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해주던 만화가 생각난다.

그때 앤의 목소리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앤의 목소리가 나에게 들리는듯 했다.

 

어릴 적 텔레비전 만화속 앤은 정말 수다스럽고 시끄러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말이 어찌나 많은지 앤이 한번 말하기 시작하면 주변 사람들은 말을 할 수 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만큼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앤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자존심이 세고 고집스럽우며 과장하길 좋아하는 아이.

상상하기를 좋아하며 이름붙이기를 좋아하는 아이.

변덕스럽고 쉽게 절망하고 쉽게 행복해하는 감정적인 아이.

눈물도 많고 걱정도 많은 아이.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노력할 줄 아는 아이.

앤의 모습은 보는 보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을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아이가 없는 커슈버트가에 우여곡절 끝에 입양되어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앤의 당돌한 모습에 난색을 표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앤을 좋아하게 되었다.

 

모성을 몰랐던 마릴라가 앤에게 느끼는 감정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서로가 말하지 않아도 이제 그들은 한 가족임을 알 수 있었다.

매슈와 마릴라에게 앤은  더 없이 소중한 존재가 된 것이다.

 

맘 속 깊은 곳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기고,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앤은 더 멋지게 자라주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매슈와 마릴라의 마음은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매슈와 메릴라에게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 기쁨을 주고 기쁨을 얻은 앤.

앤에게 초록지붕집과 가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롤로그부터 나를 울리더니 소설을 읽는 내내 내 눈엔 눈물이 마르질 않았다.

다시 태어나면 아버지로 태어나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착한아들 아름이.

너 같은 애는 이렇게 아프면 안되는데.... 라는 아버지의 혼잣말에

나같은 애는 나같은 부모만 낳을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아름이.

 

서로가 원망스러울 수 있음에도 서로를 너무나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름이네 가족.

한판에 천원짜리 만두를 사들고 술에 취해 들어와도 서로에게 상처되는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이 싫을뿐... 아름이네 가족은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지독하게 가난하고 불행한 상황에서도 고운 마음으로 서로를 감싸안고 살아간다.

 

열일곱살에 아이를 가져서 서른네살에 나이에 열일곱살에 자식을 가진 부모는

다시금 서른넷 이른 나이에 자식의 죽음을 봐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 만으로도 기적이고 수 없이 많은 고비를 넘겼지만

그들에게 이별은 아직도 쉽지 않은 이야기다.

 

아름이는 몸보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했다.

노화에 동반되는 수없이 많은 병들을 짊어지고 힘든 치료를 하고 있는 아름이로는

어쨌든 몸보다 마음이 아프려면 살아있어야 하니까라고 생각한다.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지금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하루가 감사하고

얼마전 은교라는 영화를 보고서도 젊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을 보고서는 건강하다는 것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이는 이제 마지막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알기에 세상이 좋아질까봐 겁이난다.

누군가로 인해서 더 살고 싶어지고 그래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게 될까봐...

 

너무 슬픈데 사랑스럽고 예쁘다. 마음은 아프지만 미소 짓게된다.

밝아서 더 아프고 어둡지 않아서 더 아름다운... 이 책은 정말이지 고운 소설이다.

더 로드는 정말 아픈책이다.

보는 내내 긴장감과 가슴이 아릿한 느낌이 계속 되는데,

뒷 표지에 누군가 평해 놓은 글처럼 정말 한장 한장 넘기기가 힘이 든 책이었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잿더미 세상에서 시작한다.

항상 주변을 경계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잿빛 어두운 세상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아야 했고,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줘야 했다.

 

아버지이기로서 그는 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했고 그래서 인간으로 살아가야 했다.

잿더미 세상에 사람들은 대부분 짐승처럼 변해 갔지만 아버지는 그럴 수 없었다.

아들에게 그는 한 사람의 인간이여야 했다. 아들을 위해서 자신은 살아남은 것이다.

 

하루를 삶아내기가 힘들어진 세상에서 그들의 대화는 너무나도 처참하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이 사람을 짐승처럼 가둬 놓고 식량으로 이용하는 세상...

갓난 아이가 태어나도 단순히 갓난아이는 먹을 수 있는 고깃덩이에 불과한 세상...

아들은 울면서 우리는 사람을 잡아먹지 않을거죠?.. 라고 묻는다.

아버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굶어 죽더라도 그러지 않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사실 아들의 온갖 질문들에 그가 하는 대답들은 그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말들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온갖 의문들이 항상 가득하다.

 

그들은 목적지를 향해서만 전진한다. 

그들이 향하는 곳이 어떤 모습인지도 모른채 부자는 앞으로 나아간다.

 

사는게 죽는 것 보다 고통스러운 세상.. 죽음이 차라리 편안하게 느껴지는 세상..

그런 세상에 살고 있지 않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