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우선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책 속의 여자들은 어떤 여자들인가에 대한 의문은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선별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측면에서 신선했다.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딱딱한 틀에서 벗어나 지극히 자유롭게 작가 맘대로 선정된 34명의 여자들은 매력적이었다. 누구하나 그 매혹의 향기를 품지 않은 여인이 없었으며 누구하나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다. 개인의 취향에 따른 분류에서 출발한 책이지만 그녀들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접근과 판단은 읽는 이로 하여금 여인들의 열정과 매력에 흠뻑 빠져기에 충분했다.
우선 모르는 여자들이 꽤나 많았다. 아직 한참이나 모자란 나의 지식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오리아나 팔라치, 브레트 애슐리, 클라라 체트킨등등 생소한 이름들이 많았다. 생소한 것 만큼이나 그녀들의 인생이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혁명의 투사에서 부터 여제, 연예인과 소설속 여주인공까지 고종석의 여자들은 화려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인들을 병치시키는 일이 쉽지 않은 작업이었겠지만 그의 글솜씨는 자칫 방대함으로 산만해 질 수 있는 글의 분위기를 충분히 한데로 모을 수 있는 것이었다. 고종석의 여자들은 열정적인 매력으로 수렴되고 있다. 로자의 혁명정신과 측천무후의 리더십, 임수경의 통일에 대한 열망, 샤를로트 코르데의 신념, 이화의 공산주의적 성(性).......
개인적으로 이화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을 끈다. 영화 겨울 여자의 여주인공으로 열연한 장미희와 오버랩되는 이화라는 소설 주인공은 성(性)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찾아 나간다.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 모든 남자의 여자이고자 했던 이화는 여자와 성(性)에 대한 담론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데리다의 시민결합을 떠올리게 만든 이화는 아직 결혼이라는 사회적 관습에 억압받는 많은 여성과 남성들에게까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한 인간의 성적인 자유로움에 대한 범주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양지로 이끌어 내야 할 시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 어떻게 생각하면 개인적인 판단으로 머무를 수 있는 담론이겠지만 진지하게 고민해 볼만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이화를 통해 환기시킬 수 있었다.
갈라 엘뤼아르 달리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자유로운 연애 때문이었을까? 여튼 멋있어 보인게 사실이다. 엘뤼아르와 달리라는 두 예술가의 영혼을 뒤흔든 갈라의 매혹이 과연 무엇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처음 들어본 낯선 이름의 여인이었지만 남성중심의 세계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든 그녀의 삶은 매력적이다. 격정의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남성들 보다 휠씬 더 크게 말이다.
흥미롭고 재밌었다. 고작 몇 페이지로 한 인간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겠지만 충분히 글쓴이의 느낌을 그대로 내려받은 느낌이랄까? 좋은 경험이었다. 고종석의 다음 책은 『남자들』이 어떨까 생각해본다. 우리가 잘 모르는 하지만 무척이나 열정적이고 굴곡진 삶을 살았던 남자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진 못했지만 잔잔한 감동과 큰 매력을 지닌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
고종석,
여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