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난장이라는 표현이 정말이지 딱 어울리는 책이다.
각 단편들은 하나의 맥락이나 주제를 갖지 않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제와 서로다른 이야기 방식의 교차가 두서없이 이어져서
마치 여러명의 작가가 각자 다른 글을 쓴듯 글마다의 개성이 있었다.

단편의 제목이 되기도 한 퀴르발 남작의 성은 읽는 동안 내내 
인터넷 검색창을 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지는 책이었다.
시대와 인물들을 아우르며 기사나 짧은 이야기들이 써 있었는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를 허구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허구로 보기엔 너무도 그럴듯한 이야기들은 진실과 허구 사이가 
너무나 보이지않게 잘 붙어있어 어느부분이 접합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밖에도 매우 다양한 단편들이 실려 있었는데,
그녀의 매듭이나 그림자 박제라는 단편의 소재가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바로 악이 되는.. 그래서 더 소름돋고 무서운 이야기 였다.

그녀의 매듭은 실제로 자신이 악이라고 생각치 않지만,
무의식 속에서 인지 하지 못하고 저질렀던 많은 행동들은
결국은 더 큰 결과가 되어서 다가온다. 결과는 참혹하다.
그것도 결국은 어쩌면 지워지는 기억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림자 박제는 섬뜩하기도 하고 약간은 측은하기도한...
물론 측은하다고 한건 그의 마음이 그렇게 많은 인격을 담게 된 상황이지 
그가 저지른 잔혹한 살인은 아니다. 정신병 참으로 무서운 병이다.
사람의 몸이 아니라 정신이 병드는 건 정말 어떤식으로든 가장 무서운 일인듯..

문단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작가지만,
여러가지 주제를 아우르는 그의 소설에 대한 박식함은
여러가지 주제를 잘 버무려 놓은 아주 좋은 단편하나를 내놓게 했다.

작가의 최신작 오즈의 닥터를 읽고나서 다른 책들도 궁금해졌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듯 하지만 그들은 여러가지 형태로 이어져 있다.

소설 초반 대형마트에서 아이를 잃은 경찰청장의 부인과 
그리고 그 아이의 배에 있는 악어모양의 점..
그것은 점이지만 문신이라고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유행으로 번져간다.
아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자기 아이만의 특이한 문신을 새기는 것이 
유행으로 번지고 그로인해서 문신업은 활기를 띤다.

아이의 유괴에서 비롯된 사건은 여러가지 사건을 낳고 
사건에 사건에 책임에 책임이 얼히고 설혀 서로에게 전가되다가 
급기야 사건의 피해자인 경찰청장이 사퇴하기에 이른다.

그의 부인은 점을 문신이라고 말한것이지만 어느새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몸에 문신을 새긴 부인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악어모양의 점이 있는 어린아이.
사건은 전혀 관계없을듯했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여줌으로써
작은사건들의 연계가 얼마나 여러사건의 형태로 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인물들은 저마다 문제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다리가 못생겼다고 생각되어 다리를 학대하다가 
결국 다리가 썩어 절단하기에 이른 아름다운 여자,
자신을 자극한 호스티스를 실수로 살인하게된 생선장수,
우연히 자신들에게 오게 된 아이를 병적으로 끌어안는 여자,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들..

한강에 무수히 많은 시체가 한꺼번에 떠올랐던 그때..
과연 사람들이 했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마지막에 가서 들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가가형사 시리즈는 처음으로 읽어봤다.
가가형사 시리즈를 아직 많이 읽어보지 않아서 패턴은 잘 모르겠지만,

용의자 또는 용의자 주변인물이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새로웠다.
처음부터 아예 대놓고 범인이 누군지 밝히고 시작하는 소설이라니..
범인이 자신의 범행이 밝혀질까봐 두려워 하는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었는데,
범인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범인 또는 범행에 관련된 인물들이 보는 가가 형사의 모습은
큰키에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가 형사는 거친모습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냉철한 두뇌를 가지고
사건을 현명하게 파헤쳐 간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잡아내는
그의 세심함은 어떤 범인이든 그 앞에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질문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특히나 제2지망이라는 단편에서 부인을 향한 그의 대답은 
나조차도 두려움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그것은 정말 부인과 나의 제2지망이었다. 
읽으면서도 내가 바랬던 제2지망의 결론은 바로 그것이었다.
많은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접해왔던 결론들을 
알기에 내가 생각했던 결론이 맞기를 바랬다.
아니라면 너무 끔직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대부분의 단편들은 진실을 다른 모습으로 감추고 있었다.
진실이 밝혀졌을때 왠지 짠한 마음이 드는 단편들이었다.
작가가 단지 추리소설에 머물지 않고 좀 더 넒은 주제로 눈을 돌린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