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화장실 문틈에 거미가 살고 있다. 4년 전 처음 봤을 땐 작았는데 지금은 거미치곤 꽤 큰 편이다. 나무재질인 문틀에 자기 몸 크기의 구멍을 용케 발견하고 그 주변에 거미줄을 쳐 먹고 산다. 항상 구멍 속에 들어가 있어서 그런지 눈에 잘 띄지 않는 편인데 올 여름에는 유독 자주 보였다. 그것도 한 집에 사는 생명이라 애정이 생겼다. 몸 색깔이 까매서 검둥이라 이름 붙였는데 아는 이들이 강아지 이름이란다. 물론 검둥이가 쳐놓은 거미줄은 없애지 않는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쳐놓으면 미관상(?) 보기가 좋지 않아 조금 걷어내지만 거미줄이 그 놈 생계수단이니 매몰차게 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때때로 거미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쳐놓은 거미줄을 보면 큰 욕심 없는 것 같고, 그 작은 구멍 속에서 그렇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내 사는 모습이 허황되고, 비루하고, 욕심이 그득할 때면 더욱 부럽다. 새벽에 화장실을 들락거리면 모습을 드러내는 우리 검둥이.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 읽은 책 속의 사람들과 검둥이가 닮은 듯싶다. 바다로 가로막혀 육지와 고립된 작은 섬, 그 섬에 가시나무와 탱자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공간에서 귀양생활을 해야 했던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들. 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섬은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고 재능을 꽃피우기도 했던 곳이다. 작은 거미줄로 먹고 살며 안분지족(?)하는 우리 집 검둥이 마냥.

 

 ‘맑은 새벽에 머리를 빗는 맛, 늦게 아침밥을 먹고 천천히 산보하는 맛, 환한 창가에 앉아 햇볕을 쪼이는 맛,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맛’ -본문 154쪽.

 

 조선 중기 문신 노수신이 읊조린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이란다. 좌절과 고통의 귀양지 생활을 긍정의 힘으로 이겨낸 노수신의 일면을 확인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어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지 모를 일이다. 특히 늦게 아침밥을 먹고 세월아 내월아 산보하는 맛이 뇌리에 꽂힌다. 하긴 책 제목부터가 부러움의 대상이다.『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정확한 뜻을 알고 나니 절해고도에 위리안치 당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책속의 님 들은 임금에게 내쳐지는 바람에 귀양살이를 갔다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절해고도라 일컫는 섬들은 가고 싶은 욕망의 대상이며 쉬고 싶은 오아시스이다. 여하튼 책을 읽는 내내 위리안치라는 말을 되새겼다. 이유는 모르지만 입에 착착 달라붙는 말이 아닌가 싶다. 위리안치, 위리안치, 위리안치.

 

 어디 제 맘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시간이 지나 늙고 병들면 사라지는 것이 인생인 걸. 하고 싶은 일은 미루다 미루다 결국 못하게 되고, 어쩔 수 없는 습관 같은 삶을 이어가야 하는 불쌍한 인생들을 생각하면 절해고도에서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삶의 기반을 닦고,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사람들은 의미 있는 삶을 산게 아닐까? 비록 귀양살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책 속의 인물들 중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 많았다. 노수신과 이대기 그리고 조정철과 안조원등. 하지만 그들의 인생은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삶의 의지와 예술의 혼을 일깨운 위대한 영혼들이다. 속세와 절연된 곳에서 자신의 발견하는 일은 결코 녹녹치 않을 것이다. 낯설고 거친 환경에서 오로지 홀로 남겨졌다는 고독을 이겨내고 참 삶의 길을 찾은 그들의 모습은 기계처럼 반복된 일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른다. 위리안치 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말이다. 잠시라도 유배 가는 심정이라도 좋으니 귀양지의 네 가지 맛을 맛보 싶다.

 

 다산이 부귀에 안주했더라면 이러한 책을 지울 수 없다던 정약전의 말은 유배지의 삶이 꼭 비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리라. 일상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삶이 넉넉해지진 않을 것이다. 조용히 내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지 못하다면 내 삶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섬에 유배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태초의 자연을 꼭 닮은 섬이라는 환경. 책은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쉽고, 간결하고, 재밌고, 풍성한 책이다. 사진도 좋고, 내용도 좋다. 여운도 남기고, 생각할 거리도 남긴다.

 

그래서 난 오늘 하루만이라도 우리 집 화장실 문틀에 위리안치된 검둥이가 되어 볼까한다.

유배, 섬, 절해고도

책세이 서평단 모집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북스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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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 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2011년 8월 26일 펴냄

 

■ 하늘 끝 땅 끝 너머로 쫓겨난 사람들,

그들의 흔적을 찾아 섬으로 들어가다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이종묵, 안대회 교수와 사진작가 이한구가 의기투합해,

유배객의 자취를 찾아 섬을 탐방하고,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묶은 책이다.

14개의 섬 유배지를(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 찾아,

그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인물의 삶과 예술의 흔적을 좇고 있다.

지금이야 쾌속선을 타고 편하게 가거나, 아예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섬도 있지만,

예전에는 몇날 며칠을 파도에 시달리면서 가야만 했다. 죄인의 신분이었기에 유배지의 생활이 편할 리는 당연히 없었다.

예전의 유배객들은 비록 괴로웠지만, 유배지에서 학문과 예술을 얻고,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니 오히려 복된 일일 수 있다.
이종묵, 안대회, 이한구, 세 지은이는 유배객들이 고통 속에서 얻은 것을 조금이라도 같이 느껴보고자 섬을 드나들었다.

그리고 얻은 옛사람의 풍정과 학문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자 책을 엮었다.

■ 그들은 왜 외딴섬으로 쫓겨났는가?

.먼 옛날부터 유배(流配)는 사형 다음 가는 무거운 형벌이었다. 중죄를 저지른 자를 차마 죽이지 못해서 먼 곳으로 격리시키는 형벌이 유배였다.

유배형은 벌써 은나라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는데,

진나라와 한나라 때부터는 사형(死刑), 도형(徒刑), 장형(杖刑), 태형(笞刑)과 함께 다섯 가지 형벌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사기󰡕에 유배 기록이 보이므로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다.

유배형에 대한 기록은 조선 시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조선 시대처럼 많지는 않았다.

 특히 15~16세기에는 벼슬아치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유배를 당했다.

그 시대 이름난 벼슬아치 치고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그런데 시대가 뒤로 가면 갈수록 유배의 정도가 심해졌다. 유배의 장소는 서울과 더 멀어졌고, 궁벽한 곳으로 정적을 내몰았다.

나중에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로 유배를 보내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모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정쟁이 심해질수록 정적을 향한 미움과 탄압이 심해져서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추가 조치까지 적용되었다.

 

위리안치는 유배객이 머무는 집(적거지)의 지붕 높이까지 가시나무를 둘러치고 그 안에 유배객을 유폐시키는 형벌이다.

죄인을 외부와 완전히 격리시켜 개구멍 같은 작은 틈으로 먹을 것을 넣어 주어 목숨을 연장하도록 했으니 참으로 가혹하고 처참한 형벌이었다.

 
■ 절망의 땅, 유배의 섬

 

유배는 기본적으로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무기형이다.

 권력의 변화가 없는 한 대부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감옥에 갇히는 것보다 유배가 더욱 절망스러운 형벌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연히 유배의 섬은 절망의 땅이었다. 게다가 유배를 온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가족이나 친지, 벗의 도움이 없으면 매우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였다.

특히 중죄를 범한 경우 노비의 신분으로 떨어져 천민처럼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으므로 그 삶은 더욱 고단하였다.

절망의 땅에 도착해서는 유배의 고통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 그 섬을 알린 것은 유배객이었다

 

짧게는 20여일부터 길게는 27년까지, 비록 섬에 머문 기간은 제각각이었지만 유배객들이 가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궁벽진 땅을 알렸다는 것이다. 위도를 알린 이규보, 거제도의 고절치라는 지명을 남긴 이행,

나로도를 아름다운 글로 빛낸 조관빈, 백령도를 기록한 이대기, 흑산도의 수생생물을 기록한 정약전, 녹동항의 모습을 시로 남긴 신헌,

극변의 유배지에서 걸작을 남긴 김만중, 절절한 유배살이를 노래한 안조원. 유배객으로서의 삶이 없었다면,

그 섬들은 오늘날 우리에게 풍요로운 이야기를 전해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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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는 일부 사람들이 코스모스를 '살살이꽃'이라고 부른다. 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모습을 나타낸 예쁜 우리말 이름이지만, 코스모스가 표준어이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코스모스를 '길국화'라고 부른다. 길가에 잘 피는 코스모스에 참 어울리는 말이다. 산들바람이 부는 가을 길에 하늘하늘 흔들리는 코스모스를 보고 있자면 코스모스라는 거창한 이름보다는 살살이꽃이나 길국화 같은 친근하고 예쁜 우리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 -본문 116쪽.

 

 대학 다닐 때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내 말투가 북한 말 같다고 했다. 군대 훈련소에서도 그랬던 기억이 난다. 강원도 사투리가 북한 말투와 비슷해 처음 듣는 사람들 귀에는 충분히 그렇게 들리는가 보다. 요새도 가끔 내 말투가 여전히 사투리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낄 때가 있다. 역시나 말과 언어에 대한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사투리야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꼭 고쳐야 할 언어습관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쳐야한다. 그렇다면 고쳐야 언어 습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옛날 우리 백성들은 중국글자를 모르면 사람대접을 못 받았고, 왜정 때는 일본말 일본글을 모르면 아주 못난 시골사람으로 천대받았다. 그런 잘못된 역사는 아직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우리글은 바르게 못써도 부끄러운 줄 모르면서 영어는 글자 한자 잘 못 쓰면 크게 수치스런 일로 아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교육이고 정치고 문화고 제 갈 길을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길들여진 종살이본성을 뿌리째 뽑아버리지 못한 때문이다. 걸핏하면 외국손님 보기에 부끄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버릇도 우리가 마치 외국 사람들 위해 살고 있는 것처럼 알고 있는 종살이본성에서 나온 말이다.

-본문 199쪽.『우리글 바로쓰기-1』/이오덕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말과 서양말, 일본말에 엉망이 돼버린 우리말의 아픔을 외면하고 살고 있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사회전반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 외국말의 홍수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우리 표현을 휩쓸고 지나간다. 그리고 남는 건 국적도 없는 이상한 말들이다.『내 이름은 왜』에 등장하는 동식물들의 이름에서도 외국말로 인해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예쁜 우리말을 확인할 수 있다. 기억에 남는 이름으로 고니를 들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백조라는 말은 일본인이 만든 말이란다. 백조라는 이름에는 흰 고니만을 뜻한다. 고니무리에는 검은 것도 얼룩인 것도 있다는데 결국 백조라는 말은 고니무리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써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백조의 호수가 아닌 고니의 호수가 맞는 우리말이다.

 

 책에는 우리 동식물들의 이름의 뜻과 변천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말을 대신한 외국말로 불리는 동식물이 있긴 하지만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 우리 동식물의 이름은 순 우리말과 한자어 그리고 알타이어 계통의 말들에서 유래한다. 책은 그 변천과정에 대한 재밌고 유익한 내용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사용하는 동식물들의 이름에 참으로 많은 뜻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책은 곁에 두고 볼만한 가치가 있다. 누런 소라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황소의 참의미는 큰 소라는 뜻이고, 볼락은 보라색이라는 뜻에서 나왔단다. 아름다운 비단이라는 뜻의 보라 말이다. 해오라기의 해는 밝고 높고 으뜸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고, 참치의 원래 이름은 다랑어라고 한다. 책에는 이밖에도 우리의 많은 동식물 이름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한 나라의 언어는 그 나라의 정신이다. 책과 약간 동떨어진 내용일 수 있지만 난 책을 읽는 내내 우리말의 소중함을 생각했다. 무분별한 외국말, 외국어 열풍에 대한 경고라고 하면 너무 상투적일 수 있겠지만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우리말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외국어를 남발한다. 그에 알맞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정신이 곧 말이고, 말이 정신이다. 깨끗한 말, 누구든지 잘 알 수 있는 쉬운 우리말로 말을 하고 글을 쓰면 우리 사회는 저절로 환하게 밝아지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는 일이 올바르게 될 것이다. - 이오덕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