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둘 있다. 요새 두 녀석은 저녁 7시 50분을 애타게 기다린다.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라마에 빠져 있어 그렇단다. 중독이다. 무슨 내용인지 관심은 없지만 아직 어린애들이 밥도 먹지 않고 연속극에 몰입한다는 게 영 마뜩잖은 기분이 든다. 영상으로 주입되는 소비자본주의의 이미지도 그렇지만 조카들의 무의식에 삶이란 잘 살아야하고, 젊어야하고, 건강해야하고, 깨끗해야 한다는 관념만 각인될 것 같아서다. 게다가 요즘 드라마나 연속극에서 으레 제외되는 병들고, 아프고, 죽어간다는 죽음의 성찰이 불가능하기에 옆에서 보는 입장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삶에 대한 집착이 예전엔 지금보다 덜했다고 한다. 가진 것 없이 오직 노동력으로만 생을 연명해야했지만 공동체의 따뜻함이 살아있었던 과거에는 삶과 죽음이 한 몸이었다. 서구의 이분법은 차갑고 매정하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삶에 최선을 다하지만 외롭고 아프고 항상 부족하다. 그런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이기에 사회와 개인이 깨끗이 나눠지기에 말이다. 의료기술이 발전했다곤 하지만 삶의 집착은 자본주의가 만든 또 하나의 중독이다. 부를 바탕으로 한 삶의 중독에서 죽음은 그 자리를 잃었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직업주의, 무조건 어려보이고 예쁘고 잘 생겨야 하는 건강주의, 취업도 중독이고 건강도 중독이다. 그런 중독증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좌절을 담보한다. 애당초 숙명적으로 닥칠 죽음 따윈 비집고 들어 올 틈이 없다.

 

존재의 탐구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흔히 생각이 없는 시대, 지식이 없는 시대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죽음보다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현실 때문인 것 같다. 고민의 물리적인 크기만 생각한다면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과 반성을 딱 절반의 비율을 가져야한다. 하지만 소비를 최고 가치로 상정한 자본주의 시대에서 죽음은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잘 죽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의 종말이 시작될테니 말이다. 자본이 시키는 대로 힐링과 자기계발을 토대로 한 삶의 고민은 사람들을 행복한 삶에 근접하기는커녕 점점 삶 때문에 고통 받고 힘겹게 한다. 죽음에 대한 진지한 탐색과 성찰이 없이는 유한한 생명을 부여잡고 살아야 할 인간에게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몽고의 유목민들은 정주민들을 가축이라고 생각한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허덕거리는 문명인들이 얼마나 불쌍해 보일까? 정주의 안락함은 대자연에서 뛰고 달리고 떠돎을 포기한 대가로 얻어진다. 구속이라는 족쇄를 끊어 내기에는 현실의 포근함이 너무 깊다. 하지만 그 포근함도 어차피 시한부라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면 상상하기 힘든 공포와 두려움이 종종 찾아온다. 그렇게 삶은 죽음과 맞닿아 있고, 그래서 죽음을 빼놓고 삶을 이야기하는 건 무척 경솔한 것이 된다. 그래서 궁금했다. 정주의 안락함을 포기한 유목민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이다. 그들 유목민들에게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영원한 죽음은 없고 끝없이 윤회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생명이다.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니 살아 있을 때 잘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준다. 유목의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접하고, 자연을 섬기며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 무엇보다 잘 죽기 위해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사관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자연. 이해득실의 관계를 넘어선 순수한 인간관계. 시간과 공간이 희미해지고 일상의 시간이 멈추는 장소. 사람들이 그런 곳을 염원하고, 갈망하는 건 본능이다. 이는 사회제도와 경제구조의 진보로 인해 피폐한 영혼이 인간 내부의 깊은 곳에서 꿈틀되고 있다는 증거다.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존재하지 않는 공상의 이미지가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자기계발과 힐링은 사람들을 규격화 된 삶으로 줄 세운다. 그렇다. 많은 이유 때문에 우린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꼼짝 못하는 건 아니다. 우리의 몸과 정신을 조여 오는 많은 것들은 실상 우리가 선택한 것들이다. 삶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다. 삶에 중독된 우리의 모습을 누군가는 가축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마음만이라도 대초원을 달리는 자유인이고 싶다면 무엇보다 삶의 중독에 벗어나야하겠다. 그 가장 쉬운 길은 진지하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여행기를 읽으며 죽음을 생각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마음의 평정심과 삶의 길을 다시 닦는 도움을 받았다. 삶에 대한 좋은 여행이었다.  

 미국 드라마 한 장면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쓴 투키디데스의 글이 강하다는 대사를 접했을 때 내가 읽은 한줌의 책 중 강한 글이 있어나 잠깐 고민했던 적이 있다. 결론은 딱히 없었다는 것. 역동적이고 강한 힘이 느껴지는 글이라면 역시 선동을 목적으로 한 연설문 정도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뭐 기억나는 연설문은 없었지만. 내가 쓴 보잘 것 없는 글에 대해 강한 느낌이라는 평을 종종 듣곤 했다. 내 글이 강한 건 미사여구나 멋들어진 수사를 제대로 구사 할 수 없는 무식한 글이라 그랬을 것이다. 지식은 얕고, 사용하는 단어와 어휘가 빈약하니 그저 이래라, 저래라,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글을 쓰니 당연한 결과다.

 

 강한 글은 확실하게 쟁점을 이해하고, 알맞은 논거를 제시하고 비판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확신을 갖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용감한 사람만이 쓸 수 있다. 강한 글은 다양한 어휘의 바다에서 가장 적절한 표현을 건져 딱 적당한 지점에 배치할 수 있는 예술적 감각(?)이 돋보여야 한다. 내 판단에는 바로 이 지점이 무식한 글과 경계를 이루는 부분이다. 강한 글이란 최종적으로 읽는 이를 납득시키고 설득해야 한다. 그래서 감히 말하건대 이 책의 글은 강하다. 보너스로 전복적인 사고가 어떤 것인지 감이 잡힌다.

 

 이 행태야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또 다른 유형의 사회적 약자가 생성되고 있음을 고지하는 것일 수 있다. 예컨대 신체 건강하고 대학까지 졸업했지만 취업에 실패한 어떤 20대를 상상해보자. 성장기를 입시 경쟁과 게임에 빠져 보내면서 인성이 유아적 성향에 머물러 있는 인물이라면 앞으로 삶을 헤쳐 나가기 쉽지 않으리라. 그는 ‘실존적 약자’로 사회적 약자 중에서도 최악의 유형이다. 이런 인물 유형이 개인적 삶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양산된다면, 분명 정치의 문제이다. 기존 정치가 만든 것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본문 162쪽.

 

그렇다. 일베란 파시즘에 쪄든 ‘극우’나 ‘네오나치’가 아니다. 사회구조가 만든 사회적 약자다. 자칫 일베를 쓰레기로 취급하여 사회에서 배척하거나, 암울하고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태동한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들은 약자이며 현재 사회와 정치 체제가 양산한 구조적 문제의 복합체다. 따라서 그 해결책이 정치라는 글쓴이의 주장, 그들이 최악의 사회적 약자라는 주장을 강하게 공감한다.

 

 사형폐지론이 단순히 사형제 폐지를 겨냥한 일회용 담론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지 않을 보편적 권리’를 주장하는 철학적 담론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범죄 살인의 피해자보다 훨씬 많은 전쟁 살인의 피해자이다. 그 어느 쪽을 주목하든 ‘죽임을 당하지 않을 보편적 권리’ 주장의 출발은 산 자의 윤리적 허위의식이 아닌, 침묵하는 피해자의 ‘의사’여야 한다. 사형제 폐지의 주체는 역설적으로 여기 살아 있는 ‘우리’가 아니라 이미 떠나버린 ‘그들’이어야 한다. 이 차이를 느끼는 감수성만이 진정한 피해자를 외면하는 ‘인권’의 공허한 속을 채우는 윤리적 주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다. 본문 236쪽.

 

 사형폐지론의 주체를 유족, 가해자, 사회구성원이 아닌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로 설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념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를 중심으로 사형제의 존폐를 고민하면 갑작스런 죽임을 당하는 구성원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더 큰 의미의 윤리적 성찰이 가능하다. 글쓴이의 전복적인 사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시절이다. 어쩌면 그 꿈과 현실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면 현실이 지옥임을 깨닫게 될 것이고 또 어쩌면 삶이 더욱 힘들고 공허해질는지 모른다.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옳은 일이라면 우린 더 많이 부수어 지고 넘어지고 엎어져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하는 참 지식인, 참 글쟁이들이 많아져야 하겠다. 어찌 생각하면 글쓴이의 글이야 말로 몽매한 사람들을 깨우는 강한 회초리가 아닐까 싶다. 힘이 넘치는 글, 전복적인 글, 그러면서 뭔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접하고 싶은 분들게 일독 권한다.

우리나라 수학교육이 야만적이라는 말은 사실이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수학은 탄탄한 기초가 필요하다. 수학의 토대는 수를 이해하고, 약속을 전제로 한 기호를 이해해야한다. 마치 언어를 익히듯 자연스럽게 수학의 언어를 체화해야하는 것이다. 말을 배울 때 아이들마다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 수학은 그 편차가 더욱 크다. 어떤 아이는 빠르고 효율적으로 개념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만 많은 아이들은 수학적 사고방식에 접근하는 속도가 현저히 느리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학교육은 그런 편차를 인정하지 않는다. 학년별 커리큘럼을 자로 잰 듯 딱 맞게 공부해야만 한다. 수학을 못하는 아이는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수학의 개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하지만 우리 수학 교육은 그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야만적이라는 말이 맞다.

 

기초적인 덧셈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12 더하기 29를 계산할 때 대부분 교재는 일의 자리 수를 더해 11을 만들고 십의 자리 수의 합인 30과 합해 41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한다. 일의 자리 수의 합에서 10을 올려서 계산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12와 29의 합은 29에다 1을 더해 30을 만들고 12와 합하여 42를 만든 후 처음 더한 1을 다시 빼 41을 만들어도 같은 결과를 얻는다. 이 외에도 계산법을 조금만 달리하면 덧셈의 방법은 꽤 여러 가지가 된다.(제 1권 본문 60쪽과 61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수와 수식의 개념을 이용한 다양한 문제 풀이 방법은 수학 능력을 배가시키는 핵심이다. 수학의 근본을 이해하고, 토대를 굳건히 쌓을 수 있는 이런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리저리 비틀어 보고, 깨물어 보는 과정과 수많은 실수와 착오를 겪어야 수학의 맛을 제대로 알게 된다. 대입에 모든 과목의 공부법이 집중된 현재 교육 과정에서 이런 비효율적인 공부법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다만 유형을 반복하고, 공식을 암기하는 훨씬 효과(?)적인 공부법이 각광받는다. 이야기로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수학이 대세라고 한다. 하지만 어디 아이들 문제집을 살펴봐라. 스토리와 텔링이 어디 있는지 말이다. 그저 유형 반복일 뿐이다.

 

결국 개인이 알아서 제대로 된 수학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다. 알아서 공부하기란 무척 어렵다. 가끔 아이들에게 수학공부 잘 하려면 책을 읽으라는 말을 한다. 알아서 공부하기란 자기주도 학습인데 다년간 경험을 돌이켜 보면 책을 스스로 찾아 읽는 아이들이 공부도 알아서 잘 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을 읽으며 확장되는 사고의 유연성이 수리 개념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됨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꽤나 좋은 책이다. 식당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이야기들(각종 먹을거리가 관심을 자극한다)과 상당히 공감 가는 에피소드가 가득하고 그 이야기들을 수학 개념과 잘 연결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아이들 책이라 정작 나는 후다닥 읽어버렸지만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천천히 재밌게 읽을 만한 책이다. 특히 3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한의 개념은 화룡점정이었다.(읽어보면 왜인지 알게 된다)

 

야만적인 교육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겠는가. 그럼 우리라도 바뀌어야 하지 않겠나. 수학공부를 위한 팁을 드리겠다.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히시라. 풍부한 상상력은 수학적 사고방식의 기본이다. 독서는 글자를 통해 머릿속으로 형태와 정경을 만드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는 공간지각능력을 익히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독서를 통해 글의 앞 뒤 논리를 익히면 수식의 기승전결을 이해하게 되며, 수학의 중요한 토대 중 한가지인 증명문제를 잘 풀게 된다. 독서를 통한 다양한 두뇌자극은 새로운 유형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학년이 높아져 고등학생이 되면 문제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 손을 놔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문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수학식당 1, 2, 3편은 독서능력과 수학개념이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