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첼리스트 ‘카잘스’가 그랬다. 삶의 가장 큰 의미는 나를 둘러싼 자연과 교감하고, 나와 내 주변의 모든 것들에서 경의와 기적을 느끼는 것이라고. 아직 귀가 뚫리지 않아 카잘스의 연주에서 그가 말한 경이와 기적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책을 통해 크게 감동받은 카잘스의 경이와 기적을 느껴보기 위해 노력정도는 하고 있다. 물론 책을 읽으며 말이다. 글쓴이의 감정과 표현에서 경이를 느끼려면 아무래도 인문사회서보다는 소설을 포함한 문학작품에서 찾는 것이 빠르다. 그중에서도 손쉽게 경이로운 황홀감을 선사하는 것이 ‘시’가 아닐까 싶다.

 

 흔히 말하는 공대테크를 거친(남중-남고-공대) 나에게 시는 그리 만만치 않다. 약간은 야만적(?)이고, 폭력(?)적이기까지 했던 학창시절과 그저 확실히 눈에 보이는 분명함에 익숙해야만 했던 대학시절을 되돌아보면 시는 아주 먼 나라 이야기였다. 시를 제대로 시로 읽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가 그리고 시인이 위대해 보인 건 이십대 후반에 만나 교제했던 여인 때문이었다. 여하튼 시가 지닌 풍성한 감정과 절제된 아름다움, 무엇보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일상어로 풀어내는 신비로움은 글말의 매력을 깨닫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감히 시를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렇다라는 결론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시를 알고 난 후 세상의 경이를 더 쉽게, 더 자주 느낄 수 있음은 확실하다.

 

 공대테크를 탄 나보다 요새 아이들이 더 감성적일까? 글쎄다. 어려서부터 혹독하게 경쟁에 돌입하는 아이들이 시험점수와 상관관계가 거의 없는 시에 관심이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닭털주 샘의 책에 그려진 아이들의 모습도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물론 사진을 통해 시를 쓰기 시작한 아이들과 자신이 쓴 시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은 달랐지만 말이다. 책엔 이미지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시의 감수성을 심어주기 위한 지은이의 노력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독특한 시선과 속 깊은 표현이 눈에 띄는 아이들의 작품도 좋았다. 무엇보다 시험을 위한 존재로 전락한 학교 국어 수업시간을 창의력과 상상력이 넘치는 시 창작 수업으로 이끌어낸 아이들과 선생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게다가 풍성한 수업자료가 책 말미에 수록돼 있어 시를 공부하는 아이들이나, 선생님, 함께 시를 쓰고픈 학부모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진을 통해 시를 창작한다는 매력적인 주제. 끈기 있게 아이들의 시를 다듬어 가는 선생님. 시를 통해 자신을 깨닫고, 세상을 이해하고, 아름다움을 몸으로 느껴가는 아이들. 어떻게 설명하든 그 설명은 완벽하지 않다. 읽어보고 느껴보는 수밖에.

 

 꿈, 상상력, 창의력 그리고 내면의 울림과 기적, 경이로움. 아름다움과 가치, 의미.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잘 사는 것. 사랑과 열정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요즘 지속적으로 내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적어봤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을 읽을 때 마구잡이로 써놓은 저 개념들이 계속 떠올랐다. 그리고 뭐가 뭔지 어지럽기만 했는데 개념들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생각이 문뜩 들었다. 그래. 시를 쓰면 기적과 경이로움 그리고 사랑과 열정, 좋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풍경을 보든 사진을 보든 끄적이며 시를 써봐야 할 것 같다. 비록 시작은 초라하지만 나중은 경이로울테니.

 

 어떤가? 인생의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도 시 한 편 써보시라. 어려우신가? 그럼 이 책을 읽어보시라.『사진아 시가 되라』를.

 그래. 세계화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고 하자. 그래서 국가 간 통상 협정을 통해 선진국의 시스템을 수용해 치열한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하자. 그렇다면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끊임없는 소비가 현 자본주의의 핵심 동력이라면 그 바탕에는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더 큰 문제는 정작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생존이 곧 삶인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수의 소비자들은 그들이 만든 단물을 빨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점을 찍은 미국의 서비스업의 바통을 이어받아 중국과 일본을 넘어서는 경제 강국을 이룩하느니, 선진금융시스템으로 글로벌 경제 체제에서 우위를 선점하느니 하는 말. 그래 다 옳다고 치자.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이거다. 남이 흘린 피눈물로 얼룩진 풍요가 그토록 달콤하지 않다는 것. 한미fta 너머에는 인간이길 포기한 잔혹하고 거대한 괴물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래서 알아야 한다는 것. 한미fta의 본질이 무엇인지.

 

 책은 한미fta에 대한 포괄적인 해설로 구성돼있다. 어쩌면 읽은 후 더 머리가 아파진다. 한미fta를 둘러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을 다루기 때문에 뭔가 얻는 것도 많지만 복잡다단해 지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그동안 신문이나 방송에서 단편적으로 접했던 한미fta에 관한 정보가 한 묶음으로 수렴된다는 사실. 그래서 날 것 그대로의 한미fta를 접할 수 있다. 책을 내면 낼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저자의 감탄스런 글도 물론 접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와 한미fta를 설명하는 부분은 지루하지 않은 읽을 꺼리를 제공한다. 저자가 말하는 핵심은 이렇다. 질문하는 시민, 질문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라야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라는 것. 닥치고 경제, 닥치고 fta, 닥치고 돈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괴물이다.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을 먹고 사는 괴물 말이다. 제도적으로 그 괴물을 육성(?)하는 것이 바로 한미fta이다. 억압과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것이 한미fta의 본질이다. 그래서 곧 다가올 대선에서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논리인 것 같다.

 

 다 맞는 얘기다. 한미fta가 상당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것도, 국제 통상 정책에 능통하고 돈보다 사람이 먼저인 국정 운영을 할 만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아야 하는 것도 옳다. 하지만 난 더 큰 꿈을 꾼다.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해 우리는 현재의 소비를 절반 이상 줄여야 한다.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우린 생태적인 삶으로의 전환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누구도 주인이 아닌 모두가 주인인 세상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꿔야 한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은 지금 보다 훨씬 살만 할 것 같다. 아니 확실하다. 한미fta의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것보다 우리의 삶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세상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라. 과연 잘 살고 있는지. 잘 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저 나만큼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면 잘 사는 것이다. 내가 누리는 안락함 때문에 누군가가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뭔가를 행동으로 옮긴다면 잘 사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불가능한 꿈을 꾸며 살아간다면 금상첨화다.

 

 한미fta는 시작에 불과하다. 우리가 인간으로 살지, 괴물로 살지는 개개인의 판단과 행동에 달렸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해보면 사실 머리가 아프다. 한미fta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갈지,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지,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말이다. 하지만 머리가 아픈 만큼 우린 인간에 가깝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거대한 괴물의 진짜 모습은 생각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들일께다. 계산하지 말고 생각하고 살자. 괴물이 되기 싫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