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때 기억에 당시 공책들은 상단과 하단 부분이 그림 그리기에 딱 맞게(?) 공란이 있었었다. 만화를 비롯해서 각종 그림들로 채워진 공책을 검사하시던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빈 종이만 보면 그림을 그려대던 시절이었으니 그럴만도 했겠다싶은 생각이 든다. 중학생이 될 무렵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꿈도 있었다. 뭐 재능과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관계로 일찌감치 그 꿈은 접어 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문자도 말도 글도 아닌 그림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나 자신을 나타내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었다. 그때 그려보았던 다소 허술하지만 나름 멋있다고 생각한 도안이나 심벌들 그리고 각종 상징들과 추상적인 그림들이 간혹 생각날때가 있다.  



위 그림들은 중국의 위대한 지신인 루쉰의 그림들이다. 깊은 잠에 빠진 중국인들을 깨우기 위해 때로는 글로 때로는 행동으로 지난했던 시대의 등불이 되었던 대 사상가 뤼쉰이 그림에도 관심이 많았단다. 그림을 보는 순간 신(神)이 글솜씨만으로도 충분한 재능을 발휘했던 루쉰에게 출중한 그림 실력까지 줬다는 사실에서 뭔가 공평하지 못하다는 불편함(?)을 느낀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루쉰이 그만큼 대단한 사람인걸. 위 그림은 불새와 부엉이를 그린 거란다. 얼핏, 대충, 그냥저냥 살펴봐도 생동감 넘치는 동세를 자랑하는 불새와 매우 간결하고 정확하게 게다가 군더더기를 배제한 부엉이의 이미지가 확연히 눈에 들어올 것이다. 루쉰은 넘어설 수 없는 작가적 능력과 더불어 그림에까지 조예가 깊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응당 그림과 시에도 능통해야 한다는 우리네 선비들과 중국의 지식들의 면모가 느껴지는 책이 바로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책이다. 루쉰의 그림이라는 독특한 소재한 이 책은 읽기보다는 감상을 해야하는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문자로 가득한 책을 읽다가 잠시 짬을 내 그림으로 가득한 (그것도 루쉰의 그림으로) 이런 류의 책을 읽는 것도 꽤나 즐겁다. 한장 한장 넘겨가며 누군가가 남긴 도안과 그림들을 보며 작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시대를 이해하고 또 나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루쉰의 그림은 단순한 평면디자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참으로 많은 책의 표지 디자인도 루쉰의 손에서 탄생했다. 현대의 관점에서 판단하더라도 꽤나 멋찐 디자인들이 많았다. 두작품만 감상해보자. 



위의 표지디자인 중 왼쪽 작품은 에로센토라는 러시아 맹인 시인의 동화극 『복숭아빛 구름』의 표지이다. 표지 상단의 구름 형상은 한나라시대의 석각 문양을 모티브로 삼았다는데 루쉰은 석각에 대안 관심이 매우 깊었고 스스로도 몇 개의 전각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마치 추상화된 현대미술 디자인을 보는 것 같아서 놀라웠다. 특히나 하단부의 글자체는 인공적인 느낌보다는 사람이 직접 쓴 것 같아서 전각무늬와 묘한 어울림을 자아낸다. 오른쪽 디자인은 루쉰의 네 번째 잡문집인 『이이집(而已集)』의 표지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루쉰의 도안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글자를 저렇듯 운치있게 변형할 수 있는 루쉰의 능력이 부러울따름이다. 변형된 글자체에서 느껴지는 루쉰의 감각이 대단하다. 글자인듯 그림인듯 도안인듯 그 경계가 불투명한 것 같아 더욱 마음에 든다. 특히 ’그럴 수 밖에 없을(而已) 뿐이다"라는 잡문집의 제목도 무척 마음에 든다. 

앞으로 시간이 나면 나도 나름의 그림을 좀 그려 볼 요량이다. 되든 안되든 말이다. 아마 시간이 지나 추억으로 남겨진 그림들을 보게 된다면 당시 나의 생각과 나의 고민과 나의 열정들이 텍스트로만 남겨진 기록보다는 훨씬 풍성해지리라. 루쉰이 그린 그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루쉰, 표지디자인, 그림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까?

좀 난감하긴 하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고등학교 국사책을 뒤져 봐야했다. 그리고 검색 창에 부여니 옥저니 동예니 하는 고대 국가들도 검색해야 했다. 어떤 책에서 본 듯한 미트라교도 찾아보고 조두(俎豆)가 뭔지 사전도 뒤적였다. 그래도 아직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면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하다. 난감하고 혼란스럽나다. 역사란 것이 이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철저히 자료를 뒤지고 유적을 답사하고 유물을 연구해서 빙고라고 외치기 어려운 뭐 그런 거 말이다. 그것 참.

우리의 시조 고조선의 단군은 수메르어의 태양신 ‘딩기르’ ‘다곤’을 이두로 옮긴 글자로 환웅의 이야기가 사르곤의 이야기와 대응된단다. 해모수는 메디아의 영웅인 프라오르테스이고 해모수와 함께 사르디스를 공격한 기비(cambi)는 《일본서기》의 인물 스사노오 미코토란다. 국사책에 만주 길림성 일대 송화강 유역에 존재했다던 부여는 페르시아 제국이었고, 신라는 아르메니아의 카파도키아에 있던 나라였단다. 춘추전국시대의 초나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첨예하게 맞서는 현재의 가자지구에 있던 나라고, 중국의 통일제국 진(秦)나라는 마케도니아에 있던 나라였다는 뭐 그런 이야기. 보너스로 현재 아르메니아가 있는 곳에 차탈휘위크 지역이 우리 고조선이 있던 장소였단다. 고조선은 만주와 북한지역에 있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 참.

내가 알고 있는 역사지식라고 해도 지금 중, 고등학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딱 그 정도 지식이 전부인 나에게 『샤먼제국』은 어려운 책이었다. 달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 문자(한자, 영어, 이두 등)에 무식하고 식견이 뒤떨어지며 상식도 모자랐기에 《산해경》,《사기》,《환단고기》에다가 헤로도토스며 박제상이며 일연이며 김부식이며 그밖에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책들과 문헌들과 인물들까지, 책이 전하는 정보의 절반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의 이해능력의 한계를 절감했다. 한 구절 인용해보겠다.(타이핑도 만만치 않을 듯싶다) 그것 참.

그렇다면 촉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등장했는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여기에서 다시 꼼꼼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헤로도토스의 세계지도에는 소그디아나가 sogdi로 표기되고, 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는 소그디아나가 사카sakas와 구별되지 않는 지역에 있다. 이 지역이 스키타이scythie인 것이다. sog, sak, scy와 같은 두음은 수메르어에서 신의 정령을 의미하는 풍경(風磬)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다. 풍경을 saka라도 하기때문이다. 풍경은 바람과 뿔이 달린 물고기(정령)라는 의미이다.

중국은 촉을 고촉, 파촉, 전촉, 후촉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부른다. 《자전》에서 ‘촉’을 ‘벌레의 총칭’이라고 하고 굼벵이를 예로든다. 이것이 조두와 관련되는 일이라는 것은 이 용례에서 알 수 있다. 예컨대 묘당에 모시는 신성한 그릇이거나, 홀로 격리되어 있는 귀[耳]라고도 한 것 등은 의심의 여지없이 흉노의 when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무속에서 말하는 ‘신주단지’이다. -본문 517, 518쪽

어떠신가? 대단하지 않은가? 600페이지를 넘는 두꺼운 책의 상당부분에 걸쳐 위와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뭘 좀 알고 읽는다면 뭐가 어떻다고 칭찬도 하고 비판도 하겠지만 난 그저 읽고 신기해했을 뿐이다. 또 즐거움도 나름 있었다. 하지만 읽은 내용에 대해 뭔가 글로 남기려니 그것 참이라는 말이 튀어 나올 뿐이다. 그것 참.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고대사의 거의 대부분이 지중해와 서남아시아 그리고 멀리 동유럽까지도 포함된 거대한 지역에 걸쳐 형성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유물과 유적을 포함한 다양한 자료들을 토대로 여러 지역의 지명과 고유 명사들의 이두식 발음에 착안하여 다소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는 주장들을 피력하고 있다. 지적 능력이 미천한 나로서는 무엇이 어떠하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역사적 상상력의 깊이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 책을 쓴 지은이가 터무니없이 역사에 대한 비약을 너무 심하게 서술했다는 평가도 걱정스럽지만 나름 재미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것 참. 

국가주의를 바탕으로 엮어지는 국사(國史)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 현실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하나 더 늘어났다고 하면 나 또한 너무 비약이 심한걸까?

태양을 숭배하고 천문학에 능통한 사제들의 지배를 받았던, 지중해에서 출발해 서남아시아를 거쳐 동남아시아와 중국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을 아우르는 거대 고대제국에 존재했다는 주장과 그 근거에 대해 어쩌면 어느 정도 가공되고 왜곡된 승자의 역사만 배우고 공부하는 우리 학생들과 이야기 하고 싶다. 그냥 외우는 것만으로 끝나는 역사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똘똘 뭉친 생생한 역사 뒤집기를 말이다. 그러려면 내가 먼저 공부해야하지 않는가? 그것 참. 이것 참.  

 

샤면, 고조선, 환단고기, 단군

많은 참여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