 

뜨거웠던 사랑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다. 무력한 슬픔에 빠져 눈물을 쏟을 때도 그러나 상대를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축복하며 행복을 빌어준다. 그리고 가끔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이여/슬프도록 소중한 내 사람아/부디 당신은 행복하십시오// 그래서 신철의 그림은 이별 후에도 절망스러운 색채가 아니다. 다시 소담한 꽃덤불이 우거지고 나비가 날아들 것 같은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사랑하는 법도, 그리워하는 법도 그림으로 표현한다' 는 화가 신철. 그 바탕에는 순수,가 깔린다. 그래서 색감도 단순하면서도 원시적이다. 사람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화를 겪지만 결국 작가는 그 안에서도 희망,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글이 읽혀진다. 물론 그의 그림과 짧게 삽입된 글귀들 모두 그의 작품이지만,신철은 마치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고향은 물빛 빛나고 유채꽃이 고운 청산도라고 한다. 유년시절을 이 곳에서 보내며 어쩌면 그의 화가의 길은 일찌감치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그의 그림 속 색감은 맑은 청산도와 많이 닮아있는듯 하다. 인위적인 멋이나 화려함이 없으며 소년의 맑은 눈과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긍정의 뜻을 전하는 것 같다.

 

우연히 이 책을 산 지인을 만났다. 그림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 그림을 보고 사셨다고 한다. 연세가 꽤 되신 분인데, 작가의 그림과 글이 나이를 초월하는 감동을 준 것이 아닐까. 그 분 여기 평소 순수,를 지향하는 분이니까.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정화의 기능까지도 포함하는 책이다.

 

울산 고래 축제(7월3~6일)를 개최한다는 기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고래... 정말이구나. 구광렬의 소설<반구대>를 읽은 후가 아니었다면 그 기사도 무심히 흘려보냈을 것이다. 작가도 사실에서, 팩트에서 시작한 소설이라고 했다. 고래가 신성시되고, 그래서 고래의 어획은 금기시 되었던 선사시대, 큰어울림가람가(태화강)에서 있었던 이야기.

 

반구대,란 절벽이 있는 산등성이의 암반모습이 마치 앉아있는 거북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리고 그 반구대에 새겨진 암각화, 경북 울진군 대곡리의 그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으로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돌칼로 새기고 파내어 정교하게 다듬어진 반구대 암각화.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돌의 종류다. 그 당시 참돌의 발견은 그림을 표현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 지금은 그 세월을 못이겨 정확한 형상은 알 수 없으나  그 시대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는 귀중한 사적유물임에 틀림이 없다.

 

암각화 속 그림을 보고 이렇게 짱짱한 서사를 짜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마치 그 부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는 것 같은 리얼리즘에 빠지고 만다. 수렵중심의 부족사회이다 보니 수컷, 아니 남성의 물리적인 힘의 유무에 따라 질서가 결정되기도 한다. 얌전하고 약한 남자에 대한 최고의 굴욕적인 욕은 '사슴같은 놈', 요즘말로 이런 젠장,정도는 '얼음(나이)을 묻을', 그리고 자연친화적인 이름들.

 

구름송이, 꽃다지, 개미취, 마타리, 그리매, 큰주먹,올빼미눈, 꽃다지, 단,작,갈,하,삽 ... 등 한자가 섞이지 않은 사람의 이름도 순우리말이다. 처음에는 이것이 동물의 이름인지, 사람의 이름인지 헷갈리기도 했으나 읽으면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은근히 어떤 이름일까, 호기심을 자아내기도 했다.

 

지금으로 보면  비윤리적인 근친상간이나 난잡한 행위들도 그 시대로 돌아가보면 단순한 본능이고, 또 종족보존이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저 굶주림없이 먹고 사는 것, 추위와 더위, 짐승으로부터 생명부지에 주력을 하는 것, 그래서 다양한 문화를 생각할 수 없었던 그 사회에도, 표현은 인간의 본능인지라 바위에 생활상을 새길 생각을 했으리라. 그 인고의 장인 정신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찌 그시대의 고래잡이나 존재했던 동식물들을 알 수 있을까. 그들로부터 진화하여 지금의 우리가 것을.

 

수 년전 <체 게바라의 홀쭉한 배낭>이라는 책으로 이름을 기억하는 작가 구광렬. 이번에는 장편소설이다. 다소 생소하지만 친근한 순우리말 어휘도 풍요로운,선사시대의 부족사회를 참 잘도 표현하였다.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