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그리고 치유, 이 글을 읽는 내내 수 년 전에 보았던 영화 <밀양>이 오버랩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유괴당한 아들이 사체로 돌아왔는데  범인은 면식범이었고 수감되었다. 땅에 묻은 아들의 체온이 채 식기도 전인데 특정 종교인 몇이서는 아들을 잃은 그녀를 위로하겠다며 또 그 범인을 용서하라며 그것이 서로에게 구원이 아니겠냐며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아들이 살해 당한지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다. 참 성급하다 싶었다. 종교인들의 야단법석에 나는 짜증이 밀려왔고 하마터면 극장을 박차고 나올뻔 했다. 마땅히 통곡할 시간을 주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다음에 진정이 되고 이성을 찾게되면 그때가서 용서와 희망을 이야기해도 늦지 않는다. 그것이 순서가 아닌가 싶었다.

 

용서라는 것이, 희망이라는 것이 어디 어거지로 될 일인가 . 용서와 화해는 고통을 다 하고 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한 법! 그 과정을 무시한 채 그 아픔을 오롯이 공감하지 못하는 위로는 진정한 위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눈물을 뚝, 그치라고 강요하는 것은 가혹함이요, 진정한 슬픔 나눔이 아니다. 울만큼 실컷 울 수 있게 보호해주어야 하며 집채만한 아픔덩이가 쏙 빠져 나가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상실을 겪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싶다.

 

그때 그런 생각들을 한 적이 있던 차에 이 책을 읽으니 글쓴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세게 와 닿았다. 내가 그때 하려던 말이 바로 이 책 속의 말들임을. 고개를 끄덕끄덕. 낙마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로서 아픈 체험에서 나온 상실과 위로여서 더 그럴까. 그 절절함이 피상적이거나 교과서적이지가 않고 꼭 와 닿는 친근함. 위로란 장황할 필요가 없다는 그녀의 말에도 공감한다. 그래서인지 책 한쪽 마다에 두 세 단락 정도의 짧은 치유책으로 열 두 달 일 년의 이야기를 담았고 더불어  한 두 문장 정도로 된 유명인들의 어록으로 시작하여 그녀의 치유책에 힘을 더 싣고 있다.

 

이 책이 가장 많이 판매됐던 때가 미국의 9.11사태 직후라고 한다. 그런가보다 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책인듯 싶다. 많은 종류의 상실이 있겠지만 이는 죽음으로 인한 것이다. 지금도 자고나면 사건사고와 그로 인한 사망소식이 끊이질 않는다. 왜 하필 나에게! 라는 원망도 먹히질 않는다. 불의의 사고는 누구를 선택하거나 가려서 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 불행은, 그 상실은 아주 우연적이니까.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사람들이 겹쳐졌는데, 그 중 하나가  세월호 사건의 유가족들이었다. 죄책감과 아픔으로  삶의 의지를 상실하고 평상심을 아직도 되찾지 못한 유가족에게, 이 글쓴이의 말처럼. 먼저 간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땅을 내려다보며, 남은 나의 가족이 어떻게 살기를 원할까를 다시 생각하며 극복할 힘을 얻기를 바란다. 그 후유증으로 아직도 고통 속을 허우적거린다면 과연, 먼저 간 아이들의 마음이 편안할까.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맙고 행복했노라고, 그 추억을 오랫동안 품고 용기를 얻겠노라고, 글쓴이의 말처럼 상실의 흔적이 아예 없었던 일처럼 사라질 수 없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도 먼저 간 사람에 대한 애정의 표현일 수 있음을. 상실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공감하고 또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개정되기 수 년 전의 국정교과서에서 읽었던 여러 편의 수필을 다시 만나니 새삼 반갑다. 그 뿐 아니라 생소한 현대수필가들의 작품과 각 개인의 소개도 함께 곁들여지니 작품을 감상하는데 더욱 효과적이다. 글은, 특히나 수필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인생관, 또는 세계관까지도 드러내는 것이니 그 작품을 이해하는데 작가에 대한 이력은 또 하나의 좋은 배경지식이 될 것이다.

 

요즘들어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읽게 되는 이상의 <권태> 극도의 권태 속에 작가는 생활과 주변환경에 무미건조와 더불어 해학을 버무린다. 도회에 살던 사람이 벽지로 요양을 왔다하여 이렇게까지 권태로울 수 있을까, 웃으면서 안타까움도 묻어나는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다. 그 권태,라는 작품을 완성하고 4개월 뒤, 그는 28세 나이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 병으로하여 죽음이 눈앞이니 무엇인들 싱그러울까. 당장 이해가 되고 만다. 

 

22인의 작가와 그의 작품들을 싣기까지 얼마나 많은 탐구와 고찰이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게는 두 세 작품씩, 적게는 한 작품이 실렸고 고인이 된 작가에서부터 현역에서 건필하고 있는 분까지 매우 다양하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읽었을법한 그래서 익숙한, 수필계의 지존 김진섭, 이양하, 피천득, 이상, 이어령, 고은, 이해인, 박이문 등. 이 분들의 글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읽을 수 있다는 건, 기쁨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수필이란, 누구나 쓸 수 있는 비전문적인 글이고 주변의 일을 개성있게 표현하는 신변잡기적이며 개성이 넘치는 글, 그리고 유머와 위트가 있고 독자에게 교훈을 주며 소재 또한 무궁한 글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이 되는 수필의 특징을 뽑으라하면 갈등없이 '개성'을 말할 것이다. 주변에 쓸거리가 차고 넘쳐도 그것을 독특하게 집어내 표현하는 사고력과 표현력이 없다면 무용지물일테니까. 그래서 글쓴이의 말에 나는 공감한다. 수필이란 아무나 쓸 수 있으며 형식도 따로 없는 무난한 글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글이 또 수필이라고!

 

글쓴이가 소개한 22인 작가들의 사물에 대한 지각은 매우 다양하다. 표현과 주제가 감상적인 성향이 있는가하면, 또 고뇌가 묻어나는, 종교와 철학에 기반을 둔 진중한 작품들도 있다. 우리가 흔히 분류하는 경수필과 중수필의 차이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작품들의 공통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개성'이다. 모든 분야의 창작이 그렇겠지만 이 수필이라는 문학분야는 특히나 더. 오죽해야 수필을 개성문학,이라 했을까. 작가들의 맛깔나는 문장의 생김새들, 문체. 그 또한 읽는 즐거움이다.

 

사색과 독특한 개성으로 유난히 띄는 작품이 박이문의 <길>이다. 자동차나 사람이 안전하고 편히 다니도록 내놓은 길, 그 단순한 길에 박이문은 깊은 통찰로써 우리가 알고 있는 길 외에 또 다른 길을 표현하고 있으니, 무릎을 치며 감탄한 지경이다. 누가 또 길에 대하여 그런 생각을 낼 수 있을까. <한국 수필의 미학> 두고두고 어느때라도 꺼내읽고 싶은 귀한 작품들이 여럿이니 소장의 가치도 있을 뿐더러, 문학장르에서도 수필을 좀 경시하거나 또는 수필을 좀 더 잘 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도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 등. 정유정의 이러한 소설들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빠질 것이다. 그녀의 서사력에 또 문장력에. 그리고 또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까.  정유정,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길래 독야청청한 문체에 찰진 서사력에 유머인가 하면 그 속에 숨막히는 긴장감을 복병처럼 숨기고...,

 

독자는 당장 그녀의 팬이 되고 말 것이다. 흡인력이 강한 작품들이니까.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녀의 사사로운 글들이 나오기를 바랐었다. 그러다 작년 그러니까 2014년 봄쯤에 이 책이 출간이 된 것이다.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 방황> 마력이 충만한 그녀의 소설과는 또 어떻게 다를까. 기대가 하늘에 닿을 만큼 설렘으로 아껴 읽었던 그녀의 첫번째 에세이.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이름만 들어도 벅차오는 이 곳에서 그녀는 동료와 함께 19일간의 여정으로 트래킹을 마쳤다. 베시사하르(820)에서 시작하여 쏘롱라패스(5416)를 거쳐 나야풀(1070)로 하산. 그 여정에서 그녀가  겪고 극복한 고통들-고산병, 두통,불면,변비 등-을 읽으며 간접체험을 하는 나도 반은 쏘롱라패스를 넘어온 듯, 온몸이 긴장되고 이완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여행 중 장면마다 오버랩되는 그녀의 추억의 체험들을 통해 그녀를 좀더 알 수 있었다.

 

같은 길이라도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길이 되니 그것이 사람의 개성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답게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쓰듯, 읽는데 감칠맛이 난다. 소설에서 느꼈던 작가의 이미지는 뭐랄까, 찔러도 피 한방울 날 것 같은 않은 냉철하고도 빈틈없는 사람? 그랬는데 에세이 속 정유정을 보니 많이  털털하고 겁많고 인간적인 면이 여기저기에서 엿보였다. 히말라야 환상코스를 완주하고 스스로도 놀라고 감동하는 그녀를 보니, 나도...나도..하면서 히말라야에 오를 날을 꼽아본다. 그런 날이 올까....올려나?  왔으면 좋겠는데. 견딜 수 없이 간절하게 원한다면 가게 될테고, 가지 않는다면 덜 간절하기 때문일테지!

 

아무튼 정유정 덕분에 내게도 안나푸르나가 가깝게 느껴지며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