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정보와 재미를 주는 한국문학 속의 야생화  이야기. 읽는 내내 이 책을 엮어내기 위해 글쓴이는 얼마나 많은 애를 썼을까. 과연 이것이 문학과 야생화에 대한 애정이 없이 가능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문학과 야생화의 글쓴이의 애정이 듬뿍이다.

 

33편 단.장편의 소설문학들. 익숙한 작품도 있지만 생소한 것도 많아서 매우 흥미로운 서사를 가진 소설은, 당장 읽고싶은 충동이 일었다. 이미 읽은 작품들이 있음에도 어? 그 이야기속에 이런 꽃이,나무가,풀이 있었던가 싶어서 되읽고 싶게 만드니 먼지 낀 책장을 만지작거리게도 하였다.

 

특히 만화방창의 눈부신 봄길 위에서 이 책을 만나니 마치 물만난 고기마냥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절정에 이르기도 하였다. 얼마 전 실컷 구경도 하고 사진도 담아왔던 박태기 나무, 나무등걸에서 다닥다닥 피어나던 붉은 꽃잎이었다. '처음으로 이성에 대한 떨림을 느낀 처녀의 환희를 상징'(박완서 단편 친절한 복희씨)헀다는 대목에서 크게 공감하였다. 설레는 이성을 보고 처음 느끼는 두근댐,이 이보다 더 훌륭하게 비유될 수 있을까.

 

요즘 박태기와 더불어 현관문만 나서면 만날 수 있는 꽃덤불, 조팝나무꽃. 영어로는 '신부의 화관'이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는데, 무엇보다 깜짝 놀란 것은 이 조팝나무가 우리가 흔히 찾는 '아스피린'의 원료라는 정보였다. 우거지고 우거져 새하얗게 풍요로운 조팝나무꽃. 길을 가다가 꽃을 보며 이름이 뭘까,할 때 십중팔구는 조팝나무꽃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종류도 다양하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열매는 미국자리공. 김형경의 <꽃피는 고래>에 등장하는 생명력이 질긴 열매인데, 책 속에 실린 사진을 보고는 아,이것!! 신나게 알은체를 하였다. 늘 궁금했던 열매이름, 이렇게 정보를 주니 땡큐땡큐하면서 어린시절 회상모드로 돌입. 어렸을 적 풀이 우거진 곳이면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었던 보라색 주렁주렁 열매. 푸른것이 보라색으로 변했을 때는 포도의 닮은 꼴인데, 그러나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지라 손톱으로 즈려눌러 터트리며 놀곤 했다. 그 보랏빛이 옷에 들면 지워지지가 않아 엄마한테 혼이 나곤 했던 열매, 바로 미국자리공이었구나.

 

그 들풀이, 꽃이, 열매가,나무가 그 이름을 얻게 된 내력이나 전설 등을  사진과 함께 싣고 또 문학 속에 등장했던 그 부분을 따다 옮겨주니 이것이 일석몇조쯤일지..., 식물도감같기도 하고 문학비평같기도 해서 이들에 관심있는 독자에게 반가운 책이 될 것 같다. 기억력이 약해서일까. 이렇게 알게 된 이름도 한동안 접하지 않으면 다시 잊게 되니 말이다. 오래 기억하기 위해서는 직접 오감으로 느껴보면 좋을텐데. 

 

이 책을 읽은 후 방대한 식물원이 되어버린 동네 봄산에 올랐다. 일단 조팝나무꽃. 더욱더 친근하고. 철쭉과 진달래, 이제는 열매맺을 준비를 하는 벚꽃나무들. 새록새록 젖냄새 풍기며 솟아나는 느티나무 새싹들(강신재,젊은느티나무), 울타리진 곳에서 발견한 붉은 열매들, 아...이것이 책 속에서 보았던 청미래덩굴 열매 (현기영,순이삼촌)인가? 갸우뚱. 얼마전 봄비 맞고 방울진 모습이 황홀했던 그 풀들이 바로 냉이(권정생,몽실언니)였다니...

 

책을 읽고보고 밖으로 나가니 식물을 바라보는 내 시야가 한층더 넓어져 있음을 느낀다. 자꾸 알은척을 하고 싶으니 말이다. 김민철의 <문학이 사랑한 꽃들>은 그의 <문학 속에 핀 꽃들>에 이어 두번째 책이라고 하는데 온갖 꽃이 흐드러지는 이 봄날에 때맞추어, 이렇게 알찬 책을 알게되니 참 흐뭇하다.

우포가 좋아서 그 곳에 눌러산지 15년이 되어간다는 '늪이 된 사진작가' 정봉채. 그가 보내온 우포의 편지,에는 우포에 대한 그의 애정이 고스라니 담겨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우포에 대한 관심, 그 이상의 따뜻함이다. 그러고보면 사람 사이에도 운명같은 어떤 인연이 존재하듯 어느 땅이나 지역에 대해서도 유난히 당기는 곳이 있는 것 같다. 숙명처럼 말이다.

 

어린시절부터 사진을 좋아했던 작가. 그러나 현실성을 고려하여 전자공학을 전공한 후에는 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또 학교에서 교사로도 오랜 세월을 보낸다. 그러는  동안에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사진. 결국 오매불망하던 사진만을 업으로 삼기로 하고 자주 오가던 우포 늪에 정착하게 되었단다. 작가에게 그 곳이야말로 운명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주 오가는 것도 모자라 끝내 우포늪과 가까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우포늪에 동화되는 일상에서 작가의 우포사랑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사계절 안개가 끼고 습한 곳에 머물다 보니 만성습진,이라는 풍토병까지 갖게 되었지만, 그것은 떨궈야 할 질병이라기 보다는 어쩌면 작가의 우포사랑에 대한 우포의 작은 보답이 아닐런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우포늪의 명물은 물안개. 몽환적인 그 수증기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340 여종이 넘는 우포의 동식물과 그 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 그는 이들의 풍경을 하루에도 2,3천 컷씩 찍는다고 한다. 그러기를 15년. 이제 찍을 만큼 찍었다 싶은데도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니, 그에게 우포는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임,이며 그러니 이별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포의 순간적 아름다움만을 포착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우포늪 생명들의 몸짓을 모사하듯 있는 그대로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 그는 그 과정을 황홀하고 행복한 고통,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 삽입된 사진들을 보고 있자면 모두가 살아 숨쉬는 서정시,서사시요 다양한 그림들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물안개와 함께하는 새벽녘의 우포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거기다 동양적인 여백의 미라니, 금방이라도 신선이 솟아날 듯한 신비로움. 또 물빛에 반영된 휘엉청 나무들, 떠내려온 나뭇가지들, 그 위에 철새들. 알고보면 우포의 소박한 사람들이요 질박한 동식물의 모습인 것을. 그것들이 그의 렌즈를 통해 말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세계람사르총회 공식사진가로도 초대되었으며 국내 여러 개인전과 세계적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봉채 작가의 사진들, 이렇게 책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독자에게도 큰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