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까지가 상상일까? 라는 의미 심장한 질문을 던져놓는 이 책,
'조선사 클리닉' 이라니... 나는 사실 퍼뜩 겁이 났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상식-사실이라고 믿어왔던-들이 어디 까지가 진실이라는 걸까?
역사왜곡이니 하는 말은 저 가깝고도 먼나라들이 선량한 우리나라에게 가하는 나쁜 짓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우리 스스로가 알리고, 우리가 배우는 역사 속에서도 검증안되거나, 오류이거나, 알면서도 고치지 않은 점들이
수두룩 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에 솔직히 한 대 얻어 맞은 듯했다.

내가 아는 것은 틀리지 않을거라는 어쩌면 오만한 자만심이었을테니까.
'아뇨, 우리 아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에요~' 하는 모든 부모들의 당연한 진리처럼 말이다.

역사,라는 점이 어쩌면 부담감으로, 다시 공부해야 하는 무거움으로 다가온 것은
아무래도 내가 학부모가 되어 가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장 체험 학습이며, 우리 고유의 문화 유산 등등에 대한 점수화 된 가치가 드높아지는 요즘 학창 생활을 보니
아, 나도 이제 수박 겉 핥기 식이 아닌 역사에 제대로된 관심을 좀 가져야 겠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말이다.

그렇다면, 내가 배웠던 역사와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가 다른 역사일까?
그것은 아닐텐데, 표면적이고 큰 사건사고들만을 배워왔던 나의 학창 시절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든다.

단순히 몇년도에 임진왜란, 몇년도에 무슨무슨대첩! 이런 암기가 아닌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다양한 각도의 해석과 그 인물과 사건으로 인해서 불거지는 사회적, 세계적인 영향들.
어찌보면 더욱 작고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듯 하지만, 멀리서 볼땐 그것이 보다 크고 넓은 의미로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기에 말이다.

'조선사 클리닉' 역시, 숱한 드라마 사극에서부터 다큐멘터리를 통해 만나게 되는 많은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
'사실'은 어떠한 점이 오류인 것인지, 우리가 당연시 해오던 상식이 앞,뒤가 잘려나간 살짝 빗나간 상식이었는지를
제대로된 고증들을 통해 한 단락, 한 단락 바로 잡아 주고 있었다.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의 새로운 모습인 '조선'을 만나볼 수도 있었으며,
지금보다 더욱 나약했을, 정치에 휘둘렸던 조선의 여인들의 모습도 만나볼 수 있었다.
참 어쩜 그리도 '군주'에 대한 사랑은 저렇게 끈질겼나? 싶을 정도의 답답함도 느껴졌으나...
그것 역시 우리네 선조들의 올곧고, 강직한 성품 아니었나? 하는 (지금은 흔치 않기에) 그리움도 담아보았다.

역사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또 있을까?
정말로 있었던 이야기라는 것에서 그 호기심이 더욱 빛을 발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조선사 구석 구석 담겨있는 각 인물들의 숨은 행적들, 비화들,
국제적인 위치에서의 우리나라의 모습, 그때나 지금이나 만연했을 정치 권력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실세들의 모습.
때로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건 잘못된 것이었구나! 하는 새로운 역사 이야기를 가까이 마주 하고 보니
단순히, 지나가는 가벼운 이야기 거리로만 '역사'를 아는 것이 아니길 소망해본다.

지금의 우리와는 의식주의 방식과 삶의 모습이 달랐을지 모르나,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순간,이 역사이며, 세계와 부대끼는 이 순간이 역사이니...
우리는 어긋남이 아닌 사실에 가까운 역사 자료를 통해, 선조들의 발자취에서 깨닫고 배워야 하며,
우리의 후손들에게 역시 올바르고 제대로된 역사를 남겨줘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크게 자리 잡는다.

책 읽기,를 다룬 책,이 분명 숱하게는 있을것이란 생각을 이 책 '독서'를 손에 들고서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책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책,을 통해 직접 듣는 다는 약간은 아이러니한 느낌도 들었고 말이다.
마치, 티비 속에서 또 다른 티비가 나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던 어릴 적 기억처럼...

 

 

일단 저자가 누려오신 세월의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리라곤 별로 기대하지 않았었다.
제목도 어느 누군가의 취미, 특기란에 올려질 법한 단정한 '독서' 였으니...
약간~은, 지루한 상상도 했었음을 솔직히 고백해본다. ^^

 

일본군과 미군이 버리고 간 고전들을 통해 책에 대한 매력을 더욱 굳건히 세웠던 어린 소년.
그리고 다 자란 소년.이 되셨어도, 그때의 그 추억과 정겨움, 때로는 눈물겹기도 한 아련한 그리움도
품고 있는 그의 책 읽는 이야기들.

순간 심각한 질투가 밀려들었다.
나도 보다 많이 읽어야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욕심꾸러기 심뽀가 올라왔다.

'책' 욕심.
어느 순간, 책이 한 권, 두 권이냐, 백 권, 이백 권이냐에 대한 초점이 맞춰질 뿐,
내가 읽는 책에 스스럼없이 '동화'되고, 고스란히 꿰뚫어 볼 수 있는 그 힘, 그 독서력이 내게도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오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아마도, 책이 오랜 친구임과 동시에 정말 대단한 행운이랄 수 있는!
훌륭한 멘토를 무척이나 일찌감치 만나고, 알아채고, 언.제.나 가까이 해오셨음을 깨닫자니...
또 질투가 일어났다. 하하. 하지만, 질투는 나의 힘, 이라는 말의 묘한 뉘앙스 처럼...
나는 그 속에서 어떤 '힘'의 기운을 살포시 느끼게 되었다.

 

어느 중요한 순간 순간 마다,
가까이 하고자 하는 책 속에서 본보기를 찾았고, 그것을 지표로 삼아가며 지금까지의 삶을 이뤄오셨다는 이야기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오랜 진리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염원하는 마음이 진실되고 큰 자에게는 반드시 해낼 수 있는 '길'도 어김없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리라.

김열규 교수의 그 '하늘'은 바로 '책'이었고,
그 오랜 좋은 친구를 한시도 멀리하지 않았기에 그토록 귀하고도 꼭 필요한 나침반의 역할을 기꺼이 해주었을 것이다.

 

그가 시골 생활로 발걸음을 결정하였을 때에도 그 역할을 했던 책은, 소로의 '월든' 이었다고 한다.
부끄럽게도 내가 너무 '대단한 책'을 읽고 있다는 생각에 상당히 집중하고 특별한 의미를 '미리' 부여한 탓인지
항상 끝까지 읽기가 흐지부지 되고 마는 그 책.
... 이런 부분에서 저자는, 그 숱한 질투를 힘으로 바꿔 놓고 계신다.

내가 듣도 보도 못했던 책들의 소개를 통해서도 단순히 사전적인 느낌의 해설이 아니어서 좋았고,
내게도 그거 좋다더라, 나도 읽어야지, 하는 따라쟁이가 아닌 어느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그 책과의 '만남'을 기대할 수 있어서 매우 지루했던 첫 인상 '독서'라는 제목은 -열정적 책 읽기- 라는
수식어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어떤 것일까?
어느 노교수의 열정적인 책 읽는 삶을 재밌게 훔쳐보다 보니, 퍼뜩 궁금증에 눈이 반짝인다.
나의 열정적인 책 읽기 버전 1.0 은 어떤 것일까 말이다.
이제 점점 업그레이드 되는 그 나만의 책 읽기 묘미를 느낄 준비가 충분히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나의 부모님을 뵈러 떠나는 길, 그곳, 전라도로 향하는 여정 속에 시원한 신록들을 눈여겨 보고 있노라면,
중간 중간 등장하는 누구의 유배지,라는 사적터를 쉽사리 만나게 되곤 합니다.
어릴적 위인전에서나 만나뵈던 옛 선조의 익숙한 존함이기도 하고, 때로는 누구시더라? 하는 궁금증이 일어나기도 하고 말이죠.

 

권력은 지우려 했고, 세상은 간직하려 했던 사람들 [유배]

책의 소개말 부분에서도 한참이나 눈길을 머물게 하는 말이 아닐 수가 없더군요.
[권력]은 지우려 했던 사람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가슴으로 품어 이렇게 자취를 남기게 했던 사람들...

 

사극 드라마를 보면 지엄하신 군주의 어명을 받들고, 흐트러진 옷매무새로 소달구지에 실려 머나먼 곳으로
’유배’를 떠나는 장면을 쉽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의 실세권력에게 밉보이면 그야말로 말 한마디 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웠던 선비들.
내노라 하는 당대 문인들과 학식있는 선비들에게 ’유배’라는 정치적인 덫은 피해갈 수 없는 그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흔들림 없이 곧고 바른 성품과 굴절된 권력앞에 민생을 위한 정치 라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고
외딴 섬, 적적한 타향에서 한평생 혹은 죽음을 맞이 하기까지 유배되었던 옛 선조들의 자취를 읽어가자니..
정말로 모난 돌이 정을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순간 들었습니다.

남은 가족들 역시 유배되어진 자의 신세만큼이나 비통한 가슴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었던 그 시대상을
고스란히 만나고 있자니, 참으로 참담하고 억울함이 제 가슴에서도 울컥이며 살아났습니다.

유배자의 신분이었지만, 한여인을 사랑하고, 연을 맺었지만,
유배자를 추궁하려는 또다른 권력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의 억울하고도 참담한 죽음을 지켜봐야 했을
정헌 조정철.

 

유배지에서도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으로 자녀 교육에 힘쓰기를 마지 않았기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

 

정치란 결국 백성을 위한 것, 이라는 진정한 권력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삼봉 정도전.

 

그 외 추사 김정희, 우암 송시열, 무정 정만조, 정암 조광조, 고산 윤선도 등의 당대 내노라 했던
문인이자 학자들의 유배 이야기는 마치 내가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가 바로 그 곳에서
그네들이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서화를 그리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생생함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적막한 세월 속에서, 창상 없는 감옥 속에서,
후학 양성 또한 게을리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가다듬고 또 가다듬기를 일분일각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선조들.
그 삶의 여운이 얼마나 강렬했을까? 생각해봅니다.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고자 그 열악한 곳에서도 얼마나 몸부림을 치셨기에 그토록 수많은 저서들과 시서화를
남기셨을까?... 생각하게 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집니다.

선조들의 심상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 수많은 시선들의 소개와, 현지 답사 자료는 어느 가벼운 역사여행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만족감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달빛 아래 깊은 시선을 마주한 유배자의 모습이 그대로 그려지는 듯한, 저자만의 매력적인 필력들은
유배자, 그네들의 삶의 자세에 대한 경외와 찬사가 더욱이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 한번, 이 발자취를 따라, 그 곳 그 곳에 닿아보고 싶은 마음을 강하게 불러 일으켜 주고 있습니다.