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지 않은 애도는 아직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삶의 뒤흔든다. 누구의 죽음이든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정중하게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애도해야한다. 그래야 살아남은 자, 살아갈 자들의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 상실의 고통이 지속되는 건 애도가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주에서 죽어간 많은 이들에게 느끼는 살아 있음의 슬픔은 충분하지 않은 애도 때문이다. 애도의 양과 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가든 사회든 개인이든.

 

창피한 일이다. 국가도 사회도 개인도 제대로 된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는데 한 작가의 글로 광주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한강이라는 소설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소설가가 남자인줄 알고, 그저 광주라는 말에 책을 주문했다. 보통 책을 읽다가 던져버리고 시간이 나면 다시 들춰보고 아니면 그냥 쌓아놓고 구경하는 내가 책을 펼치고 끝까지 읽었으니 묘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자존심이 상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다. 광주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나 자신에 대한 실망이 그 이유다.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기나 했던 건지. 스스로에 대한 책망 보다는 삶이 허무했고, 세상은 어두웠다. 기억 속에서 잊지 않기만 하면 그만이라 생각했는데 젊은 날 고뇌했던 광주의 대한 기억이 속속 되살아났다.

 

그래. 나도 충분히 그 사람들을 애도하지 못했구나. 내 나이 여덟 살에 일어난 일. 고등학생 때 처음 알았던 광주의 비극. 5월이면, 선거 때만 되면 고귀함과 숭고함의 옷이 벗겨져 수치스럽게도 정파의 이해관계와 사회의 세속적 논리로 입방아에 오르는 광주. 그게 싫어서 애써 외면했던 내게 광주의 아픔과 울분 그리고 숭고한 민초의 울림을 되찾아준 소설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죄책감과 부끄러움으로 손끝이 떨린다.

 

누군들 광주에 대해 쉽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광주에 대한 글을 쓰거나, 광주를 입에 담아 말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필요한 건 진심어린 애도의 마음이다. 작가는 한 소년의 죽음을 통해 광주를 애도한다. 진정성이 뚝뚝 떨어지는 문장에서 깊은 애도의 심정이 읽혔다. 민주화도 아니고 독재타도도 아닌 오로지 양심 때문에 죽어간 그들에게서 작가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했고 그 내용을 그대로 글로 표현했다.

 

죽음을 애도하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의무다. 진정한 애도에서 인간은 양심의 존재를 발견하고 삶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가능하다. 애도가 사라진 죽음은 그래서 야만적이다. 우리가 인간의 삶을 살고 있다면 그리고 인간답게 산다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광주에 대한 진정한 애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그렇기에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애도, 턱없이 부족한 애도가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모두를 욕되게 한다. 그런 치욕과 야만의 세월을 우리는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소설로 충분한 애도가 가능한지는 읽는 자의 몫이다. 하지만 분명한건 이 소설을 읽으면 세월호에서 사라진 아이들이 보일 것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인간사에 항상 존재했다. 인간의 야만성이 세상을 지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희생들에 대한 남아 있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자세다. 사고의 반복을 막는 것도 중요하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슬픔을 나누고 그 슬픔을 내 몸으로 체화하는 진정한 애도가 필요하다. 충분히 애도하는 가? 광주에서, 세월호에서 죽어간 영혼들에 대해서 말이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괴롭고 부끄러운 일이다.

김현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다. 우연히 김현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평론가라는 짧은 글을 읽었고, 쉰 살이 되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관심 있게 읽은 최승자의 시에 대한 그의 평을 읽었고, 도서관에서 『말들의 풍경』을 빌려 읽었다. 시론에 대한 아니 문학에 대한 지적 수준이 밑바닥인 내게 책은 어려웠고, 김현 선생이 일기처럼 쓴 책이 있다기에 얼른 구입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형식이 일기라는 사실. 죽음에 임박한 선생의 글이 궁금했기 때문에 책에 많은 평론이 수록됐을 것이란 생각까지 하진 못했다. 단순하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선생의 생각을 엿보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죽음에 관한 담론 혹은 관념들보다 많은 글과 시에 대한 선생의 평을 통해 죽음 너머의 삶의 본질, 문학과 예술의 숙명을 맛봤으니 내게 고마운 책 목록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문학과 예술의 종언. 우리는 시대가 증명하듯 하루하루 아무 생각 없이 살아야 겨우 살아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과거를 추억하며 문학과 예술을 논하노라면 감상적 낭만주의에 허덕이는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기 일쑤다. 하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는 불안한 시대. 생존을 위한 행위 외에는 모든 것이 쓸데없는 짓거리로 치부되는 천박한 시대를 탓한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중요한 것은 시대를 향한 불평 따위가 아니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에 게을러진 인간, 그렇게 자기 자신 본연의 존재론적 고민이 줄어든 이유를 찾아야 한다.

 

고통 없는 삶, 안정된 인생이 지상과제인 시대에 자기반성은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다. 자기계발과 끊임없이 스펙에 몰두하는 일, 자본주의 시스템에 적응하는 일이 어쩌면 지금 이 시대의 생존 조건이다. 하지만 전술한 생존 조건이 과연 진정한 인간의 삶을 대표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생물학적인 생존만이 목적이라면 다른 동물의 삶과 구별점이 사라진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오만한 인간이 어찌 나는 그저 동물일 뿐이었음 증명하려 하는가 말이다. 코제브라는 철학자가 동물화된 인간 세상을 이야기했듯이 세상의 인간들이 점점 동물로 살아가는 모양새가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결국 아무리 종언을 선언했다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변별점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보루는 문학과 예술이다.

 

김현 선생의 평론은 날카롭고, 냉혹하다. 또 따뜻하기도 하고 의뭉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선생의 글에는 애정이 깔려있다는 사실이다. 문학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랑이 배어나오는 글이 여러 번 눈에 띄었다. 시기적으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시동을 걸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이라 곳곳에 양극화와 물신성에 사로잡혀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는 사회의 풍경이 묘사돼 있기도 하다. 문학과 예술이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법. 선생의 눈에 비친 당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은 희미한 예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예언이 지금은 현실이 되었으니 선생의 탁월함이 증명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문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그것을 찾아야만 짐승이 아닌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두 번째 읽을 때 자주 눈에 보이는 글들이 생겼다. 고통이 없이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안되면 일부러라도 내적이든 외적인 고통을 겪어야 읽을 만한 글이 나온다는 사실. 젊은 작가의 글을 평할 때 여러 번 강조한 부분이다. 편하게 살고 있으면 진부한 표현이 나온다. 그 사람 글 같지 않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야 한다.

 

다른 책에서 읽은 김정만 시인과 관련된 글은 죽음 앞의 양가적 인간 감정을 정확히 꿰뚫는 선생의 눈이 빛났다.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김정만의 시는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삶의 애착과 죽음의 애원이 함께하는 독특한 감정선을 읽을 수 있었다. 죽음 앞에서 쓴 글에 대한 선생의 정확한 평. 죽음의 가장자리에도 못 가본 인간들은 절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선생의 일갈은 삶과 죽음을 고민하는 내게 쓴 약이 되었다.

 

문학과 예술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 또한 인간이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인간이기 위한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은 삶과 죽음이 녹아든 문학과 예술을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삶에 대한 고민의 좋은 길잡이로 일독 권한다.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세계 문학사에서 지독히 재수 없는 인물을 대표한다. 어쩌면 그토록 지지리 운이 없을까? 갖은 고생으로 마련한 외투를 한 순간에 빼앗기고 결국 죽음을 맞이했으니 웃음보다는 씁쓸한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그에게 외투는 초라한 자신의 삶을 가려주는 때깔 좋은 가면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가면은 오래가지 못한다. 어떤 가면이든 온전한 자기 모습이 아니라면 언제든 사라질 운명이라지만 아까끼 아까까예비치의 경우 뭐라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관료주의 아래 개인의 부품화, 19세기 러시아의 계급적 사회상이라는 거창한 말은 그저 거창한 말 그대로 말일 뿐이다. 한 인간으로써 주인공의 삶은 처참한 결과로 이야기를 매듭짓는다.

 

러시아는 매력적인 나라다. 다른 서양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는 아시아적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식 합리주의의 모순에 살인을 저지르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도스또옙스키의 『죄와 벌』 이 좋은 예다. 물론 고골의 「외투」에도 정과 한(恨)의 정서가 느껴지는 대목이 종종 보인다. 아까끼의 죽음을 묘사하는 고골의 안타까움이 대표적이다. 인간의 삶에서 고통을 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간 사회 구조는 밝고 환한 면만 존재하지 않는다. 그와 거의 동등한 크기(?)의 고통과 좌절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애써 외면한다. 그 외면의 결과가 인간 소외이고 건조하고 척박한 현대사회다.

 

김원일의 단편소설 「오늘 부는 바람」의 여주인공도 비참하긴 마찬가지다. 그녀는 말 그대로 콩가루 집안의 막내딸이다. 어머니는 암으로 죽고 아버지는 경제력이 없는 술주정뱅이다. 게다가 오빠는 여자에 미쳐 탈영하고 자살한다. 어린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과연 뭘까? 그녀는 삶의 의지를 다지지만 그녀의 남은 삶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대충 감이 오지 않는 가? 처참하고 비참하다는 말이 딱 맞는 경우가 아닐 수 없다.

 

고골의 아까끼와 김원일의 여주인공의 공통점은 비참이다. 삶이 비참하다는 진리를 외투와 바람으로 은유한다. 한 순간의 꿈과 같은 삶이 외투라면 인생은 항상 바람이 부는 고통의 연속이라는 은유. 하지만 난 슬픔과 좌절, 고통과 비참의 모습이 인간사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는 김원일 선생의 말에 공감한다. 삶을 행복과 즐거움으로 모두 채울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상상은 외투를 빼앗기고 감기에 걸려 죽은 아까끼를 보면 그 얼마나 허망한 소망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인생에 한번 찾아올지 않을지 모르는 불행한 일이 겹쳐 터지는 김원일 소설의 주인공을 보아도 삶의 아름다움이 행복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삶은 참으로 공평하게도 행불행의 균형으로 완성된다. 희망과 절망이 겹쳐 인생이란 천을 만들어간다. 그래서 고통 받으며 삶을 살아가는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경이롭다. 고골의 『빼쩨르부르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삶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자신의 코를 잃은 건방진 꼬발료프도 그렇고 뽀쁘리시친의 광기도 마찬가지다. 누구의 삶이든 보이지 않는 고통은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 부는 바람이 아니라 평생 부는 바람을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그래서 잠깐 추위를 막아주는 외투의 행복한 따스함이 아니라 평생 칼바람을 맞으며 살아야 하는 고통을 잊어선 안 되는 것이다. 삶이 팍팍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차피 매일매일 부는 바람이다. 삶이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이유는 그만큼의 고통과 좌절이라는 쓴 약을 때때로 복용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고통 속의 의미 있는 삶은 죽음보다 가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