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부조화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스스로 강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 그것이 옳던 그르던, 윤리적이든 그렇지 않든 자신에게 유리한 자기정당화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생뚱맞은 얘기일는지 모르지만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과 아이들을 위해 많은 액수의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은 어떤 자기 정당화의 논리가 숨어있을까? 반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부에 인색한 이유를 어떻게 이야기 할까?

 분명 세상은 급속히 변하고 있다.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급변하는 세상과 맞물린 경제적 이익의 분배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말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살면 그만이다. 분배가 공평하지 못하여 태어난 후 변변한 음식 한번 먹어보지 못한 채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우리는 내 살기가 바빠 그딴 것에는 관심을 끊고 오로지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자기정당화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 돈 내가 맘대로 쓰는데 누가 뭐라 할 것인가라는 주장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할 것이고, 내가 쓸 돈도 넉넉지 않은 데 누굴 돕는 다는 건 내 발등을 내가 찍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두 번째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수입의 50% 이상을 기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어떨까?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원리를 무시한 시대의 바보들인가? 아니면 사회적 명성과 존경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기부라는 선행을 이용하는 이기주의자들인가? 그들이 이기주의자들이라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들은 기부를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이용하는 천박한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다.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들은 기부를 통해 삶의 의미가 더욱 가치 있어 진다고 한다. 또한 기부를 통한 즐거움은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도 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충만하게 빛내고 싶어 하는 이기주의자들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이기주의자들이 많아지는 세상이야 말로 세계와 우리의 진로를 바꿔버릴 것이란 사실이다.

 때만 되면 미디어로 소개되는 수많은 기부액과 기부금의 쓰임새에 대해 너무 맹신하지 말자. 우리는 조금 더 도울 수 있음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 누군가 우리가 모르는 돈 많은 남들이 많은 기부금으로 세상을 구하고 있으니 나까지 그 일에 동참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어차피 내 삶을 꾸리기에도 벅찬 세상인데 말이다. 과연 그럴까? 우린 우리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입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아메리카에서 하루 1.25달러에도 미치지 못한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이득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우리가 쉽게 구입하여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든 것들에 대해 잠깐의 시간만 투자한다면 우리가 누리는 발전된 문명은 굶주린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한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의 탈륨을 그토록 싸게 구입할 수 있는 이유도, 우리가 먹는 초콜릿의 단맛이 아프리카의 배고픈 사람들의 부당하고 씁쓸한 노동력의 산물이라는 사실도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할 작은 이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피터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는 왜 기부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기부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행복해지는 비결도 바로 책 속에 있다.

 누군가 아주 비싸고 좋은 새 자가용을 구입하면 주변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는다. 자기 주제에 맞는 자동차 구입이라면 모를까 평생 모은 돈을 자동차 구입에 써버렸다면 좋은 눈으로 바라볼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동차 주인은 왜 자신이 그 비싼 차를 구입했는지 스스로를 정당화 하는 논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비싸고 좋은 차는 안전해. 소형차는 사고가 나면 위험하다고’, ‘지금껏 돈을 버느라 고생했으니 이쯤 호사는 당연한 거야’, ‘좋은 차 한 대가 삶을 얼마나 풍족하게 바꾼다구’

 누군가 많은 돈을 기부하면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른다. 주제에 맞지 않게 기부라니. 지 앞가림이나 잘 하시지 쯧쯧. 하지만 많은 돈을 기부한 당사자는 자신의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 할 것이다. ‘기부를 많이 하면 삶이 얼마나 새로워지는지 몰라’, ‘누군가를 돕는 다는 건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고’, ‘돈을 벌었으면 이정도의 기부는 당연한거야’

 기부는 남의 행복뿐만 아니라 나의 행복까지도 책임져 주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기부

 

신종플루에 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몇 달 전부터 신종플루에 관한 여러 번 의미 있는 경고도 있었지만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고 나니 정부도 사회도 난리법석이다. 주기적으로 창궐하는 신종인플루엔자를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이 지구환경에 얼마나 심각한 해악을 끼쳤으면 점점 더 강력하고 무서운 바이러스가 생겨날까? 하는 생각 말이다. 특히나 인간의 가장 중요한 생존 조건인 음식에 과학과 경제라는 미명아래 강한 독성의 농약과 항생제를 투여하는 현실은 생각한다면 신종플루는 앞으로 더 강력한 파괴력으로 인간을 위협하는 건 아닐는지 걱정스럽다.

신종플루의 공포만 무서운 것은 아니다. 기업화된 농업의 단일 경작은 땅을 병들게 하고 지구를 오염시킨다. 종자의 독점으로 엄청난 이득을 남기는 다국적 농업회사들을 위한 다양하고 편리한 규제와 규약들은 영세한 지역농민들을 자살로 몰고 간다. 종 다양성은 음식문화의 토대가 됨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논리로 인해 점점 더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또한 우리가 먹는 음식의 대부분은 많은 양의 화석연료 소비를 촉발하고 있기에 지구 온난화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계절별로 생산되던 음식들을 사계절 내내 먹을 수 있는 것도 다국적 기업들의 기업형 농업경영의 결과이다. 여름에 재배되는 음식을 겨울에 먹을 수 있기에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곧 대지의 어머니 지구-테라 마드레의 처절한 응징을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테라 마드레는 먹을거리로부터 자유를 찾고, 지역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지역농업의 육성을 통해 음식과 그 음식이 바탕이 된 세계 각 지역의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위대한 운동이다. 각국의 지역농민들이 테라 마드레라는 이름아래 스스로의 생존이 아닌 지구와 지구촌 모든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이름아래 자행된 기업형 농업의 폐해는 한계에 다다랐다. 우리가 무지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농업방식과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유기농법 그리고 지역농업을 통한 지역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길만이 대지의 어머니인 지구를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요, 생존의 위협에 빠져 있는 현대인들을 구해 낼 수 있는 길임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역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문화는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어왔다. 간단히 말해 할머니의 방식은 옳았고, 진보적인 슈퍼마켓의 방식은 모두 틀렸다. 반드시 시간을 되돌려 농경사회로 돌아갈 필요는 없겠지만, 할머니가 하던 방식을 이해하고 할머니가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현명했었음을 인정하자. 할머니는 복잡한 인터넷을 이해하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겨울에 굶어죽지 않으려고 여름에 채소를 저장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바보들인 것이다. p.167

지역농업을 살려 지역농산물을 먹고, 지역농민들이 정당하게 그들의 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고 지역농산물을 유통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거대한 다국적 농업기업들의 횡포에서 자유로워지고 먹을거리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 나가는 일에 대한 관심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다. 우리 자손들이 어른이 된 지구의 바다에는 그 흔한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고, 척박해진 땅에서 아무것도 경작하지 못하는 테라 마드레의 분노를 지금 우리 세대에서 잠재워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다. 웬만큼 진화를 이룬 지성체는 생물학적인 적응 과정에서 간접적인 신호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구했고, 똑똑하고 건강한 자식을 얻기 위해 매력적인 짝을 찾아왔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우리는 더 이상 직접적으로 번식의 성공을 구하지 않는다. 현대에는 맛있는 음식을 구하는 대신에 패스트푸드가, 매력적인 짝을 찾는 대신에 포르노가 성행하고 있다.……(중략)…… 대부분 자신들의 시간과 자원을 자신들을 위해 분배하기보다는 쾌락을 위해 소비하면서 점점 멸종의 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위험한 생각들』/ 존 브록만 엮음 / 갤리온

우리는 지금 공멸의 길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 테라 마드레의 정신이 절실한 시대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로컬푸드, 음식

노동력 착취, 잉여가치, 이윤율 증대....... 공황과 서민들의 고통

 인간은 위기에 처했을 때, 혹은 힘든 고난을 겪으면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1980년대 말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은 잠시 자본주의의 우위를 확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으리라. 하지만 작금의 글로벌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의 태생적인 문제점들을 다시금 환기시켜주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도대체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단순히 금융상품의 부실이라는 진단이 현재의 경제 위기를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항상 그랬듯이 경제 위기의 해법이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과 서민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귀결되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이것이 항상 궁금하다.

 한 인간 아니 한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 아니 우리를 옥죄는 경제구조를 쉽게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정확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본질이 자본의 무한한 이윤율의 증대이고, 이를 위해서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사실은 서글프지만 자본주의의 진면목임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는 다름 아닌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가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주류경제학의 논리에 사로잡혀 착취당하며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슬프다. 

 오로지 노동자의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에서 현재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제위기의 윤곽을 이해할 수 있다. 금융자본은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본을 통한 자본의 증식, 결국 금융파생상품이란 가치 창출이 배제된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에 다름 아니다. 선진국이 금융상품을 운영하면서 얻어내는 가치는 결국 후진국이나 각국의 최하층 노동자들의 노동력에서 만들어진 가치들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금융상품이 이번과 같은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될 때 그 뒷감당 또한 없는 자, 착취당하는 자의 몫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사회는 경제위기가 닥쳐오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모두 힘을 모아 국난을 극복하자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또 착취당하는 이상한 현실이다. 그래서 서글프다.

 고등학생 시절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처음 읽었었다. 물론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바로 덮어버렸지만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지금 읽더라도 쉽게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책 『Hi 마르크스 Bye 자본주의』는 쉽다.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잉여가치, 이윤율 증대 그리고 자본주의의 본모습이 손문상 화백의 그림과 글쓴이 강상구님의 쉽게 풀어쓴 글로 선명하게 머릿속에 각인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 착취당하면서도 착취당함을 모르는 대다수의 노동자들, 경제위기속에서 고통 받는 서민들, 감옥 같은 학교에서 경쟁의 노예로 전락한 학생들까지 말이다. 그리고 책 말미에 글쓴이가 호소했듯이 연대해야 한다. 착취와 비인간적인 경쟁 구도 속에서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하며 살고 있는 대다수 서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자기가족만 혹은 자기자신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란 존재 할 수 없다.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 그것만이 내 세상이다.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기쁠 것이다.

자본주의, 자본, 마르크스, 노동,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