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인간학(?)에 가까운 책이다. 하긴 인간 행동이 인센티브에 의거한 경제적 판단으로 좌우 된다는 측면에서 현대인이란 더 나아가 사회란 경제학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경제와 관련된 책들은 나에게 언제나 부담스럽다. 물론 경제관련 책이 멀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나의 무지 때문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경제를 알아야 하거늘, 나쁜 머리만 탓하고 게으름을 피우고 있으니 누굴 원망할 처지도 못된다. 여하튼 가득이나 요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세계 경제를 고려하면 경제를 아는 것이 세상을 아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경제학이 어렵다 어떻다 해도 신자유주의 탓인지 어쩐지 몰라도 현재 우리는 너무나 경제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 남을 밟고 일어서는 것이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아끼고 쪼개고 투자해서 미래를 위해 부를 쌓아야 하고, 미래를 위해 다른 밥벌이도 고민해야 한다. 당연히 경제적 인간은 시대의 도덕이고 윤리가 되고 있다. 게다가 경제적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생존까지 위협받는다. 뭐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다는 말이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다.

 

 이 책이 좋은 건 어려운 경제 용어가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세간에 화제가 된 이야기꺼리의 이면에 숨어 있는 경제학을 쉽게 풀어 놓았다는 것. 특히 정치, 사회, 교육 부분에서 보이는 탁월하고 새로운 경제학적 접근은 상당히 신선하다는 것. 흥미 만점의 남녀의 연애 이야기부터 성형까지 아우르는 마당발식 글쓰기의 진면목을 보는 듯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론 책을 통해 구체적인 경제적인 사고와 판단과정 그리고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는 현대인의 심리 흐름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또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사건들을 경제학의 논리로 접근했을 때 보통 사회서와 달리 독창적이고 새로운 결론이 도출된다는 재밌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범죄의 경제학이나 김밥의 경제학이 그랬다. 물론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자기계발에 관한 책 뒷부분의 글도 읽기가 편하고 이해하기도 쉬웠다. 중요한 건 저자의 시선이다. 다른 시각으로 사건이나 사물을 해석하는 능력. 부러울 따름이다.

 

 책은 읽을 만한 좋은 책이다. 그래도 개인적인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내심 책을 읽으며 현재 위기에 봉착한 세계 경제와 파국의 그림자가 스멀거리는 인류 문명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의 글을 기대했다. 아니 저자만의 시각으로 분석한 미래 경제 지도랄까? 아마 굉장히 읽을 만한 뭔가가 나올 것만 같은 데 말이다. 그래서 저자가 곧 다른 책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 책에서는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너머를 원한다. 저자의 내공이 수준급이라 감히 부탁해 보건데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 가까운 미래의 경제 상황은 어떤 변화를 겪을지에 대한 저자의 고견을 듣고 싶다. 또한 사람 사는 것이 먹고 사는 것과 밀접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뭔가 인간이라면 경제 논리를 넘어서는 나름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철학과 윤리학 그리고 정의론에 입각한 글을 부탁하고 싶다. 욕심인건 알지만 내 판단에 저자는 충분히 재밌고 유쾌하고 멋진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끔찍했던 1차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혼란과 광기에 휩싸인다. 경제는 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정치는 파시즘을 낳았다. 군국주의와 민족주의가 팽배했고, 많은 사람들은 그 만큼 많은 이데올로기의 홍수 속에서 갈팡질팡했다. 퇴폐적인 문화가 성행했고, 세기 초임이도 불구하고 세기말의 음산한 분위기가 자욱했다. 모든 분야에서 통제를 통한 획일화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당연히 국가와 권력은 대중을 통제하기위해 영화나 라디오와 같은 미디어를 장악하려 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독재자들이 미디어를 통한 대중 장악에 성공했다면 새롭게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미디어를 포함한 문화전반이 시장자본주의 논리가 팽배했다. 결국 20세기는 시장에 의해 좌우되는 소비중심의 문화라는 미국문화의 시대를 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본다면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하는 냉전 체제를 나았다. 특히 미국은 전후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뿐만 아니라 강력한 소비지향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미국의 경제력은 미국만의 독특한 혼합문화를 형성했으며, 인종만큼이나 다양한 미국 대중시장에 입맛에 맞는 수많은 문화생산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19세기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문화수출이 이루어졌다면 이시기는 미국이 유럽에 문화를 역수출하는 시대였다.

 20세기 중반 유럽문화의 주류는 미국에서 유입된 수비주의 문화였다. 대중의 취향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할리우드 영화가 유럽 영화관을 지배했으며, 미국식 스릴러와 공포 소설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대중이라 불리는 노동자계급과 중간계급의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이미 확립된 귀족문화가 없고 중간계급의 힘이 막강했기에, 미국 문화시장은 ‘대중적’ 성격을 띠었다. 20세기에 이르러 미국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영화와 녹음된 소리)와 대규모 국내시장을 발판 삼아, 자국 문화 생산물 가운데 꽤 많은 부분을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발전하던 대중사회에 재수출할 수 있었다. 본문 134쪽.

 재미있는 건 당시 대중문화가 미국에서 영국으로 수출됐다면 거꾸로 유럽의 고급문화는 대거 미국으로 유입됐다는 사실. 경제적 부를 잃어가던 유럽 귀족들의 보물들이 신흥부자들이 넘실대던 미국으로 건너왔다. 결국 문화상품의 자본화가 완벽히 마무리됐던 시기가 바로 20세기였다. 흔히 문화제국주의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미국 문화의 거침없는 힘은 바로 20세기 최대 패권국 라는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많은 부분 겹치게 된다. 미국의 영화기술은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을 거듭하게 되고 이는 할리우드를 세계 영화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음반시장에서도 미국의 위상은 높아졌고, 만화와 장르 소설에서도 미국은 두각을 나타냈다. 결국 미국중심의 문화는 시장과 대중의 요구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말 그대로 돈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오랜 기간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던 연극과 오페라는 음향기술과 전기기술의 혁명으로 탄생한 실황공연 즉 콘서트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미디어와 영화, 음반시장에서 스타가 탄생하고 그 스타를 중심으로 거대한 자본시장이 형성됐다. 문화가 대중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문화를 이끌어 가는 시대가 도래 했다. 이는 물론 경제적 부를 축적한 중간계급의 확산이 바탕이겠지만 그보다는 쉽게 소비하고, 쉽게 즐거움을 얻고, 쉽게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미국의 소비문화의 확산이 핵심적인 원인이다.

 경쟁이 없으면 발전이 없다고 했던가? 당시 미국의 패권에 맞서 반대쪽에서 균형을 맞춰가던 소련과 동유럽의 문화는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다. 고전 읽기가 장려되고, 오케스트라 공연이 국가 주도로 대중화되었다. 어찌 보면 공산주의 국가들이 미국의 소비문화와 비교해 일견 고급문화를 향유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다양성과 확장성, 무엇보다 대중성의 측면에서 그들의 문화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이는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한 후 극심한 문화적 혼란을 겪은 20세기 말의 상황과 연결될 수 있다.

 기술 발전은 특히 전기기술의 진보는 새로운 매체를 탄생시켰다. 마셜 맥클루언이 그랬다. 인간은 이제 새로운 미디어 매체에 의해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고 말이다. 과거 문자문화로 인해 개인화된 인간들은 이제 새로운 기술 혁명을 통해 다시금 하나로 뭉친다고. 인간의 모든 감각은 이제 새로운 문화장치로 인해 새롭게 진화한다고 말이다. 그가 말한 새로운 통합이 가능했는지 아닌지는 유럽문화사 5권에 답이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것의 경제학

- 트레이더 김동조의 까칠한 세상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