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자작나무 숲과 통나무집 초가지붕위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저녁연기, 쟁기질을 할 때 땅에서 피어오르는 구수한 냄새, 페치카 위에서 끊어오르는 싸모바르 향기… 그런것들이 바로 우리의 ‘조국’이었다.
 그것을 지키는 일은 연대 정치위원이 부르짖는 그 어떤 선동구호보다도 훨씬 더 맹백한, 내가 진정으로 싸워야하는 이유였다.” - 알기쉬운 세계 제2차대전사 4권 

 창비세계문학 러시아편을 읽었다. 단편 소설로 엮인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인들의 정신세계가 조금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 깊고 질퍽한 그런 느낌이랄까? 러시아인들의 의식 밑바탕은 대립되는 것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 혹은 상대적인 것들의 경계가 희미한 마치 안개 같은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소설의 인물들을 떠올리다 보니 묘하게 2차대전의 러시아가 동시에 겹쳐진다. 동부전선에서 독일과 일대 접전을 펼쳤던 러시아.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던 동부전선의 승리와 그 승리의 주역이었던 러시아 사람들. 과연 러시아 사람들의 정신은 어떤 것일까?

이오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그래, 이 친구야…… 이제 꾸지마 이오느이치는 없어…… 하느님이 데려가셨지…… 이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구나…… 시방 너한테 새끼말이 있다고 치잔 말이다. 너는 걔 엄마고…… 그런데 갑자기 이 새끼말을 하느님이 데려갔다고 해봐…… 너라도 슬프지 않겠니?”
 말은 건초를 씹으면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주인의 손 위로 숨을 내쉬기도 한다……
 열중한 이오나는 말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본문 98쪽 안톤 체호프「슬픔」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을 읽으면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독일군과 맞서 싸운 동부전선의 러시아 병사들은 과연 인간의 감정이란걸 지니고 있었는지 말이다. 참혹한 전쟁터에 내몰려 소총 한 자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맨몸으로 독일군 진지를 향해 달려가는 러시아 병사들은 인간의 감정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기계들 같았으니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쉽게 목숨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죽을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애국심이었을까? 안톤 체호프의「슬픔」에 그 답이 있었다. 러시아인들 내면을 흐르는 감정의 큰 줄기는 체념이라는 사실이다. 아들의 죽음을 이야기 하고 싶어 하는 늙은 마부 이오나가 결국 사람이 아닌 말에게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러시아인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었다. 바로 숙명론을 동반한 깊은 체념의 정서를 지닌다는 것. 이것은 2차대전 중 상부에서 명령하면 당연히 따라야 한다는 깊은 체념과 연결된다. 설사 그것이 죽음의 길이라도 명령은 명령이니까. 뻔히 죽음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생각하고 스스로의 업이라 생각하며 말이다. 이런 부분에서 그들의 정서는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정서, 한(恨)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어쩌면.

 러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른다. 그래서 그런가? 합리와 효율 그리고 이성으로 대변되는 유럽적 정서와 내면적이고 가족적이면서 정(情)에 이끌리는 아시아의 정서가 공존하는 곳이 바로 러시아다. 분명 동부전선의 독일군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러시아군의 무모함―돌격하는 병사들 뒤에서 아군에게 총을 쏘아 전진을 독려하는 행동 따위―의 배경에는 오랜 기간 짜르의 통치아래 시키면 시키는 데로, 하라면 하는 그런 동양의 체념적 한의 정서가 배어 있었다.

 타격이 가해질 대마다 불쌍한 죄수는 놀란 듯이 가격이 가해진 방향을 향해 얼굴을 돌리며 고통에 짓눌린 표정을 짓더군요. 하얀 이를 드러내며 계속 똑같은 말을 중얼거렸어요. 그가 아주 가까이 왔을 때, 난 겨우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지요. ‘형제들, 부디 자비를…… 형제들이요, 부디 자비를……’ 하지만 그 형제들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죠. 행렬이 완전히 내 옆에까지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맞은편에 있던 병사가 결정적으로 앞으로 한 발 내딛더니 따따르인의 등짝을 몽둥이로 휙 하는 소리가 나도록 후려갈기는 걸 보았죠. 따따르인은 앞으로 나뒹굴었지만, 두 군인이 다시금 그를 짐짝처럼 일으켜 세우자 반대편에서 또 다시 몽둥이세례가 몰아쳤어요. 그렇게 이쪽에서 또다시 저쪽으로 계속되었죠.
 -본문 84쪽 레프 똘스또이 「무도회가 끝난 후」

 이반 바실리예비치가 목격한 인간의 무?과 달콤한 사랑의 향기는 한 순간에 사라진다. 무도회 다음날 벌어진 폭력의 현장을 이끌던 사람은 다름아닌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였다. 소설 속에서 보이는 폭력과 비폭력, 귀족과 평민, 사랑과 증오의 경계는 흐릿했다. 극단적인 삶의 모습이 공존했던 19세기말 러시아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똘스또이의 「무도회가 끝난 후」는 당시 사회모습 뿐만 아니라 이중적인 내면을 지닌 러시아인들의 인간상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러시아 제2전선으로 불리는 파르티잔 투쟁의 모습이 소설 속 러시아인들과 다르지 않다. 러시아의 점령지에서 끊임없이 독일을 괴롭힌 빨치산도 평소 수수한 노동자, 농민으로 점령군을 안심시키지만, 저항의 분위기가 전파되어 대항군이 조직되고 게다가 빈약한 무기라도 들라치면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저항군이 된다. 러시아인들은 복종하는 것에만 익숙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속에는 저항의 유전자도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복종과 저항의 경계가 흐릴 뿐.  

 학생시절 전쟁사에 관심이 많았었다. 그때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굴복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과 영국의 희생 때문이었다라는 식의 책들로 넘쳐나는 시절이라 전쟁에서 러시아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 나이가 들고 이런 책, 저런 책을 읽다보니 실제 2차 대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으며 종전을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했던 나라가 러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전쟁 중 러시아의 공로가 폄하되었다는 말이다.

 전쟁은 많은 걸 잃게 만든다. 2차 대전을 통해 러시아가 받은 피해는 엄청났다. 인명과 재산 피해도 그렇지만 나라의 절반이 전쟁으로 파괴 되었다. 러시아 인들이 받은 정신적 육체적 피해는 두말하면 잔소리 일 뿐이리라. 전쟁은 가장 기본적은 사회단위인 가족관계까지도 파괴한다.

‘내 손에 잡히니까 좋소?’
‘아니.’ 아부지는 말했지요. ‘나쁘다.’
그러자 쎈까가 물었어요.
‘그러면 페쟈는, 아부지 손에 칼질당하면서 좋았겠소?’
‘아니지.’ 아부지가 말했어요. ‘페쟈도 나빴겠지.’
그러자 쎈까 형이 물었어요.
‘그러면 아부지는 나쁜 꼴 당하리란 생각은 안했소?’
‘아니.’ 아부지가 말했다. ‘나쁜 꼴 당할 생각은 안했다.’
그러자 쎈까 형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어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만약 아부지에게 잡힌다면 절대로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그러니까 아부지, 지금은 우리가 당신을 끝장내야겠소……’
 - 본문 173쪽 이삭 바벨 「편지」

 전쟁은 부자(父子)가 서로를 죽이고 죽는 그런 것이다. 그렇게 참혹한 것이 전쟁이다. 단지 적이라는 이유로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또 다른 아들은 아버지를 잡아 죽이고, 그 내용을 막내가 어머니께 편지를 쓰고, 쓰면서도 자신의 아버지를 개라고 말하고……. 이삭 바벨은 전쟁의 참담함을 글로 남긴 작가로 유명하다. 그 자신이 직접 전쟁의 참상을 경험했고, 절제된 그의 글은 전쟁의 삭막함과 참상을 표현하기에 딱 들어맞는다.

 러시아인이 2차대전에서 겪은 고통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당의 선전선동이나 명령만이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러시아의 수많은 민초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이 가족과 그들의 공동체를 위하여 희생했기 때문이었다. 동양적인 정서를 지닌 러시아인들에게 가족과 지역 공동체는 삶 그 자체였다.

 단 한 발로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결투를 위해 살아가는 씰비오. 외투 한 벌을 위해 자신의 희생과 고통을 감내하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 청순한 소녀 아냐를 정신적인 위로로 삼고 중노동에 시달리는 지하 빵공장의 스물 여섯 군상, 짧은 입맞춤의 비밀로 행복하고 또 불행할 수 밖에 없었던 랴보비치 이등대위…… 소설 속 주인공들은 우직하고 바보같고 미련곰탱이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은 동시에 감상적이고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끈끈한 무언가로 둘러쌓여 있다. 깊이 있고 뭔가 질척거리는……

러시아, 단편소설

 

적벽대전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과연 누구일까라고 묻는다면 아마 당연히 제갈 공명과 주유라고 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적벽대전의 승리는 방통의 머리에서 나온 연환계라고 생각한다. 영리한 조조까지 속인 방통의 능력이야 말로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유창한 언변과 사리분별력, 뛰어난 순발력으로 스파이 노릇을 톡톡히 해냈기에 제갈 공명의 바람도 통한 것이고 주유의 전략도 먹혔던 것이다.  

지상 최대의 작전이라 불리는 “오버로드” 작전 즉 2차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이면에 진짜 정보와 가짜 정보가 난무하는 전무후무한 첩보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상륙지점이 어디냐를 놓고 벌어진 진짜 같은 가짜 정보들로 인해 독일 수뇌부는 결국 깔레를 상륙지점으로 오판하게 되고 작전은 성공하게 된다. 작전에는 연합국과 주축국의 수많은 첩보원과 스파이들이 활약했고, 결국 연합국 첩보기관의 승리로 끝났다. 또한 독일의 애니그마 암호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보듯이 국가간의 정보를 놓고 벌이는 첩보전은 과거나 현재나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국가간 민족간의 전쟁과 분쟁, 암투가 지속되었고 현재도 국가와 기업간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바로 그런 전쟁의 한 복판에 스파이들이 암약하고 있다. 뛰어난 첩보능력과 사람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 미모와 재능 그리고 어떤 순간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침착함,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기민함 등을 갖춘 스파이들은 한 국가의 존속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

스파이의 대명사 조르게, 독일 최고의 여자 스파이 마타하리와 호엔로헤, 영국과 소련의 이중첩보원 고르디에브스키, 애니그마 해독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영국의 신시아,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을 체포한 이스라엘 모사드의 지도자 하렐, 아인슈타인을 사랑했던 소련의 스파이 마가리타 코넨코바. 『베일에 가려진 스파이 이야기』에는 귀에 익은 유명한 스파이에서부터 책 제목처럼 베일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은 스파이들까지 수많은 스파이들이 등장한다. 물론 등장하는 스파이들의 수만큼이나 풍부한 에피소드들이 긴장감 넘치는 문체로 펼쳐져 있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현시대는 평화를 지향하는 시대다. 세계 대전 수준의 전쟁일 발발할 가능성도 낮고 대규모 분쟁이 벌어질 확률도 낮다. 하지만 각종 테러와 지역 갈등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고도로 발전된 기업들 간의 정보 전쟁의 강도는 날이 갈수록 더 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스파이들이 국가 또는 민족, 기업의 이익과 번영을 위해 암약하고 있을 것이다. 상대를 기만하며 불법(?)적으로 정보를 캐고 나아가 주요인물을 암살하기까지 하는 스파이들의 활동이 일면 잔인하고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사가 지속되는 한 스파이들의 첩보활동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역사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테니말이다.

흥미진진한 스파이들의 활약과 드라마틱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스파이들과 첩보의 세계를 엿보는 건 일상에 찌는 삶의 작은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스파이, 첩보원

황진이의 시조에서 따온 ‘어져 내 일이야’는 나이 서른을 넘으면서부터 내 입에 달라붙은 말이다. 나의 주종목이다. 이반 카라마조프가 그랬던 것처럼 젊은 시절에 나도 서른 이후의 삶은 뭔가 부도덕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맙소사! 그걸로 충분하지 않았던지 나는 어느새 마흔도 넘긴 나이가 됐다. 오호, 부도덕하고도 부도덕하도다! 그것이 ‘오, 마이 비즈니스!’다. 물론 이러다가 ‘퇴장’ 당하는 것 또한 나의 비즈니스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본문 74쪽.

 어쩌겠는가? 나 또한 이렇게 마흔을 향해 살고 있는 것을.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과 비례하여 세상을 살아가는 연륜이 높아져야 하거늘 나는 아직 삶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몇 달 전 남들도 한 번씩은 다 겪는 부친상을 치르고 나니 삶의 무게가 조금은 더 무거워진 것 같다. 나는 잘 살아왔는지, 지금은 잘 살고 있는 건지, 아니 잘 사는 것이 어떤 건지. 조급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삶에 대한 그리고 죽음에 대한 어떤 결론이 내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에게 왔다. 책 제목도 심상치 않은 것이 『그 삶이 내게 왔다』란다. 평범한 삶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많이 부족한 17명의 저자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자신들만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 책 속의 이야기들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어쩌면.  

 나뿐 아니라 누구나 유전적으로 결정된 체질이란 게 있어 어떤 면은 과도하고 어떤 면은 적당하며 어떤 건 부족하고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중심을 정중앙에 두고 똑바르게 나아가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운 무게중심 때문에 구르거나 휘어서 간다. 거기에 순간순간 당기고 밀고 부딪는 수많은 인연이 변수로 보태지니 당연히 이리저리 쏠리고 절뚝이며 돈다. 그건 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본문 210쪽.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우리는 굴곡진 인생의 길에서 잠깐의 행복과 긴 절망을 경험한다. 한 순간 모든 걸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오랜 시간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간다.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시때때로 성숙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우리가 경험하는 수많은 일상들과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서 말이다. 어쩌면 삶은 당연히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고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선 끝없이 자신이 살아온 과거를 되돌아보며 반성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겉도는 삶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자양분이 되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법시험은 단지 법조인이 되기 위한 수단이므로 사실 어떤 법조인이 되어야 하나라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합격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 되지 않을까?(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왜 사법시험을 보아야 하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해 고민 없이 무턱대고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의 삶인데 남들처럼 살기 싫었다. 나 자신만의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으나, 현실에서의 나는 어떠한 자격도 능력도 없는 무기력한 존재였다. 이러한 나의 고민들을 들어주고 길을 안내해줄 선배도 지인도 마땅히 없었다. -본문 199쪽.

 인생은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삶을 가혹할 정도로 뜯어 발겨야 한다. 내 인생이 항해하는 뱃길이 과연 바른 길인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지, 매 순간 내가 취하는 행동들이 나를 배반하지는 않는지 말이다. 그래야만 삶의 종착인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다. 후회나 망설임의 자리는 애초부터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고 절대 성급하거나 조급한 마음을 가져도 안 된다. 삶의 문제지엔 애당초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인생의 절반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글들로 가득 찬 책이다. 때론 인생의 한 순간에 모든 걸 걸라고 말하면서도 때로는 잔잔하고 조용하게 인생을 되돌아보라는 채찍과 당근이 함께하는 책이다. 좋은 책이다. 삶의 무거움을 애써 회피하며 살아가려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소금 같은 책이다.

“빌어먹을 자연아, 넌 외로우냐? 나도 외롭다. 여기 비스킷이나 먹어라!” - 본문 79쪽.

삶,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