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 마음에 들어 구입하는 경우가 일 년에 대여섯 번쯤 있다. 이 책이 그런류에 속한다. 부동산이나 아파트 시세에 전혀 관심이 없는지라 나와는 거리가 먼 책인 줄 알았다. 팟캐스트에서 방송된 내용을 묶은 것이고 무척 재밌다는 뭐 그런 얘기에 혹 해서 읽은 책이다. 생각해 보면 몇 해 전 읽은 박해천 교수의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아파트 공화국』이 어쩌면 이 책을 읽게 만든 동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박해천 교수의 책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풀이한 우리 사회의 정치, 문화, 경제 진단서라면 이 책은 부동산 전반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여준다. 물론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인문학적 지식은 앞서 이야기한 박해천 교수의 책과 견주어 빠지지 않는 지적 충만감을 선사한다.

 

흥미로운 내용이 많은데 무엇보다 박정희 대통령이 만든 경부고속도로 이야기가 압권이다. 그토록 적은 비용으로 대역사를 성공시킨 고속도로 건설 서사는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차관을 끌어오고, 독특한 방식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군 건설 장비를 이용하고 하는 일련의 내용들은 굉장히 놀라웠다. 내게 압제와 억압으로 상징된, 고도 경제 발전이라는 허울을 벗기면 온갖 고통으로 신음 받던 피지배층으로 형상화된 개발독재시대인 박정희 시대가 조금은 달라보였다. 당시 우리가 가진 기술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인 경부고속도로의 성공은 이후 박정희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밑거름 역할을 했고, 건설경기 부양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경기 호황을 이끌었다는 부분은 참신하게 다가왔다. 나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탐욕과 억압기제, 수탈과 착취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는 어떡해서든 개혁해야 한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그 해결책의 실마리를 경부고속도로 건설에서 찾았다.

 

공공 기간산업과 공공인프라 건설에 정부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다면 침체된 경기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원을 활용하며 국민의 부를 증진시키는 방법론을 더한다면(물론 어렵겠지만) 썩 훌륭한 경제정책에 나올 것 같다.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이 아닌 국가주도의 경제 성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독재 정권을 찬양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정치적 독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 발전에 관한한 엘리트 경제 관료 중심의 국가 지휘체계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다. 어쨌든 사분오열된 이 작은 나라의 뜻을 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선 강력한 국가의 경제개입은 절실하다. 선결돼야 할 더 중요한 문제는 제대로 된 정치권력이 선출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그래서 며칠 후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를 잘 치러야 하겠다)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가능성이 커 보여서 첨언하겠다. 나도 엘리트니 경제 관료니 국가 권력이니 하는 말들은 무척 싫어한다. 하지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정치권력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자본과 시장으로 권력을 넘기고 난 후 지금 현실이 어떤지 우리가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국가와 자신을 동일하다고 판단하며 국정을 수행하는 현재 권력집단을 지지하는 건 아니다. 어차피 이상적인 독재란 말 그대로 이상일 뿐이겠지만 손 놓고 비난만 한다고 달라질 건 없다.

 

책에는 물론 박정희 정권 이후 권력이 어떤 식으로 부동산 시장에 개입했는지 시대 순으로 서술돼 있다. 광주의 처참한 5월을 빚어낸 전두환 정권이 아파트 가격에 얼마나 민감했는지, 이후 정권에서 중산층과 서민의 집값에 얼마나 목을 맸는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현대인의 삶에서 주거지는 단순하게 사는 곳만 의미하지 않는다. 주택이 확장된 자산의 개념으로 이해된다면 국가의 부동산 정책은 권력의 존망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부동산에 대한 내 개인적 의견 또한 매우 부정적이다. 단순히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한 단기적인 정책들은 폭탄 돌리기와 같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으로 불안심리만 증폭시킬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정책(어쩔 수 없이 고난의 시간을 보낼지라도)의 수립과 장기적인 안목의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과정이 그랬듯이 역동적인 우리의 힘을 한 곳으로 모아 강력한 국가 주도 부동산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디스토피아를 꿈꿔(?)왔다. 유토피아는 이미 30대 나란 존재에서 멀어졌다. 미래에 대한 어떤 예측도 곱게 보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하지만 방법론은 조금 달라졌다. 내가 생각한 디스토피아는 절대 소수의 지배층과 절대 다수의 피지배층의 이중국가론 비슷한 모양새였다. 1대 99의 비율의 극단으로 치닫는 지배, 피지배 구조를 고려한다면 현재도 물론 디스토피아임은 틀림없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새로운 중세가 이미 완생(?)의 고지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지점에서 나의 판단은 이랬다. 우선 급격히 줄어드는 재래식 자원들-물론 매우 효율적이고 사용하기 편한-을 놓고 세계가 극한 대립의 시간을 보낸다. 이후 소수의 지배층이 자원과 부를 독점하고 다수의 피지배층은 생존에 꼭 필요한 자원을 배분받으며 지배 권력이 정교하게 프로그래밍한 사회 시스템에 종속되어 살아가게 될 것이다. 물론 몇 십 년 후 이야기지만 그 때가 되면 인구도 상당수 줄어있을 것이다. 지구는 온난화와 기상이변으로 많은 지형적 변화를 겪을 것이고 피지배층 인간들은 미디어에 중독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감시와 통제 속에서 지배층을 위한 노동력 제공처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크게 간과한 것이 있다. 내 무지와 불찰이겠지만 고도로 발전되는 인공지능과 로봇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그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과 바둑으로 떠들썩했다. 인간의 지능을 넘어서 직관과 성찰이 가능한 인공지능의 탄생에 많은 사람들은 경의와 우려를 함께 표했다. 그렇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제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자부하던 추론, 직관, 성찰 등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를 기계가 대신 할 수 있다는 충격적인 증거들을 속속 눈앞에 펼쳐준다. 고된 노동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는 뻔한 이야기와 인간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세속적인 이야기에서 잠시 비껴 숙고해보면 인공지능을 매개로 인류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볼 수 있다. 나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리라는 예측에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소수 지배층의 도구로써의 인공지능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판단한다. 똑똑하고 현명한 지배층 인간들은 분명 인공지능을 지배할 기술을 충분히 확보할 것이다. 물론 내 개인적인 예상이다. 고도화된 인공지능의 개발과 발전은 인간 노동력을 대신할 로봇의 상용화와도 궤를 같이 한다. 그렇다면 디스토피아의 노동력으로 사용된 절대 다수의 피지배층의 효용가치는 땅으로 떨어진다. 결국 지구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절대 소수의 인간들에게 절대 다수의 인간 노동력은 의미가 없어진다. 물론 시대의 화두인 에너지 문제에 천착해 인공지능과 로봇의 운용에 필요한 에너지원 확보를 어떻게 하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잠시 그 이야기들은 접자. 그나마 인류의 완전한 종말과 파국만을 생각하던 내가 인류 문명의 생존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내겐 큰 인식의 전환이니까 말이다.

 

인공지능이 어떤 식의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지, 인간 문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지식은 나 또한 아직 많이 헐겁다. 그래서 선택한 이 책은 헐거움을 어느 정도 쪼여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인공지능의 현주소와 그 적용 직업군, 무엇보다 인공지능이 맞닥뜨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들에 관한 쉽고 재밌는 글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저자의 지식이 매우 깊음을 느낄 수 있다.

 

책을 통해 미래를 유토피아로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처럼 디스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과 그네들이 함께 경쟁하며 이야기와 토론을 이어간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가능할 테니 말이다. 인공지능에게 성찰의 기능을 주기 전에 우리 인간이 먼저 성찰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절대 소수의 지배층이 아닌 절대 다수의 피지배층이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서라도 인공지능에 대한 성찰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세상이 급변하는데 인간은 뒤로 간다. 텔레비전 화면에 정신 줄을 놓고 있는 동안 우리의 삶은 점점 우리의 의지가 아닌 다른 거대한 힘에 의해 이끌려 간다. 그 힘이 인간이 만든 로봇과 인공지능라면 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읽고 고민해야 한다. 급하다.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경제적 부를 지닌 중산층 이상이라는 가정아래 미래를 위한 자식 교육에 대해 말해보겠다. 우선 아이를 헬조선 입시지옥에 완벽히 적응시킨 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로 보낸다. 물론 카이스트나 포스텍도 괜찮다. 학사를 마치면 바로 미국의 유수한 대학으로 보낸다. 이공계열이면 반드시 그래야한다. 인문사회계열도 괜찮다. 미국에서 박사이상의 학위를 얻고 한국으로 돌아와 교수진에 편입한다. 혹은 미국에 남아 미국 교수시장에 진입해도 괜찮다. 이공계라면 미국의 관련회사, 경영이나 회계를 전공했다면 마찬가지 미국의 글로벌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좋다. 핵심은 우리나라에서 석, 박사를 마친다면 별 볼일 없어진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자. 이것이 책을 읽고 결론에 이른, 물질적 성공과 사회적 명예(?)-물론 글로벌화 된 전 지구적 규모의 상상력을 발휘하여-를 얻는 가장 최적의 테크트리다. 학벌계급주의에 물든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미국학위자들을 우대한다. 미국 박사들이 포진한 유명대학 교수체계도 그렇지만 대학이 더 이상 순수한 학문 추구의 전당이 아니라 논문 수에 비례한 성과주의 기업체로 탈바꿈한 현실에서 영어로 논문을 쓰고, 발표하는 미국 출신 교수들은 기업의 성과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존재다. 문제는 그들이 우리나라에 적을 두고 있지만 실제 중요한 연구는 몇 달간의 방학을 이용해 미국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학사구조를 지니고 있고, 미국의 관련 학자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의 연구역량 탓이다. 미국 출신 엘리트들은 우리나라 학벌 세계의 최상층을 이루지만 실제 그들의 연구는 미국에서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미국 체계에 종속된 그들은 한국에서 최고의 자리를 군림하며 쉽게 말해 미국에서는 지배받고 한국에서는 지배하는 모순된 상황을 만들게 된다.

 

애증이 교차하는 미국. 하지만 교육과 연구부문에서는 독보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엄청난 자원과 자본을 쏟아 붓는 것은 물론, 뛰어난 인재에 대한 대접도 소홀하지 않다. 대학자들의 풍모를 보면 권위에 물들지 않은 참 연구자의 표본으로 관련 세계 학계를 이끌어 갈 자질이 충분하다. 이런 학문 분위기의 미국 대학들에서 공부한 우리나라 유학생들은 뛰어난 능력을 미국에서 발휘한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우리나라의 교수구조, 연공서열과 인맥, 학맥으로 쌓아올린 위태위태한 지식의 상아탑에서 외국유학파 교수들은 숨막혀한다. 게다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한 연구관련 인프라는 그들의 열정을 꺾어 버린다. 결국 그들의 선택은 앞서 이야기 했듯이 다시 미국이다.

 

우리나라 대학교수 사회의 정점은 미국박사출신이다. 그들은 후임으로 자신들의 아바타를 내세운다. 상층부의 미국 엘리트 집단은 그 아래 국내 박사 출신 교수들에게 헤게모니를 휘두른다. 다시 그 아래에는 석박사 과정의 국내 대학원생들이 존재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다시 미국에서 학위를 준비하는 부류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결국 상층부를 구성할 예정인 미국 유학파가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 학계는 영원히 미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껴안고 가야한다. 최신 기술과 학문은 여전히 미국에 한 참 뒤진 채 쫓아가기 급급하고, 우리나라의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포함한 모든 학문의 정체성은 점점 미국화 될 것이다.

 

글 서두에 이야기 했듯이 현실적으로 잘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바로 미국유학이다. 미국 엘리트들에 의한 구조적 모순이 지속되는 한 우리나라 대학은 점점 미국에 종속될 것이다. 뭐 어쩌겠는가. 뾰족한 방법이 없는 걸 말이다. 혁명을 방불케 하는 초중고 교육과정의 대대적인 수정과 대입제도 개선. 교육개혁에 대한 과감한 국가의 투자. 국민들의 의식 변화가 없다면 어떤 약을 처방해도 병세가 개선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