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있다. 후배 녀석과 자주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가는 곳이다. 자주 가는 만큼 대학생뿐만 아니라 대자보나 게시판의 알림 글도 눈여겨 볼 때가 많다. 간혹 시간이 맞으면 대학 방송국 라디오 방송도 청취한다. 요샌 축제 기간이라 그런지 밤이면 주점에 대학생들이 북적이고, 여기저기에서 건배와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빈번하게 느껴지는 건 서글픔이다.

 

 게시판 혹은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대학 전광판은 온통 취업에 관한 소식뿐이다. 어디어디에서 인턴을 몇 명 뽑고, 무슨무슨 자격이 필요하고, 모자격증 학원을 다니면 취업이 100%라는 식의 알림 글들이 서글프다. 대학 방송국의 방송 주제나 멘트 또한 의당 대학생이 들을 법한 진지한 고민이나 사회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그저 그런 가십꺼리로 채워진다. 며칠 전 유럽 프로 축구에 관한 내용으로 그 날 방송분을 가득 채운 방송은 꽤나 서글펐다. 분위기가 고조된 축제에서 울리는 건배의 외침은 축제가 끝난 뒤 다시 가혹할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스스로를 위로하는 서글픈 외침으로 들린다.

 

  Mr. Children 이라는 일본 그룹의 노래 ‘쿠루미’라는 노래 가사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 잠그기 시작해 깨닫고 보니 하나가 남은 단추......”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슬픔도 기쁨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들을 떠올리며 어느 순간 누군가 내게 상냥함을 보여도 비아냥거림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가사는 청춘을 청춘답게 보내지 못한 중년의 씁쓸함이 느껴진다. 무엇이 그토록 자유로워야 할 청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 경기 불황과 청년 실업이 합작한 취업이라는 거대한 그물망에서 허우적거리는 청춘. 하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현재 청춘은 조급하다. 실패할 수 있는 아니 실패하고 싶은 용기가 부족하다. 다르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되는 것을 불안해한다. 어째서 두려워하는가? 지금 잘못 잠그면 10년 20년 후에 반드시 단추 하나가 남아 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며 왼쪽에서 생각하고 살아감의 행복을 이야기 하는 김규항. 작은 실천으로 세상을 고치며 행복하고 재밌는 삶을 실천하는 김여진. 극소수의 부자가 아닌 대다수의 노동자로 살아야 할 청춘들에게 정의로운 노동의 가치를 전파하는 하종강. 이들과 또 다른 여섯 명의 멘토들에게 청춘의 첫 단추를 제대로 잠글 수 있는 법을 일깨워주는 책이 바로 『통하면 아프지 않다』이다. 새로운 도전에 주저하지 않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은 그래서 우직한 용기와 외로움을 이겨내는 인생의 길을 제시하는 그들은 조급하지 않았다. 즐거움과 재미를 찾아가는 인생이었다.

 

 청춘은 자격증을 따고 실력을 쌓아 좋은 직장에 취업한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의미 없이 스스로를 자책하며 마시는 술로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춘은 유럽 프로 축구 소식에 쏟는 열정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할 용기를 갖고, 혼자라도 무식하게 스스로의 길을 찾아내고, 조급함을 버리고 느긋하게 인생을 고민할 수 있는 것이 청춘이다.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길 거부하고 자신만의 빛나는 삶을 재밌고 즐겁게 빚어내는 것이 청춘이다. 서글픔 따위 걷어내자. 그대는 청춘이 아닌가?

타인이 곧 지옥이라고 했다. 인간 사회는 나와 타인이라는 관계망이 본질이다. 그런 면에서 개개인의 욕망 또한 타인을 배제한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욕망이 어디까지나 개인이라는 단위에서 끝나 버린다면 그리 골치 아프지 않다. 다양한 욕망의 본질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과 내가 속해 있는 사회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욕망의 기저에 꿈틀대는 타인과 사회. 결국 욕망으로 인한 나의 고민은 바로 사회를 그 출발점으로 삼게 된다.

 

 김두식 교수의 글은 쉽고 재밌다. 글이 맛있다고 표현하면 좀 이상할까? 하지만 개인적으로 맛있다는 표현 외에 딱히 어울리는 말을 찾을 수 없다. 그만큼 그의 글은 매력적이다. 욕망에 관한 이야기를 이만큼 맛깔스럽게 쓴 글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잘근잘근 씹어 읽으면 몸에 좋은 보양식이 되리라 확신한다.

 

 잘 사는 건 어떤 것인가? 그야 내가 원하는 걸 이루며 살아가면 잘 사는 것일께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해 나의 욕망은 무엇인가? 돈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화목한 가정을 일구며 노년을 풍요롭게 보내는 것.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이런 상투적인 욕망이 과연 나의 욕망인가라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할지에 따라 우리의 욕망은 그 실상을 한 꺼풀 벗겨진다. 맞다. 그런 욕망이란 사회가 만들어준 욕망이다. 즉, 만들어진 가공의 욕망이라는 말이다. 내 존재의 근원에서 들려오는 욕망하고는 거리가 멀다.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주입되는 욕망. 바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사회적 욕망을 오해와 착각이라는 양념으로 버무려 나의 욕망으로 치환한다. 그래서 성공한 40대 중반의 남자들이 불륜이라는 로맨스에 잠자고 있던 근원적인 개개인의 내부 욕망을 투사한다. 또 그래서 중산층의 허울뿐인 욕망이 사회의 거대한 담론으로 가공된다. 결국 왜곡된 욕망은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로 변태한다.

 

 70, 80년대에는 콘크리트로 지은 몸체에 한옥의 기와지붕을 올려놓은 건물들이 우리의 눈을 괴롭혔다. 건축양식과 재료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닌데, 자연 재료를 전제한 전통적 양식을 콘크리트로 실현했으니 기괴한 느낌을 줄 수밖에, 모든 건축은 그것을 짓는 사람들의 이상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본문 267쪽. /『호모 코레아니쿠스』/ 진중권

 

 책에 언급된 사자 가죽을 쓴 당나귀와 콘크리트 건물의 한옥 기와지붕이 묘하게 겹쳤다. 건축의 재료와 양식이 일체감을 지녀야 하듯 사람의 삶 또한 자신의 고유한 욕망과 일체감을 가져야 한다. 잘 사는 건 사회가 만든 가공된 욕망의 채움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울타리에서 벗어나 무엇보다 나 자신도 개개인의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울림에 충실해야 한다. 조건이고 뭐고 계산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하고 싶으면 사랑해야 한다. 보수고 뭐고 계산이 먼저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적당하게 맞춰 사는 삶이 영원하리란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이다. 언제까지 내 몸에 맞지도 않은 남의 욕망을 머리에 얹고 살아갈 것인가? 언제까지 나의 이상이 아닌 타인의 이상으로 기괴한 삶을 살아갈 것인지.

 

 나란 존재를 인정하고 내면의 울림에 충실해야 한다. 깊은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 어떤 욕망이든 그 욕망은 나 자신이고 나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욕망을 억누르는 법을 현명하게 익혀나가듯, 욕망을 표현하는 법도 현명하게 배워나가야 한다.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나 그리고 나의 욕망을 인정하자. 그런 면에서 김두식 교수의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화창하지만 후덥지근했던 오늘이었습니다. 이불을 박차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게으름이 싫지 않았습니다. 꼼지락 거리며 망상과 몽상을 오가던 중 잠옷 차림으로 택배 아저씨께 시집을 한 권 받았습니다. 류시화의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훈련병시절 진중문고에서 발견하고 제대 후 다시 사서 읽었던 책입니다. 그렇게 처음 류시화를 만났고 한 때 이렇다 할 이유도 없이 류시화를 멀리했습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등등 그의 시와 글은 냉혹하고 참담한 현실을 설명하기엔 너무 나약해 보였습니다. 특히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에서 자주 보였던 숙명론은 젊은 혈기로 넘치던 제게 조금은 낯설었나 봅니다. 당시 제겐 주어진 운명보다 저의 오기와 오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5년 침묵의 시간으로 빚어낸 이번 류시화의 시는 무게감이 느껴집니다. 울림이 깊게 퍼지는 힘이 느껴집니다. 잠깐이지만 시인을 멀리 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습관이 돼버린 운동을 마치고 간만에 공원 벤치를 찾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올해 처음으로 벤치에서 뭔가를 읽었네요. 버릇처럼 책을 뒤적이면 마음에 드는 시를 읽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많은 흉터들에도 불구하고 마음 깊숙이 가시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걸 보면 -본문 84쪽.

 

 

며칠 동안 날이 바짝 선 채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제 자신이 하찮게 느껴집니다. 흉터가 많아도 가시는 없어야 하거늘 흉터도 없으면서 가시만 잔뜩 만들어 내는 제가 결코 아름다운 사람일리 없겠지요. 아름답지 않으니 저는 누군가를 진정 사랑해 본적도 없는 사람일 겁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의 가슴에서 울리는 노래를 들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 그 사람 가슴 안의 시를 듣는 것 / 그 시를 자신의 시처럼 외우는 것 / 그래서 그가 그 시를 잊었을 때 / 그에게 그 시를 들려주는 것-본문 32쪽.

 

 

그래서 제 생의 남은 시간에는 타인의 가슴에 새겨진 시를 찾아보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울리는 노래를 듣겠습니다. 노력을 한다면 저도 꽃잎 하나가 날려도 봄이 줄어듦을 느끼는 시인의 감수성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뭉툭한 두 손 외에는 아무 도구 없이 연어를 잡으로 가는 곰(본문 105쪽)처럼, 오두막이 불타니 달이 보인다고 쓴 시인(본문 104쪽)처럼 생의 본질을 향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시인의 시는 제게 참회의 시간을 주었습니다. 추하디 추한 세상이라고 자조하며 살던, 세상은 그렇게 더럽고 치사하다고 냉소하던 저를 정화시켰습니다. 클레의 그림 속 머리 큰 신천사 마냥 절망적인 패배 속에서도 희망의 별빛을 놓치지 않으렵니다. 그렇게 저를 단련하면 저 또한 밤을 견디고 사랑했으나 소유하지 않는 것들을 남기는 삶(본문 85쪽)을 살아가겠지요.

 

 

그는 밤을 견디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샤갈의 밤하늘을 염소를 안고 날아다니는 걸 보면 -본문 84쪽.

 

 

지금 저는 창밖의 캄캄한 하늘로 염소를 안고 날아갑니다. 시인 덕분에 오늘 밤 삶과 생의 환희와 깨달음을 조금 맛 볼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