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본주의가 문제다.

 

200여년을 근근이 이어온 자본주의의 마지막. 우리가 앉아 있는 현실은 광기어린 폭주로 내달리는 자본주의라는 열차다. 본격적인 국제 자본주의의 시작이 식민지 쟁탈을 촉발한 제국주의였고 그 마지막이 토지 쟁탈로 점철된 농업 제국주의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거나 자본주의 마지막은 결국 파국이다. 기관차는 탈선하고 줄줄이 이어진 객차는 산산이 조각날 태세다. 그 파국의 시작은 2008년 금융위기였다.

 

파생상품이라 불리던 금융 상품이 더 이상 안전한 투자처가 아님을 깨달은 많은 자본가들의 눈길을 끈 건 자원, 식량이다. 자원이야 물리적으로 고정된 유한의 투자 가치를 지닌다면 식량은 그렇지 않다. 사막화와 경지 감소라는 근본적인 식량문제를 논외로 친다면 식량은 가진 자에게 매혹적인 투자 가치를 지닌다. 생명체임을 부정할 수 없듯이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이른바 선진국이라 함은 고도로 발전된 문명을 바탕으로 한다. 그런데 그 고도 문명이라는 삐까번쩍한 실체의 가장 큰 약점이 바로 식량이다. 아무리 마천루로 채워진 메트로폴리스라 해도 도시가 작물을 길러 식량을 생산하여 자급하진 못한다. 이 치명적인 약점이야 말로 투자자에겐 가장 큰 매력이다. 투자자를 국가로 예를 들어보자. 넘쳐나는 오일달러로 외양은 거대 최첨단 도시로 채워지지만 인근 아프리카 국가의 비옥한 토지가 없다면 먹을거리를 구입할 수 없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문제는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을 뜯어 먹고 살 수는 없지만 그 돈으로 다른 나라의 땅은 뺏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신화.

 

석유와 석탄 등 화석에너지를 대체하기 위한 바이오 에탄올. 미국을 선두로 선진국들이 석유 고갈에 맞서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바로 바이오 에탄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다. 문제는 중남미의 거대한 농경지에 석유를 대신할 바이오 작물을 재배한다는 사실이다. 옥수수를 비롯한 다양한 바이오 작물은 남미의 가난한 농민들을 가진 자의 에너지원을 재배하기 위한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시킨다. 이처럼 삶의 터전에서 내몰려 빈곤의 사다리 가장 아래쪽에서 자본의 거대한 톱니에 짓눌리는 상황은 에티오피아의 농민들과 브라질의 농민들이 그리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들이 지켜온 농토는 현대 기계, 화학식 농법으로 피폐해진다. 식량작물의 재배 경작지가 연료작물로 인해 줄어드는 현실은 식량가격의 폭등과도 연결된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 파괴적인 속성 때문에, 끊임없이 부를 창출해야 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이 필요하기에, 자본주의의 발전(?)은 쉼 없이 무언가를 뺏고, 밟고, 뭉개고, 부숴야만 한다. 최초 제국주의는 식민지의 천연자원을 수탈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가공된 물건을 팔아야 할 시장이 필요했다. 이젠 가진 자의 부를 늘리기 위한 투자 공간으로, 부가 집중된 선진국 대도시에 공급할 식량 공급처로, 석유를 대신할 에너지 공급원으로써의 땅뺏기가 21세기 초 새로운 식민주의, 새로운 제국주의라 하겠다.

 

지긋지긋한 자본의 사슬을 깨기 위해, 지속가능한 세상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가 할 일은 명백하다.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다시 고쳐 쓸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포스트 자본주의를 고민하는 것이 첫째요, 물질문명의 소비 귀신에서 벗어나는 것이 둘째요. 안락함과 편안함에 젖어 있는 에너지 괴물에서 탈피하는 것이 셋째다.

인간관계의 보고라고 한다면 보통 삼국지를 꼽는다. 대중성을 차치하고 고려한다면 개인적인 생각으론 인간학의 진수는 삼국지가 아닌 열국지가 아닐까 싶다. 뭐 열국지도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과장이란 양념을 좀 진하게 첨가했다는 점에서 삼국지와 오십보백보지만 등장하는 인물의 물량공세와 사건의 물리적 양을 따진다면 열국지라는 보물창고가 훨씬 풍성하다고 하겠다.

 

 춘추전국시대 영웅호걸들의 인간학은 열국의 존망을 결정짓는 치열한 두뇌게임과 다름 아니었다. 이를 복잡다단하고 살벌한 현재의 경쟁사회와 비교해본다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리하게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아는 것이 많아야 하고, 배짱도 두둑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것. 즉 인간학을 꿰뚫는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참 어렵고 어려운 일이 사람을 판단하는 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객관적 물리 법칙이야 언제 어디서든 절대성을 지니지만 인간학은 그렇지 못하지 않은가 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게 인간학의 숙명임을 어찌하란 말인가.

 

 책 속엔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심리를 대표하는 효과들이 있다. 바로 플라시보 효과와 노시보 효과. 긍정적인 자기믿음이 가짜 약을 복용하고도 증세가 나아지는 현상을 ‘플라시보 효과’라고 한다면 반대로 부정적인 자기믿음 때문에 진짜 약을 복용해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는 현상을 ‘노시보 효과’라고 한다. 비슷한 예는 많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보다 행복할지언정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판단하는 부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라는 연구결과도 인간 심리의 들쑥날쑥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처음 열국지를 접했던 건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고우영 화백을 통해서였다. 고우영 화백의 작품은 사람일 풍덩 빠지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화백의 독특한 시선으로 전개된 춘추전국시대의 인간학은 사마천의 사기를 찾아 읽게 했고, 장자와 노자의 책을 펼치게 했다. 최근에 접한 신동준 선생의 “열국지 교양 강의”는 말 그대로 화룡점정. 춘추좌전의 전문가인 선생의 열국지 강의는 생소한 중국 문헌들을 넘나들며 사건과 인물에 대한 크로스 체킹을 마친 매우 객관적인 내용이다. 

 

 시선이 고정되면 다른 것이 보이지 않는다. 확증 편향이라고 했던가. 신동준 선생님의 열국지는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는다. 평소 천하의 간신이라고 생각했던 오나라 백비와 천하의 충신이라고 믿었던 오자서가 선생의 책을 통하니 객관적으로 보였다. 역사를 보는 눈이 그러해야겠지만 인간을 보는 눈도 심각한 확증 편향으로 고정돼 있으면 인간학이고 뭐고 말짱 도루묵이다. 뭐 그 말이 그 말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상황에 따라, 시기에 따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져야 한다는 사실. 무엇보다 절대적인 심리 법칙, 객관적인 인간학 이론은 현실에서 매번 맞아 떨어지지 않는 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혁신전문가가 쓴 “지적인 생각법”은 인간학에 관한 책과 다르지 않았다. 초두효과에서 시작해 고슴도치 딜레마를 거쳐 활주로 이론, 그리고 이카루스 패러독스와 세렌디피티의 법칙까지 다양한 지적 생각법이 적절한 사례와 함께 읽기 편한 글로 서술되어 있다. 처음 접해보는 효과와 이론이 꽤 많은 걸 보면 난 아직 지적인 생각을 잘 못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간 날 때 들춰보면 유익한 정보를 얻을 그런 책이다. 하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인간학에 관해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면 열국지를 읽으시라. 신동준 선생님이 쓰신 걸로 말이다. 

 역사를 소재로한 영화, 드라마가 범람한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소재가 겨우 판타지와 적당히 버무려진 역사라는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현재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보인다. 예측하기 싫은 암울한 미래도, 지옥에 가까운 현실의 삶도 대중의 관심을 이끌기엔 충분치 않다. 개인성을 바탕으로 한 다양성의 파편들로 무장한 현대인이라지만 정작 그들을 성찰로 이끌 수 있는 사색과 독서는 실생활의 메카니즘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러니 창의적이고, 새로운 소재 따위도 대중의 인기를 얻기는 어려워보인다. 역설이다. 다양성으로 포장된 세상에서 우리의 취향은 점점 전체주의적 속성을 따르니 말이다. 취향의 천편일률. 그리고 그 취향에 조금이라도 반하면 적(敵)으로 돌려세우는 야만적인 이분법. 현실이 복잡하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현실은 단순하고, 굳어 있다. 문화와 취향면에서 말이다.

 

 일제 강점기를 근대화의 시작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한다. 근대라는 관점을 협소하게 한정한다면 즉 선진(?)기술의 도입과 소비자본주의의 정착이라는 측면에서 근대화를 이야기한다면 그들의 주장은 타당하다. 그러나 근대의 개념을 넓게 확장시켜서 일제 강점기를 평가한다면 일제는 우리의 근대를 처절히 짓밟았다. 앞서 이야기한 철저한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예들 들어보자. 일본 제국주의 주구들에게 가장 두려운 사상은 사회주의였다.

 

 국체라는 단어에서 보듯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단일 가족 국가를 그들의 이상으로 생각했다. 그런 전근대적인 국가관에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당연히 사회주의 일터. 그들의 눈에 사회주의자들은 찢어 죽여 마땅한 족속들이 었으리라.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이 식민지 조선에서 더 악랄하게 이루어짐은 당연한 일이었다. 민족의 독립을 대의로 내건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을 치안유지법이라는 악법으로 탄압했던 일제의 잔재가 해방후 대한민국에서 조직적으로 벌어진 빨갱이 사냥과  연결된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적을 만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상대를 빨갱이로 만드는 것이라는 현실에서 우린 일제 강점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철저한 일제식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국민과 비국민, 국민과 빨갱이.

 

 일제가 말하는 근대화, 일부 학자들이 말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노동자, 농민의 피로 새겨진 소수의 가진자들만의 근대화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야만적인 이분법을 식민지 조선에 이식한 것도 일제다. 새로운 신문물과 편리함을 상징하는 과학기술들은 소수의 친일파의 몫이었고, 대다수 가난한 민중들은 수탈의 대상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제가 만든 근대는 생명력까지 출중(?)했다. 그 야만의 근대성이 현대를 지배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제가 철저하게 국민과 비국민을 구분해 일본과 식민지 조선을 수월하게 통치했듯이 현재 대한민국은 국민과 빨갱이로 통치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우리 아니면 적, 우리가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좋은 것. 그렇지 않으면 나쁜 것. 영화든 드라마든 우리에 속하지 않는 다면 무조건 적이 되는 천박하고 변태적인 사고방식. 그것이 바로 일제가 남긴 허울좋은 근대의 표상이다.

 

 재밌는 책이다. 술술 읽힌다. 그리고 어떤 과정으로 일제의 근대성이 아직 우리나라에 공고히 뿌리 내리고 있는지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뛰어난 글쓰기 능력과 박학한 지식, 쟁점의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움에 탄복했다. 강력하게 일독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