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두 마디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는 스파르타식 어법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 매력적인 어법의 절정은 아마도 마케도니아의 선전포고에 대한 유명한 대꾸일 게다.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복속시켜가던 필립 대왕이 스파르타에게 최후통첩을 보냈다. “즉각 항복하는 게 좋을 거다. 만약if 내가 군대를 이끌고 너희 나라로 들어갈 경우에는, 내가 너희의 농장을 파괴하고, 너희 백성을 도살하고, 너희 도시를 무너뜨릴 테니까.”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공식 답변은 딱 한 단어, “만약에if." 이 한 마디에 필립 대왕도, 그의 아들 알렉산더도 끝내 스파르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본문 55쪽.『진중권의 철학 매뉴얼 ICON』
진중권의 책 아이콘은 세상을 읽기 위한 개념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현재를 이해하기위해 새로운 아이콘을 적용하기 위해 먼저 아이콘들의 개념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선제조건이다. 특히 ‘라코닉laconic'이라 불리는 스파르타의 언어는 축약의 극치를 보여준다. 왠지 단순 명쾌한 수학적 언어와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개념이 확실하게 정의되지 않으면 모든 수식이 사상누각에 불과한 수학의 본질과 아이콘을 이해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다는 책의 의도가 묘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앤드루 제프리의 “수학의 마술사”는 수학에 관한 전반적인 개념서라 할 수 있겠다. 복잡한 계산이나 통계자료, 혹은 확률과 단위 변환, 비와 비율과 관련된 골치 아픈 문제들을 수학을 통해 간단 명쾌하게 해결하는 법을 제시한다. 물론 가장 중점을 두고 읽어야 하는 부분은 개념에 대한 설명임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무엇보다 현란하지만 딱딱하고 어려운 수학관련 책들과는 달리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 책이다. 게다가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누가 읽던 도움이 될 책이라는 범용성을 지닌다. 단순 명쾌한 결론을 도출하기, 계산 과정을 최대로 효율적으로 설계하기, 풀이 방법의 다양성 확인하기라는 수학의 즐거움을 술술 읽히는 문장으로 잘 설명해 놓았다. 챕터 별로 정리돼 있는 연습문제들도 풍성하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테니스 대회의 남자 단식 경기에 출전하려는 사람이 114명이라 가정합시다. 64강전, 32강전, 16강전, 준준결승전, 준결승전, 결승전 같은 본선 경기를 치르기 전에는 예선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모두 몇 경기는 치러야 하는지 계산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본문 18쪽.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모두 113회의 경기. 이유는 한 선수만 대회에서 우승하므로 113명의 선수가 탈락하면 된다. 그러니 경기당 1명씩 탈락하므로 113회의 경기를 치르면 대회가 끝난다. 토너먼트 문제를 이렇게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나름 수학 좀 한다고 자만했는데 그도 아니었다. 결국 수학적 응용력이나 창의력은 수에 대한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다양한 풀이 방법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 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숫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살아가면 많은 부분 손해를 본다. 전혀 근거가 될 수 없는 통계자료를 맹신하고, 오류투성이의 확률에 기대어 삶을 낭비할 수도 있다. 수리적인 해석으로 더 없이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 일쑤이며, 계산기만 뚜드리다 틀린 결과를 얻기도 한다.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 적용되는 철학과 사회사상에 관심을 두듯 숫자로 가득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수학과 친해질 필요가 있다. 매일 접하는 수많은 통계와 자료들을 채우는 숫자 공포에서 벗어나야만 맨살 그대로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단순히 학교 공부를 위한 수학공부는 문제유형의 반복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쉽게 수학에 접근할 수 있는 같은 종류의 수학 교양서가 많이 출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수학의 마술사”가 많이 읽혀야 하는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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