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책을 읽고 뭔가를 써야할 때 책을 온전히 읽어내고도 글쓰기가 힘들 때가 있다. 아니 무슨 말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한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재밌고 유쾌한 책은 그마나 쓸거리도 많고 주절주절 글을 읽는 사람에게 알릴거리도 많지만, 읽는 내내 내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책에 관해선 섣불리 글을 쓴다는 게 죄스럽다. 류은숙님이 쓴 이 책이 꼭 그렇다. 나는 그동안 참 편하게 살았구나, 나는 참 생각 없이 살았구나, 나는 참 바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힌(?) 책이었다. 몇 년 전 읽었던 김진숙님의 “소금꽃나무”가 그랬고, 얼마 전 읽었던 조은님의 “사당동 더하기 25”도 같은 부류의 책이다. 이런 책들은 편하디 편한 생활 속에서도 뭐가 그리 모자라고,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징징거리며 삶을 살아가는 나를 매섭게 다그친다. 제대로 좀 살라고, 사람답게 살아가라고 말이다.
누구나 쉽게 인권을 말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권에 무지하다. 그래서 인권을 침해받는 사람들에 대해 약간의 동정과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만사가 해결된다는 식이다. 실제 현장에서 자신을 다 바쳐 행동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우리 대다수의 연대는 너무도 작고 보잘 것이 없어 보인다. 왜냐면 인권에 대한 무지가 첫째요, 둘째는 인권 또한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의 삶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모든 시민들이 연대해야한다는 말에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연대의 밑바탕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과 도움을 주는 나 사이에 경계가 그어진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인권을 위한 연대가 아닐 것이다. 나는 도움이 필요 없는 정상적인 사회인이고, 저들은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경계 짓기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면화 돼있다. 나 또한 그랬기에 책을 통해 가장 크게 불편했던 부분이 바로 여기다. 결국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라는 구별은 선별적인 복지라는 논리가 가능해지고 바로 이 지점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도움을 주는 주체는 개개인을 넘어 국가와 사회를 통해 제도화된 보편적 복지가 필요한 것이다.
선별적인 개인적 자선에는 공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요충분조건일지 모른다. 하지만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타인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죗값 또는 엄살이나 위장일 수 있다. 고통의 위계를 정하는 것은 고통 받는 쪽이 아니라 돕는 사람 쪽이기 때문이다. 본문 78쪽.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과 차별 받는 소수자들에 대한 제도화된 복지가 가능한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고, 그들에 대한 도움이 당연한 사회, 그래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눈치 보지 않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진정 사람이 살만한 사회인 것이다. 빈민, 장애인, 해고노동자, 성적 소수자, 이주 노동자 그리고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인권은 보편적으로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고, 보호 돼야하며, 보호해야 한다. 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당연히 도움을 주는 사회가 돼야 한다. 효율과 합리성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른 선별적 복지와 선별적 지원은 또 다른 차별이다. 미디어를 통해 잠깐 뜨겁게 달궈졌다가 이내 사라지는 복지에 대한 관심은 대중스타에 잠깐 열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지속적이고 탄탄한 제도화된 복지는 국가 주도의 보편적 정책과 사회구성원들의 인권의식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공허한 말뿐인 인권이 아니라 제대로 된 살아있는 인권을 논하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시라. 누군가에게 추천도 많이 하시라.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진다면, 그래서 조금 불편한 감정이 생긴다면 책을 제대로 읽은 것이다. 왜냐면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 모두는 사람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