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해석하고 시대를 연구하는 일에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할까? 물론 현재까지 존재하는 과거의 흔적과 잔해를 파고든다면 객관성을 담보한 결론을 얻어낼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과거를 완벽히 재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당연히 가능한 과거의 맨얼굴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는 긍정론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단지 역사적 사실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실제 역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할뿐이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역사는 분명 왜곡된 상태를 유지하며 후세에 전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렸을 적 돌아가신 고우영 화백의 “열국지”를 참 재밌게 읽었다. 여러 번 읽었다. 몇 년 전까지 내 머릿속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전반적인 모습은 오로지 고우영화백의 열국지 내용으로 어설프게 지어졌다. 하지만 신동준 선생님이 쓴 “열국지 교양강의”(돌베개, 2011년)를 읽은 후 춘추전국시대가 완전 달라졌다. 춘추좌전을 비롯한 다양한 사료를 교차시켜 분석한 열국지론은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내가 믿고 있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상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편됐으니 말이다. 물론 또 다른 해석을 접하면 그에 따른 또 다른 상이 만들어 질 수 있다. 하지만 역사에 대한 평가와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라 그 혼란이 그전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

 

몇 년 전 같은 출판사의 같은 글쓴이의 책을 참 재밌게 있었다. 고조선을 포함한 한반도의 고대국가가 소아시아에서 시작됐다는 조금은 황당한 주장이 꽤 흥미진진했다. 그 증거로 제시된 지명의 유사성과 방대한 사료를 넘나드는 신선한 자료들(물론 글쓴이의 자의적 해석이 강하게 투영됐지만)이 발랄(?)하기까지 했다. 역사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는 나는 재밌게 읽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꽤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 역사에 대해 이렇게도 접근할 수 있구나 하는 정도의 흐릿한 기분으로 읽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 내 결론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물론 나 자신의 읽기 능력이 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게다. 그렇지만 현재의 문명이 금성의 운동과 천체의 운행을 일찌감치 이해한 고대 샤먼(그들은 아주 오래전 이미 지동설을 주장하고 있었다고 한다)에 의해 결정됐다는 글쓴이의 주장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역사나 샤먼 그리고 천문학에 대한 지식이 한참 모자란 내게 부담스런 책이었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글쓴이가 수집한 많은 도상과 사진, 그림 그리고 상징(책에 무진장 많이 포진하고 있다)을 감상(?)하는 건 나름 책을 읽으면서 느낀 즐거움이었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이해를 못하는데 말이다. 꾸역꾸역 끝까지 책을 읽은 후 머리에 남는 건 금성과 좀생이라는 말 정도? 미천한 내가 괜히 도전한 책이 되고 말았다.

 

청동기문명 시절부터 샤먼은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난 지금도 무속과 점성술 혹은 사주명리에 관심이 많다. 비과학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분야지만 난 샤먼을 포함해 신비주의적인 다양한 미신을 믿는 편이다. 뭐 믿는 사람이 믿는 다는데 어쩌겠는가. 글쓴이의 주장에 동의하는 부분이 많지 않더라도 천체의 운행과 청동기 문명의 사료를 통해 샤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장했다는 면에서 책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관련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인류문명은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내 자신이 서구적 사고방식에 젖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해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과학적으로 보이지만 신비주의에 빠져 샤먼에 의지하거나 점성술의 결과를 믿으며 미래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지는 않을까란 생각을 잠깐 해봤다. 하지만 인류 문명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보다 앞으로 우리 문명이 존속하기 위해 뭘 해야 할지 미래에 대한 고민이 더 커졌다.

 

복잡하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넘치는 세상이다. 먹고 사는 일도 그렇지만 삶의 의미를 찾는 일에도 마찬가지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 반복되는 하루하루다. 미래는 불확실하다 못해 불안하기만 하고 나라는 존재의 의미는 매일 옅어진다. 타인과의 관계는 비루하고, 스스로의 쓸모는 항상 의심받는다. 자아, 자의식이라는 것이 사람의 머리와 마음에 자리 잡으면서 인간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그래서 그런가. 온 사방이 먹는 것이라는 행위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방송은 각양각색의 음식과 예능감각이 뛰어난 요리사들로 점령당했다. 화면을 통해 동물화된 인간군상을 확인하는 건 나뿐인가? 좋다 나쁘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먹거리에 점령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 왠지 슬프다. 먹는다는 일차적인 욕구에 정신의 대부분을 투사하는 현대인이 서글픈 건 생존을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지천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먹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것들 말이다.

 

먹거리의 기본 바탕인 농수축산업의 미래는 어둡고 암울하다. 지금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먹고 하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를 보면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인류의 미래가 더욱 참담해진다. 분명 가까운 미래에 먹을 것들은 줄어들고, 식량 수급은 불안해질 것이다. 단순히 현재를 만족하는 수준에서 맛있고, 멋있는 음식에 열광하는 모양새가 불편한 건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단순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간종의 생존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를 차갑게 바라보고 안주하면 안 된다는 사실. 그래서 온통 미디어를 도배하는 음식이 파국을 맞이하는 인간들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만찬으로 보인다.

 

책은 일본 각 지역의 음식에 대한 소개다. 물론 먹거리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견해와 다른 책이다. 일본을 여행할 때 지니고 다니면 유용한 책. 맛집을 소개하는 책이라 보면 된다. 책 속의 정보는 상당히 풍부하다. 일본 전역의 음식들이 지역별로 소개돼 있고 음식의 역사와 문화도 양념처럼 첨가돼 있다. 정갈, 깔끔, 깨끗한 느낌, 내가 느끼는 일본 음식의 일차적인 감정이다. 책은 그런 느낌을 충실히 표현한다. 글쓴이의 글 또한 무리 없이 술술 읽힌다. 특히 책을 마무리하는 부분에서 언급한 일본의 근대성과 진보에 대한 논의는 음식이라는 주제를 벗어난 인문학적 고민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룬 일본.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 아시아 각국의 근대화는 일본과 닮은 부분이 참으로 많다. 인정하기 싫은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모던은 일본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일본은 전통의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꼭 언급하고 싶다. 메이지 지식인들은 일본의 전통이 부정되는 혹독한 근대를 겪으며 일본의 어두운 미래를 예측했다.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고민했던 근대 일본 지식인들의 자세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새롭게 재편되는 세계질서에 대한 깊은 고민의 필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싶다. 글쓴이가 말했듯이 자기부정이야 말로 진보의 첫걸음이다. 음식으로, 먹을거리로 도배되는 현실에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먹는다. 먹기 위해 생존하지 않는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우수한 능력을 지닌 종이라면 현재의 만족이 아닌 미래의 고민에 눈을 돌려야 한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 먹거리가 사라지는 미래를 이야기한다는 게 시쳇말로 진지빠는 짓일지 모른다. 하지만 진지빠는 인간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더 밝다. 먹는 건 먹되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먹자.

좀 민망한 일이라 하겠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 있는 척 하지만 또 그게 상당히 편향된 편이다. 경제 경영 관련 책은 케인즈니 마르크스니하는 원론 정도 대충 읽은 정도다. 게다가 자기계발서와 별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개인 성공담류의 경영서적은 거의 읽은 적이 없다. 몇 년 전 우연히 리뷰 서적 당첨으로 받아본 책이 한 권 있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리뷰는 내게 좋은 약이라 생각한다. 정희진씨가 쓴 책에서 관보를 읽고도 서평은 쓸 줄 알아야 함을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공담이라는 경영, 처세 서적에서 내 고민의 씨앗과 열매를 얻을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을 수 있었던 건 오로지 정희진씨의 책(“정희진처럼 읽기”)덕분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커피전문점 사장, 그리고 망고를 이용해 디저트 카페의 신기원을 이룩한 프랜차이즈계의 성공신화 주인공 강훈. 남이 걸어간 길을 그대로 따라가 2등이 되기보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1등이 된 사람. 남과 다른 눈, 남과 다른 판단력, 과감한 결단력과 추진력. 어쩌면 강훈은 야전지휘관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다. 생과 사의 일대 격전장에서 리더는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을 가져야 한다. 아니면 부하들이 다 죽는다. 어설픈 계산과 빗겨간 판단은 되돌릴 수 없다. 뭐 이미 다 죽고 끝났으니까. 개인적으로 야전지휘관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비범한 직관력을 갖춰야한다고 본다. 그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 강훈은 그런 직관력을 지니고 있다. 물론 그가 성공 일변도의 길의 걸어온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판단과 결단은 대부분 옳았다. 특히 시대의 변화를 빠르게 읽기 위해 SNS와 블로그를 적절히 활용하고, 타켓층의 심리와 취향을 꿰뚫는 눈은 그의 직관력의 결과라 판단된다. 그는 성공의 전제조건인 세상을 읽는 정확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2등은 안 된다. 무조건 1등이 되기 위해 노력해라. 모든 사람이 1등이 될 수 없기에 난 무조건 1등이 돼야 한다는 것에 나는 반대한다. 나는 협력의 가치를 공유하는 함께 라는 말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낙오자가 설 땅이 없다는 살벌함이 지배하는 세상은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세계일뿐이다.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 공동체는 전쟁터가 아니다. 이 나라 모든 젊은이들이 성공신화에 매달린다면 그게 바로 지옥이다. 다양성이란 말이 약자의 변명쯤으로 무시되는 이 시대가 그래서 두렵다. 프랜차이즈 사업과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지언정 그와 다른 꿈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책은 아니다. 그래서 어쩌면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 또는 동시대 사람들이 꿈꾸는 성공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알기위한 책이라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훈씨가 가장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부분이 도전정신이다. 나는 도전정신의 쓸모에 대해선 글쓴이와 생각이 비슷하다.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이 어딘지 악착같이 밀고 나가는 도전의 가치는 창업이나 경영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 삶은 어떤지, 나란 인간은 과연 제대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도 도전정신이 필요하다. 먹고 살아가는 일에 대한 도전정신의 절반을 내 삶의 가치에 대한 성찰에 쏟아 부었으면 좋겠다. 글쓴이는 그 도전정신으로 프랜차이즈계의 신화가 되었다. 나는 남의 부러운 시선 따윈 필요 없으니 내 자신에 대한 끝없는 탐구로 스스로에 삶의 길을 제대로 찾는 내 나름의 신화가 되고싶다.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책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