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Cinderella가 아니다.
Aschenputtel 아셴푸틀, 즉 재투성이다.
동화(童話)가 아니라 짧은 이야기 일 뿐이다.
그렇다고 그저 그런 짧은 잡문(雜文)도 아니다.
많은 선지자들의 지혜가 녹아 있는 심오한 이야기였다.

재투성이라는 메르헨(märchen, 작은 이야기)은 유럽의 역사와 기독교의 가치가 녹아있었다. 또 그네들의 문화를 엿 볼 수 있었고, 인간사의 지난함과 삶의 고달픔도 숨어있었다. 거기엔 불안한 인간이 하나됨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도 품고 있었다. 공주가 되고픈 시대의 여성상이라는 왜곡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동화에서 벗어난 진품 신데렐라, 즉 재투성이가 보여주는 지혜와 깨우침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겨웠다. 

지은이 이양호 선생은 독일 발도르프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정확한 발음으로 텍스트를 낭독한다는 독일의 초등학교 1학년 교수법에서 낱말과 어휘 그리고 문장의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아니 할 수 없다. 서양의 동화나 우리나라의 고전이 자의적으로 왜곡되고 변질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분명 언어의 정확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리라.

「변신」이나 「오감도」를 눈으로 묵독을 하면 한없이 무겁고 진지하고, 또 난해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지만, 그걸 소리 내어 읽는 순간, 그 작품들은 전혀 다른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본문 90쪽.『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고미숙.

텍스트를 소리 내어 낭독하면 문장과 낱말의 정확한 이해가 가능한 읽기가 된다. 그래야만 가공되지 않은 글 본래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다. 소리 내어 읽기란 언어의 진짜 모습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발도르프에서 저자가 배운 것은 언어의 참뜻을 이해하는 것과 다름 아닐 것이다. 글의 이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 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글을 정확히 읽어 내고, 낱말과 문장의 순수함을 찾는 일이다. 

독일어로 씌어진 글은 독일어라는 언어로 이해 할 수 있을 때 글의 바탕에 깔린 깊은 맛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최대한 독일어에 가까운 번역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함께 곁들일 수 있는 독일과 독일어가 가진 역사와 문화의 배경지식을 알아야 한다. 나아가 한 가지 텍스트를 공부하기 위해 텍스트와 관련된 다양한 내용들을 나뭇가지가 뻗어 나가듯 점층적으로 익혀 간다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공부요, 삶의 지혜를 배우는 환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 환상적인 작업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까지 우리는 재투성이가 아름다운 옷과 신발을 빼앗기고 쫓겨나는 대목, 무거운 나막신을 신고 옷에 재를 바르고 살았던 나날, 죽음 위에 나뭇가지를 심어 생명을 키워낸 삶, 그리고 그 생명나무에 하늘로부터 새하얀 새가 날아들어 빛나는 옷과 빛나는 신발을 내려준 이야기를 거쳐, 하늘과 하나 되는 결혼까지, 길고도 긴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었다.
-본문 260쪽.

재에서 시작하여 신발, 하얀 새, 빛나는 옷과 하나됨에 이르기까지 재투성이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해박함으로 그 모든 이야기들을 솜씨 좋게 묶어 냈다는 것에 대한 찬사를 지은이에게 보내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을 통해 번역의 중요성과 다양한 해석을 통한 지(智)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점을 짚고 넘어 가고 싶다. 간만에 술술 넘어가는 입에 딱 맞는 음식을 먹은 기분이랄까? 아무튼 즐거움이 큰 책읽기였다. 그러니 꼭 한 번 읽어보시라.

덧붙이며

작년에 국어사전을 샀다. 오랜 타성으로 모르는 단어와 개념을 발견해도 그냥 넘어가고 나 혼자만의 자의적인 이해로 그냥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두루뭉수리하게 대충 넘어가 버린 탓에 지금도 애를 먹고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단어 하나라도 정확한 뜻을 모르면 문장이나 글 전체를 반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근래에 들어 알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 항상 국어사전을 놓고 읽자. 글을 왜곡하고 오해하고 자의적으로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신데렐라, 재투성이, 번역, 왜곡, 자의적

살인자들의 살인 본능이라…….

잔인함, 정신이상, 사이코패스, 사회부적응자, 인간이길 포기한 짐승, 지독한 복수심 등등이 아닐까? 쿵하면 쩍! 해야 한다고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선명한 법. 하지만 살인자의 심리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싶다.

덩케는 왜 사람을 죽이고 인육을 먹었을까? 모른다. 본격적인 조사를 받기 전에 자살 했으니까. 덩케의 이웃사람들은 덩케가 베푸는 걸 즐기는 좋은 사람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을 보면 덩케의 평소 생활은 정상이었던 것 같다. 그런 사람이 서른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고기를 먹고 사람가죽으로 멜빵과 끈을 만들어 사용했다니 놀랄만한 일이다.

자이페르트는 직접 만든 화염방사기로 천진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공격했다. 뜨거운 화염아래 죽어간 아이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게다가 여선생을 창으로 찔려 죽이는 잔인함까지 보여준다. 하지만 자이페르트가 왜 그런 짓을 벌였을까? 이것도 모른다. 식물 살충제 중독으로 제대로 된 심문도 받지 못하고 죽어버렸으니 말이다. 자이페르트의 장모는 사위의 범죄를 이해할 수 없었다. 파리도 한 마리도 제대로 죽이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이 화염방사기를 휘둘러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죽고 다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떻게 이렇듯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을까?

이 책에는 많은 살인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이 사람을 살인하는 동기는 꽤나 다양하다. 같은 문화권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지만 오직 자존심과 명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토막 낸 사건이나,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욕구를 연쇄살인을 통해 실현 하고자 한 사건들을 보면 얼핏 살인자의 살인 행위는 충분히 이유와 동기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 기준으로 이거다 라는 동기가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앞서 이야기한 덩케나 자이페르트의 경우가 그렇다. 살인자가 일찍 죽는 바람에 정보를 얻어 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사건과 주변의 정황을 살펴보더라도 그들의 살인 행위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글쓴이도 이렇다 할 결정적인 이유를 이야기 하지 못하고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언급할 뿐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진단이 정확한 것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살펴본 지금 우리는 카를 덩케를 두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괴물이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저 불행한 인간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그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위대한 섭리, 자신의 뜻이 실현될 때까지 인간을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저 영원한 존재의 한낱 노리갯감에 지나지 않는 가엾은 미물일 터….     p.464

서른 명을 넘게 죽이고 먹은 덩케는 과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섭리 아래 자신의 의지가 아닌 거대한 다른 힘에 의해 조종된 불쌍한 사람이었을까? 기존의 수사방법과 범죄자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을 바꿔야 하는 시기가 온건 아닐까? 살인자에 대한 연구와 해석에 대해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이라는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건 아닐지 궁금해진다. 책에 소개된 린드버그 사건이나 O. J. 심슨 사건에서 언론과 권력 그리고 배심원의 쏠림현상으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를 확인할 수 있다면 살인자들의 살인 본능에 대한 연구와 탐구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증가하는 묻지마 살인과 이유를 알 수 없는 많은 범행 동기들에 대한 조사의 패러다임이 더욱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강력 사건들의 이면에 스며있는 인간소외 현상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바탕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범죄수사관들이나 사법기관들이 여론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사건 그 자체에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 바탕에는 셜록 홈즈의 유명한 말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모든 가능성이 부정되고 나서 남는 설명이 옳은 것이다. 도저히 그럴 수 없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진실이다. p.238 



살인자, 연쇄살인, 살인본능

요새 학생들 특히 중학생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은 무엇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일지 모르지만 과학과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 영, 수에 밀려 중요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분류되는 범위 또한 아이들의 기를 죽인다. 하지만 아이들이 과학을 싫어하는 건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 시스템이 과학적인 사고 능력을 개발하기 보다는 시험 위주의 단순 암기와 이해에 중점을 두는 것에 그 이유가 있다. 과학이라는 과목은 다양한 탐구 활동과 실험을 통해 사물과 자연의 총체적인 이해를 이끌어 내고 나아가 배우고 익힌 내용을 현실과 사회에 응용하고 발전시키는 데 목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런가. 학창시절 그토록 과학 공부에 매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이 된 후에도 과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영 아닌 것 같다. 그저 과학과 첨단기술은 그쪽을 전공한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로 치부해버린다.

 몇 년 전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궜던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 사건을 통해 확인한 우리의 모습은 일그러져있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과학의 이름아래 윤리나 도덕은 깡그리 짓밟혀도 상관없고, 불법과 편법도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눈감아 줘야 한다는 비이성적인 작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과학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의 많고 적음을 떠나 자본의 원리로만 세상의 일들을 재단해버리는 일은 과학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지구 온난화로 시시각각 파멸의 전주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리는 아직 화석연료와 위험천만한 원자력 에너지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언 발에 오줌 누기.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한 치 앞만 바라보며 살고 있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말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급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저 돈 때문에.

 처음에 ‘무균 미니 돼지가 성공적으로 자라고 있다’, ‘무균 시설을 완비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대중들은 환호합니다. 곧 인간의 장기와 똑같은 장기를 이식받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생기죠. 무균 미니 돼지를 기르기 위해 실험실은 값비싼 장비들로 채워지고 연구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심지어 38억 원짜리 연구실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가졌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도 느낍니다……(중략)……그러나 그 뒤 무균 돼지의 장기를 원숭이에게 이식한 것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혹 성공했을지라도 그 뒤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기사는 없습니다. -----본문 77쪽

 언론은 받아쓰기를 잘한다. 원래 언론은 사실관계의 근본을 따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언론은 돈 되는 과학 기술에 대한 찬사는 수준급이다. 그러나 따져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돈 안돼는 기술과 예전에 찬양했던 과학자에 대한 비판은 없다.

다시 교육 이야기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과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지금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우리에게 이로움과 해로움을 동시에 제공한다. 과학 교육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할 수 있는 수업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야 한다. 라이너스 폴링과 존 벡워드 박사의 이야기에서 과학이 지닌 본질적인 문제와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과학이 책 속에 들어있는 공허한 것들이 아닌 현실의 문제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일들, 일테면 지구 온난화, 유전자 조작 식량, 원자력 에너지, 지속 가능 에너지, 나노 기술 등에 대한 밝고 어두운 부분들에 대한 수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험을 치르기 위한 과학이 아니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과학,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과학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과학의 발전이 인류의 발전과 길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발전을 멈추는 게 낫다. 

과학, 온난화, 동물실험, G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