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탐정은 버스에 타서 울고 있다. 옆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최선을 다해서 모르는 척하고 있다. -본문 352쪽.

 

 

 

 어른이 된다는 것. 슬프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남의 슬픔을 모른척하는 능력을 키워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질식할 것 같은 현대 문명 속의 어른이란, 주적주적 내리는 비를 배경으로 한 잿빛 하늘 마냥 순수함을 가린 우울함이다. 그래서 외면과 회피의 다른 이름이 이 시대의 어른이다. 측은한 심정으로 소년탐정을 바라본 나의 시선이 곧 나 자신으로 향할 때 말할 수 없이 거대한 슬픔과 연민이 느껴졌음은 당연하다. 왜냐면 나의 유년기 상상력과 당당함 또한 잿빛 빗줄기로 바뀌었다는 현실을 깨닫게 됐으니 말이다.

 

 

 

 나는 ‘적을 이롭게’ 하거나, 혁명을 하기에는 너무나 허술하고, 나태하고, 교만하고, 가부장적이며, 이율배반적이고, 체제내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혼돈스럽고 기기묘묘하며 복잡다단한 양심을 어떻게 규명하겠다는 것인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심히 궁금하고 우려스럽지만 한편 기대된다. 잘됐다. 나도 이 기회에 모 아니면 도, 단순명료한 정체성을 갖고 싶다. 정말이지 늘 답은 없이 질문투성이인 영혼이며, 배신과 우여곡절의 연속인 나의 삶이 이젠 나도 견디기 어렵고 싫다. -본문 125쪽. 『꿈꾸는 자 잡혀 간다』/ 송경동

 

 

 

 그렇다. 인정하기 싫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도 잡혀가는 세상이다. 내안의 나와 끊임없는 혈투를 통해 남의 슬픔까지도 나의 슬픔으로 치환할 수 있는 사람은 감히 잡혀갈 각오까지 해야 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래서 소년탐정 ‘빌리’는 꿈꾸는 대가로 10년 동안 정신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혼돈으로 가득한 세상. 상상을 초월한 기기묘묘한 사건들이 펼쳐지는 고담시. 소년탐정은 끝없는 슬픔을 안고 어른이 되지 못한 고통으로 몸부림친다. 유년기 범죄해결의 최전선에서 이름을 날린 그가 동생의 죽음으로 얻는 것은 정신병자라는 낙인이다. 동시에 그가 얻은 것은 성숙하지(?) 못한 영혼을 지닌 절름발이 어른이다. 모호한 혼돈 속을 살아가야만 하는 어른의 정신세계는 단순명료한 타협의 정신일진대 어쩌다 ‘빌리’는 순수함과 상상력이 충만한 유년기의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악당들이 넘쳐나는 현실의 미스터리들을 유년기의 눈으로 바라본다.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지, 그렇지 않은지는 직접 읽어보시라.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곧 깨닫게 될테니 말이다.

 

 

 

 죠 메노의 소설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접했던 소설 “유령비행기”는 일상에서 비현실성을 발견하는 다소 색다른 소설이었다. “유령비행기”에서 작가가 보여준 비현실적인 일상이 어쩌면 제대로 된 현실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이 시대의 이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그 중심엔 유년기의 눈과 사고방식이라는 새로운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전작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소년탐정 ‘빌리’는 결국 어른이 된다. 그래서 소설은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낸다. 하지만 ‘빌리’가 일반적인 어른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가 소설 속에서 걸어가는 길은 지독한 자기 성찰의 가시밭길이다. 그 길을 걸어 나오는 순간 ‘빌리’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된 것이다. 실패와 좌절을 통해 나태하고 무능하고 타협을 일삼는 그런 어른이 아닌, 상상력과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 말이다. 남의 슬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어른. 그리고 그 슬픔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어른으로 말이다. 그래야 ‘페니’와 ‘빌리’의 사랑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읽어보시라. 작가의 기발한 통찰력으로 살아 숨 쉬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들 것이다. 소년탐정의 실패는 꿈꿀 수 없어진 우리 어른들 모두의 실패다. 실패는 딛고 일어서야 아름답다. 상처가 꽃이 되듯 말이다.

티베트.

 

 무의식적으로 티베트를 생각하면 ‘라다크’가 떠오른다.

그만큼 헬레나 여사의 책 “오래된 미래”가 내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척박한 자연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순박하고 순수하게 살아가는 라다크 사람들은 티베트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내 머리 속에선 작은 티베트라 불리는 라다크가 티베트와 많은 부분 겹치는 이유일 게다. 자연 그대로의 삶. 어쩌면 물질문명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들의 삶은 소비와 낭비로 찌들대로 찌든 현대인의 모범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생존해 가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나는 또 검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했다. 검약이라는 말은 서구에서는 늙은 아주머니들이나 자물쇠가 채워진 식료품 저장실 등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라다크에서 검약은 이 사람들의 번영의 기초가 되는 것인데, 아주 다르다. 제한된 자원을 조심스럽게 쓰는 것은 인색함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것이 검약의 본래의 뜻, 즉 작은 것에서 더 많이 얻어내는 일이다.…(중략)… 어떤 것도 그저 내버리지는 않는다.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은 짐승에게 먹일 수 있고, 연료로 쓸 수 없는 것은 땅에 거름이 될 수 있다. -본문 45쪽.『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물질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현대인에게 쉽지 않다. 하지만 곧 다가올 시간들은 많은 것들이 부족한 삭막한 시대를 만들 것이다. 화석연료의 고갈과 농지의 사막화는 곧 인류에게 큰 시련을 안길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가? 몸에 검약의 습관이 물들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이 바뀌어야 함은 당연하다. 물질과 소비의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을 꼭 티베트나 라다크의 생활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일차적인 습관은 바로 명상을 통한 자기 성찰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명상과 성찰을 통한 마음의 평정심을 얻기란 만만치 않다. 문명화된 도시 생활, 온갖 편리함으로 즐비한 일상에서 과연 수도자의 명료한 정신상태가 가능할까?

 

 여기 읽는 것만으로도 수행되는 책이 있다. 책장을 넘겨 글자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지는 책. 편안함과 고요함 그리고 진정 내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책이 말이다.

 

 명상이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멈추는 일입니다. 구르는 눈덩이를 더 굴리는 일을 멈추고 자전거 페달 밟기를 멈춥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아무 일도 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더 이상 어떤 짐도 없습니다. 진리가 모든 것을 아우릅니다. 그 순간부터는 진리가 기꺼이 기존의 토대, 모든 슬픔과 괴로움의 토대를 부숩니다. 진리는 우리를 위해 그 일을 합니다. 우리는 그저 모든 것을 멈추기만 하면 됩니다. 명상이란 그런 것입니다. -본문 176쪽.

 

 처음 책을 읽을 시작했을 때, 그 때는 깨닫지 못했다. 명상과 자기 수행에 관한 책은 어렵다거나 공허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데 티베트 스님이 쓴“노프라브럼”은 읽기 쉽고 이해하기도 쉽다. 그리고 읽는 순간순간이 명상이다. 글자들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책 사이사이 티베트 아이들을 찍은 사진은 사진 자체로 눈이 맑아지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온갖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내려놓음이라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해결된다. 궁극적인 해결이야 집착을 버리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삶이겠지만 단지 가볍게 문제들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꽤 묵직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모든 것에 대한 자유로움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검약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의 주기와 인간의 삶이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생명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살아 있다. 최소의 소비만으로도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건 내려놓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들. 결국 완전한 삶, 지구를 위한 삶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고민하면 그 답이 보인다. 티베트 스님의 가르침대로 말이다.

 

 뭘 그리 움켜쥐고 놓지 못하는 가? 뭘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그토록 신경을 곤두세우는 가? 백 년도 살지 못하거늘 어찌 천 년의 근심으로 살아가는 가? 당신이 가진 것이 그리 많은 가? 당신은 얼마나 잘났는가? 언제까지 계산만 할 것인가? 그냥 내려놓아보시라.

 

"내려놓기만 하면 노프라브럼이다."

 먼 미래 세계는 세 개의 블록으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에너지 수급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군비를 증강 시키고, 강대국은 안전한 태양 에너지 공급을 위한 명분으로 약소국에 대한 무력간섭을 멈추지 않는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계에 항구적인 평화의 길은 가능할까? 이 때 솔레스타 비잉이라는 무장 단체가 출현한다. 기존의 무기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건담으로 분쟁지역을 제압해 가며 인류의 전쟁과 폭력을 근절하고자 하는 솔레스타 비잉. 무력을 사용함으로써 무력을 제압한다? 그래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건담 더블 오”는 역설적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부의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을 구하기 위해 억만장자들이 의미 있는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의 소설.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의 슈퍼리치들과 솔레스타 비잉은 닮았다. 폭력을 통한 폭력의 제어라는 역설과 부를 통한 세계의 구원이라는 역설이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다. 시스템으로써의 자본주의의 오류가 속속 드러나는 현재, 그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상상을 초월한 갑부들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소설은 꽤 참신하다. 현실화 된다면 분명 최악으로 향해가는 지구촌이 미래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폐단을 완벽히 해결 할 수는 없다. 뭐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건담 더블 오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듯 소설 속 슈퍼리치들의 대전환 프로젝트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신선한 건 소설 속 주인공인 억만장자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래서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현실과 허구의 균형이 자주 무너지는 신기한(?) 책읽기를 선사한다. 차근차근 읽지 않고 중간부터 읽어 나간다면 소설이 아니라 사실로 이해할 만큼 리얼하다. 그래서 소설의 허구와 현실의 실재감이 오락가락한다. 그렇다면 소설에선 왜 미국의 억만장자들이 막대한 돈을 쏟아 부으며 미국의 체질을 바꾸려 했을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의 경제적 지원.

교육과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 확보.

기후, 환경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지속가능한 경제체제의 기초 확립.

인권보장과 성, 종교, 인종 차별의 철폐.

독점화된 정치권력을 대중에게로 분산. 등등

 

 슈퍼리치들이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개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건 지속 가능한 자본주의를 원했기 때문이다. 견고한 자본주의를 통해 부의 창출이 꾸준히 가능한 경제,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선택한 방식은 기존의 거대 자본들이 사회를 장악한 방법과 유사하다. 엄청난 돈을 투자해 언론 미디어를 장악하고, 후원금을 통해 정치권력을 견제하고, 막대한 돈으로 사회시민단체를 만들어 미국사회 전반을 개혁해 나간다. 물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하며 소설을 끝을 맺는다. 그래서 불편했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데 필요한 실제적 힘은 돈에서 나온다는 사실 때문에 말이다. 인간의 의지가 가미되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인간만으로 부족하다는 것 바로 그 부분이 소설의 한계로 보였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남유럽 경제 위기는 요즘 본궤도에 올랐다. 우리나라 경제도 가계부채와 경기침체로 곧 폭발할 화산처럼 불안불안하다. 미국도 중국도 경기침체의 그늘이 넓게 드리워져있다. 어떻게 해야 이 난국을 극복할지 쉽게 이거다고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전반적인 사회 개혁이 필요한 시기는 확실한 것 같은 데 그 방법론은 사람마다 다르다. 또 너무 긴 시간 자본주의의 달콤함에 젖은 사람들에게 현실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반면 억울하게 당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틀에 길들여져 있다. 과연 부자들의 참여함으로써 지옥 같은 현실이 유토피아로 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단언하진 않겠다. 그냥 개인적으로 책에 나온 대로 억만장자들이 행동해준다면 참 고맙겠다. 현실성이 전혀 없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긍정과 희망으로 책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읽는 동안 소설적 공상에서 즐거웠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행복했다. 여기까지다.

 

 건담 더블 오의 주인공들은 인류의 전쟁을 근절하고 영원한 평화를 위해 자신들의 폭력이 정당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할 길 앞에는 상상하기 힘든 처절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 속 슈퍼 리치들의 대전환 프로젝트는 참담한 미국의 현실을 바꿔내고 말았다. 물론 난관과 부딪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숨 막히는 억압, 없는 자의 절망과 고통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슈퍼리치만 세상을 구하지는 않는다. 현실을 깨어 있는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생각하며 행동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많으면 유토피아와 근접한 세상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