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의 발명품들은 관심과 호기심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물론 관심이나 호기심을 발동시킨 근본적인 것이 있겠지만 말이다.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자신이 사는 집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인간의 인식수준이란 것이 참으로 변덕스럽고 불완전하다. 태어나 지금까지 집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는데도 집의 물리적 구조에서부터 먹고, 자고, 입고, 싸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던 걸 보면 말이다. 인간은 크리스토퍼 차브리스가 쓴 「보이지 않는 고릴라」의 실험처럼 패스 횟수에만 관심을 두다 갑자기 출현하는 고릴라를 눈으로 보면서도 확인하지 못하는 것 마냥 꽤 편협한 시선과 사고방식의 둘레에 갇혀있는 듯싶다. 그 둘레를 벗어나면 신세계가 펼쳐져 있는 데 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고방식의 편협함이 수렴되는 곳이 인간의 무한한 편의와 안락함으로 향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편안함과 행복과 풍요로움으로 인해 우린 정녕 중요한 지구 생태계라는 고릴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거,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책은 단순히 즐겁고 재밌고 흥미로운 사생활의 역사를 다룬다는 피상적인 면보다 더 큰 고민거리를 남긴다는 사실을 책을 읽으면 내내 느꼈다.
오늘날 탄자니아에 사는 한 사람의 연간 탄소 배출량은 유럽에 사는 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틀 반 동안 내뿜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고, 미국인 한 사람이 불과 28시간 동안 내뿜는 탄소 배출량과 맞먹는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금처럼 편리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지구상의 다른 시만들 대부분보다 수백 배나 더 많은 자원을 이용하기 때문인 것이다. 어느 날엔가 ― 그 어느 날이 아주 먼 미래일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시라 ― 60억 명 가량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똑같이 가지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얻은 것처럼 손쉽게 얻고 싶어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그때는 이 지구가 손쉽게, 또는 애써 산출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삶을 편리함과 행복으로 가득 채우고자 하는 끝없는 노력의 결과, 우리는 결국 편리함도 행복도 없는 세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1)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말들이 많다. 구제역 여파로 삼겹살은 금겹살이 되고, 리비아 사태는 유가의 고공행진으로 이어져 기름 값은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하는 기염을 토하고, 채소가격과 생필품 가격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타고 있다. 게다가 일본 원전 사건은 먹거리의 불안을 증폭시켜 상황이 더욱 뒤숭숭한 느낌이다. 특히 대부분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또한 석유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를 운영하고 있는지라 유가 상승이 물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하긴 얼마나 심각하면 정유회사들이 나서서 기름값 인하를 단행했겠는가. 문제는 물가를 잡고, 기름 값을 내리고 하는 정책들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근시안적으로 높아지는 물가를 어떻게 끌어내리느냐가 아닌 우리의 소비 패턴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기이다. 과도한 에너지 소비에 대한 고찰이 절실하다.
우리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에너지를 말이다. 빌 브라이슨의 책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는 집이라는 주제로 인간이 추구한, 그리고 지금도 열렬히 추구하고 있는 편안함의 역사를 거의 모두 보여준다. 단지 인간종의 편안함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희생되었고, 얼마나 많은 자연이 파괴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같은 인간들이 희생되었는지 재치 있는 작가의 입담으로 덤덤히 서술되어 있다. 그리고 인간이 편안함과 행복을 위해 수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자연 생태계를 손상시킴으로써 인간이 추구한 편안함과 행복 때문에 인간 종은 거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한다. 책 말미에 작가는 불과 20년 사이에 산업 혁명 이후 지구 전체가 생산한 에너지의 절반을 소모했음을 경고한다. 터무니없이 많은 양의 에너지 소비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 우리는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오로지 인간의 끝없는 탐욕 때문에 말이다. 더 많은 전기를 얻기 위해 위험천만한 원자력 발전소를 짓고, 더 많은 먹거리를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 속에서 사육되고 있으며, 더 많은 토지를 위해 산림을 파손하고 있고, 더 많은 소비를 위해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허울을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속엔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과 지나친 안락함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간단한 예로 인간이 만든 문명의 이기를 대표하는 자동차만 봐도 그렇다. 자동차는 엄청난 석유에너지를 소비한다. 자동차도로는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많은 농지를 파괴한다. 자동차는 오염 물질을 배출함은 물론이고 수많은 사람들을 사고로 불행하게 만든다. 편리함과 편안함을 위해 우린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게 문제지! 만약 그 기계가 점점 발전해 가면 인간들은 가장 아름다운 곳조차 남겨 두지 않을 거야! 차가 다닐 길을 내야하고, 차를 세울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이렇게 그들은 방금 찾은 것들을 파괴해 버리겠지. 게다가 자동차는 장소를 차지하는 물건이잖아. 자동차들이 길들과 광장들을 점령해 버린다면 아이들은 더 이상 길에서 놀지 못할 테고, 한가로이 걷는 행인들도 사라질 게야. 왜냐하면 모든 게 이 기계처럼 빨리빨리 움직여야 할 테니까. 사람들이 이 움직이는 상자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대화를 나눌 일도 줄어들 테고, 더 이상 서로를 이해할 기회도 적어지겠지. 그러다 보면 서로 미워하게 될 거야. 아니 내 말을 믿으라니까. 늘 그랬듯이 또 다시 인간들은 무시무시한 물건을 발명한 거야. 하지만 이건 그 가운데 최악이야. 자기 목숨은 물론, 남의 목숨까지 앗아가니말야. 한 마디로 그건 우리 모두의 문제지! -(2)
아이들을 위한 동화에서 발견한 오소리 배저 아저씨의 이야기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제 석유중심 경제의 총아 자동차의 앞날은 밝지 않다. 석유 생산이 매장량의 피크 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향해 가고 있다. 대안으로 부상하는 전기자동차는 또 다른 에너지원을 필요로 한다. 무지한 사람들은 더 많은 전기를 얻기 위해 위험한 원전을 지어야 한다고, 그게 청정 녹색 에너지라고 우기고 있다. 배저 아저씨가 지적한 기계가 어디 자동차뿐이겠는가? 항공기와 선박을 비롯한 대부분의 운송수단들, 난개발로 건설되는 거대한 고층건물들 등 인간의 편리와 편안함을 위해 만들어지는 무시무시한 물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물가의 폭등과 일본의 원전 사고 그리고 원유가격의 상승은 단순하고 일시적인 사고나 현상이 아니다. 더 많이 소비하고자 하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필연적인 결과다. 더 풍성하고 안락한 일상을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의 일부다. 문제는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았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시작일 뿐이다. 조금이라도 소비를 줄이고, 조금씩이라도 더 아끼며 살아야 한다. 자주 걸어 다니고, 자주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 에너지 소비를 줄일 작은 실천들을 행동으로 옮겨야할 때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배저 아저씨와 빌 브라이슨의 경고를 마음에 새겼다면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미 성장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러므로 경제, 사회 시스템이 언제 붕괴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래에 대한 비현실적인 판단에 의해 주기적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행 경제 시스템이 붕괴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치명적인 상태에 놓인 경제 시스템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온 힘을 다해 이를 지키려 애쓴다. 정치가들과 각 분야 전문가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난 150년 동안 여러 번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이러한 희망을 갖는 근거는 기술과학의 발달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삶의 터전인 지구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 간의 사회적인 관계가 상실되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3)
(1)『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 까치 / 본문 540쪽
(2)『버드나무에 부는 바람2』/ 케네스 그레이엄 / 아이세움/ 26~27쪽
(3)『자동차 바이러스』 / 헤르만 크노플라허 / 지식의 날개 / 234쪽
--- 이 글은 제가 한겨레 훅에 쓴 칼럼에 내용을 덧붙여 쓴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