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이어지는 추운 날씨에 덜컥 겁이 났다. 온난화의 역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몇 년 전까지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는 이상기후로 온 지구가 몸살을 앓게 되리라 떠버리며 자못 진지한 선지자처럼 굴며 뭔가 초월자(?)같은 냄새를 풍기며 다녔는데 현실로 다가오니 초월은 무슨......, 그저 나는 추위에 덜덜 떠는 못난 중년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기성세대인 내 죄가 크다. 지금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됐을 땐 얼마나 심각한 기후변화에 시달릴까? 걱정의 크기만큼 비례해 내 초라함이 커져만 간다. 어찌 할꼬? 어찌해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까?

 

책을 읽혀야겠다. 아이들에게 닥쳐올 세상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을. 인간이 만든 문명의 본질과 자본주의 경제가 낳은 환경오염 그리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생태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괜찮은 책. 우리 삶의 모습과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받고 반대로 영향을 주는 자연과 함께하는 자연친화적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책.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과 마음가짐을 정리한 책. 문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이런 종류의 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철수와영희” 출판사의 10대를 위한 인문학 특강 시리즈는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자본과 미디어에 의해 단순히 소비하는 존재로 거듭나는 현대인들을 제대로 꼬집은 책이다. 왜곡된 욕망을 심어 신상품에 눈 먼 소비중독자로 만드는 세상을 우린 매일 목도하고 있다. 사라지는 생명체와 파괴되는 자연에 비례해 높아만 지는 쇼핑몰과 대형마트. 책은 소비로 발생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로 고통 받는 지구의 모습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바다 속에 버려진 거대한 폐타이어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부분,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부분, 현재의 풍요가 미래의 궁핍아래 가능하다는 사실, 20%의 안락함을 위해 인류의 80%가 희생된다는 사실. 어느 하나 불편하지 않은 내용이 없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아이들 아니 어른까지도 이 불편한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최소한 내 삶이 완벽히 도덕적이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아야 한다.

 

어쩌면 지속가능한 삶의 시작은 내 삶의 본질적 부끄러움을 깨닫는 순간일는지 모른다. 환경파괴와 자원고갈을 먹고 자라는 대량소비는 결국 우리 삶의 근간을 좀먹으며 확장된다. 게다가 모든 인간이 풍요의 혜택을 누리는 것이 아닌 이상 우린 지구라는 자연과 빈곤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삶을 두고 보건데 결코 쉽지 않다. 지속가능한 삶이 말이다. 생태적인 삶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글쓴이가 말한 대로 뭔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작은 것이라 실천해야 한다. 일회용 용품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해도 상관없다. 그저 내 부끄러운 삶을 조금 덜 부끄럽게 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혀야겠다. 모두들, 조금씩 더 부끄럽게 살기 위해서.

모택동의 “대약진운동”은 많은 인민들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언젠가 스탈린이 과학적 공산주의를 바탕으로 소련인민을 개조하려다 수백만인지 수천만인지를 죽였다는 글을 읽었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지만 아마 거대한 운하였을 것이다. 여하튼 국가 기간산업 시설 건설에 오로지 인간의 힘만 투입해 짧은 시간 동안 완성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엄청난 인명이 사고로, 굶주림으로, 힘겨운 노동으로 희생됐다. 이데올로기의 서슬이 퍼랬던 20세기는 도처에 가난하고 힘없는 민중들의 죽음의 흔적이 가득하다. 진보라는 이데올로기로 자행된 숱한 죽음의 영혼들이 아직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 그래서인지 모른다. 저성장 양극화 시대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참담한 결과로 느껴지는 것이 말이다.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대약진 운동”의 희생자 수를 정확히 알고 싶다는 충동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문화대혁명 바로 직전 즉 1960년에 벌어진 중국의 대량 아사 사건은 이미 다른 책에서 많이 다뤘던 부분이다. 하지만 명쾌하게 몇 천만이 희생됐는지 정확히 제시된 책이 없었다. 대략 2000만에서 6000만 사이였는데 정확한 인원수는 오리무중이었다.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모택동 시절의 중국을 정확히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 훌륭한 책이라는 소개글에 혹하여 읽기 시작했는데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내 궁금증의 핵심인 대기근 사건은 2부작 중 2부에 해당하는지라 조급함을 뒤로하고 1부 “해방의 비극”부터 읽었다. 이 서평은 바로 1부에 대한 내용이다.

 

“해방의 비극”은 국민당 세력을 몰아낸 모택동의 공산당 세력이 중국을 장악하는 과정을 담았다. 담담한 문체로 사실을 나열하는 저자의 서술방식이 마치 기계적으로 우파와 반혁명세력을 숙청하는 모택동의 방법과 유사해 보일 정도로 중국 공산당은 담담하게(?) 많은 지주와 자본가를 죽여 나간다. 숙청과 공개처형의 대상이었던 희생자들의 죄목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비현실적인 것들이었다. 혁명의 이상처럼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그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강제 수용소에 갇혀 중노동에 시달리는 공포와 위협의 시간을 거치고 난 후 중국은 비효율이 극에 달하는 나라로 탈바꿈됐다. 특히 권력을 잡은 혁명세력의 비현실적인 정책은 농업국가 중국을 굶주림의 나라로 바꾸는 데 일조했다. 1954년 이미 식량생산이 해방 전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하며 기근의 조짐이 시작된 건 그들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농업집산화정책” 때문이었다. 땅을 잘 알고 오랜 시간 땅과 함께 한 농민들 보다 농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을까? 공산혁명세력은 혁명의 이상만으로도 식량생산을 늘릴 수 있다는 꿈속에서 살고 있었다. 집산화된 농촌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노동의 의지가 박탈당한 농민들에 의해 서서히 굶어가고 있었다. 사리 판단에 맞는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고 말없이 당의 명령에 따르는 허수아비들로 채워진 중국의 앞날은 대기근이라는 뻔한 결론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저자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공산당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 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들은 기회주의자이며 이상주의자였고 폭력배였다. 놀라운 믿음과 광신적인 신념을 보인 그들이 중국을 대재앙으로 몰아간 장본인들이었다. 어느 시대나 존재하는 광신자 무리가 사회 전반의 권력을 장악하면 그곳은 빠르게 지옥으로 변한다. 히틀러의 독일과 스탈린의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대약진 운동으로 사라진 그 많은 생명들은 분명 후대인 우리에게 중대한 메시지를 남겼을 것이다. 인민 3부작 중 2부인 “마오의 대기근”을 절반쯤 읽었다. 물론 2부의 서평은 따로 쓸 생각이다. 하지만 1부에서 이미 우리가 배워할 것을 찾을 수 있다. 그건 이데올로기의 광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자본주의 광신이야 말로 지구 전체를 파국을 이끌 주범이다. 자본주의의 광신은 몇 천만 명의 죽음으로 결코 끝날 일이 아니다. 언제까지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 과학이라는 만능열쇠(?)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오만함, 내일도 오늘 같은 것이란 생각 없음의 광신은 분명 대기근을 넘어 대멸종으로 인류를 이끌게 될 것이다.

티비만 틀면 나오는 맛있는 분들(?)의 먹방을 즐겨본다. 맛있게 먹고, 많이 먹는 그분들에게 묘한 쾌감을 느낀다. 다른 음식 프로그램과 달리 서민적인 느낌이라 더 좋다. 먹어본 자들은 역시 다르다.

 

“음식은 계급이다.” 책을 읽는 내내 머리에서 맴돈 문장이다. 먹는 음식으로 나뉘는 사회 계급. 인간의 역사가 계급투쟁의 과정이었다는데 결국 계급투쟁의 최전선에는 음식차별의 철폐에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흰 빵이 유럽 귀족의 전유물이었단다. 가난한 하층민들이 평생 구경도 못하던 고기도 이젠 매일 먹을 수 있다. 고작 100년 동안 일부 가난한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 나라의 사람들은 고기와 빵을 쉽게 먹을 수 있다. 어디 이뿐이랴. 포도주며 치즈며 초콜릿은 마트에 가득하다. 그래서 음식을 통한 평등, 이것이야 말로 인류의 진정한 평등이 아닐까란 생각을 잠시 했다.

 

생존을 위한 음식 섭취는 이제 맛과 풍미를 위한 식도락으로 사회적 의미가 바뀌었다. 고기와 빵 그리고 포도주와 치즈 등 책은 동양보다는 서양 음식을 중심으로 음식의 역사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의미를 흥미롭게 서술해 놓았다. 역사를 떠올리면 당연히 생각나는 대규모 사건과 연도 그리고 정쟁과 전쟁 따위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음식과 먹을거리만 생각하며 읽으면 된다. 그렇다고 무게감이 떨어지는 책이 결코 아니다. 재밌고 유익함을 내가 보증하겠다.

 

몇 년 전부터 왜 사람들이 먹방에 환호하는 지 궁금했다. 남이 먹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즐기며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물론 나를 포함해서)은 혹시 변태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단순히 즐길 것이 없어서,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어서라는 이유는 빈약해 보였다. 왜 자신이 직접 먹는 것도 아닌데 먹방 프로그램을 그리 좋아하는지 선명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맛깔나게 찍힌 화질이 이유인지 아니면 고도의 편집기술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인기 있는 육아프로그램이나 여행프로그램은 간접체험이라는 측면에서 먹방과 비슷해 보이지만 음식을 먹는 것과 달리 시청자가 쉽게 할 수 없는 행위를 보여준다는 부분에서 나름 궁금증이 해결된다. 하지만 먹방은 다르다. 웬만한 음식은 쉽게 먹을 수 있지 않은가.

 

답은 역시 책에 있었다. 난 음식이 계급이라는 문장에서 먹방의 인기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개념은 계몽주의 인문학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 평등의 이론이 실생활에 적용된 역사는 짧다. 문명의 진보 덕에 인간이 모두 평등하다는 이데올로기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하지만 잘 아시겠지만 결코 평등한 세상은 아니다. 권력과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는 현실은 평등을 가장한 불평등한 세상이다.

 

평등한 건 오로지 음식이다. 과거 지배층이 즐기던 평범한 음식을 우린 매일 먹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 귀한 음식, 독특한 음식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다. 바야흐로 진정한 평등이 음식으로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판단하건대 먹방의 묘미는 바로 프로그램에 빠져 있는 동안만은 우리 안에 내재된 사회적 혹은 구조적 불평등이 제거된다는 부분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먹는 다는 행위에 고귀함과 천함의 경계는 없다. 지금은 누구는 먹을 수 있고 누구는 먹지 못하는 음식의 구분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먹는 먹방에 환호하는 사람들은 먹방을 통해 계급의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물론 나의 지극히 어설픈 개인적인 판단이고 결론이지만 말이다.

 

사족을 붙이기 망설였는데 뭐 어쩔 수 없다. 몇 마디만 더 하고 서평을 맺겠다. 생존을 위한 식사가 맛보기를 위한 식사로 변했다는 글쓴이의 주장에 공감한다. 책에도 언급이 됐지만 음식에 대한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즐기고 맛보는 행위의 식사가 조만간 생존을 위한 식사로 회귀할지 모른다. 오염 때문에 해양 생물들이 전멸 직전이고, 아마존 우림을 대가로 우린 소고기를 먹는다. 사막화는 경작지를 감소시키고 석유자원이 고갈되면서 식량 생산량은 점점 감소될 것이다. 쉽게 예측 가능한 일련의 문제들로 인류 음식 문화의 앞날은 빨간불을 켜졌다. 먹방을 보며 언제까지 우리가 미식을 주제로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너무 심각한 비약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지금 넘쳐나는 음식들을 보며 미래의 굶주림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