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정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기껏해야 부분적으로밖에 인간 노릇을 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인성의 본질적인 부분을 내버려야 할 지경에 놓여 있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과 집단들 사이의 실리적 교환을 이상으로 삼는 사회를 세운다는 것은 마르쿠제의 말을 빌리자면 재물의 추구 그 자체를 목표로 삼는 ‘일차원적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본문189. 『반 자본 발전사전』 볼프강 작스외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는 교리로 무장한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에 젖어 있다면 작금의 현실이 별로 대수롭지 않을지 모른다.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는 경제학의 법칙은 바로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이 이득을 놓고 벌이는 시장에서 모든 경제 문제가 조절되고, 견제되고, 균형이 형성된다는 주장만 반복하면 만병통치약이 돼버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곳곳에 일차원적인 인간들이 난립한다. 개개인으로 일차원적인 인간으로 거듭(?)난다면 별 상관이야 없겠지만 이 나라의 재벌 총수들이 너무도 일차원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경영자가 재물만을 추구하고, 이득만을 고민할 때 대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도구가 되고 수단이 된다. 고등학생도 아는 인간 존엄성의 기본 원칙인 목적으로써의 인간이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인간이 그 자체로 목적성을 상실하고 도구로 전락하는 세상이 바로 양극화의 극단에 놓인 사회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가 태동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줄곧 제기된 자본주의에 대한 궁극의 문제의식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본이 끊임없이 자본 증식만을 위해 작동하기 시작하면 인간, 특히 노동자는 분명 도구화 된다는 것. 이렇듯 본질적으로 자본주의는 인간의 도구화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소유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노예와 주인이라는 이분법은 변하지 않는다는 본질을 이해하면 방법이야 있지 않을까?

 

 바로 지금이 자본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기임은 확실하다. 그런 점에서 기업의 지배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이 책은 인식 전환의 촉매 역할을 충분히 한다. 주식회사의 형태로 가동되는 대기업의 경영권을 노동자에게 돌려준다는 다소 급진적인 주장이 담겨 있지만 찬찬히 읽어보면 그도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어차피 주식회사의 소유권은 주주와 경영자 그리고 노동자에게 분산되어야 하거늘 우리나라 대기업은 재벌이라는 소수의 경영자에게 소유돼 있다. 일방적인 소유권의 독점은 노동자를 도구화, 노예화 시키고 이는 바로 현실에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림자의 원인이다.

 

 생각하면 주주가 주식회사의 몸이라면 노동자야말로 활동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주주들을 주식회사의 주인이라 하고, 경영자를 대리인이라 하며, 노동자를 피고용인이라 한 것은 애당초 범주를 잘못 적용한 것이다. 그것은 주인과 노예의 구분을 경영자와 노동자에 적용한 것이지만, 주식회사는 주인이 있을 수 없고 오직 주체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주는 주체가 아니다. 주체는 언제나 활동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에서 활동의 주체는 노동자다. -본문 307쪽

 

 따라서 저자는 두 가지를 주장한다.

첫째, 주식회사의 이사는 종업원 총회에서 선임한다.

둘째, 주식회사의 감사는 주주 총회에서 선임한다.

 

 이렇게 기업의 경영권이 기업의 실체인 노동자에게 돌아가면 주주와 노동자, 경영자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최선의 기업환경과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된다는 것이 저자의 핵심 주장이다. 일견 불가능해 보이지만 책을 찬찬히 읽어보면 생각이 바뀐다. 철학자의 눈으로 자본주의, 특히 주식회사의 맹점을 정확히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아 챌 수 있다.

 

 노동자가 경영권을 갖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이야기하기전에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을 고민하자. 노동자의 기업 경영권 소유라는 것이 쉽게 현실화되는 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풍성한 선택지를 하나 얻었다는 건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의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면 분명 이 책은 고민의 강도를 높이고, 접근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 있다. 무엇보다 철학의 개념들이 포함된 글이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기업의 소유와 노동자의 현실, 그리고 우리나라 대기업의 문제들과 아울러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얻고자 한다면 일독 권하는 바다.

 내게 연애 소설은 쉽지 않은 책이다. 독서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이상하게 연애, 사랑 뭐 이런 소설은 손이 가질 않는다. 최근에 읽은 연애 소설이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이다 보니 남녀의 사랑이 담긴 소설을 거의 2년 만에 읽은 셈이다. 책을 읽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결론이 궁금해 참기 힘들었다. 그냥 다 뛰어 넘고 뒷부분을 읽을까 하는 유혹에 꽤 힘들었지만 그냥 꾹 참고 끝까지 읽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읽으면서 꽤 닭살이 돋았다.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우연의 요소가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바람에 당황스럽기도 했다. 몇몇 장면에선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개인적인 판단일 뿐이다. 전체적으로 책은 재미있었다. 가볍게 그리고 말랑말랑하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인문 사회학 관련 책에 길들여 진 내겐 감동의 크기가 작을 수 있으나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엔 달리 다가갈 책이다. 뭐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책을 읽는 내내 생각한 건 책 내용을 드라마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정작 나 자신은 드라마를 보지 않은 지 몇 년 됐지만 책을 영상으로 만들어내면 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듯싶다. 여고생을 사랑한 선생님, 그 여고생이 선생님이 되고 그 여선생을 사랑하는 제자. 그리고 우연이니까 개연성을 제쳐두고 형성되는 주변의 인간관계들. 영상으로 표현되면 지극히 아름다울 여러 장면들―예를 들면 허브공원에서 문혁과 유주―과 자극적인 큰 사건들과 연결되는 충격적인 장면들―말미에 발생하는 방화와 물리선생님의 때 이른 죽음 따위―이 적절한 시나리오 과정을 거치면 꽤 주목받는 드라마로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브르타뉴어나 웨일스어 같은 켈트어, 마로리어나 하와이어 같은 폴리네시아 언어에서는 동사가 문장의 처음에 온다. “사랑해―나는―너를”과 같은 방식이다. 나보다, 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이다. 아, 그들에겐 사랑하는 게 사랑보다, 사는 게 삶보다 먼저였을 것이다.

-본문 276쪽 / 두근두근(몸에 관한 어떤 산문시) / 권혁웅

 

 유주를 사랑한 선우는 사랑을 표현했어야 옳다. 살다보면 이리저리 재보는 것 보다 직접 부딪혀야 하는 경우도 있는 법. 그들의 사랑이 슬픈 건 우유부단한 선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비극적인 장면이라야 이야기가 계속 전개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선우의 답답함이 안쓰럽다. 왜 사랑하는지, 내가 사랑해도 되는 건지는 중요하지 않은데.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나 삶이나 현실적 문제보다 먼저라고 생각했으면 둘 사이 사랑이 그리 밍밍하진 않았을 듯싶다. 그렇게 된다면 소설 뒷부분이 사라진 학교 안에서 벌어진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이야기가 더 많아지겠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그래서, 내 맘대로 되지 않아서 사랑은 항상 많은 이야기들 만들어 내는 건 아닌지. 사랑은 이래서 참 어렵다. 그리고 연애 소설도 나에겐 덩달아 어렵다. 그래도 읽기 시작하면 궁금해지는 건 역시 사랑이라는 주제가 가진 파급력 때문일께다.

초식남(草食男, 일본어: 草食系男子)은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명명한 용어로서, 기존의 '남성다움'(육식성)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면서도, 주로 자신의 취미활동에 적극적이나 이성과의 연애에는 소극적인 동성애자와는 차별된 남성을 일컫는다.-위키백과

 

 진화의 시계가 거꾸로 가는 건지, 아니면 진화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남자라면 모름지기 번식에 성공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을 남기는 것이 생물학적인 본능의 으뜸일진데 요새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기술 문명의 눈부신 발전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마저도 마비시키는 강력한 힘을 지닌 걸까? 남성이 종족번식의 열망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세대가 수없이 거듭되면 그 수가 점점 줄어들어 마지막엔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70억이라는 지구촌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초식남 현상은 먹고 살기 빠듯한 현실에서 결혼은 언감생심이요, 자손 번식은 돈이 많이 드는 일이라 애초에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것이 맘 편하다는 남성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하긴 이성에게 구애하느니 차라리 동영상으로 대신하고 남아도는 시간과 돈을 취미나 레저에 사용하는 것도 그리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기술 발전을 통한 풍요로움은 생식의 본능마저 사라지게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보면 희한한 현실이다. 풍요롭고 안락한 인간의 거주지에서 편하게 살아가긴 하지만 거세당한 채 길러지는 애완견과 초식남이 겹쳐지는 건 왜인지.

 

 동물세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인간세상의 초식남 현상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번식과 생존을 최대 목표로 살아가는 자연계의 생명들에게 생식의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심리를 진화론으로 해석하는 진화심리학에선 초식남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까? 하긴 초식남의 숫자가 절대 다수가 아닌 상황에서 대수롭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고 하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런 현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 진화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 본다. 인류의 생존이 걸린 문제니까. 그럼 진화는 뭐고 생물학적 본능은 또 뭔가?

 

 사실 몇 년 전부터 다윈의 진화론을 떠올리면 자꾸 사회진화론을 주장한 허버트 스펜서가 아른거린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아무래도 내 의식의 편향성은 불평등한 현대사회를 향하고 있는 듯싶다. 유능하면 살아남고 무능하면 도태되는 적자생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사바나, 그곳이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가 아닐까? 진화의 방향을 따져 묻는 다면 어느 쪽이 옳은지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만들어 왔고, 만들어 가는 인류문명이 과연 지구 생태계의 모든 생물들에게 바람직한(?)진화의 방향을 설정해주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아니라 말하겠다. 인간이 발전과 개발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자연에 대한 폭력과 이로 인해 사라져가는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의 신음은 진화의 끝을 알리는 경고가 아닐까 싶다. 결국 우수하면 살아남고, 열등하면 도태된다는 사회진화론의 마지막은 똑똑하기만 한 바보 인간들에 의해 지구 생명체 전체의 파멸로 연결되고 이것이 진화의 끝을 장식할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자연 생태계와 그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물들에 대한 책들은 많다. 하지만 재밌고 유쾌한 책은 좀 드물다. 그런 면에서『다윈의 동물원』은 참 재밌는 책이다. 다양한 동물들의 이야기를 인문학적인 지식으로 풀어낸 지은이의 글 솜씨는 가히 일품이다. 열렬 독서가인 작가의 박학한 지식과 지혜가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절묘하게 버무려져 간결하면서도 맛깔스런 글들로 진화했다. 좋은(?)진화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께다. 인문학적 환경에 선택적으로 적용되는 동물이야기. 혹은 생명의 진화론적 환경과 접목되는 인문사회이야기. 책을 읽고 느낀 감정이 바로 그거였다.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겹침이 가능하다는 건 아마 글쓴이의 내공이 그만큼 높다는 증거가 아닐까? 김보일 선생님의 책은 다양한 읽을거리가 존재한다. 좋은 책에 대한 정보도 많다. 동물들 식물들 이야기를 사람 사는 일들과 매끄럽게 연결시켜 흥미진진한 글들을 만들어냈다. 먹어야 하고, 번식해야 하고, 놀아야 하고 마침내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생명체의 본능에 관한 이야기들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과학이 답답함과 고리타분함을 버리고 유쾌해지는 순간 초식남에 대한 궁금증도 가벼워졌다. 아주 단순하게 결론을 내려 본다면 초식남은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돌연변이라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진화를 포기하고 망각을 선택한 올름(본문 42쪽)처럼 초식남은 생식을 포기하고 즐거움을 선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