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진보는 결혼생활의 변화를 촉발한다.
가정내에서 아내의 지위는 사회발전의 속도에 비례한다.

전근대성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 중심의 가족제도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아내보다 적은 연봉에 아내보다 낮은 사회적 지위라는 심리적 압박 속에서 가정의 평화(?)를 위해 권위주의적 남성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오! 나의 마나님"은 마눌님과 따님들 앞에서 초라하고 비굴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우리의 애처가 주인공의 모습을 즐겁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모습이 남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현재형으로 진행되는 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거니와 그런게 있기라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정내에서 남성중심의 주권이 상실되고 주도권을 아내들이 쥐는 경우는 이제 흔한 일이되었다. 어쨌거나 여성에 대한 인식과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한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 소설속의 상황들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완전 100%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나름 유부남의 심리를 꽤나 정확하고 재미있게 표현한 소설이다. 뭐 소설보다는 자서전이나 에세이라 생각해도 별 무리가 없지만 말이다.

휴일 공원에서 아이를 돌보며 콧물 흡입기의 향수에 젖어 남편들의 인류학적 진화를 생각하고, 아내의 친구들을 위해 요리를 준비하면서 그녀들의 비밀스런 이야기를 도청하며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완벽한 자유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도 아내의 부재를 불안해 하고, 여성잡지의 설문지를 꼼꼼히 살펴 자신의 처지를 대입시키는 즐거움(?)을 아는 남자. 남성이라는 종의 정체성에 대한 절대절명의 위기를 정자은행에서 극복하고자 했지만 가치가 한참이나 떨어진 정자의 위상때문에 삼류도색잡지(?)를 들고 풀죽은 모습으로 쓸쓸히 정자를 받으로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처절하다고 하기엔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다.

세상의 모든 남편들이 아내의 그늘에서 고통만 받는다면, 모든 여성이 가정내에서 강력한 카리스마(?)로 과거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가장의 자리를 꿰차고 있다면 주인공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애처로웠을지 모른다. 성역할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대의 가정생활에서 남성위주의 가정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져가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의 내용들은 어찌보면 정상적인(?) 한 가정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재치있고 유쾌하게 그려낸 만화같은 느낌이 든다. 특히나 에피소드마다 개성넘치는 주인공의 깊이 있는(?) 독백들이 가슴에 와닿는 건 이시대를 살아가는 남편들이라면 공감하고 또 공감할 것이다.

가정의 평화는 남편 혼자만의 몫이 아닐것이다. 이는 부부 공통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가정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은 근대의 산물인 권위성을 남성만이 부여받아야 한다는 편협한 남성주의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이 시대의 남편들이 변해가는 시대만큼이나 변화된 남성의 역할에 맞춰 진화하지 못한다면 가정의 평화는 지켜질 수 없다. 특히나 다양한 문화적 전통으로 프랑스보다 훨씬 남성의 헛기침에 대단한 의미를 두는 우리나라 남성들은 책을 통해 스스로를 성찰(?)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소설속 주인공다운 생각을 해본다.

아내의 지위가 높아짐에 비례하여 남편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내의 행복도가 높아지면
남편의 행복도와 가정의 평화지수는 순풍에 돛을 달게 될 것이다.

시대의 남성들이여 가정에서 팔을 걷어 부치자.

 

다가오는 미래는? 암울하다.

 유가가 치솟고, 미국 발 금융위기가 터지고, 신자유주의로 인한 세계 경제의 양극화가 가속되는 현재의 상황도 그렇지만 과거 인류는 항상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로 인류라는 종(種)의 존재 이유를 시험받아야 했다. 그렇다면 지금 지구촌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문제들-유가급등, 금융경제 위기, 지구온난화, 국가 간 양극화문제-을 해결하기 위한 우리의 선택지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한국 사회와 좌파의 재정립”이라는 책을 읽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서 무척 회의적이었다. 이렇게 풀어보고 저렇게 풀어 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수학문제처럼 말이다. 미국 발 경제위기는 분명 작은 미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에 엄청난 경제적 타격을 입힐 것이고, 유가 급등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현상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더욱 암울한 색으로 덧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처럼 참담한 현실과 암울한 미래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고, 자신만 먹고 살기에 급급한 이기적인 사람들 -내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 대해 나는 은근한 조롱과 멸시로 내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나 홀로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의 눈을 가졌고, 나만 고고한 선비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곧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이고, 그때 사람들이 후회하는 모습을 통쾌하게 바라보는 상상을 했다.

 이런 내 생각들이 사치스러운 지위재(地位材)라는 사실을 책을 통해 깨달았다면 아마 이 책을 읽고 배운 가장 큰 교훈이 아닐까 싶다. 대안 없이,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 없이 오직 고답적인 과거의 이론에 집착하고, 형이상학적인 이상만을 쫒았던 내 자신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스스로를 좌파로 생각했던 나에게 이종태 연구위원의 글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진보 운동 담론 비판”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던 기억이 언제였던가……

 책은 우리나라 좌파의 문제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좌파들의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안 없이 현실만 비판하는 좌파들을 꼬집어 사회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정치, 경제 프레임을 다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각 섹션의 저자들은 사회민주주의의 개념에서 시작하여, 우리나라 좌파들이 지향해야 할 정치노선, 한국형 복지국가 모델,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 복지국가를 위한 조세제도, 국민연대의 방법론, 국가주의적 개인주의 등 사민주의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정치 경제 제도 중에서 그나마 가장 이상적인 제도가 사회민주주의임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양측의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첨예한 이념 갈등이 내재된 있는 한국 사회에 사민주의라는 제도의 뿌리를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대안 없이 사회를 비판하고 냉소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패배주의에 물들어 존재하지도 않는 무릉도원을 꿈꾸기 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써의 사회민주주의를 고민하고, 진정한 복지국가를 위한 노력을 행동으로 보일 때 미래의 색이 좀 더 환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의 이상과 꿈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 바로 내일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몇 십년, 몇 백년 후의 파라다이스를 준비하기 위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p.109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꼭 필요한 필요조건은 무엇인가?

입고, 먹고, 자는 것.

 입는 것은 그렇다 쳐도 먹고 잔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이상(理想)과 가치로도 환원될 수 없는 생물학적인 생존 조건일 것이다. 근래에 먹는 것에 대한 요란함이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혹자는 건강을 위해 또 다른 사람은 생존을 위해서 말이다. 먹을 것이 남아도는 소위 선진국 사람들은 건강 때문에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가난한 빈곤국에서는 먹는 것이 바로 생존인 시대가 되었다. 생존과 건강이라는 양극단의 원인에서 발생되는 식량문제가 시장제일주의와 효율과 성장이라는 허울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의 망령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도 이젠 지친다. 게다가 부동산 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는 먹는 문제 말고도 훨씬 심각한 문제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집 문제, 토지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집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 없이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자포자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을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 또한 먹고 자야만 하는 인간이고, 먹고 자는 것에 고통 받는 많은 사람들 또한 나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같은 인간이기에 현실 속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 중 한 가지인 우리나라 부동산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아버려선 안 되는 것이다. 먹는 문제만큼이나 거주할 수 있는 집에 관한 문제도 그 어떤 가치보다 신성하기 때문이다.

 책의 뒤표지에는 자신의 부동산 계급을 알아 볼 수 있는 도표가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가구의 30%에 해당하는 5계급이란다. 그나마 조금 나은 편이다. 우리 국민이 100명이라면 4명은 지하나 옥탑방, 움막이나 비닐집 최악의 경우 동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살면서 내 집을 장만하겠다는 당찬 희망을 꺽은 지 오래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집을 장만할 자신이 없었다. 구조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떠나 사실은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서 비겁하지만 운 좋으면 전세나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게 솔직한 바람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집 문제가 단순히 집 없는 사람들의 경제적 무능력에서만 그 원인을 찾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 없으면 전세나 월세에 살아야 한다는 지독한 시장논리 뒤에는 엄청난 불평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된 것이다. 돈이 돈을 벌고, 집이 집을 벌고 땅이 땅을 버는 말도 안되는 현실이 몇몇 부자들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사람을 보호해줘야 할 국가의 정책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이는 분명 가만히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인 것이다.

 이 책은 많은 양의 도표와 통계자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문제를 조목조목 따지고 있다. 저자의 집요한 관심과 열정이 녹아든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파트 투기와 땅 투기로 발생하는 단순한 소득 불균형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 소유와 명문대 진학과의 상관관계, 또 땅값 상승과 생존율의 비교와 같은 신선한 통계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얼마나 극소수의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집과 토지를 독점하고 있는지, 역대 정부를 비롯한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지니는 허와 실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부동산을 둘러싼 금융기관들의 행태도 통계자료를 통해 명백히 보여준다.(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로 벌어진 현재 금융위기를 생각하면 부동산과 금융의 유착이 얼마나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촉발시키는지 그저 가슴만 답답할 뿐이다)

 기존의 사회운동이 이데올로기 중심이었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또한 앞으로 사회운동의 방향이 서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방향으로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감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념과 이상이라는 것은 공허한 헛소리일 뿐이다. 엄청난 희생으로 얻어낸 민주화가 서민 생활의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해야한다는 저자의 말을 가슴깊이 새겨본다.  

사족
후마니타스의 책들은 항상 나의 나태함을 꾸짖는다. 그리고 내 속의 무언가가 꿈틀거리게 만든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이 계속 출판되길 희망해본다. 끝으로 나를 일깨워준 지은이와 가슴에 와 닿는 삽화를 그린 지은이의 딸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