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이미 기록된 역사를 기존의 눈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다양한 관점으로 사료(史料)를 조사하고 전혀 다른 모습의 과거(역사)를 재구성하는 그런 류의 책들이 꽤나 많았다. 큰 줄기의 주류 역사가 아니라 시대의 서민들을 세밀하게 연구하는 풍속사나, 미시사, 문화사에 관한 책들이 바로 그것이다. 집에 있는 몇 권의 책을 뒤져보니 중세의 한 방앗간 주인을 통해 당시 일반 서민문화를 꿰뚫어 본 『치즈와 구더기(문학과 지성사)』나 고양이 학살을 주제로 18세기 프랑스 인쇄소의 풍경을 서술한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책세상)』등이 눈에 띤다. 두 권 모두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는 면에서 독특한 내용이었다는 기억이 난다.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은 일반적으로 영웅이라 평가받는 조선시대 인물들의 이야기다.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재산을 훔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던 의적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부조리한 현실을 개혁하고자 분연히 들고 일어난 홍경래와 전봉준.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 실학자의 대명사 박지원과 조선후기를 호령했던 대원군까지 책은 막강 영웅들의 열전으로 구성돼있다. 하지만 책 속의 영웅들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었다.

  저자가 바라본 조선의 영웅들에 대한 평가는 간결하게 압축된다. 우리가 영웅으로 알던 사람들이 실제 영웅은 아니라는 것. 영웅으로 포장 되었다는 것이다. 홍길동의 위시한 의적들은 포악하고 잔인한 도적무리일 뿐이고, 지역차별을 혁파하고 신분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난을 일으켰던 홍경래의 실제 모습은 자신만의 새로운 왕조를 만들기 위한 대역죄인 이었다. 억압받는 농민과 서민들을 위해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동학의 지도자 전봉준 또한 왕조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온 몸을 던졌던 근왕주의자였을 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허생전과 양반전 호질 등으로 양반 사회에 일침을 날리며 전근대적인 계급사회를 비판했다는 실학자 박지원도 신분제 타파가 아닌 단순히 양반 계급의 각성만을 촉구했던 신분제 옹호론자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과거의 역사는 현재의 상황에 따라 재구성된다고 했던가? 몇 년 전 국사(國史) 해체를 주장하며 역사학계의 큰 파장을 일으켰던 임지현 교수는 권력의 입맛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된 역사를 접고, 변경의 역사 혹은 지역의 역사를 강조한 적이 있었다. 주류 역사학자의 주장은 아니었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임지현 교수의 글은 내 마음에 크게 울렸었다. 기존의 역사가 만들어낸 영웅들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 책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한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과거의 역사와 지금 현실에서 진행되는 역사까지, 변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서민들과 피지배층에서 항상 영웅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암담하고 참혹한 현실, 팍팍한 세상에서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상상속의 영웅이라도 필요에 따라 만들어 내야 하는 그들의 고통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역사속의 인물이 과대 포장 된 것은 아닌가? 우린 얼마나 객관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가? 라는 질문 이전에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 그 시대의 힘없는 백성들, 가엾은 서민들을 위한 살맛나는 세상이 과연 있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먼저 던지고 싶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노라면 역사는 영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웅 따윈 필요 없는 세상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조선, 영웅, 홍길동, 임꺽정, 홍경래

유독 우리나라에는 간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다. 많은 분들이 간암이나 간경화등으로 유명을 달리 하시는데 얼마전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 분들과 같은 길로 떠나셨다. 육체적으로 워낙 심각한 상태여서 간이식은 생각도 못했고, 변변한 치료도 못 받으셨다. 우리 몸에서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있으랴만은 그중에서도 간은 손상이 되면 되돌리기 힘들고, 손상되는 과정에서 이거다 하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으니 참으로 관심을 많이 둬야 하는 장기라 하겠다.

 

뇌사자나 장기 기증자의 간을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간을 절제하여 이식자의 손상된 간을 들어내고 떼어낸 절반의 간을 이식하는 생체부분 간이식에 관한 다큐를 본지가 꽤 오래전이다. 아마 이웅평씨라고 미그기를 몰고 우리나라에 귀순한 분이 간 이식을 받는 내용이었는데 아마 그 수술을 진행했던 분이 책의 주인공 이승규 교수였던 것 같다. 지금까지 머릿속에 크게 각인된 내용은 엄청난 수술 시간이었다. 20시간에 가까운 수술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던 간이식 담당 스탭들의 노고는 초인적인 것이었다. 잠깐 잠깐 김밥과 음료수를 마시며 수술에 임했던 그들의 모습을 책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화면보다 더욱 진한 감동으로 말이다.

 

장기기증에 대한 문화가 서구에 비해 빈약한 우리나라에서 장기를 이식받기란 쉽지 않다. 책에서도 잠깐 등장하지만 장기를 얻기 위해 중국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장기이식이 절실한 환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반증한다. 이렇듯 기증에 관한 문화가 척박한 우리나라에서 생체간이식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킨 이승규 교수와 그 스탭분들의 노고는 그래서 더욱 가치가 빛난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 드림팀은 철저한 준비와 반복,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를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로 간이식의 역사을 새로 쓰고 있다.

 

책 말미에는 간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다. 간 건강을 위한 이야기와 간 이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대화 형식과 다양한 그래픽으로 더욱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한 번 망가진 간을 다시 건강하게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내용은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건강이란 미리 신경써서 챙기지 않는 한 큰 병으로 찾아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고귀한 생명을 살리고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서라도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장기기증에 참여하고 사회적, 문화적 공감대가 공고히 형성되어 선진국 수준의 이식문화가 하루빨리 만들어지길 바란다. 아울러 의료정책의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도 우수한 의료서비스를 쉽게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 책을 통해 우리나라 의료진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지만 책을 읽는 내내 없는 사람들은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현실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기술과 함께 세계최고 수준의 의료복지를 이룰 수 있다는 꿈을 모든 이들이 함께 꾸었으면 한다.

이승규, 간이식, 서울아산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