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한 파국-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2012년 지젝이 한국에 방문한 일주일 동안 두 번의 강연과 두 번의 인터뷰, 그리고 한국 탐방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의 좌파 지식인 홍세화와 예술가 임민욱(지젝은 다음 책을 예술관련서로 예고했다)과 인터뷰했고, 두 번의 행사와 탐방과정에서 문화 평론가 이택광이 함께 하며 그의 말을 글로 풀었다. 

어려운 지젝, 너무 추상적인 지젝의 자리에 한국 문제와 속살 같은 이야기들이 어우러져 지젝에 대한 한국판 종합서이면서, 지젝을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신청방법 : 덧글

신청자격: 3편 이상의 리뷰 등재 + 밀린 서평이 없어야 합니다.

신청기간: 2012년 11월 30일까지

당첨발표: 2012년 12월 1일

 

2012년이 되어 옛 기사를 다시 정리하다가 진다리붓 편을 읽으며 울고 말았다. ‘너무 배가 고파 붓을 만들다 말고 방바닥에 배를 깔고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대목에서 장인들의 지난한 삶과 어깨 위에 놓인 인생의 무게가 한꺼번에 느껴졌기 때문이다. 젊은 기자 시절에는 미처 몰랐던 인생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인가 보다. -본문 69쪽.

 

 배가 고파 본적이 없는 사람이 배고픔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듯이, 살아보지 않고는 인생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불편하고 불안한 삶이 이해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99번 손질을 거쳐야 흰 염소 털이 진다리붓이 되듯 우리 인생 또한 고통과 좌절을 거쳐야 찬란한 의미 있음의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책에 소개된 우리 공예품, 우리 음식, 우리 특산품들이 진한 향기를 품을 수 있는 것도 어느 하나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없고, 어느 하나 우리 선조와 이웃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배를 깔고 배고픔에 울어본 사람만이 아니 없음의 설움과 핍박의 고통을 감내한 사람만이 만들어 낼 수 있다. 그게 우리 것의 본질을 이루는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의 것과 우리의 맛은 단순히 좋다는 표현으로 부족하다. 우리 것, 우리 특산품은 인간의 혼이 깃들었다.

 

 한국의 맛과 한국의 전통을 소개하는 책들 중에 우리의 정신과 혼이 느껴지는 책이 몇 권이나 될까? 단순히 맛과 멋을 주마간산 식으로 소개하는 책이라면 절대 우리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20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게다가 글쓴이의 정갈한 글들이 우리의 멋과 맛을 진하게 우려낸다. 글 자체가 바로 우리나라의 특산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참 맛있고, 멋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류 문명은 근 150년 동안 정신없이 달려왔고 달려가고 있다. 서구에 뿌리를 둔 동일한 패턴의 문화양식은 전 세계를 글로벌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버렸다. 정치와 경제를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제도가 합리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세계 각국의 전통 문화 양식을 획일화했고, 인류의 진보는 자연 파괴와 지구 생태계 전멸과 동의어가 돼버렸다. 하여 가시적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장자본주의의 종말과 광폭한 개발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화석연료의 고갈은 과거의 유물로 천대받던 전통의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5년에서 10년 후면 우린 결코 현재의 편리한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가 경고했듯이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그 곳에 작물을 키워야 할 시대가 곧 다가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이라면 분명 현재의 문명이 붕괴되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토대로 한 문명을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답은 바로 전통에 있다. 함께 살아감을 최고의 가치로 둔 공동체 의식,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태적 삶, 최소한의 소비를 통한 간결한 생활이 모두 우리 전통의 유구한 가르침 아니겠는가.

 

 나의 짧은 글 재주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으니 책에 소개된 우리 것들은 직접 읽어 보시라 권한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쉬이 넘어가지 못할 소중한 우리의 정신이 깃들어 있으니 읽는 내내 즐거움이 가시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또 변하지 않는 우직함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우리 전통의 정신에서 불안한 미래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이 책은 결코 단순한 특산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 하수선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이 바로 책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시길 바란다.

 

 참고로 내 고향이 바로 책에 소개된 찰옥수수의 고장 정선이다. 반가웠다. 몇 년 전 고향에서 찰옥수수를 얻어온 적이 있다. 이모가 직접 기른 찰옥수수였는데 내가 밭으로 들어가 옥수수를 꺾어 나온다고 했지만 그런 나를 밭 언저리에 세워놓고 몸도 편찮으신 우리 이모가 직접 옥수수를 꺾어 자루에 담아 주셨다. 옥수수 값을 한사코 받지 않으시며 올해는 강냉이가 잘 안됐다 말씀하시던 이모 얼굴이 떠올랐다. 이모가 잘 안됐다는 그 강냉이(옥수수)는 내가 먹어 본 것 중에 최고의 맛이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맛이다.

 歲寒然後知松栢之 後彫也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되어서야

 소나무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논어

 

 유배지에서 모든 지인과 연락이 끊긴 추사 김정희 선생이 자신을 잊지 않고 때마다 책을 보내준 제자에게 세한도와 함께 보낸 글귀는 김수환 추기경을 떠올리게 한다. 살아계실 때 그 소중함을 몰랐기에 결코 시들지 않았던 그분의 정신이 그립기만 하다. 대선으로 나라 안이 어수선하고, 경제 위기로 나라 밖이 번잡한 시기라 더욱 그렇다. 이럴 때 김수환 추기경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간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고, 평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셨던 김수환 추기경. 그분의 친전(편지)이 책으로 엮였다. 페이지마다 절절하게 쏟아지는 김수환 추기경의 육성은 내 삶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신을 죄인이자 바보라며 낮은 자세로 세상을 보았고, 모든 사람들을 차별 없이 진심으로 대하신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삐딱하게 세상을 보며 사람을 깎아내리는 나 자신을 죄인이자 바보로 만들었다. 남을 위해 작은 것 하나 실천하지 못하고, 남을 위해 작은 사랑 한번 나누지 못하는 우리는 얼마나 큰 죄인들인가. 남보다 잘났다고 거들먹거리는 교만 아래 정작 자신에게 묻은 떼는 찾지도 못한 채 세상을 조롱하는 우리는 얼마나 멍청한 바보들인가. 머리가 아닌 마음의 명령으로 살아가는 참된 삶에서 멀어지는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 인간들인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입니다.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것. 머리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까지 도달하게 하여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잘 못합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데 칠십 년 걸렸다. 본문 237쪽.

 

 삶에게 의미를 묻지 말고, 그 삶에게 우리가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김수경 추기경의 지적은 가치 있는 삶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 인생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살아가는 의미와 이유를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에게 일깨워 줄 때 진짜 우리 삶이 시작된다. 진짜 삶이 시작되는 인생에서 의미 없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참 삶에 조건은 바로 정의로움이요, 사랑이요, 실천이다.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 바로 그것이다. 첫째가 내 삶을 위로 받는 것이고, 둘째가 나를 반성하게 되는 것이고, 각자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여 참 삶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 셋째이다. 그래서 머리보다 가슴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겨울의 초입에 읽게 된 김수환 추기경의 편지는 생활의 부단함과 일상의 피곤함을 보듬어 주는 따뜻한 손길이었다.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달라는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을 이번 해가 가기 전에 한번 받아 보시라. 받아서 읽어 보면 알게 된다. 부끄러움과 반성을 통해 그대의 삶이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