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 국민, 대중 그리고 시민. 단어의 쓰임새가 비슷비슷한 말들이다. 글을 쓸 때 적절하게 선택한다고 하지만 사실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써버린다. 민중이란 무어냐면 국민이면서 대중이며 피지배 계층에 해당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민중이라는 단어는 혁명을 떠올리게 하고 동시에 민족주의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혁명이든 민족주의든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지만.

 

저자는 사회과학적 관점과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나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민중사를 다루고 있다. 책은 일반대중과 대학생, 노동자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민족운동 등을 현대 한국사의 역사적 사건들로 분석한 연구서이다. 문체는 건조하지만 좌우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 없이 시종일관 균형을 유지한다. 그 아슬아슬한 균형이 읽는 맛을 배가시킨다. 덤덤함이 때론 매력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는 독서였다.

 

민중의 개념이 희박해진 시대. 우리 시대는 다중의 의미가 퇴락했다. 개별화와 파편화가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필연이라면 민중사적인 측면에서 1900년대 후반은 집단행동과 연대가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일제 식민 강점기가 막을 내린 후 우리나라는 친일청산에 실패했다. 게다가 해방 후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으로 분단에 이른다. 당시 대학생을 비롯한 학생들은 국민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 했으며 민족주의적 성향을 등에 업고 반일의 기치를 내걸었다. 또한 부패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과 민주주의의 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당연히 민중운동의 방향성도 일맥상통했다. 이후 유신반대운동은 민주주의 수호라는 정의로움으로, 80년대 이후에는 반미, 반제라는 깃발아래 대학생과 운동권의 민중운동이 전개됐다.

 

90년대 이전 민중운동은 그 대상과 싸워야 할 적이 분명했다. 친일청산, 반일, 반유신, 반미로 이어지는 맥락이 그러하다. 거대한 적들과 전투는 힘겨웠으며 흔히 운동권이라 불리는 활동가들의 희생은 작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숭고한 대의를 품은 채 공장으로 농촌으로 스며는 많은 대학생들의 행동은 분명 역사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 단순한 좌우의 논리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평가절하 하는 식의 구태에서 벗어나야 함을 책은 강조한다. 돈이나 물질에 경도되지 않은 순수한 결의와 다짐이 천진한 어린애 장난쯤으로 치부되어선 안 된다. 책이 강조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과대평가로, 때로는 평가절하의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우리나라의 민중사는 그래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복원이 필요한 것이다.

 

내가 가진 어쭙잖은 필력으로 책을 완벽히 표현해내긴 가당치 않다. 하지만 파국으로 향하는 세계와 우리나라를 생각해보면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민중운동에 대해 차분히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의 입구라 하더라도 인간에 대해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역사에서 꼬인 매듭의 풀이 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은 피지배계층이다. 99%의 피지배계층이 무엇을 고민해야 할지 꼭 읽어보고 고민하기 바란다. 지나간 역사는 그냥 죽어버린 역사가 아니다. 니체식으로 말한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매일의 반복에서 벗어나 다른 삶, 차이의 삶을 꿈꾸고 행동한다면 과거의 역사 또한 새로운 역사로 탈바꿈 할테니 말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삶의 순간순간 차이의 쾌감을 발견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지 못하고 어제같은 오늘을 매일 반복한다면 노예의 영겁회귀에서 절대 빠져 나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학생들이 배우는 수학에는 패턴을 찾는 문제가 종종 나온다. 특히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수열문제는 패턴 찾기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몇 가지 규칙으로 반복 나열되는 숫자 더미 속에서 재빨리 패턴을 찾지 못하면 문제를 풀지 못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도저히 보이지 않던 패턴이 의외로 쉽게 보이는 건 물론 많은 문제를 풀어보고 나서야 가능해진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수열의 패턴을 잘 찾으면 이후 극한이나 미적분 문제에서도 패턴을 찾는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그런데 문제는 간단한 패턴도 알아채지 못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는 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고등학교 수학문제를 어려워하는 학생들은 책을 읽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 글과 문장의 패턴을 찾아내는 능력을 키운 학생들이라면 수의 패턴도 어렵지 않다. 그게 그거니까.

 

영악하지 않다. 그리고 경제학 책도 아니다.

 

책을 접한 나의 판단은 그렇다. 이 책은 세상을 읽는 유용한 팁을 제공하며 동시에 개인과 가족 그리고 사회, 종국에는 현대라는 문명의 패턴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참고서 같은 책이다. 책은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교육학, 물리학, 수학, 역사, 문화 예술까지 모든 학문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 목적은 오로지 세상을 이해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패턴을 찾기 위해서다. 물론 현 시점에서 경제를 논외로 한 세상 읽기란 부적절하다. 그래서 책 제목에 경제학이라는 말이 포함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영악하다고 말하긴 그렇다. 패턴을 읽으면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똑똑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요소가 줄어들 테니 경쟁에 우위에 설 수 있다. 하지만 경쟁에서 승자가 된다고 영악한 건 아니다. 책 제목에 영악하다는 강한 어조의 표현을 사용한 것은 책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일뿐 그리 영악한 내용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유용한 내용들이 많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꽤 방대하다면 방대한 내용이 작은 책 속에 포진돼 있다. 물론 내용은 직접 읽어보시라.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저자가 여러 곳에 지적해 놓은 경쟁에 우위에 서는 간단한 방법에 관해서다. 책을 많이 읽어라. 바로 이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신문과 인터넷을 활용한 후 깊은 사고와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위해서 책을 읽으라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한다. 책을 읽어야만 다양한 사고의 틀에서 최적의 판단과 정확한 상황파악, 그리고 정밀한 패턴 분석이 가능하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는 것도, 불확실한 미래에 생존하기 위해서도,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도 독서는 필수다. 다양한 분야의 기본 개념을 세상 살아가는 유용한 방법에 적용시킬 줄 아는 저자의 능력 또한 다량의 독서에서 비롯됐음이 틀림없다. 책 읽기는 사고의 깊이를 깊게, 고민의 강도를 크게, 삶의 의미를 폭넓게 만들어준다.

 

장기불황의 시기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920년대 대공황과 버금간다. 대공황은 20년 이상 지속되다 결국 끔찍한 세계전쟁으로 막을 내렸다. 현재진행중인 저성장 구도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며 어떤 결론을 맺을지 아무도 모른다. 성급함과 욕심을 버리고 장기적인 시선에서 꾸준한 관찰이 필요하다. 금융위기이후 세계가 얼마나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는지 매일매일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살고 있다. 불안의 공포에만 휩쓸려 근시안적인 결정만 반복한다면 인류는 파국의 시나리오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불확실성의 패러다임은 앞으로 꽤 오래 지속될 것임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정확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의 패턴의 찾는 능력이다.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깊은 내공을 쌓아야 제대로 된 패턴이 보인다. 영악한 경제학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바로 패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아마 생존을 위한 시간이 도래했을 때 가장 중요한 능력이 바로 그것일 테니까.

 

 

그래. 미쳤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 모른다. 대한민국 재벌가에서 일하는 소수의 선택받은 자들은 실상 일에 미친 사람들이다.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포기해야 하고, 훈훈한 인간관계도 포기해야 한다. 여가와 취미는 사치일 뿐이다. 초과근무는 당연하고 주말 출근은 필수다. 회사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는 가족과 나를 초월한 숭고한 가치를 지니고 회사와 상사는 절대자이자 제사장이다. 상명하복의 군대문화, 명령의 일관성, 불가능이 없다는 불굴의 의지는 조직을 위한 삶의 고귀함을 더욱 빛나게 한다. 산업사회를 거쳐 첨단사회로 진입했지만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사고방식은 근대 산업사회의 멘탈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래야만 지독한 글로벌 경쟁사회에서 가진 것 없는 신생 변방국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프랑스인인 저자가 남달라보였다. 어떻게 그 오랜 시간 우리나라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었을지. 보통 외국인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한국 직장인은 철저한 통제아래 자신의 능력 이상의 업무를 수행하는 미친 사람들이었다. 불합리함, 인격적 모독을 대수롭지 않게 참아내며 회사의 이익을 위해 건강까지도 희생하는 미친 사람들. 20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줄담배를 태우고, 끊임없이 일. 일. 일. 승진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올라서기 위해 인생의 다른 모든 가치를 희생하며 회사에 목숨을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10년 가까이 함께한 글쓴이가 대단해 보였다. 유럽인의 가치관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과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비판과 비난의 글이 아니다. 왜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해야 하는지 나름 글쓴이의 이해와 더불어 과학적인 근거(?)로 글을 진행해 나간다. 유교문화에서 파생된 가부장 체제를 바탕으로 한 재벌일가의 회사운영 방식, 통제와 조절을 통한 효율성의 극대화, 철저한 서열주의를 통한 억압구조의 내면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분명 우리나라 재벌가의 회사 운영방식은 80년대와 90년대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처럼 지금은 시대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동성에서 벗어나 다양성과 창의력을 새로운 가치로 삼아야 할 시기다.

 

내보이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들켰을 때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책을 읽으며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물론 저돌적인 기업 문화에 대한 동경과 긍정의 마인드를 지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하고 있다. 경쟁만이 최선의 가치라는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다가오는 미래에 필요한 사고방식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자세이다. 경쟁의 선두에 서고자 하는 우승열패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 정신이다. 경제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분명 무한 경쟁이라는 요소가 중요한 부분으로 작동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라. 경쟁으로 인한 무조건 경제 발전이 낳은 무수한 부조리가 천지에 깔려 있다. 여가를 빼앗긴 일 기계로 전락한 노동자들, 쓰레기로 관리되는 저소득층, 삶이 고통인 고령자들 그리고 전 지구적 생태재앙과 전쟁과 테러……

 

모두들 조용히 자신의 삶을 관조해보라. 얼마나 미치도록 일만하고 살고 있는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과연 지금의 삶이 살만하고 가치 있는지를 고민해본다면 미래의 나를 추측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미치도록 일 할 열정을 공동체와 함께 할 궁리로, 지속가능한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고민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분명 한국인은 미친 것이 아니라 세계를 파국에서 구해낼 선구자로 칭송받으리라.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