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의 캉디드에서 팡글로스박사는 “우리에게 코가 있는 것은 안경을 걸치기 위해서이며 그 증거는 우리가 안경을 끼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팡글로스적’이라고 평가되는 이런 유형의 추론들의 매력에 굴복해버리는 성향은 자기 자신의 진화에 대해 숙고할 때만 되면 인식론적 지혜를 온통 잃어버리는 어느 호모사피엔스의 교만이나 우월 콤플렉스로만 그치지 않는다. 바로 그래서 이런 종류의 가설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며 큰원숭이들과 다른 종들을 배제시켜버리는 것이다. 본문 75-76쪽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명의 진보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언어에 그 이유가 있다. 인간의 언어와 달리 큰 원숭이들의 언어가 단순히 소리를 지르며 본능적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한계를 가진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연구 결과 큰 원숭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협동을 통해 사냥을 하고, 무리에서 세력을 넓히기 위해 거짓말도 할 수 있으며 원시적이긴 하지만 논리성과 서술성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의 언어는 오직 인간이기 때문에 발전되고 계승돼 왔다는 기존의 언어학을 뒤흔들었다. 언어의 기원이나 발생 그리고 발전 과정을 역추적하는 과정에서 학자들은 큰원숭이를 위시한 동물 실험을 등한시 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언어를 연구할 때, 인간 계통의 고유성을 끌어내기 위해 다른 종들의 의사소통 방식들을 참고하고 확장된 계통발생학적 틀 속에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함은 당연한 결론으로 보인다.

인간 언어의 특징인 서술성과 논리성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의 성질이 아니다. 동물 연구에 대한 결과물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만 언어의 서술성과 논리성은 인간종이 살아남기위한 절실한 이유에서 파생되었다. 서술적 기능이야 말로 인간이 만든 문명이 야만의 본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던 것이다. 기본적으로 같은 종을 죽이고 가족을 해치는 일들은 동물 세계에서 빈번히 목격되는 데 인간은 언어의 서술적인 능력을 발전시켜 같은 종을 본능적으로 죽이고 해치는 일들을 중단 할 수 있었으며 이렇게 성숙된 언어의 서술적 능력은 논리적 능력과 더불어 인간 문명 발전의 토대를 이룰 수 있었다.

사회조직을 문란하게 하는 반복적인 위기들을 피하기 위해 우리 선조들이 집단 내에 전대미문의 표현양식을 발명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서술이다. 말을 통해 과거의 위기들을 환기시킴으로써 위기가 재발되는 것을 막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본문 118쪽

결국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을 제외한 영장류들이 멸망한 것은 그들 개체들의 지성이 증대했고 증가한 지성으로 인한 각종 문제들과 위기를 다음 세대에 교육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종은 의사소통의 신기원을 이룬 서술적 기능 덕분에 지금껏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인류 지혜의 원천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능력, 바로 narrans에 있었다.

기존 인간 언어에 관한 연구들은 오로지 인간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또한 팡글로스적인 인식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인간 언어의 진화와 그 기원을 연구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들간의 연계가 필요함은 물론 다른 종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융합할 수 있는 계통발생학적 접근이 필요한 시기다. 또한 동물실험과 더불어 문명과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을 파악하며 언어의 문화적 성질들에서 언어의 기원을 찾는 의미 있는 연구가 더욱 확대되야 할 것이다.

언어, 호모나란스

 

정중동(靜中動)이 아니라 동중동(動中動)이다.

MOBILIS IN MOBILI.

아무것도 아닌 함장에 의해 움직임 속에서 더 큰 움직임으로 미지의 세계, 심해를 탐험하는 앵무조개라는 이름의 잠수함.

네모 함장의 노틸러스호. 

근 25년 만의 만남이었다.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4학년 때 읽었던 해저 2만리를 다시 만나게 된 건 큰 즐거움이었다. 그것도 제대로 완역된 해저 2만리였으니, 읽는 내내 느꼈던 독서의 기쁨은 배가 되었다. 책 읽는 시간이 항상 새벽 무렵이라 그랬을까? 캄캄한 방에 작은 스탠드에 의지해 읽어 내려간 해저 2만리는 새벽의 어두움만큼이나 깊고 은밀한 심해(深海)로 나를 끌어 당겼다. 무성한 산호들과 듣도 보도 못한 다양한 바다 생명체들, 세계 곳곳의 바다 밑 풍경은 책 속에서 뛰쳐나와 내방은 거대한 심해가 되었다. 새벽마다 나는 루케롤-드네루즈 장비를 등에 메고 룸코르프 램프를 켜고 해초가 우거진 바다 밑을 거닐며 거대 문어를 만나고 듀공도 만나고 상어와 고래도 만났다. 물론 침몰된 방죄르 호를 바다 속에서 자세히 바라보며 네모함장의 비밀을 궁금해 하기도 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심해의 나와 현실의 내가 부딪히며 만들어진 거대한 멜스트롬은 해저 2만리가 준 마지막 선물이었다.  

네모 함장과 아로낙스 박사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쥘 베른의 박학다식함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 많고 다양한 바다 동식물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 노틸러스 호에 대한 공학적 과학적 묘사들, 정치와 사회 그리고 예술과 철학에 대한 심오한 대화 내용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탐험가들과 선장들의 면면. 걸작은 결코 어쩌다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글에 대한 치열한 자기반성과 글을 위한 치밀한 자료 조사와 방대한 지식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시대를 뛰어 넘는 고전은 결코 만들어 질 수 없으리라. 책의 두께만큼이나 견고해 보이는 쥘 베른의 글 솜씨는 SF의 고전이라는 말에 절로 공감하게 만든다.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요소는 또 있다. 바로 뛰어난 그림들이다. 흑백으로 그려진 예전의 삽화도 볼 만 하지만 질베르 모렐이 그린 책의 그림들은 매우 뛰어나다. 마치 도감을 보듯 바다 생물들을 그려낸 생생한 그림들과 잠수함과 잠수기구의 작동원리까지 이해할 수 있는 자세한 도면들이 책 속에 가득하다.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 해저화산의 폭발과 태풍의 원리, 수에즈 운하의 건설, 잠수함과 전함들 그리고 그 외 다양한 그림들이 해저 2만리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지루할 틈이 없다는 말이다. 

인간 사회를 등지고 노틸러스 호와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의 왕국을 만들어 가는 네모 함장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법이고, 내가 정의요! 나는 핍박당한 사람이고, 저들은 압제자요! 내가 사랑하고 아끼고 존경한 모든 것, 나의 조국, 아내와 자식들, 부모가 저들 때문에 내 눈앞에서 죽었소! 내가 증오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소! 조용히 하시오!” 

포탄을 날리며 다가오는 전함을 향해 내뱉은 네모 함장의 모습은 권력에 의한 압제와 전쟁과 폭력을 수반하는 모든 힘에 대한 저항의 모습이었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뭉친 인간들은 절대 넘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를 지키는 마지막 수호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까? 가득이나 시끄러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에게 네모 함장의 모습이 영웅으로 비춰지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정신없이 움직이는 우리 사회에 분명 의미 있는 작은 움직임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비현실적인 꿈이든 이상이든 우리는 그런 움직임 속의 움직임의 힘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흔들리는 현실 너머에는 정말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어비스”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다.   

해저2만리, 노틸러스, 쥘베른, 네모함장

수많은 경제학자들은 경제의 세계화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시민권을 축소시킨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시민이란 도시국가의 법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었다. 시민은 규칙의 구상과 적용, 그리고 그 승인에 참여하는 주체이다.
하지만 오늘날 다국적 기업, 중앙은행, 금융기관, 거대 국제기구 같은 세계경제의 주체들은 실질적 견제세력 없이 세상을 좌우한다. 시민사회에 주어진 권한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 본문 149쪽

2008년 가을,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휩쓴 경제 위기를 촉발시켰다. 국제화된 거대 금융회사들의 부실은 완전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의 총아였던 미국에서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초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당시 미국 정부의 개입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미국경제의 붕괴와 더불어 세계경제 또한 나락으로 떨어졌을 것이란 예측이 많다. 미국의 금융기관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경제까지 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현재 세계 경제의 구조는 과연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세계화 시대의 경제 파워는 바로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국경을 초월하는 다국적 기업과, 중앙은행과 연기금으로 대표되는 금융기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을 아우르는 경제 강국들, 세계무역기구와 세계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 등의 경제, 금융관련 국제기구들이 바로 지구촌 경제 전반을 주무르는 경제 권력들이다. 이러한 경제 권력은 고도로 발달된 교통과 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은 극히 소수의 엘리트 집단으로 거대한 자본의 흐름을 좌지우지 하고 있으며, 각 경제 권력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지구촌 경제 전반을 장악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권력들은 국가간의 장벽을 낮추고 시장과 무역의 완전 자유를 주장한다. 이는 선진국과 후진국(최빈국)간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소수에게 부(富)가 집중되고 다수는 더욱 가난해지는 원인이 된다. 또한 지속적인 이윤의 추구로 지구 환경의 오염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국가간의 경제 분쟁을 공평하고 정당하게 해결해야 할 경제관련 국제  기구들이 대규모 다국적 기업이나 경제 강국들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현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세계화된 현 경제 권력들의 실체적 존재를 설명하고 이들 경제 권력들이 어떤 일들을 추구하는 지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준다. 또한 경제 권력의 상호간의 작용을 파헤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강력한 힘으로 지구촌을 움직이는 경제 권력의 메커니즘을 파악 할 수 있게 해주며 그들이 만들어 가는 게임의 규칙이 과거와 현재에 어떤 식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기초를 다지는 책으로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하고 포괄적으로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거의 모든 권력들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불공정한 경제 권력들의 폐해를 고발하고, 그들에 저항하는 글로벌 시민 단체들의 활약도 첨가되어 있어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해 준다.



세계화, 경제권력, 다국적기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