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책을 읽으면서도 전혀 지루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못했다.
나는 벤과 함께 움직이고 벤과 함께 생각하고 벤과 함께 마음 졸였다.

벤은 윌 스트리트가에 변호사로 일한다.
벤에게는 아름다운 부인 베스와 애덤, 조시라는 귀여운 두 아들이 있다.
부유한 주택가에 살고 있고 경제적으로도 매우 풍요롭다.

주변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성공한 인생이다.
한때 그가 사진가가 되기를 꿈꾸며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의 그런 의지는 아버지의 경제적 지원앞에 힘없이 무너지곤 했다.

결국 그는 아버지의 바람대로 로스쿨을 나오고 변호사를 시작했지만,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 조직에 합류하지 못한채 겉도는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은 만족하지 못한 직업을 가지고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사진을 찍는
아주 고급 취미를 가지고 있는 변호사가 되었을 뿐이다. 

다시 돌리지 못하는 인생이었지만,
다만 벤은 지금 인생에서 부인 베스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을 뿐이다. 
그 마음을 전혀 몰라주는 베스는 그를 계속 해서 무시하면서 부부의 갈등은 깊어갔다.
그러던 어느날 벤은 부인 베스가 앞집 사진가 게리와 불륜이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엄청난 사실을 가슴에 품은채 속앓이를 하게 된다.

여러가지로 복잡한 그의 머리를 반영하듯 한 파티장에서 벤은 술에 취해서
베스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만다. 그로 인해 베스에서 이혼을 종용받고
괴로워 하던 차에 그들의 불륜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만다.

그냥 이끌리듯 게리의 집으로가 대화를 나누던 중 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게리를 죽이게 되고, 한참을  괴로워 하던 벤은 게리로 살기를 결심한다.

게리로 살기 시작한 벤의 인생은 침묵하고 고요해야 했다.
그러나 게리로 살기 시작하면서 그의 인생은 점점 더 시끄러워 졌다.
진실의 탄로에 항상 전전 긍긍해 하면서 애태워야 했고, 수많은 물음들에 대답해야 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치달으면서도 나는 이 소설이  어떻게 끝마칠까 내내 궁금했다.
많이 일들이 벌어졌고,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된 지금 벤이 어떤 선택을 할지가 궁금했다.

책이 끝나는 것을 아쉬워 하면서도 끝을 기대하면서 읽게 되는..
왜 이책이 벌써 영화화되어야 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결말이었던것 같다.

매우 유쾌한 책을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으면 일본 사람들의 평범한 삶은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일상적인 내용들이 많다.

다섯편의 단편들중에서 부인과 별거한 남편의 얘기가 꽤나 맘에 들었다.
결혼한지 몇년이 지나 크게 싸운일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사이가 멀어지고
서로 무관심해 지고 그러다가 보니 서로 생각할 시간을 갖자고 별거를 시작한 부부.

남편은 아내의 모든것이 빠져나간 집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각종가구와 물건들로 집을 꾸미기 시작한다.
집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그는 쇼핑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좋은 물건을 얻기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투자하고 신중히 쇼핑한다.

하나씩 쇼핑을 마치고 달라지는 집을 볼때마다 그는 만족하고 행복해한다.
어느새 그의 집은 직장동료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남자들은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게임을 즐기고 음악을 듣고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같이 그의 집을 꾸미고 
해방감을 느끼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글을 읽으면서 내내 쇼핑하고 싶다는 감정이 강하게 들었다.
혼자서 나도 내집을 꾸미고 나만의 공간을 갖는 상상도 해보았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나만의 공간을 갖는것에 대한 꿈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둘이 되었을때, 나만의 공간이 아니고 둘의 공간이기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존재할때 공간은 더욱 더 가치를 지닌 
둘의 공간으로 둘을 끈끈이 이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세가지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를 보고나서 그의 소설을 읽었던 지라.
소설속 구사나기와 유가와의 등장에 조금은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경시청 형사인 구사나기와 데이도 대학 물리학과 교수인 유가와는 대학동창 사이다.
구사나기는 의문의 사건들에 대한 자문을 종종 유가와에게 구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유가와는 멋지게 그 사건들을 해결해 주었다.

경시청에서도 구사나기를 돕는 유가와의 존재는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고,
사람들은 유가와를 갈릴레오라고 불렀다. 

소설 속 유가와는 물리학에 반쯤은 미쳐있다고 말할 수 있는 
조금은 괴짜스러운 사람이다. 형사인 구사나기는 그의 그런면에 
항상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그의 남다른 사건 해결력에는 항상 감탄한다.

소설가가 이렇게 어려운 내용만을 소설의 소재로 삼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작가는 머리 좋은 추리 소설을 내놓았다.

소설안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모든 것은 우연하게 그리고 우연치 않게 일어난다.
어떤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만 어떤 것은 설명이 가능하지 않다.
인과적이고 과학적이지만 약간은 서정적인 느낌의 묘한 추리소설이다.

명탐정의 규칙에서 그가 그렇게 비난했던 통속적인 것들을 쓰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서 다시 한번 그가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