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도 이랬을까? 요즘 중학생들은 글쓰기를 참 싫어한다. 아니 싫어한다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SNS나 카톡으로 매일 방대한(?) 텍스트를 생산하는 그들이다. 그런데도 막상 글을 쓰라면 머뭇거린다. 기본적인 문법이 제거된 상태로 발화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건 익숙하지만 스스로 자신들이 제대로 된 글을 쓰지 못한다는 건 잘 아는 모양이다. 과거 중학생들이 작성한 텍스트는 형식과 문법 틀을 갖춘 글이었다. 대화가 아니면 편지나 쪽지였다. 보고서나 감상문도 지금보다 훨씬 고답적이었다. 글이라는 건 분명 나름의 형식과 문법이 존재한다. 시대가 변해 ‘줄임체’가 아이들에게 대세요, 급식체가 유행이라지만 유행은 일시적일 뿐이다. 편지와 쪽지 그리고 보고서와 감상문은 문법과 그 형식이 약속된 글이다. 답답해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글이 오래 기억되고 기록물로 가치를 지니려면 제대로 된 글쓰기가 꼭 필요하다. 아무리 통신기술이 발전해도 말이다.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자신 있게 마음 가는대로 쓰라고 강조한다. 못쓴다고 기죽지 말라고, 그리고 첨삭을 받으면 자신이 쓴 글이 얼마나 엉망인지 깨닫게 된다. 그러면 최초 그 자신감이 부끄러움으로 바뀌고 글에 대한 오기가 생긴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이 방법이 왜 그리 효과가 없는지 책을 읽고 깨달았다. 문제는 자신감이나 창피함, 오기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재미였다. 글쓰기의 ‘재미’말이다. 난 재미보다 부족한 글쓰기 능력의 창피함을 부각시키는 걸 강조했던 것이다. 게다가 매번 책을 읽고 딱딱하기만 한 관념적인 내용에 관한 감상을 적으라는 둥 생각해보면 나는 몹쓸 선생이었다. 선무당은 분명 사람을 잡는다. 깨작깨작 글 좀 쓴다고 수학에서 독서로 독서에서 글쓰기로. 내 오지랖이 아이들의 쓰기 능력을 더 뒷걸음질 치게 만든 건 아닌지 걱정이다. 재미와 소통, 일상의 소소함을 주제로 천천히 글쓰기의 묘미를 익혀가는 책 속의 사례들을 읽으며 아이들의 글쓰기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 아이들이 글을 쓰지 못한 건 부끄러움이 아니었다. 재미가 더럽게 없어서다.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먼나라 이야기를 글로 쓰라니 곤욕이었을 게다. 형식적인 딱딱한 글은 아이들에게 소통의 매개도 아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어쨌든 아이들 나름 의미와 재미가 있어야 한다. 책 속 아이들의 글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모티콘도 그렇다. 난 아이들에게 절대 줄임말이나 이모티콘을 쓰지 못하게 했다. 이러니 어찌 답답하지 않았을까? 당연히 서로의 글을 돌려 읽을 때 아무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있는 글쓰기, 솔직한 글쓰기가 절실한 건 바로 중학생 아이들이다. 왕따와 학교 폭력에 관한 책 속 에피소드는 살아있는 소통의 글쓰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깨닫게 해준다. 표현이 어눌하고 형식은 파괴됐지만 문제의 두 학생은 서로 편지를 교환하며 상대를 이해하고 오해를 풀어간다. 아이들의 글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대화가 아닌 글을 통한 소통은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다. 말이 풍길 수 없는 매력을 텍스트는 지니고 있다. 뭔가 진하고 진득한 느낌. 그 느낌을 이해하는데 문법과 형식은 2차적인 부분이다. 감정이 담기고 진솔함이 느껴진다면 이모티콘이면 어떻고 급식체면 어떤가. 문법이 파괴되고 글이 난삽해지는 건 기술발전이 반영하는 잠깐의 유행이다. 유행에 화들짝 놀라 인류의 유산인 문자 체계가 무너진다고 오버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의 글쓰기가 재미에서 출발해야 하는 건 바로 유구한 인류 유산인 문자와 글을 지키고 발전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중학생들의 흐뭇한 글이 가득 실린 책이다.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그 방향을 찾으려 했는데 실패했다. 아이들의 글이 얼마나 재밌던지 흥겨움과 유쾌함으로 가득한 독서였다. 감동만큼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글도 많았다. 글쓰기를 ‘이렇게, 저렇게’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은 책 속에 전혀 없다. 글쓰기의 정석은 ‘이렇다, 저렇다’라는 말도 전혀 없다. 그저 아이들의 파닥파닥한 글이 가득하다. 읽어보고 “중등 글쓰기, 어떻게 하지?”에 관한 답을 찾아보시라. 나는 찾았다. 자꾸 반복해서 짜증날지 모르겠지만 그건 “글쓰기는 재밌어야 한다.”이다.

현실이냐 이상이냐에 대한 고민은 인생의 가장 큰 딜레마이다. 어쩌면 삶의 과정이 현실과 이상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인생이 별 볼일 없는 고해의 바다라지만 현실의 팍팍함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또 인생이다. 적당한 이상이 존재하지 않는 한 삶은 피폐해진다.

 

오랜 시간 학원가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어디 한둘 이겠냐만 수학은 그 벌어짐의 크기가 크다고 생각한다. 단순계산, 최적화된 문제 풀이, 유형에 집중하는 반복 계산은 재미는커녕 수학에 대한 지극한 혐오로 귀결됨을 여러 번 경험했다. 특히 초등생들에게 계산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반복 주입되는 단순 계산 수업법은 고등수학의 토대를 무너뜨려 많은 수포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존 교육체계에서 권장하는 계산력 위주, 문제 유형 위주의 수학교육을 포기할 수 없다. 나라의 교육이 대입에 초점이 맞춰진 상태에서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한다면 그 어떤 교육도 쓰레기가 돼버리는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능문제에 적응해야하는 분위기를 없애지 않는 한 말이다.

 

글쓴이의 주장은 거의 이상에 가깝다(게다가 현재 미국 수학교육 체제를 쓰레기라고 단정 짓는다). 문제를 던져주고 충분히 고민할 시간을 줘라. 그러면 아이들은 수학을 학문이 아닌 예술로 받아들일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저렇게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수학의 본질을 찾아 들어갈 것이다. 이 때 가르치는 사람의 역할은 소극적 개입으로 끝내야 한다. 포인트를 짚어주고 나머지는 아이가 해결하도록 하면 된다. 구구절절 맞는 얘기다. 이런 식으로 수학에 접근하는 아이는 개념이해는 물론이고 응용력도 강해진다. 몇몇 수학공식을 잘 모르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식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해 간다. 하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현실적으로 비효율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대학을 포기하고 학문을 즐기는 자세로 삶 전반을 설계한 소수의 아이들이면 몰라도 현실은 빠른 풀이, 유형 반복이 지배하고 있다. 결국 문제는 구조의 변화일 수밖에 없다.

 

수학은 글쓴이의 주장대로 예술에 가깝다. 돈이나 효율과 거리가 먼 지적, 관념적 탐험의 즐거움 속에서 우린 수학의 아름다움을 배울 수 있다. 자연계의 경이로운 패턴이 아름답게 보이듯 수가 선사하는 패턴의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를 교육현장에 적용하는 것이 어려울 뿐이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키워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가? 수학이라는 분야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만큼이나 여러 방식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해야 이상적인 수학교육이 가능하다. 글쓴이의 주장처럼 수학의 다양한 해석과 접근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렇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는 사실이 숨을 막히게 한다.

 

꼭 수학과 관련된 사람만 읽을 책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그러니까 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나 공식이 아닌 패턴으로서의 수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다. 어렵지 않은(중학생 정도 수학 수준) 수학 개념으로 수학이 왜 아름다운지 잘 풀어놓은 책이다. 하지만 꼭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교육정책 입안자들이다. 수학 교육의 패러다임을 구조화하는 높으신 교육정책자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보시라.

매주 월요일 버스를 탄다.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분리된 지 3년이다. 험한 산을 깎아 만든 비탈길은 위태롭고 심하게 흔들리지만 깊은 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말로 담아내지 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꼬불꼬불 돌고 도는 길에 버스 안은 휘청대기 일쑤지만 차창 밖의 모습만은 좋은 구경거리다. 문득 그 황홀함을 무어라 표현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냥 본다. 아무 생각 없이 창밖을 바라본다. 늦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드는 시기라 산이 내뿜던 풍성했던 푸르름이 조금씩 갈색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에 무슨 말과 표현이 필요할까? 아름다움이란 어쩌면 그냥 바라보기 좋은 것이 아닐까?

 

 

작고 파란 개구리 피포의 여행은 계절에 따라 이어지고 꿈나라로 향하는 작은 양과 함께하는 여정이다.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면서 다른 동물친구도 만나고 뭔가 모를 꿈을 찾아 떠나는 피포는 각 계절이 모두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꿈을 찾는 다는 것이 어쩌면 삶의 과정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꿈이고 또 현실인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는 일이 힘겨우면 그대로 두고 보는 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생각도 했다.

 

 

“토네 사토에”란 작가의 그림은 무척 편했다. 파스텔은 아닌 것 같은데 은은한 색감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내내 행복한 궁금증에 즐거웠다. 직접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 이 아름다운 일러스트의 감흥을 느끼지 못하리라. 상투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계절을 표현하는 색이 일반 상식과 좀 벗어나지만 그래서 더 환상적이다. 노란 바탕에 빨간 양귀비 꽃, 한숨 쉬는 나팔꽃, 깊은 바다 속 꿈꾸는 해파리. 어딘가에서 마법의 용이 나타나 노래를 부를 것 같기도 하고,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목신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니 그냥 그림을 보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 버스 차창 밖 풍경을 보듯 말이다.

 

 

책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텍스트로 구성됐다. 단순 명료한 문장들로. 하지만 일러스트는 그 대상을 구분 지을 수 없다. 아이든 어른이든 그림에 매료될 것이 분명하니까. 글로 책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라는 뻔한 이야기 밖에 쓰지 못한다. 소장하고 자주 들춰보기 바란다.

 

 

그리고 의미를 두지 말고 천천히 일러스트를 감상하면 된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